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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신의 달인 페르디카스

구름위 2012. 10. 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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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페르디카스 2세같은 인물도 없을 것이다.

배신의 달인, 배신의 자가발전, 배신의 무아지경 등등

마케도니아 왕의 배신을 상징하는 단어는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페르디카스의 대그리스 사기 프로젝트를 살펴보겠다.

 

ROUND 1 - 영원한 앙숙

 

전쟁 초기인 기원전 434년이었다.

페르디카스는 마케도니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 느슨한 형태로 통치하고 있었다.

이것은 선왕의 카리스마를 이어받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때 페르디카스의 동생 필립이 왕권에 도전하였다.

적국의 분열은 아테네가 바라던 바였으므로 당연히 필립을 지지하였다.

이에 단단히 삐친 페르디카스는 아테네 속국들의 반란을 배후 조종하였다.

특히, 전쟁의 발화점이 된 포티다이아의 반란은 매우 심각했다.

 

아테네는 즉시 군대를 보내 포티다이아를 포위하였다.

이때 코린토스가 군대를 파병하자 아테네는 서둘러 마케도니아와 협상을 벌였다.

"조건이 뭔데?" "긴 말 필요없어, 빨리 계좌번호 불러!"

마케도니아는 때 아닌 횡재에 입이 귀에 걸렸다.

 

ROUND 2 - 첫 번째 배신

 

후방의 안전을 확보한 아테네는 신속히 포티다이아로 진군하였다.

그런데 페르디카스가 즉각 조약을 깨고 아테네군의 길을 막았다.

"어어, 왜그래?" "소식듣고 왔다. 반도 얘들이 너 손본다메?"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여기서 쥐어 터져서 돌아간다.

"아씨~ 돈 다 까먹었네~"

 

ROUND 3 - 약소국 뒤통수 치기

 

펠로 전쟁이 격화되면서 아테네는 마케도니아를 묶어 둘 필요가 있었다.

트라키아 왕족과 결혼을 성사시킨 아테네는 다시 마케도니아와 협상하였다.

"얼씨구? 트라키아를 등에 업고 나를 협박해 보겠다?"

"또 말 길어진다. 계좌번호나 불러 임마!!"

 

"돈은 필요없구 쓸만한 땅이나 좀 줘봐!"

"그럼 테마 한 덩어리 먹고 떨어져!"

"그건 양이 좀 안차는데, 다른 옵션은 없나?"

"너 안 잊었구나? 그래, 예전에 필립 지지한거 철회다!"

결국 양측은 필립을 체포하는데 공조키로 했다.

 

이때 마케도니아는 자신이 꼬드겨서 반란을 일으킨 찰키디아를 공격하였다.

아테네는 자국의 반란을 진압해주는 페르디카스를 바라보았다.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정말 미스테리하네~"

 

ROUND 4 -  두 번째 배신

 

기원전 429년, 아테네가 해전에서 맹위를 떨칠 때

페르디카스는 아테네가 너무 강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동맹을 깨고 스파르타를 위해 지원군을 파견하였다.

그러자 트라키아가 아테네의 지원을 약속 받고 마케도니아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깜짝 놀란 페르디카스가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 보내기로 하고 사태를 겨우 진정시켰다.

"아~ 진짜 클날뻔 했다!" 이어서 마케도니아와 아테네가 세 번째 동맹에 합의했다.

 

ROUND 5 - 세 번째 배신

 

기원전 424년, 펠로측은 명장 브라시다스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는 지체없이 그리스 북부의 트라키아로 출정하였다. 

아테네는 안심할 수 없었는지 또 다른 내륙국가인 테살리아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마케도니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맹을 깨고 스파르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브라시다스를 도와 아테네의 중요한 식민지인 암피폴리스를 점령하였다.

암피폴리스는 함대를 위한 목재를 얻기에 아주 용이한 곳이다.

이것은 아테네에게 심각한 타격이었고 마케도니아의 협상력을 강화시켰다.

 

명장 브라시다스의 진격은 계속 되었다.

칼기디케 지역이 차례로 점령되며 전황은 펠로측으로 기울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아테네는 즉각 본국의 수비대를 파견하였다.

 

423년, 아테네와 펠로측이 1년간의 휴전을 맺었다.

그러나 그리스 본토는 휴전이었지만 내륙쪽은 그렇지 않았다.

스파르타는 마케도니아에 대한 보상으로 아테네 영토를 취할수 있게 도와주었다.

게다가 해적으로 유명한 일리리아까지 부킹시켜 주었다.

 

ROUND 6 - 일리리아의 배신

 

날개를 단 마케도니아는 아테네 식민지들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이때 일리리아는 마케도니아가 노른자위만 다 차지하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열 받은 일리리아는 더 이상 싸울맛이 나지 않았다.

 

"야~ 쌈은 대충하고 밥은 두 그릇씩 먹냐?"

"에이~ 먹는 것 같고 왜 그래, 치사하게~"

"아놔~ 돌겠네!!" 일리리아는 갑자기 군대를 돌려 마케도니아를 공격했다.

욕심을 부린 마케도니아 때문에 불똥은 스파르타에까지 튀었다.

 

스파르타도 공격을 받자 마케도니아와 연합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합지졸이었던 마케도니아가 싸워보지도 않고 줄행랑을 쳤다.

그러자 정작 당사자는 빠지고 일리리아와 스파르타만 붙게 되었다.

싸움에서 패한 스파르타는 마케도니아를 원망하며 이를 갈았다.

 

이후 스파르타는 마케도니아의 운송부대를 덮쳐 화풀이를 단단히 했다.

이 사건으로 마케도니아와 펠로측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펠로측과 결별한 페르디카스는 다시 아테네와 네 번째 동맹을 맺었다.

 

ROUND 7 -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동맹

 

기원전 422년, 적 진영이 분열되자 아테네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북상을 시작했다.

빼앗긴 암피폴리스를 되찾기 위한 행군이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하여 펠로군이 퇴각했다. 

전쟁의 와중에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평화를 모색했다.

두 나라가 어떤 결정을 내리게되면 그리스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마침내 양측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파격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ROUND 8 - 네 번째 배신

 

다음 해, 페르디카스는 아르고스 동맹이 결성되자 또 다시 아테네를 배신했다.

이후 4년 후에 아테네에 굴복한 그는 펠로측과 동맹을 깨고 아테네와 함께 암피폴리스를 공격하였다.

아마 이때도 아테네는 페르디카스 때문에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죽을 때까지 변덕을 부렸던 페르디카스는 기원전 413년에 죽었다.

아마도 역사상 이렇게 많은 별을 달았던 인물은 없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런 그를 가리켜 '희대의 사기꾼'이라 불렀다.

 

출처 : 역사를 창조한 문학
글쓴이 : 임용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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