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불평 뒤집어 평등 구워 낸 프랑스 ‘지팡이’

구름위 2017. 1. 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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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뒤집어 평등 구워 낸 프랑스 ‘지팡이’

바게트


“신분에 관계없이 빵 먹어도 좋다” 

프랑스 혁명서 ‘빵의 평등권 선포’ 

 

러시아 침공 빠른 기간내 끝내려 

‘나폴레옹 군대서 개발’ 유래도

 

 

기사사진과 설명
바게트 빵은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 군대에 지급한 전투식량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러시아 화가 바실리 베레쉬차긴 작, 보로디노 언덕의 나폴레옹.프랑스 혁명의회는 모든 시민은 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빵의 평등권을 선포했다.

바게트 빵은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 군대에 지급한 전투식량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러시아 화가 바실리 베레쉬차긴 작, 보로디노 언덕의 나폴레옹.프랑스 혁명의회는 모든 시민은 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빵의 평등권을 선포했다.



 


 

기사사진과 설명
바게트 빵.

바게트 빵.



 

 

 

 바게트는 겉이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이다. 프랑스어로 바게트(Baguette)는 막대기 혹은 지팡이를 뜻하는데 이 빵의 기다란 생김새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의 상징과도 같은 바게트 빵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나폴레옹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일설에는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 개발한 빵이라고 한다. 기동력은 나폴레옹 군대의 특징이다. 러시아를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속전속결이 목표였기에 최대한 간단하게 군장을 꾸렸지만 그래도 추운 겨울에 대비해 옷을 많이 넣었다. 그 때문에 배낭에 여분의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각자가 휴대해야 할 전투식량을 넣을 공간마저 부족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배낭 대신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도록 바지 길이만큼 좁고 길게 만든 것이 바게트 빵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 널리 퍼진 이야기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다. 누군가 빵 모양에 빗대 재미있게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의문점 두 가지가 생긴다. 먼저 왜 나폴레옹과 바게트의 유래를 연결지었을까? 또 러시아를 침공한 19세기 초, 프랑스 군인들은 진짜 세련되게 바게트를 먹었던 것일까?

 바게트 빵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설만 난무할 뿐이다. 하지만, 바게트 빵을 비롯해 맛있는 빵들이 만들어진 것은 나폴레옹 시대다. 엉뚱하게도 프랑스 혁명이 맛있는 프랑스 빵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간의 평등이 강조됐지만 동시에 빵의 평등도 실현됐기 때문이다.

 정치사의 그늘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 비로소 계급과 신분,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빵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4년이 지난 후인 1793년 11월 15일, 옛 왕정을 해체한 국민의회는 ‘빵의 평등권(The Bread of Equality)’을 선포한다.

 오직 한 종류의 빵만 만들고 팔아야 한다는 선언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빵 먹을 권리를 놓고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부자만을 위해 하얀 밀가루를 사용한 빵을 만들어서는 안 되며 시민 모두를 위해 질 좋은 빵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 빵의 평등권이다.

 이 빵은 밀가루를 4분의 3, 호밀을 4분의 1 비율로 섞어 만들어야 했으며 길이는 80㎝, 무게는 300g으로 제한됐다. 빵의 평등권 선언 제9조에는 제빵업자가 평등의 빵으로 알려진 빵 이외의 빵을 만들 경우는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경고 조항까지 있었다.

 자유·평등·박애와 같은 거창한 인류애가 주제인 프랑스 혁명에서 어떻게 이런 개그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생겼을까?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으로는 왕과 귀족의 부패·폭정에 대한 시민계급의 반발이었지만 혁명을 촉발시킨 계기는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빵값 폭등과 소금에 대한 과도한 세금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기상이변으로 2년 연속 밀 수확이 급감하면서 빵값이 하루 임금의 88%까지 치솟았다. 거기에다 서민들에게 소금세를 과도하게 부과했다. 두 가지 요소가 왕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울분은 쌓이고 있었다.

 신분에 따라 먹는 빵에 차이를 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분에 따라 먹을 수 있는 빵의 색깔과 종류가 달랐다. 예를 들어 하얀 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빵은 귀족과 부자들의 몫이었다. 대신 서민과 농부는 호밀이나 귀리로 만든 딱딱하고 검은 빵을 먹어야 했다. 심지어 이런 빵에는 표시가 잘 나지 않았기 때문에 톱밥이나 도토리, 나무껍질 등을 몰래 넣기도 했다. 검은 빵이 얼마나 딱딱했는지 빵을 자를 때 도끼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신이 부드럽고 흰 빵을 만든 것은 고상하고 연약한 귀족들이 거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며 당시 하층민들은 돼지보다 조금 더 진화한, 열등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딱딱한 빵을 먹어야 더욱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귀족들의 논리였다.

 귀족의 이런 횡포에 빵값까지 폭등하면서 분노가 폭발한 것이 프랑스 대혁명이고, 혁명의회에서 뚱딴지같이 모든 사람은 신분에 관계없이 똑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빵의 평등권’을 선언한 배경이다. 보통 사람들이 모두 평등하게 질 좋은 빵을 먹을 권리가 확보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여 년 전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혁명의회에서 결정한 한 종류의 빵만 생산하라는 명령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이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다만 신분에 따른 빵의 차별을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이때부터 프랑스 빵이 밀가루로 만든 흰 빵으로 개선됐다.

 이것이 바게트의 유래와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을 연결 짓고 누구나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상징으로 프랑스 군대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