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무기의 탄생;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PRC-999K

구름위 2017. 1. 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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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개발 6년 만에 성공 1990년 세계 4번째 쾌거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PRC-999K.(상)
2015. 02. 10   16:54 입력 | 2015. 02. 10   18:04 수정


기사사진과 설명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하고 LIG넥스원이 생산한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PRC-999K LIG넥스원 제공




 

 


  개발사
  91년 9월 초도양산 시작

  차기 FM무전기로 불리는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PRC-999K’는 전파방해·감청 등 북한으로부터 예상되는 전자전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대전자전(ECCM: Electronic Counter-Countermeasures) 기능과 데이터 전송 능력을 보유했다.

 PRC-999K는 1985년 1월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이 분야는 선진국에서도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리는 첨단기술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 국내 기술로는 군용 무전기를 개발한 적이 없을 정도로 관련 기술이 상당히 낙후된 상태였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들은 1980년대 초부터 해외의 무전기 기술 개발 동향을 예의 주시해왔고 1982년부터는 선행연구를 수행해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개발에 소요되는 핵심기술을 확보, 1985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1985~87년까지 선행개발, 1988년부터 실용개발을 수행해 마침내 1990년 12월 미국·영국·이스라엘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를 독자개발하게 됐다. 이는 군무선통신장비 개발의 시초가 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방과학 기술 발전에도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외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은 개발비와 국내 개발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부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착수한 지 불과 6년 만에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개발(PRC-999K)에 성공한 것이다. 선진국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이후 PRC-999K는 1991년 9월 초도양산을 시작했고 1992년부터 양산돼 현재 군의 지휘통제통신용 주력 무전기로 운용되고 있다.



   개발 당시 기술 수준 및 상황
   고정 주파수만 사용 … 도청·전파방해 등 취약

    이전까지 한국군이 사용하던 KAN/PRC-77, VRC-47 계열 등 해외에서 도입한 전술무전기는 교신자 간에 사전 약정한 단일 주파수만을 사용해 교신함으로써 적이 이 주파수를 탐지할 경우 손쉽게 도청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파방해를 가해 통신망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무선망 보안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음어나 암호장비 등을 필히 사용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자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전자교란에 의한 전자전(ECM: Electronic Countermeasures) 기술이 등장하게 되자, 대전자전(ECCM) 기술의 일환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주파수 도약 기법(Frequency Hopping)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주파수 도약 기법은 마치 메뚜기가 뛰는 것처럼 가용 주파수 중에서 순간적으로 한 주파수를 사용한 후 무작위로 다른 주파수로 바꿔 가며 교신하기 때문에 적의 탐지·도청·교란이 거의 불가능한 통신 방법으로 선진국에서는 극비 기술로 분류돼 있었다. 그러나 이 기법이 실제로 실용화돼 통신장비에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미국이 1978년 SINCGARS-V라는 FM무전기의 기초연구에 착수한 것이 그 효시다. 미국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11년이라는 긴 개발기간을 거쳐 1988년에야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 고정 주파수 통신용 무전기인 PRC-77을 생산하고 있었고 당시 군용무전기 개발 기술은 거의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개발 배경 및 과정
    72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분대용 무전기 국산화

  국내에서 군용 무전기 개발은 분대용 무전기 KPRC-6를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산화한 것이 시초다. 중대 및 대대급 이상 지휘통신망은 AN/PRC-25와 AN/PRC-77을 1969년부터 전술무전기로 운용했다.

 1970년대 말에는 반도체 기술을 적용한 기술도입개발 무전기 KAN/PRC-77을 야전부대의 지휘통신용 표준장비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PRC-77은 고정 주파수 통신으로 운용해 감청에 취약하고, 가용 주파수가 920개로 운용에 한계가 있었다. 또 데이터 전송기능이 없는 단점도 있었다.

 군이 이런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무전기를 1978년 소요제기하자 ADD는 1982년 6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핵심기술 선행연구를 수행했다. 이 선행연구를 통해 무전기 상호 간 주파수 동기 기법, 고속 도약을 위한 고속 주파수 합성기 설계 기술, 광대역 고주파회로 설계기술 및 의사 무작위 도약 패턴 발생 알고리즘 등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1984년 3월에 무기체계로 선정돼 1985년 1월부터 1986년 9월까지 선행개발을 수행했다. 1986년 9월에는 선행시제 무전기로 군관계자들이 참관한 가운데 주파수 도약 통화시험을 해 개발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1986년 12월부터 1987년 9월까지 선행부대시험을 실시해 야전 운용성도 확인했다.

