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기원은 원로원에서 시작한다.
원로원들은 각 가문을 대표하는 파트로네스(보호자)가 되고
그 가문엔 수천에서 수만명의 클리엔테스(피보호자)들이 있다.
즉, 유력한 한 귀족 밑으로 다수의 평민들이 집단을 구성한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거의 혈연에 가까운 결속력을 발휘했는데
대신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간에는 명확한 의무가 주어졌다.
귀족은 평민을 보호하고 평민은 피보호자로써 그 의무를 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분포는 대략 귀족이 10%, 평민이 90% 정도 되었다.
당시 로마는 직접세에 해당하는 것이 농토에 비례한 병력 제공이었기 때문에
넓은 농지를 소유하는 대귀족에게는 많은 병사를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이것도 클리엔테스가 존재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마에는 돈을 주고 용병을 사는 관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 즉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귀족과 클리엔테스가 단순히 보호자와 피보호자로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귀족의 재정 상태가 나빠지면, 클리엔테스들이 공동으로 귀족을 도왔다.
반대로 클리엔테스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위기에 빠지면 귀족이 도왔다.
클리엔테스가 무슨 사업을 시작할 경우, 파트로네스는 동료 귀족들한테 부탁해서라도
그 사업이 성공하도록 힘써주었다. 귀족이 해적한테 붙잡혀 몸값이 필요해지면,
클리엔테스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몸값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어 있었다.
클리엔테스는 자식의 혼담이나 교육 문제, 취직 문제, 소송 문제까지도 귀족과 의논했고,
파트로네스는 그 문제 해결을 도와줄 의무가 있었다.
이러한 유대관계는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넘으면서 확실하게 돋보인다.
당시 민중파인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의 영웅으로 떠오르지만
귀족파인 원로원들이 폼페이우스를 앞세워 그를 반역자로 몰아부친다.
카이사르는 할 수 없이 병력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넘게 되는데
이때 가장 충실했던 부장 라비에누스가 카이사르 곁을 떠나게 된다.
그는 폼페이우스 가문의 클리엔테스였던 것이다.
라비에누스는 심정적으로 민중파인 카이사르를 따랐지만
폼페이우스 가문의 클리엔테스라는 태생적인 운명때문에 그를 떠나고
폼페이우스를 위해 죽을때까지 카이사르에 맞선다.
이러한 로마 귀족간의 분쟁엔 늘 클리엔테스들의 무조건적 지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시칠리아에 강하게 남아
그들이 말하는 '패밀리'라는 정서로 고착화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출처 : http://cafe.daum.net/silverhischool ]
로마인들만의 특별한 관계 -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 (노백님글 참조).
'시사.상식 > 시사.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네팔의 정복자 텐징 노르가이 (0) | 2012.10.09 |
---|---|
[스크랩] 알렉산더의 여인 (0) | 2012.10.09 |
[스크랩] 블뤼느오의 피의복수 (0) | 2012.10.09 |
[스크랩] 히틀러 비화 (0) | 2012.10.09 |
[스크랩] 흉노의 황제 묵특 (0) | 2012.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