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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소리로 전쟁을 하였던 여자

구름위 2012. 10. 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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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전쟁을 하였던 여자

 

 

 

간단한 수신기를 통해 원거리에서 송출되는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라디오는 탄생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적을 살상하는 무기라고 할 수는 없고 주로 선전이나 적진 깊숙이 침투한 스파이들에게 비밀리에 지령을 하달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흔히 이를 통한 심리 교란용 방송을 선무공작(宣撫工作)이라 하는데, 예상보다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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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에 라디오는 좋은 선전 수단입니다 ]

 

예를 들어 제2차 대전 중 영국에서 대륙으로 전파를 발송하여 실시한 선무공작은 나찌 치하에서 신음하던 대륙의 유럽인들에게 항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사회교육방송'이나 '미국의 소리(VOA)'는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 신음하는 많은 주민들이 외부의 소식을 듣는 창이 되고 있습니다.  탈북자의 상당수가 이들 방송을 자주 들었다는 조사가 나왔다고 하니 그 효과가 상상이상으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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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A 방송 녹음 장면 ]

 

치열한 교전 중에는 선전 방송도 더욱 활발해지는데 이런 경우 가장 효과적인 콘텐츠는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사실 상대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과잉 선전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반면 개개 병사들의 본성을 울리는 방법은 전투력을 급속히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먼 곳에서 온 병사들은 그런 경향이 큽니다.  고사에 나오는 사면초가(四面楚歌)는 가장 대표적인 심리전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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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전을 위해 설치된 확성기 ]

 

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선무공작의 사례라면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미군들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도쿄로즈(Tokyo Rose)를 들 수 있습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일본 여자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수많은 젊은 미군들을 목표로 라디오를 통한 선무공작에 나섰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절해고도를 떠돌며 싸우는 미군들은 향수를 부추기는 음악과 더불어 흘러나오는 나긋나긋한 동양 여자의 목소리에 점차 빨려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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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전쟁 당시 라디오를 듣는 미군 사병 ]

 

비록 그 효과를 측정한 정확한 기록이나 근거는 없지만 선무방송에 동원된 일본 여자들을 통틀어서 미군들이 도쿄로즈라 칭하였을 만큼 그 위세가 대단하였습니다.  그중에는 방송 예명을 앤(Ann)이라 하면서 0시에 '고아 앤(Orphan Ann)'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바 도쿠리 디 아키노(Iva Toguri D'Aquino)라는 여자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병사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미군 당국에게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라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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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 도쿠리 디 아키노 ]

 

종전 후 도쿄로즈들은 체포되어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유독 그녀는 미국으로 압송되어 10년형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방송 내용으로 본다면 다른 방송 요원들에 비해 특별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유별나게 중벌을 받았던 것은 미국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를 배신하고 적국을 이롭게 하는데 앞장 선 반역 행위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1948년 FBI는 그녀를 기소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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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을 받는 이바 도쿠리 ]

 

미국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미국으로 이민 온 일본인 가정에 태어나고 현지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완벽한 미국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1년 7월에 일본을 방문했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현지에 잔류하게 되면서 그녀의 기구한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일본 군부가 생활고에 시달린 그녀를 선전방송에 동원하였고 그녀는 미군 병사들의 친구이자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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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함께 있던 모습 ]

 

1945년 4월 19일 일본에서 만난 포르투갈계 혼혈인 펠리페 아퀴노와 결혼했지만 종전으로 미군에 체포당하며 여자로써 최소한의 행복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6년을 복역 한 뒤 1956년 석방되었고 고향 시카고로 돌아가 살던 중 1977년 포드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2006년 90세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어쩌면 그렇게 그녀를 만든 것은 바로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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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의 모습 ]

 

어떻게 생각한다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에 힘들만큼 문화적으로 가장 상이하였던 나라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전쟁이 태평양 전쟁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이바 도쿠리처럼 중간자적 입장이 있었거나 두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던 이들이 겪었을 고통은 컸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핏줄을 선택하여 자신의 조국을 향해 입으로 전쟁을 치른 이바 도쿠리는 전쟁이 만든 비극적인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출처 : 요트고래사냥
글쓴이 : 베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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