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무기의 탄생; KT-1 기본훈련기

구름위 2017. 1. 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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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 훈련기 최초로 100% ‘컴퓨터 설계’

<29> KT-1 기본훈련기 (상)
2015. 09. 01   17:51 입력


학생조종사 안전 위해 스핀 자동 회복 기능 등 ‘안전성 탁월’

1970년대 정부 중공업 육성정책 발맞춰 항공산업 ‘기지개’

자개발 경험 전무한 상태서 시작…1998년 말 양산 채비

 

 

 

  지금은 이미 실현됐지만 지난 2000년 11월 KT-1 기본훈련기가 실전배치되기 전까지 우리 기술로 만든 항공기로 우리의 하늘을 나는 것은 공군조종사뿐만 아니라 항공 분야 모든 종사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공군조종사와 항공 분야 종사자들의 꿈을 이뤄준 KT-1 기본훈련기는 미군사규격(MIL SPEC)의 훈련기 카테고리 클래스 IV 및 미 연방항공규정(FAR: Federal Aviation Regulation) Part 23의 곡예비행기 카테고리를 충족하는 단발 터보프롭 항공기다.

 동급 기본훈련기로는 처음으로 100% 컴퓨터 설계를 했고 각종 공중기동비행, 편대비행, 계기비행, 저고도항법비행, 야간비행 등이 가능하다. 

 특히 스핀 진입과 회복 조작이 용이해 학생조종사들에게 기동 영역의 한계점과 극복 절차를 충분히 교육할 수 있으며 조종성이 우수하고 운용 속도 및 비행 특성 측면에서 고등훈련기와 연계가 용이하다.

 또 학생조종사의 조종성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자동 러더트림 장치, 분리형 조향장치, 사출 좌석, 캐노피 파쇄 장치, 1만 비행시간 이상 수명이 보장되는 기체 구조 및 특별히 강화된 착륙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조종사가 스핀 회복에 실패하더라도 자동으로 회복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조종사와 훈련기의 안전성이 탁월하다.

 

기사사진과 설명
우리 기술로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기본훈련기 KT-1으로 공군 조종사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우리 기술로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기본훈련기 KT-1으로 공군 조종사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개발 경과 

 1970년대 중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공업국가로서 입지를 키워나가던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항공산업의 육성을 필수적인 정책으로 추진했다. 이런 항공산업 정책은 항공기술 습득을 위해 공군이 신규로 획득하는 항공기의 국내 조립생산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첨단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항공기 개발은 당시 우리나라 현실로는 매우 힘든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1985년 각종 훈련기 및 전술기의 수명 예측에 관한 위탁연구를 수행, 90년대 중반부터는 신기종으로 대체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ADD는 항공기 독자 개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1차적인 기술 축적을 위해 개발기술의 난도가 비교적 낮은 기본훈련·지원기를 개발 대상으로 선정했다.

 1986~1987년까지 2년간 개발 가능성 및 경제성에 관한 기초연구를 수행한 결과 개발 타당성이 입증됐고 1988년 8월 공군에서 1차적으로 개략적인 운용요구도(ROC)가 제기됐다.

 그 후 지속적으로 공군과 ADD에서 운용방안 연구를 수행해 1989년 12월 세부적인 개발 요구 성능을 확정해 공군 개발 요구 조건이 제기됐다.

 이와 병행해 ADD는 1988년 2월부터 1992년 10월까지 기술적 개발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탐색개발을 추진했다. 탐색개발을 통해 550마력급 엔진이 탑재된 실험시제기 2대를 설계·제작했고, 구조시험용 기체 1대를 제작해 구조시험을 실시했다.

 이어 1991년 12월 12일 실험시제기의 역사적인 초도비행이 성공한 후 총 28회 시험비행을 통해 주요 설계 성능 확인과 개발기술 정립, 주요 구성품 획득 방안 등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ADD는 공군이 요구하는 기본훈련·지원기 개발 가능성을 입증했다.

 1992년 11월 ADD가 주관하고, 대우중공업 외 8개 업체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1996년 12월까지 개발하는 내용의 KTX-1 선행개발 사업이 승인돼 본격적인 항공기 개발이 시작됐다.

 선행개발을 통해 시제 항공기 3호기를 제작해 1995년 8월 초도비행 시험을 한 결과, 조종성 및 안정성 면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됐다. 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는 위기였다. 바로 위기 해결을 위한 특별설계팀을 구성해 4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종 안정성 향상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 이를 극복했다.

