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 석유 마피아
메이저는 국제 석유 자본인 '국제 7대 오일 메이저'의 약칭이다.
미국계의 엑슨. 걸프오일. 스탠더드 오일 오브 캘리포니아. 텍사코. 모빌오일
그리고 영국계의 브리티 페트롤리엄. 영국-네델란드계의 로얄 더치 쉘 등이다.
다국적 기업인 이 회사들은 일관된 석유 조업체계를 갖춘 독점적 기업이다.
OPEC가 1960년에 결성은 됐지만 메이저들과 동등하게 힘을 쓰게 된 것은 10년 후이다.
그리고 메이저들은 지금도 여전히 석유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는 '석유 마피아'로 불려질 정도로 파워가 막강했다.
ROUND 2. 마피아의 보복
메이저들은 그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해칠 움직임이 보이면 철저히 보복했다.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뜨린 예가 대표적이다.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던 모사데크는 1951년 정권을 잡자 영국계 회사를 국유화 해버렸다.
이렇게 되자 영국계 회사는 다른 메이저와 연합하여 이란산 원유의 판로를 봉쇄해버렸다.
이렇게되자 이란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모사데크 총리와 국왕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영국계 회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CIA의 힘까지 빌렸다.
1953년 8월 팔레비 왕이 모사데크 축출을 기도하자 오히려 지지 군중들에 의해 강제 퇴위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들이 정권을 뒤엎고 국왕을 권좌에 복귀시켰다.
모사데크는 반역죄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형기를 마친 뒤에도 죽을 때까지 자택에 연금되었다.
모사데크로 말미암아 이란의 석유 산업은 정부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다.
잠옷 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타난다거나, 의사당에 침대를 들여놓고 누워서 연설을 한다거나,
자주 울음을 터뜨리는 등 그가 총리 재임기간중에 보인 기이한 행동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런 기이한 행동이 병 때문이라고 변호하기도 했지만
적대자들은 그것을 교활한 대중선동술이라고 받아들였다.
메이저들은 동업자들의 도전도 용납치 않았다.
이탈리아 국영 석유회사의 총재인 '마테이'가 희생된 예다.
마테이는 산유국측에 유리한 이익분배 방식을 내 놓고
메이저에 도전을 했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다.
ROUND 3. OPEC의 등장과 파워게임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
산유국의 가장 무서운 적은 석유의 공급 과잉이다.
그러나 반대로 석유회사가 이윤을 늘리는 방법은 석유를 최대한 생산하는 것이다.
석유산업은 시설 투자가 엄청난데 반해 운영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일단 유전이 개발되면 석유를 생산할수록 이윤이 쏟아지는 것이다.
석유회사들은 늘 산유국과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유가를 내리곤 했다.
OPEC는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공격적 조직이 아닌, 석유가 인하를 막고자 한
수세적 조직으로 산유국들간에 결성됐다.
목표는 '석유가격의 안정과 가격변동의 방지'를 내세웠지만.
OPEC와 메이저들간의 역학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리비아에 혁명이 일어나고 가다피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가다피는 산유국으로선 처음으로 단유 조치를 취햇고,
메이저들이 산유국에 대해 사용했던 각개 격파 전략을 거꾸로 석유회사에 사용해,
그들의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1971년 석유회사들은 처음으로 OPEC에 석유와 재정문제를 토의하자는 제안을 함으로로써
OPEC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OPEC가 반격할 차례였다.
가다피의 여성 경호원
ROUND 4. OPEC의 10월 혁명과 메이저의 굴복
메이저로부터 OPEC의 지위가 인정되면서 산유국의 힘은 점차 강해졌다.
이후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들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이때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는데, 외신들은 이를 가리켜 '석유의 10월 혁명'이라 불렀다.
이 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를 의회에 요청하자,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아랍 이익에 활용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미 석유금수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아랍 점령지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매월 5%씩 석유 생산을 줄이겠다고 발표하고 원유가를 17%까지 인상했다.
이러한 석유의 무기화는 세계의 경제를 휘청이게 했고,
외교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서
친 아랍 정책으로의 전환을 유도해 냈다.
이후 OPEC는 메이저들이 쥐고 있던 원유가 결정권마저 빼앗고 말았다.
그리고 1980년, 메이저가 뿌린 씨앗에서 호메이니가 태어난다.
[출처] 시사주간지 (15년전 메모라 기억이 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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