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미국 해군과 술 : ② 금주정책 하에서의 일탈

구름위 2012. 12. 2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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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면 금주 정책 하에서의 각종 일탈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미 해군은 1914년 부로 함상과 영내에서 술을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추방된 술의 자리에는 그 대신 커피가 자리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 해군의 배들은 기름으로 움직이고, 그들의 승조원들은 커피로 움직인다’는 말이 나돌 만큼 일반화된 음료로 자리매김 했죠. (※ 미 해군과 커피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글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그러나 커피와 술의 효능은 유사한 면도 있긴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기호품입니다. 과연 모든 장병들이 커피로 만족할 수 있었을까요? 규칙이 있는 곳엔 언제나 그걸 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어떻게 해서든 술을 맛보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쉽게 예상할 수 있다시피 미 해군에도 ‘걸리면 작살난다는 아슬아슬함’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던 부류들이 존재했습니다.

1) 술의 밀반입
전면적인 금주 정책 하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합법적인 방법은 바로 나가서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술을 뿌리 뽑고자 했던 미 해군 당국이었지만, 상륙이나 휴가 등으로 영내를 벗어났을 때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죠.(물론 1919~1933년 동안에는 밖에 나가서도 술을 구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문제는 이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안에서도 술을 마시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상륙/휴가 중에 술집(혹은 밀주업자)으로부터 술을 구입한 다음 다양한 방법으로 임검을 피해 이를 함정이나 기지 안으로 반입하곤 했는데, 이때 흔히 이용됐던 것이 바로 옷 속에 감추는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미 해군 수병복의 바지는 밑단이 넓은 ‘나팔바지’ 스타일이었고, 그 넓이가 작은 사이즈의 술병이 들어가기에 딱 안성맞춤인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수병들이 바지 밑단에 비밀 주머니를 만들고는 그 안에 술병을 담아 밀반입을 시도하곤 했죠.



한편, 2차대전 때나 전후의 합동 군사 훈련 등 영 연방 계통의 함정과 접촉할 기회가 있을 때에도 술의 밀반입이 이뤄지곤 했습니다. 영 연방 함정에는 배급되는 럼주가 있었고 미국 배에는 콜라나 아이스크림이 있었으므로, 두 나라의 수병들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적절히 물물교환 했던 것이죠. 물론 영 연방 배보다 미국 배가 많을 때가 잦았고 미국인들 쪽이 상대방의 물품에 대해 훨씬 더 아쉬운 형편이었으므로, 이 거래는 영 연방의 수병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2) 의료용 주류 훔쳐 마시기
1914년의 전면 금주 조치의 또 다른 예외조항은 바로 의료용 주류였습니다. 의료 시술에 사용되는 소독용 에틸 알콜이나 강심제 역할을 하는 브랜디, 위스키, 그 외 리큐르 등 ‘약으로써의 술’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에 전면 금주 조치 하에서도 허용될 수밖에 없었죠. 이들 알콜과 주류들은 군의관의 관리·감독 하에 놓여 있었고, 보통 의무실의 약품 수납장에 고이 모셔져 있곤 했습니다. 그러면 때때로 이런 의료용 주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수병들이 의무실에 무단 침입하거나, 혹은 의무병과 작당을 해서 이를 조금씩 몰래 몰래 빼내 마시는 거죠.


[영화 “베드포드 사건(The Bedford Incident, 1965)" 의 한 장면 : 서독인 군사 고문이 신임 군의관으로부터 ‘약’으로 술을 받아가는 광경입니다.]

하지만 의료용 주류의 주 고객은 수병들보다는 주로 장교들이었습니다.(물론 어느 정도 짬이 되는 고급장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평소에 군의관과 친한 장교들은 가끔씩 이렇게 보관돼있는 의료용 주류들을 얻어 마시곤 했고, 드물긴 하지만 함장처럼 함내의 권한이 막대한 장교에 이르면 아예 사적으로 술을 가져다가 의무실 수납장에 보관해놓고는 ‘개인적인 지병’을 핑계 삼아 가끔씩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의료용 주류에 가장 가까이 있는 군의관과 의무실 사람들이 제일 술 마실 기회가 많았을테지만 말이죠.

소설 「HMS 율리시즈」(국내명 : 여왕폐하 율리시즈호-_-;)에는 이렇게 의료용 명목의 주류를 마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비록 영국 해군을 다룬 소설이긴 하지만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여 올려봅니다.

