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옛 우리 이야기

[스크랩] 조선수군의 출전을 금지시킨 금토패문사건의 전말

구름위 2012. 10. 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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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 3월 6일 당항포 해전을 마치고 흉도에 이르렀을 때, 충무공은

그 전날부터 병세가 더욱 심하여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남해 현령(기효근)으로부터 [왜군을 공격하지 말라]하는 내용의 금토패문을

받습니다.. 즉, 명나라 선유도사(宣喩都司) 담종인(譚宗人)이 보내는

패문을 가지고 온 것이죠.


충무공은 눕기조차 불편한 몸으로 명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물었는데 다음과 같이 답하는 것이었다.

 

[ 니네 수군이 졸라게 세서 쪽바리들이 

우리 명나라 선유도사에게 갖은 애걸을 하여 

조선수군의 출전을 금지시켜달라 하여 이렇게 된거임.]


충무공이  명나라 선유도사가 보낸 패문을 읽어보니, 내용은 이렇다


[왜군의 여러 장수들이 마음을 돌려 모두들 무기를 집어넣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면서 그들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니, 조선의 함대도 각각

제 고장으로 돌아가고 왜의 진영에 가까이하여 트집을 일으키지 말도록하라]


-_-;;; 


분함을 참지 못한 충무공이 금토패문에 대하여 짱깨 선유도사에게 이렇게 답신한다.

 

[금토패문에 답하는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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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신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삼가 명나라 선유도사 대인 앞에

답서를 올리나이다.............(중략)


 패문의 말씀 가운데 [일본 장수들이 마음을 돌려 모두 병기를거두어 저희 나라로 돌아가려 하니, 너희들 모든 병선들은 속히 각각 제고장으로 돌아가고 일본 진영에 가까이 하지 말라 하심은 무슨 말씀이며,또 우리더러 속히 제 고장으로 돌아가라 하니 제 고장이란 또한 어디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고, 또 트집을 일으킨 자는 우리가 아니요 왜적들입니다.

...........(중략)....

왜적들이 바닷가에 진을 친 채, 해가 바뀌도록 물러가지 아니하고 여러 곳을

쳐 들어와 살인하고 약탈하기를 전일보다 갑절이나 더 하온데, 병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다 하오리까?


이제 강화 한다는 것은 실로 속임과 거짓 밖에 아니 옵니다.

그러나 대인의 뜻을 감히 어기기 어려워 잠간 얼마쯤 두고 보려 하오며,

또 그대로 우리 임금께 아뢰려 하오니 대인은 이 뜻을 널리 살피시어

놈들에게 역천과 순천의 도리가 무엇임을 알게 하오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답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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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피를 토하는 울분에도  일본애들과 짱깨들의 강화협상기간동안  조선수군의 출전은 금지되다시피 한다....

 

1594년부터  정유년  일본의 재침이 있을때까지  조선수군의 해전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가 이때문이다.  이기간동안 선조임금은 수군의 병력을 계속 빼앗아 육군에 편입시키고  원균은  이순신이 겁쟁이라서 출전하지 않는다며  서울에 계속적으로 편지를 보내게 된다... 


실록에서 이순신을 씹기 시작하는 기간이 바로 이 기간이다... 이순신이 오만해져서 수군을 출전시키지 않는다며....  -_-;;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센이고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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