 ADD와 시제업체 관계자 250여 명이 조종 안정성, 저속성능 및 실속특성, 스핀특성 등 항공기 주요 성능 향상에 대한 집중연구를 수행했다.

 이를 통해 실용시제 4호기를 수정설계 제작해 1996년 5월부터 시험비행을 통해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조종력을 개선하는 등 성능이 만족된 것을 확인했다.

 이와 같이 선행개발을 통한 제반 기술적 성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1997년 1월 연구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실용개발에 착수했다.

 1997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진행된 실용개발에서는 개발성능과 개발품질을 최종확인하고 양산을 위한 설계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연구를 했다.

 성능 불만족 사항에 대한 기술적인 보완과 양산에 대비한 생산성을 고려한 설계, 항공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종합군수지원 요소개발을 포함한 전력화 지원요소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본격적인 양산을 위한 제반 준비를 완료했다.

 


 

국방과학기술지식대백과사전훈련기(Trainer Aircraft)

 

훈련기는 조종사 양성과 비행기술 연마를 위해 조종훈련이 용이하고 교육단계별로 기종 전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항공기다.

 초등 및 중등 비행교육 과정에서는 비행적성 훈련 및 기본비행 훈련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지 않고 경제적이며 안전한 저속 프롭이나 터보프롭 항공기를 훈련기로 주로 사용한다.

 고등과정에서는 공중사격·공중전투기동 훈련을 위해 터보제트나 초음속 항공기를 훈련기로 사용하며, 최근에는 지상모의훈련 장비의 발달로 초·중·고등훈련의 3단계가 아니라 기본 및 고등훈련의 2단계 훈련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공군은 초·중·고등훈련 3단계를 입문·기본·고등훈련 3단계로 전환해 운용하고 있으며, 입문훈련기로 T-103, 기본훈련기로 KT-1, 고등훈련기로 T-50을 운용하고 있다.


두둑한 KT-1 기술, 한국형 전투기 개발 ‘시동’

<30> KT-1 기본훈련기 (중)
2015. 09. 08   16:32 입력 | 2015. 09. 08   18:25 수정




 

● 개발 배경

 KT-1 기본훈련기를 개발하게 된 배경은 당시 사용 수명 30년이 넘은 공군의 초등훈련기 T-41, 중등훈련기 T-37을 대체하고 두 과정을 합친 기본훈련과정에 쓸 수 있는 경제성 있는 터보프롭 기본훈련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시 F-5 면허생산이 종료되는 단계에서 우리나라도 독자적으로 항공기를 국내연구 개발해 항공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도 배경이 됐다.

 당시 일본과 대만 등이 민간과 군사 분야에 파급효과가 큰 항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항공기 설계와 생산의 기술기반을 쌓아가고 있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8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도 이제 항공기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1986년 훈련기사업이 국방과학연구소(ADD)의 10대 중점과제로 선정됐고 대통령의 지시로 항공산업육성회도 결성됐다.

 민간에서는 이미 대한항공과 삼성항공, 대우중공업이 항공부문 3사 경쟁체제를 갖추고 우리나라 항공사업의 미래를 걸 만한 사업을 찾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는 ADD가 개발을 담당하고 대우중공업이 시험제작 주계약업체로 참가하는 훈련기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1988년부터 본격적인 탐색개발을 시작한 기본훈련기의 개발명은 KTX(Korean Trainer Experimental)-1이었다.

 

● 개발 당시 기술 수준

 1970년대 우리나라 항공기술은 전투기나 헬기를 기술도입생산 한 것이 전부였다.

 외국에서 연구개발된 도면과 규격을 그대로 받아서 생산을 국내에서 한 것으로 실제 국산항공기에 대한 연구개발은 1980년대 초반부터 기초연구를 시작해 1988년에 KT-1 기본훈련기를 ADD 주도로 개발한 것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은 1970년대 대항항공이 미국 휴즈사의 500MD 헬리콥터를 조립생산한 것이 시작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항공기 조립생산 시대를 열었다.

 이후 1980년 대한항공이 미국 노스럽사의 F-5E/F 조립생산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기의 국내 조립생산이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열악한 국내 항공산업과 체계적인 기술관리 능력 부족으로 효과적인 기술 축적이 이뤄지지 못했다.