1988년 1월부터 실용개발을 시작, 1989년 1월부터 9월까지 실용부대시험을 실시했다. 특히 주한미군 측의 요구로 그해 6월에는 미국의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 SINCGARS-V와 비교시험도 실시해 개발 무전기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1990년 9월 무기체계로 채택됐고 1990년 12월에 규격심의를 통과해 실용개발을 완료했다. 1991년 9월부터 초도양산을 시작해서 1차 물량을 육군1사단에 배치했고 1992년 4월까지 고밀도 운용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 1992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7만 대 정도가 생산돼 군의 지휘통제통신용 주력 무전기로 운용되고 있다. 이 무전기 개발 경험은 현재 ADD가 시행 중인 전술다대역다기능무전기 연구개발에 주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국방과학기술지식대백과사전 - 차기 소부대 무전기체계

 

   차기 소부대 무전기체계는 미래 전장환경에 제대별·기능별 체계가 통합된 NCW 실현을 대비해 소부대급 전술 C4I체계의 통신네트워크 기반체계 역할을 수행하면서 음성·데이터를 유통시킬 수 있는 소부대 전투 무선통신망의 주요 장비체계다.

 차기 소부대 무전기체계는 미래전 양상에 부합하는 소대-분대 간 지휘통제 및 상황 공유를 보장하는 음성 및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소부대용 무전기이며 2개의 통신망(소대망, 분대망)을 동시 가입해 운용할 수 있으며, 1대1 또는 1대N으로 호출·통신이 가능하다.

 소대까지 구축된 전투지휘체계와 소대장용 무전기와 연동해 소대-분대 간 지휘통제 및 KVMF 기반의 전술정보교환(단편명령하달, 인원·장비 지원 요청 등)을 보장하며 GPS 기능을 보유해 실시간 자동 위치보고가 가능하다. 특히 TICN체계와 연동, 실시간 정보 공유 및 지휘통제가 용이하며 상호중계기능 보유(Ad-Hoc기능)로 산악지형에서의 원활한 소통과 통달거리 연장이 가능하다.

 미래 전장은 고기능화·정밀화·무인화·All-IP기반의 무선화 및 기동화·소형화되는 수많은 감시정찰·지휘통제·정밀타격 전력들이 광범위하게 분산 운용되는 대규모 작전 및 예측 불허의 국지·테러전 형태를 띨 것이다.

 그 때문에 종단 간 안정적인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데 많은 제한사항이 존재할 것이며, 차기 소부대 무전기도 이러한 제한을 극복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차기 소부대 무전기체계는 단순 기능의 음성 위주 무전기 개발이 아닌 소규모 전투제대를 위한 무선 데이터 통신 기반의 소형 집적화된 단말 형태로 발전될 전망이며 군 통신 네트워크 체계의 주요 구성요소가 될 예정이다.

 상호중계(Ad-Hoc) 기능과 GPS 기능을 필수적으로 보유하고 통달거리도 기존 체계에 비해 증가하는 추세이며 부품 경량화·소형화 기술의 발전으로 휴대성이 개선되고 있다.



적이 도청·탐지하기 어려워… 고속 전송도 ‘척척’

주파수 도약형 무전기(하)
2015. 02. 24   17:42 입력 | 2015. 02. 24   18:30 수정


휴대용 -차량용 무전기, 구성체계 단일화로 효율 극대화

美 무전기와 비교 시험에서 고밀도 운용능력 우수 입증

 

 

기사사진과 설명
해병대 장병들이 야외기동훈련에서 휴대용 PRC-999K 무전기를 이용해 통신을 하고 있다. 해병대 장병이 무선송수신기를 무선증폭기와 결합해 전술차량에 장착한 차량용 무전기 VRC-946K 계열 무전기를 이용해 통신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해병대 제공

해병대 장병들이 야외기동훈련에서 휴대용 PRC-999K 무전기를 이용해 통신을 하고 있다. 해병대 장병이 무선송수신기를 무선증폭기와 결합해 전술차량에 장착한 차량용 무전기 VRC-946K 계열 무전기를 이용해 통신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해병대 제공





성능 및 특장점

 PRC-999K는 기존에 운용되던 PRC-77의 단일채널 방식과는 달리 주파수 도약방식으로 설계돼 적의 도청 및 전파탐지를 매우 어렵게 하는 대전자전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통신 보안성면에서 매우 유리한 무전기다.

 기존 장비에는 없는 디지털 데이터 통신 능력을 보유해 1990년대 이후 대량 보급된 군용 디지털 데이터 장비와 연동해 고품질, 고속 전송이 가능하다.

 또 PRC-77에 비해 통신채널수가 920개에서 2320개로 2.5배 증가돼 전방지역에서 주파수채널 부족현상을 대폭 완화했다.

