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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트라다테스의 최후

구름위 2012. 10. 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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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미트라다테스 전쟁 (BC 75~65년)

 

 

독수리같은 눈, 사자같은 어깨, 강철같은 의지.

이것이 오리엔트의 영웅 미트라다테스 6세를 상징하는 말 들이다.

(미트라다테스 6세 : 이하 미트라)

 

그가 로마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30년 동안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휘저으며 로마와 네 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첫 데뷔곡이었던 '나는야 헬레니즘의 수호자'는 롬보드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으며,

자체 선정 알렉산더 후보 9위, 로마를 괴롭힌 인물 13위에도 랭크된바 있다.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알렉산드로스의 계승!

미트라는 그 주체할 수 없는 꿈을 이루기위해 온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극적인 최후였고 로마의 동방 진출을 열어주었다.

헬레니즘의 불꽃을 태운 전쟁, 이것이 바로 미트라다테스 전쟁이다. 

 

 

지난 이야기 

 

기원전 115년, 어머니의 섭정을 뒤엎은 미트라는 생애 첫 승을 기록한다.

이후 흑해 원정을 단행하여 성공을 이루고 숙적 비티니아를 깔아 뭉갰다.

그러다 로마의 개입으로 2연패를 당한다.

 

그러나 다시 용수철처럼 일어난 그는 그 탄력으로 페르가몬까지 점령한다.

이후 미트라는 전쟁의 판을 더 키우기 위해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여기서 타이틀곡 '이것은 로마와 그리스인의 싸움'이 대히트를 친다.

이때 아테네를 비롯한 수 많은 그리스 국가들이 그의 무대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술라의 등장으로 미트라는 거의 숨통이 끊어질 뻔 했다.

그러나 그는 행운의 사나이였고, 술라는 그 반대였다.

내분에 시달린 술라는 결국 미트라와 평화조약을 맺고 떠나 버린다.

 

이후 술라를 대신한 장수가 미트라에게 덤볐다가 개 털린다.

이로써 미트라를 견제할 로마 군단은 씨가 말라버렸다.

미트라는 통산 5승 3패로 오리엔트의 무대에 다시 올라섰다.

이어서 생애 두 번째 앨범 '누가 까불어!'를 발표한다.

 

그리고 9년 후, 제3차 미트라다테스 전쟁이 벌어졌다.

 

ROUND 1 - 코타

 

기원전 74년, 로마에 스파르타쿠스 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기회로 미트라는 생애 네 번째 도전에 들어갔다.

그 첫 관문은 눈엣가시인 비티니아였다.

 

미트라에게 쥐어터진 비티니아는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로마는 즉시 사령관 코타를 오리엔트로 파견했다.

이를 기다렸던 미트라는 카운터를 향해 외쳤다.

"아줌마~ 여기 한 게임 더요!!"

(코타 : 마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코타는 인사이드, 미트라는 아웃사이드 샷으로 승부를 내기로 했다.

먼저 미트라가 큐대를 가볍게 쥐더니 아주 산뜻하게 샷을 날렸다.

공이 가볍게 굴러가더니 반사각을 이용해 단 번에 점수를 올렸다.

코타는 길게 한 숨을 내쉬더니 신경질적으로 초크질을 했다.

 

미트라는 날카로운 눈으로 다음 목표구를 노려보았다.

드디어 미트라의 큐대가 물속으로 빨려들 듯이 공을 밀어냈다.

"빙그르르 타닥~!!" 정말 놀라운 솜씨였다. 

결국 코타는 무릅을 꿇고 말았다.

 

연패를 당한 로마는 군단의 재편성을 서둘렀다.

이대로 있다가는 오리엔트의 기득권을 모두 잃을 처지였다.

의기양양해진 미트라는 생애 세 번째 앨범 "나는 대왕이다"를 발표한다.

 

ROUND 2 - 루쿨루스

 

기원전 71년, 로마는 명장 루쿨루스를 내보냈다.

자신감에 넘친 미트라는 군대를 더욱 증강하여 로마군을 맞았다.