 더욱이 후속 사업인 차기전투기사업(KFP)이 계속 연기돼 1991년에야 F-16으로 최종기종이 결정됨에 따라 항공기 개발 기술의 연속성이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지상·해상 무기체계의 개발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ADD는 항공기 개발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의 연구개발이라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이 분야는 영원히 주변국의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고, 우리 조종사들이 국산항공기로 우리 하늘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KT-1 기본훈련기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KT-1 개발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12번째 항공기 개발국이 됐다.

 세계의 항공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은 물론, 영국·러시아·프랑스·스페인·일본 등은 오래전부터 항공기를 개발한 항공 선진국들이며 그 외에도 스웨덴·브라질·중국·인도네시아·대만 등이 자국이 개발한 항공기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 개발 의미

 KT-1 기본훈련기 개발은 우리나라가 항공기 독자개발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우선 산업과 기술 측면에서 항공기와 같은 복합무기체계 개발이 가져다주는 산업 전반에 걸친 다양한 스핀 오프(Spin-off) 효과와 각종 제조업의 고용창출 효과다. 그동안 불모지로 여겨져 왔던 항공산업에 대한 직·간접적인 육성 효과도 매우 컸다.

 더불어 항공기부품의 국내 생산으로 지속적인 경제효과를 낼 수 있게 됐고,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항공기와 부품을 국산화함으로써 외화 절감도 가능해졌다.

 국가안보나 전력운용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공군의 전력운용 개념에 최적화된 항공기를 확보했고 전장환경 변화에 적합하게 적기에 독자적인 성능개량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됐다.

 이를 통해 KT-1을 국산 로켓포 사격이 가능한 KA-1 공격전술기로 성능개량했을 뿐만 아니라 T-50 초음속 훈련기와 FA-50 전투기의 국제공동개발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 체계개발을 추진 중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도 KT-1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건 목숨까지 건 집념이었다

KT-1 기본훈련기 (하·끝)<31>
2015. 09. 22   17:29 입력 | 2015. 09. 23   10:41 수정


초도시험비행 불안정 판정에, 시제기 탈 조종사도 없었다는데…

 

 

 

사업 실패 절체절명 위기 순간

특별설계팀 구성 4개월간 합숙

 

시험비행 중 비상탈출 상황서

위험 무릎쓰고 비상기지 착륙

 

개발 완료 전 수출 제의받아

印尼·터키·페루 등에 판매

위풍당당 항공기 수출국으로

 

 

기사사진과 설명
KT-1의 진화형 KA-1 전술통제기가 임무수행을 위해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KT-1의 진화형 KA-1 전술통제기가 임무수행을 위해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기사사진과 설명
KT-1에 전자식 임무컴퓨터 등 현대식 항공전자 장비와 외부장착대, 로켓포 등을 장착한 KA-1의 임무수행 장면.   그래픽=안종찬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 교수

KT-1에 전자식 임무컴퓨터 등 현대식 항공전자 장비와 외부장착대, 로켓포 등을 장착한 KA-1의 임무수행 장면. 그래픽=안종찬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 교수



 

 

 ●KT-1 시제기 대형 수술

 처음 제작된 950마력의 KT-1 기본훈련기는 초도 시험비행에서 불안정하다고 판정됐다. 550마력에서 950마력으로 엔진을 변경하면서 항공기 안정성을 고려한 외형 설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공기 전체 형상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사업이 실패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려는 분위기에서 우리나라 항공산업발전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이 사업을 이대로 중단할 수 없다고 판단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스컹크팀 같은 특별설계팀을 구성했다. 전방동체·날개·후방동체 등 항공기 전체를 재설계, 제작해야하는 상황이어서 정상적이라면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특별설계팀은 4개월간 합숙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중 연구해 문제를 해결해냈다.

 이는 특별설계팀의 희생적인 노력의 결과이며 순간순간의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믿어준 연구소 지휘부와 공군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연구원 모두가 하나가 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신념으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비행 중 캐노피 탈락

 KT-1의 시험비행 중에 캐노피가 날아가 버리는 사건이 터졌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캐노피 잠금장치의 느슨한 부품공차 설정 때문에 잠금장치가 풀린 것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시험비행조종사는 비상탈출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비행기지에 기체를 비상착륙시키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

 

 ●KTX-1 1호기 추락

 1995년 11월에는 시제기 1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명명식 행사를 위해 KTX-1 시험비행 기지인 사천에서 명명식 행사장인 성남기지로 이동해 기지 상공에서 시범비행하던 KTX-1 1호기가 추락한 것이었다.

