위의 사진은 해군이나 전함 팬 계통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16인치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로 인해 해면이 원형으로 쫘악~ 밀려나간 상태이고, 이 때문에 이 사진은 전함 주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종종 사용되곤 하죠. 그런데 사진이 주는 임팩트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넷 상에서는 저런 류의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대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올라오곤 하더군요.
① ‘주포를 발사할 때 그 반동으로 함체가 밀려나는가?’
② ‘주포 발사 시에 근처에 사람이 서있는 사진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런데 주포를 쏠 때 해면이 저렇게 쓸릴 정도의 충격파가 발생하는데도 사람은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가?’
①번 질문의 경우는 http://www.navweaps.com/index_tech/tech-022.htm 에 답이 나와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론상 몇 mm 정도 밀려날지는 모르겠지만 전함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평균 폭이 30~33m. mm로 환산하면 30,000~33,000mm이니 몇 mm 정도는 의미가 없죠) 사실상 거의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와 반동으로 움직이기에는 배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죠.
다만 이동 여부와는 별도로 함체가 주포 발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함급 주포의 발사에는 ①포구에서 나오는 충격파 및 ②발사시의 반동이 뒤따르죠. 완전히 흡수되지 못하는 그런 진동은 함내에 있는 정밀하고 섬세한 장비들-기계실, 측거의, 레이더, 기타 전기·전자장비, 심한 경우엔 주포 자신까지-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함 비스마르크도 영국 중순양함 노포크에 대해 주포를 발사한 후 그 충격으로 레이더가 고장나기도 했으며, 1980년대 이후의 아이오와급 역시 함령이 40년을 초과한 노령함이 된 탓으로 일제사격시의 진동이 배의 수명을 줄이거나 함체나 용골에 피해를 줄 것을 우려하여 일제사격을 자제했습니다.
[그야말로 덜덜덜한 포구 화염. 충격파 때문에 마치 해면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전함 미주리의 1989년 당시의 화력 시범 장면. 5인치와 16인치를 번갈아가면서 쏘는데 소리와 포구화염 크기를 비교해보며 감상하시길.]
반면 충격파의 경우는 함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편입니다. 장갑화 되어있지 않은 목제 갑판이나 격벽이 발포시의 충격파로 인해 우그러드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그러나 대상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은 시설물이나 사람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에 의해 근처의 유리창이 깨지는 일도 있고 함재 단정이나 수상기 등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아예 충격파에 휩쓸려 바다로 쓸려갈 수도 있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포탑을 가능한한 한군데로 집중시키고 포탑 주변에는 아무 것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상 최대급의 주포를 가졌던 야마토급의 설계에서도 주된 고민은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와 폭풍으로부터 상갑판의 설비들-특히 대공포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결국 대공포들을 함 중간에 집중시켜 배치하고 주포 폭풍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포탑화 하는 식으로 해결됐지요. 뭐 그래도 진동에 의한 충격 문제는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습니다만.
덧붙이자면, 거리에 따른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는 야마토의 18.1인치 포를 기준으로 할 때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http://homepage1.nifty.com/watakan/yamato/data/other.html#gunfire 홈페이지 주인이 『戰艦 大和·武藏 設計と建造』에서 재인용 한 것임.)
A : 사람이 입고있는 옷이 찢어지고 일시적으로 기절하는 정도의 압력 (1.16kg/㎠)
B : 탑재 수상기가 파손되는 정도의 압력 (0.5∼0.8kg/㎠)
C : 함재 단정이 파손되는 정도의 압력 (0.28kg/㎠)
수상기나 단정보다도 사람쪽이 높게 설정돼있는건 좀 의문이지만(피부가 티타늄으로라도 돼있는건지-_-;;) 아무튼 자료상으로는 저렇습니다. 표에 따르면 주포 1문을 발사했을 때 사람에 대한 안전거리는 약 32m, 3문 모두 발사했을 때는 약 54m군요. 저 거리를 다시 도면에 적용시켜 보면...