하지만 루쿨루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루쿨루스 :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너무 방심한 미트라는 루쿨루스의 강펀치에 그만 다운을 당했다.

"이건 우연일거야, 긴장 좀 하자!!"

하지만 두 번째 펀치를 맞았을 때 미트라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미트라는 서둘러 본국으로 철수했다.

 

이후 별 다른 충돌없이 양측은 3년 동안 이렇다 할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루쿨루스는 소아시아를 되찾은 뒤 속주민을 위한 개혁에 착수했고

미트라는 로마의 동맹국인 아르메니아를 자기 쪽으로 돌려 놓았다.

당시 아르메니아 왕은 미트라의 사위였다.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 : 이하 티그라)

 

기원전 68년, 이 사실을 안 루쿨루스는 아르메니아로 진군했다.

로마로서는 미트라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아르메니아가 꼭 필요했다.

미트라도 신속히 지원군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향했다.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고 먼지속에서 루쿨루스의 깃발이 올랐다.

패배를 당한 미트라는 아르메니아의 수도로 후퇴하였다.

루쿨루스는 한 번 시동이 걸리면 멈추지 않는게 그의 특징이다.

로마군의 압박에 미트라는 티그라와 함께 내륙으로 후퇴했다.

 

루쿨루스는 이 기회에 반대파를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했다.

"자~ 이제 단 한 방이 남았다. 가자~~~!!"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병사들이 아무 대답을 안한다.

순간, 루쿨루스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미끄러진다.

 

"내 말이 안 들리느냐??"

"장군, 우리는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장교들은 애써 루쿨루스의 시선을 피했다.

 "대체 왜 그러지?" 시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트라를 몰아낸 루쿨루스는 속주민들에 대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가난으로 신음하는 주민들을 위해 세금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하지만 루쿨루스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다.

 

그는 속주민이 아닌 로마를 위해 싸우러 온 것이다.

즉, 속주민이 아닌 로마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루쿨루스의 개혁은 로마 상류층들의 수입을 현저히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니 저 자식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하는거야?"

로마의 원로원들은 텅빈 지갑을 내팽개치며 루쿨루스를 비난했다.

원로원들은 루쿨루스 군단병들에게 밀서를 보냈다.

 

"루쿨루스의 작전을 방해하라!"

원로원의 조종을 받은 장교들과 병사들은 이때부터 명령을 거부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인해서 루쿨루스는 발목이 잡히게 되었다.

 

"아~ 다 잡은 고기를 여기서 놓치는구나!"

부하들에게 세 번이나 명령을 거부당한 루쿨루스는 땅을 치며 울었다.

"병사들에게 얼마나 신임을 잃었으면 저 지경일까?"

이 사태는 결국 로마 시민들로부터 루쿨루스의 지휘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불운의 최대 수혜자는 역시 미트라였다.

생애 세 번째 행운으로 재기한 미트라는 다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시작했다.

발이 묶인 루쿨루스는 먼 발치서 이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때가 무르익자 원로원은 본색을 드러냈다.

"무능한 루쿨루스를 해임합시다!"

불명예를 안고 소환당한 루쿨루스는 정계를 떠나 칩거에 들어갔다.

그는 은퇴한 뒤 매우 사치스런 생활로 시민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는 정말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인가?

 

아무튼 루쿨루스의 소환으로 미트라는 옛 영광을 되찾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오리엔트를 호령하며 네 번째 앨범 "나는 죽지않아"를 발표했다.

이 곡은 많은 매니아층을 이루며 9년 동안 인기를 끈다.

 

ROUND 3 - 폼페이우스

 

 

기원전 67년 지중해 전역에 해적이 들끓고 있었다.

지중해를 재패한 로마가 미트라와의 전쟁에 한 눈을 판 사이

해적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또 그 배후에는 미트라가 개입되어 있었다.

그는 해적에게 자금을 대주며 로마를 더욱 괴롭히도록 유도했다.

그 자금은 해적을 정규군처럼 무장시켜 주었다.

 

폼페이우스는 이 기회에 아예 해적들을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했다.

