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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빅혼 전투

구름위 2012. 12. 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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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인디언 학살자로 유명한 커스터 중령이 인디언들과 벌인 전투다.
이 전투는 토착 인디언에 대한 미 정부의 우유부단한 정책이 원인이 되었다.
제2차 라라미 요새조약에 따라 다코타 지역에 대한 인디언의 독점권이 보장됐지만,
백인들은 금을 찾아 인디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다코타 땅에 들어와 살았다.
 
미국 정부는 백인 정착자를 내보내지도, 수족에게 그 땅을 팔라고 설득하지도 않고
인디언들이 가끔 백인 거주지역을 공격하는 것을 조약의 위반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1876년 1월 31일까지 지정된 보호구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인디언을 미국의 적대적인 존재로 간주할 것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명령이 사냥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겨울이라 이동하기 어려웠으며, 많은 평원 인디언들이 더 이상 백인에게 양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단단히 했기 때문에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1876년 6월 미국 정부는 앨프레드 테리 준장의 군대를 파견해 인디언 지역을 샅샅이 수색하도록 했다.
테리는 인디언의 이동을 리틀빅혼 강 어귀에서 막을 생각으로 주력부대를 옐로스톤 강 상류로 이동하고,
커스터 중령과 제7기병대는 로즈버드 강을 따라 올라가 리틀빅혼 강을 건넜다.
 
이 두 부대는 인디언을 포위 공격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커스터 중령은 사흘간 진군한 끝에 그 근처에 캠프를 친 대규모의 인디언과 마주쳤다.
이들은 수족과 샤이엔족의 연합군이었다. 뜻 밖의 상황을 만난 미군은 작전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세 갈래 공격 작전을 세워 벤틴 대위와 리노 소령에게 강 양쪽에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하고
자신은 북서쪽으로 가서 인디언 캠프를 후방에서 급습하기로 했다.
 
커스터가 캠프의 북쪽 가장자리에 닿기 전에 첫번째 공격을 감행한 리노는 완전히 패했다.
그는 폭풍처럼 휘몰아쳐 오는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고 수세에 몰려 강을 건너 퇴각했다.
이렇게 되자 벤틴의 부대가 리노 부대와 합류하여 참호를 파고 싸움을 계속했다.
리노 휘하의 부대가 후퇴하자 커스터 부대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인디언 주력 부대는
커스터 부대를 공격하여 2백 명을 사살하는 등, 1시간 동안에 커스터 부대를 완전히 전멸시켰다.
 
이 전투로 인디언 전세의 막강함이 입증되었지만, 백인들의 경악과 분노를 초래해
결과적으로 이 지역의 운명이 더 비극적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미군은 병력을 증강했다.
그리고 다시 그 지역에 물밀듯이 쳐들어갔고, 결국 인디언은 항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