대략 위의 그림처럼 되는데(2번 포탑 기준), 만약 포탑을 후부로 지향했을 경우엔 원의 중심은 보다 왼쪽으로 이동하겠죠. 여기에 3번 포탑까지 가세한다면 사실상 주포 발사시에 상갑판에서 사람이 안전한 곳은 거의 없는 셈입니다. 실제로도 비단 야마토의 경우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전함들이 주포 발사 시에는 상갑판에 있는 병력들을 철수시키는 것이 보통입니다.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의 한 장면. 주포탑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화면 아래쪽에 수병들이 함내로 대피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 광경이 묘사된 영화가... 혹시 한 14~15년 전쯤에 MBC에선가 틀어준 『작은 영웅(원제 : ‘Too Young the Hero’, 1988)』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군요. 스토리는 2차대전 때 한 12살짜리 꼬맹이가 나이를 속이고 해군 수병으로 입대해서 전함 승조원으로 참전했다가 휴가 복귀 때 시간에 대지 못하여 배는 출항하고 주인공은 탈영으로 처리되어 구속, 해군 교도소에 수감된 실화를 영화화한겁니다.
아무튼 그 영화에서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와 관련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황이 대략 미국의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일본 해군의 전함과 야간 교전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과달카날 해전으로 추정) 이때 상갑판에 나와있던 수병들은 모두 함내로 철수했는데 주인공이 무슨 이유에선지 들어가지 않고 밖에 남아있었죠. 그리고 주인공이 그를 데려가려는 동료와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16인치 포가 발사되었는데, 결과는... 동료는 충격으로 사망하고 주인공은 갑판 저 멀리 튕겨나간 후 내상을 입었는지 고통에 몸부림치며 갑판 위를 뒹굴던 기억이 나는군요.
[영화 ‘언더시즈’의 한 장면. 주포가 발사될 때 근처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랄까요? 그나저나 시걸 형님은 SEAL요원으로 있다가 언제 포술장 스킬까지 터득한건지....? --;;]
이렇듯 주포 발사시의 충격파가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포를 발사할 때 갑판에 나와 있으면 별로 몸에 좋진 않겠죠. 그러면 여기서 다시 의문이 발생합니다. 도대체 주포 발사 때 사람들이 갑판에 나와있는 사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사람들은 갑판에 나와있어도 괜찮았던 걸까요?]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 주포 발사 장면을 찍은 사진들 중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없는 장면에서는 대개 포탑의 포 3문이 모두 발사되는 것, 그리고 사람이 있는 사진에서는 포탑의 포가 대부분 1문만 발사되는 것을 볼 수 있죠. 위의 표에도 나왔듯이 포탑의 포를 3문 발사할 때와 1문 발사할 때 충격파가 미치는 범위의 차이는 꽤 큰 편입니다.
[16인치 함포의 장약 장전 장면]
둘째, 전함의 주포는 소구경 함포나 전차포와 달리 포탄과 장약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아이오와급 전함에서는 포탄 1발당 위의 사진과 같은 장약이 6개가 들어가는데, 사람이 있을 때 찍은 사진에서는 포구화염의 크기 등으로 보아 장약 수를 줄인게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포 발사시에 사람이 나와 있는 사진에서는 사람들이 함수의 가장 앞부분이나 함교 위에만 위치하고 있으며, 모두들 하나같이 귀마개를 착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포를 1문만 발사했거나 장약을 줄였거나, 혹은 사람들이 귀마개를 끼고 주포 충격파의 위험거리 밖에 위치했다면 그럭저럭 저렇게 갑판에서도 버틸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처럼 일제사격을 하는데다가 장약을 규정대로 채우는 상황이라면 밖에 나와있기가 좀 곤란할테죠? ^^;
p.s. 이렇게만 보면 주포의 충격파가 매우 성가시고 위험한 것으로만 여겨질테지만, 때때로 주포의 충격파가 수병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포사격 훈련을 하는 날에는 발포시의 충격으로 배 주위에 물고기가 둥둥 떠오르곤 했기에 수병들의 식탁이 풍성해지곤 했지요.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도 우리 군이 미 군함의 주변에 어선을 내보내서 사병들의 부식을 충당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http://www.ussmissouri.com/
- http://www.fas.org/man/dod-101/sys/ship/weaps/mk-7.htm
- http://www.navweaps.com/Weapons/WNUS_16-50_mk7.htm
- http://www.navweaps.com/index_tech/tech-022.htm
-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systems/ship/systems/mk-7.htm
- http://homepage1.nifty.com/watakan/yamato/data/other.html#gun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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