 PRC-999K 이전까지는 휴대용(PRC-77)과 차량용(VRC-46계열) 무전기가 별도의 형상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PRC-999K는 공통의 무선송수신기를 사용해 통신병이 운용하는 휴대용(PRC-999K)과 무선송수신기를 무선증폭기와 결합, 전술차량에서 지휘관이 사용하는 장거리통신 무전기인 차량용(VRC-946K계열)으로 무전기 구성체계를 단일화했다. 이를 통해 전력화지원 및 종합군수지원 체계의 효율을 극대화했고 고장률을 대폭 줄였다.

 PRC-999K는 원거리(3.2㎞)에서도 야전선을 연결해 무전기 기능을 제어하는 원격조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전기가 수신대기 상태에 있을 때는 채널이 다른 인접망으로부터의 호출여부도 판단하는 탐색기능을 내장, 한 대의 무전기로 송수신뿐만 아니라 예비 채널을 감시하는 일까지 가능하다.

 개발초기부터 전류소모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장비운용시간이 약 24시간에 달한다. 기존 개발된 동급의 외국장비에 비해 운용시간이 가장 길고 장비의 무게도 5.3㎏정도로 외국의 동급 무전기에 비해 적어 휴대가 용이하다.

 PRC-77와 VRC-46계열의 무전기를 대체한 PRC-999K는 탁월한 대전자전(ECCM) 능력을 기반으로 전자전(ECM) 환경에서도 음성 및 디지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 적의 도청 및 방해에 대한 고품질의 통신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동급 무전기를 전량 수입할 경우 미화 약 7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지만 국내개발로 외화 유출을 방지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무전기에 적용된 기술을 나중에 상업적으로 활용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산업의 총아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휴대전화에 적용된 CDMA기술은 차기 FM무전기 개발에 힘입어 민간에서 자신감 있게 끌어들여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성과를 이뤘다.

 또 해외 수출형 무전기(PRC-999KE-C)로 개조해 2006년부터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국가에 약 2000대 이상 수출, 군통신장비 해외수출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PRC-999K 개발의 핵심기술들은 현재 SDR(Software Defined Radio) 기술을 적용한 TMMR(Tactical Multiband Multirole Radio:전술다대역다기능무전기)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고의 성능을 위한 노력

 1985년 미국에서 개발된 SINCGARS-V의 도입을 추진하던 사람들은 PRC-999K의 국내개발에 대해 불만을 가져 개발과정 중에도 장비의 성능에 많은 의구심을 표출했다.

 이 때문에 실용 부대 시험 중이던 1989년 6월 국방부 특별검열단의 주관으로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미국의 SINCGARS-V와 PRC-999K의 비교시험을 하게 됐다. 현장의 모든 사람은 탁자에 놓인 무전기 두 대를 응시했다. 그중 몇 명은 비디오를 찍고, 두세 명은 시험기기를 직접 운용했다.

 통신병이 “이제 재밍(방해 신호 송출)을 걸겠다”고 말하자 검열위원들은 두 제품에 재밍을 걸기 시작했다. 방해 신호 속에도 두 제품의 무전 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이어 스위핑(sweeping·외부 도청을 위해 무전기 주파수를 찾는 것)을 시도했다. 둘 다 도청은 되지 않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자 심사위원들이 재밍 파워를 3단까지 올렸다. 그 순간 미국 SINCGARS-V는 먹통이 됐지만 PRC-999K는 멀쩡하게 잘 돌아갔다.

 국산 장비 개발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럴 리가 없다’며 두 번, 세 번 실험을 요구했다. 특검단은 모든 과정을 비디오로 찍었고 우리 제품이 미국 제품보다 성능이 좋다는 것을 확실하게 검증하게 됐다.

 이후 1992년 4월 보안장비를 연동해 미국의 SINCGARS-V와 비교시험을 했을 때도 PRC-999K가 고밀도 운용능력 측면에서 더욱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렇듯 두 번의 비교시험을 통해 PRC-999K의 우수성은 더욱 확고해졌지만 1990년 4월부터 1993년 11월까지 8번의 감사를 받아야만 했다.

 감사결과를 통해 성능이 양호하다는 것이 모두 입증됐지만 PRC-999K 고장률 감소와 신뢰성 향상을 위해 초도배치 후에도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생산업체는 최초로 전방지역에 무전기 정비센터를 열고 실시간 정비지원체제를 운영했다.

 이렇게 고장 배제와 사용자 불만 해소를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도 주파수도약 무전기 PRC-999K는 많은 군인들로부터 ‘선진국 무전기보다 우수한 국내독자개발 무전기’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외에도 도·감청이 불가능한 PRC-999K의 우수성을 알게 된 북한이 이 무전기를 노획하거나 핵심기술입수를 위해 1996년 9월 동해안 잠수함 침투 사건 때 북한군 요원들에게 주어진 임무 중 하나가 무전기 노획 혹은 핵심기술 입수였음이 알려지기도 했고 당시 우리 대간첩작전 통신망을 감청할 수 없다는 것이 실전에서 입증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