그는 로마에 사상 최대 규모의 육군과 해군을 준비시키고

자신을 3년 동안의 절대 지휘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한 요구가 법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로마는 이를 승인했다.

그가 아니라면 이 임무를 완수해낼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폼페이우스가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어쨌든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해적의 소탕이었다.

"과연 폼페이우스의 장담대로 3년 안에 해적이 소탕될까?"

 

그런데 1년 후, 원로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그렇게 시커멓던 해적들이 단 1년 만에 모두 사라진 것이다.

로마는 뛸 듯이 기뻤다. "오오~ 폼페이우스~!!"

 

그러나 해적을 소탕한 폼페이우스는 절대 지휘권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여세를 몰아 숙적 미트라를 제압하고자 했다.

로마는 그런 폼페이우스를 의심했다.

 

ROUND 4 - 영웅의 최후

 

기원전 67년 오리엔트의 또 다른 강국 파르티아가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이 기회에 미트라를 완전히 제거해 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오리엔트의 최강자가 된다.

 

폼페이우스의 상륙으로 오리엔트 전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먼저 로마에 등을 돌렸던 아르메니아에서 왕자가 반란을 일으켰다.

폼페이우스는 반란을 일으킨 왕자를 지원하였다.

 

그러자 왕자의 세력이 더욱 강해졌다.

위기를 느낀 티그라 왕은 서둘러 폼페이우스에게 강화를 제의했다.

"로마의 동맹으로 복귀하고 싶습니다"

 

폼페이우스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반란을 일으킨 왕자가 섬 처럼 붕 뜨게 되었다.

"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왕이 로마와 동맹을 맺었으니 이제 왕자는 거꾸로 적이 되었다.

비운의 왕자는 자신의 운을 탓하며 로마로 압송되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일이...ㅠㅠ"

 

폼페이우스는 오직 그의 명성만으로 오리엔트를 장악해갔다.

"폼페이우스가 그렇게 쌈을 잘 한다며? 아~ 진짜 무섭더라~"

이 여파로 미트라는 서서히 로마의 동맹국들에게 둘러싸였다.

게다가 자국의 정정까지 불안해지고 있었다.

 

기원전 66년, 폼페이우스는 미트라에 대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 정도 돈이면 3대가 먹고 살아도 남는다메?"

미트라는 이제 자기 부하들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가장 충성스런 부대만을 이끌고 카프카스 산맥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세력을 증강한 뒤 로마를 침공할 계획이었다.

"도나우 강을 건너 그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왕궁을 비우는 사이 왕자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신속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아버지를 국가 반역자로 선포했다.

미트라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휘하 부대에 즉시 반란의 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미트라의 곁을 떠난 부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왕자에게 붙어 버렸다.

"어디 두고 보자!!"

 

미트라는 파르티아에 지원군을 요청하러갔다.

"내게 군사 좀 빌려주쇼. 쟤네들 밟아주고 배로 갚겠소이다"

"이왕 왔으니 커피나 한 잔 때리고 가시오"

 

미트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카프카스의 부족장을 찾아가 똑같은 얘기를 했다.

부족장은 미트라의 요청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혼자가 된 미트라는 독약을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갈리아 출신의 용병이 미트라에게 고했다.

"폐하! 그 약은 유통기한이 지났사옵니다!"

 

"아~ 죽는 것조차 맘대로 안되는구나"

미트라는 용병을 바라보며 마지막 부탁을 했다.

결국 충성스런 용병은 미트라의 명령을 받고 그의 심장을 찔렀다.

미트라의 시신은 즉각 폼페이우스에게로 보내졌다.

이후 그는 폰투스의 왕실 묘지에 묻힌다.

 

이로써 30년간 로마와 자웅을 겨뤘던 영웅이 퇴장했다.

알렉산더의 후예였던 그의 명성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결말이었다.

 

[출처] 시오노 나나미 - 로마인 이야기

[출처]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13498

[출처] http://members.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8m1935b&ref=28#ID28

출처 : BOB&밀리터리 매니아
글쓴이 : 임용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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