(군의관 브룩스 중령이 사령부 방문 후 복귀하여 군의 대리 니콜스 대위를 만나는 대목입니다.)
“난 늙었어, 조니. 시대에 뒤처진 늙다리야.”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니콜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지치셨을 뿐입니다. 괜찮습니다. 좋은 회복제를 드릴테니...”

그는 기구 따위를 넣어두는 찬장을 향해 돌아서서 치과용 컵 두 개와 물결무늬에 ‘극약’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진한 녹색 병을 하나 꺼냈다. 컵에 넘칠 듯이 가득 따르더니 하나를 브룩스에게 내밀면서, “저의 개인적인 권고입니다. 건강을 빌며!!”

브룩스는 호박색 액체를 바라보고는 다시 니콜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스코틀랜드의 어떤 대학에선 이런 이단적인 풍습을 가르친다더군. 그 이교도 가운데에도 훌륭한 것이 있으니까 말야. 이번엔 뭔가, 조니.”
“1급품입니다.” 니콜스는 빙긋 웃었다. “ 콜 섬(島) 산입니다.”

늙은 군의관은 의아하게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곳에 위스키 공장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
“없습니다. 저는 콜 섬의 술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후략)

(※ 출처 : 알리스테어 맥클린, 허문순 역, 『여왕폐하 율리시즈호』, 2003, 동서문화통판, pp.29~30)

3) '토피도 쥬스(Torpedo Juice)'
2차대전 이전, 미 해군이 사용하던 어뢰는 추진동력으로 대부분 내연기관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료는 바로 알콜, 곡물 등으로 만들어진 순도 95% 이상의 에틸 알콜이었죠. 때문에 잠수함, 구축함, 항모의 병기병 등 어뢰를 접할 수 있는 보직의 수병들 중에서는 어뢰의 알콜을 빼내서 마시는 사람들도 종종 나타나곤 했는데, 이들은 빼낸 알콜을 오렌지나 파인애플 쥬스 등과 1:3의 비율로 섞은 뒤 이를 ‘토피도 쥬스(Torpedo Juice)'라고 부르며 마시곤 했습니다. 어뢰에서 빼낸 알콜로 만든 것이니 나름대로 그럴 듯한 별명이죠?

물론 이는 중범죄에 속했습니다. 사실 어뢰의 연료탱크 용량에 비하면 수병들이 빼내는 양은 참새 눈물 정도밖에 안되니 발사된 어뢰가 항주 도중에 멈춰버린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병기에 손을 대는 일은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죠. 하지만 어뢰를 하나하나 점검해가며 연료량을 체크할 수도 없는데다가 항상 어뢰 관련 수병들을 감시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토피도 쥬스를 완전히 근절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당국은 수병들이 빼낸 알콜을 마실 수 없도록 어뢰연료용 알콜에 붉은 색의 화학물질을 첨가했지만, 술에 굶주린 수병들은 그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필터(대개 압축한 빵 덩어리였음)로 화학물질을 걸러낸 후 분홍빛이 감도는 알콜을 마시곤 했죠.



이런 현상은 1944년부터 전지 추진식 어뢰가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줄어들긴 했지만, 어뢰나 장비의 청소에도 알콜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사례는 2차대전 중 미 잠수함 <퀸 피쉬(USS Queenfish)>에서 근무했던 리차드 페이슨의 증언입니다.

“나는 자이로컴퍼스의 관리 담당이었고, 2주마다 알콜로 표면에 생긴 그을음을 닦아내곤 했다오. 함장님이 자기 방에 청소용 알콜통을 보관해두고 있었고, 컴퍼스를 청소할 때가 될 때마다 폴 밀러가 그로부터 알콜 반 컵씩을 얻어왔지요. 그러면 (컴퍼스를 청소하는데에는) 티스푼 정도만을 사용하고, 남은 것에 콜라 시럽을 섞어서 밀러와 같이 마시곤 했다오.”
(※ 출처 : Robert Hargis, US Submarine Crewman 1941-45, 2003, Osprey Publishing, p.30)

4) 직접 술 담그기 : ‘레이즌 잭(Raisin Jack)'
‘토피도 쥬스’가 어뢰와 관련이 있는 보직에서만 가능했던 수단이었던 반면, 보직이나 배의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심지어 상륙함의 해병이나 태평양의 정글에 있는 육군 병사들도 사용할 수 있었던 방법이 있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처럼 술이 없으면 직접 술을 담그면 되는 것이죠.

