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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는 타이코켄치(太閤檢地:토지조사)를 실시하여 코쿠다카(石高:쌀 생산량)制에 의한 근세적인 토지소유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다이묘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었다. 히데요시의 직할지는 전국의 코쿠다카 약 1800만석 중 200만석에 이르고 기나이(畿內)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사카이(堺), 후시미(伏見), 나가사키(長崎) 등 정치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를 직할령으로 하고, 주요한 금과 은의 산지도 직할령으로 했다.
※후시미(伏見):교토 남부, 1594년 히데요시가 후시미성을 건설한 이후로 죠카마치(城下町)로 발전, 1623년 廢城 후에도 교토와 오사카를 잇는 水運의 기점으로 번성함.
※사카이(堺):오사카 중서부, 오사카만에 임해 있고 야마토가와(大和川)를 경계로 오사카시와 南接한다. 일찍이 남북조시대에 항구로 발전한 사카이는 난반(南蠻)무역의 거점으로서 무역도시로 발달,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함. 仁德天皇陵의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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