 사고 현장을 지켜보던 연구원들은 이 사고로 사업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원들과 KTX-1 관계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을 날려버릴 수 없다는 의지로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 KTX-1 시제기의 비상탈출좌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냈다. 이를 토대로 비상탈출좌석 제작회사인 영국의 마틴베이커로부터 우리가 요구한 시험시제기의 가격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냈다.

 이후 사업은 그대로 진행됐고 마틴베이커는 전 세계에 수출된 비상탈출좌석에 대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항공기 연구개발 위한 인프라 전무

 KT-1의 개발은 한 단계 한 단계가 우리나라 항공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들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항공기를 개발하는 인프라가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항공기를 시험하기 위한 시설과 전문인력이 준비되지 않았다. 항공시험장과 시험비행조종사가 필요했는데 당시 공군에 조종사는 많았지만 이들에게는 연구개발시제기를 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시험비행조종사와 기술사는 외국의 시험비행학교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군 지휘부에서 공군 베테랑 조종사에게 “KT-1시제기가 나오면 시험비행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항공기 개발을 위해서는 KT-1 시제기를 시험하고 계측하기 위한 많은 시험시설이 있어야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개발과 병행해 비행시험 계측시설, 전기체 환경시험시설, 전자파간섭 시험시설 등을 건설하는 등 항공시험장의 단계별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수출 경쟁력

 개발이 채 완료되기도 전인 1999년 말부터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출 제의를 받았던 KT-1은 현재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터키·페루 등에 수출됐고 지금도 중남미와 아시아 국가들과 수출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수한 정비성과 안전성, 뛰어난 조종성으로 우리나라를 항공기 수출국으로 만든 KT-1은 우리 공군의 전술기로 진화했다. KT-1에 전자식 임무컴퓨터 등 현대식 항공전자 장비를 비롯해 외부장착대·로켓포 등을 장착한 KA-1은 우리 공군의 전술통제기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적외선 측정기(FLIR)와 전자광학카메라, 레이저거리측정기, 데이터링크 등을 더한 표적측정장비를 장착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사용 목적에 따라 로켓포는 물론 폭탄·기관총·공대공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 가능한 KA-1은 각종 테러진압, 마약 밀매 단속, 소규모 비정규전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요구 수준에 맞춰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과학기술지식대백과사전]

 

비행 물체가 원하는 자세·가속도· 속도 유지할 수 있게 제어

 자동비행제어시스템은 공간을 비행하는 물체가 원하는 자세나 가속도, 또는 속도를 유지하며 비행할 수 있도록 비행체의 운동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항공기가 개발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는 조종사가 기계적으로 직접 조종날개를 움직였지만 조종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조종 성능을 높이는 장치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하면서 자동비행 조종장치가 출현했다. 그 후 오늘날까지 자동비행조종장치는 보조수단 이상의 복잡한 가능을 갖춘 제어 시스템으로 진화해 왔다.

 능동제어비행체(CCV: Control Configured Vehicle)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비행체는 전통적인 비행기에 비해 향상된 기동성과 승차감을 제공할 수 있지만 조종사가 모든 조종날개를 직접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조종사의 간섭을 받지 않는 궤환제어 시스템, 즉 자동비행조종장치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 장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제어 기술이 요구된다. 참고로 이러한 조종 기술을 조종사가 조종간을 이용해 직접 조종날개를 움직이는 조종 방식에 대비해 능동제어기술(Active Control Technology)이라 부른다.



국방과학기술지식대백과사전
터보프롭 엔진(Turboprop Engine)



터보프롭 엔진은 공기흡입구, 압축기, 연소기, 터빈 및 추진노즐에 프로펠러가 추가된 구성으로 터보엔진에 팬을 추가한 추진기관이다.

 구조적으로 터보제트에 프로펠러를 장착한 것으로 가스터빈은 고압과 저압의 2단식이며 연소가스가 뒤쪽으로 분출될 때 고압 가스터빈으로 압축기를 구동하고 저압 터빈으로 앞면의 추진용 프로펠러를 동시에 구동한다. 연소가스 에너지의 대부분을 프로펠러의 구동력으로 바꿔 프로펠러에 의한 추력과 제트추력의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한다.

 성능은 프로펠러기와 터보제트기의 중간으로 고속비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중형 여객기나 수송기 등의 엔진으로 적합하다. 왕복기관에 비해 출력/중량의 비가 크고 연료 소비율은 거의 같은 정도라는 장점이 있어 500hp 이상의 프로펠러기용 기관은 모두 터보프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