높은 순도의 고급술을 만드는게 아니라면 술 담그기는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술은 크게 증류주와 발효주의 2종류로 나뉘고, 이중 발효주는 효모가 설탕, 포도당, 과당, 젖당과 같은 당분을 에틸 알콜로 바꾸는 ‘알콜 발효’ 과정을 이용한 것이죠. 공기 및 일부 과일 표면에는 무수한 자연 효모가 존재하기 때문에 적당한 농도의 당분과 수분을 방치해두면 저절로 알콜 발효가 일어나 술이 만들어지게 되며, 인류 최초의 술 또한 저장해둔 과일에서 생긴 과즙이 이런 식으로 변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군 병사들이 술을 빚을 때 사용한 것도 이 알콜 발효로써, 물과 적정량의 당분, 그리고 발효가 일어나기에 적합한 따뜻한 곳만 있으면 간단히 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의 주 전장이었던 남태평양 지역은 거의 사시사철이 여름인 곳이었으니 술 담그기에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곳이었죠.

술 담그는 방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지만 보통 일반적으로 쓰인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선 술을 담글 그릇을 준비합니다. 드럼통이든 아무 그릇이든 상관없지만 병사들은 보통 5갤런짜리 수통을 선호하곤 했죠. 그 다음으로 당도를 맞추기 위해 보급품이나 함내 PX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 통조림류(후르츠칵테일, 복숭아캔, 깐포도캔 등)나 설탕을 듬뿍듬뿍 쏟아 넣습니다. 그런 후에 발효를 위해 건포도도 한 움큼 집어넣어줬죠.(건포도에 붙어있는 자연효모를 이용하기 위해) 혹시 취사병과 친해서 제빵용 이스트를 얻을 수 있다면 일은 훨씬 더 쉬워집니다. 자연 효모를 이용하는 것보다 발효 속도도 빠르고 효율도 좋으니까요. 이 모든게 끝나면 통에 물을 부은 다음 햇빛이 작열하는 상륙함의 갑판이나 정글, 혹은 배의 기관실 등 따뜻한 공간에 놓아둡니다. 대략 3~5일이 지나면 마실만한 술이 완성되곤 했는데, 해군의 수병들은 이 술을 주원료인 건포도(Raisin)의 이름을 따서 ‘레이즌 잭(Raisin Jack)' 이라고 불렀고 육군 병사들은 만드는 장소를 따서 ’정글 쥬스(Jungle Juice)'라고 부르곤 했죠.


[직접 담근 술을 마시는 2차대전 당시의 미군 장병들]

다만 이 방법에는 몇 가지 번거로운 점이 있었는데,
① 발효 과정 중 대량의 탄산가스가 발생하므로 가끔씩 통을 열어 가스를 빼주지 않으면 통이 터질 수도 있었음.
② 발효 과정 중에 특유의 발효냄새가 남.


특히 후자의 경우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여기서 술이 빚어지고 있소’ 하고 널리 퍼뜨리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고, 그러다 보면 다른 수병들이 술을 나눠달라고 몰려들거나 배의 당직 장교나 위병 부사관이 밀주 제조 현장을 적발할 위험성도 만만치 않았죠. 이런 점에서 보면 술 빚기에 가장 적합한 보직은 기관병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술이 빚어지고 있는 통을 그저 기관의 흡기구 근처에 두기만 하면 되었고, 그러면 발효냄새 또한 공기와 함께 기관으로 빨려 들어가서 깔끔히 사라졌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렇게 해서 생긴 결과물은 약 4~5도 정도로 맥주와 비슷한 정도의 도수를 갖고 있었으며, 맛은 레시피에 따라 조금씩 달랐으나 대체로 탄산이 섞인 달짝지근한 맛으로써 요즘 나오는 후치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사실 후치도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5도짜리 과실주이니 거의 같은 부류일테지만 말이죠.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Mark Henry, The US Navy in World War II, 2002, Osprey Publishing
- Robert Hargis, US Submarine Crewman 1941-45, 2003, Osprey Publishing
- http://en.wikipedia.org/wiki/Torpedo_Juice
- http://nibalnet.blogspot.com/2007/04/this-lady-is-tart-in-taste.html
- http://queenfish.org/noframes/stories2.html
- http://www.west-point.org/users/usma1951/18250/Ommaney%20Bay.htm
- http://en.wikipedia.org/wiki/Jungle_juice
- http://www.de220.com/Machinery/machinery.htm
- http://www.ussvance.com/Vance/htm/rajack.htm
- http://www.geocities.com/Pentagon/Quarters/3109/storie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