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으로 생긴 굴욕의 중국 음식?
- 탕수육
‘中 패전 후 영국인 입맛 맞춰 개발’
근대중국 아픈 역사 담은 유래설
특히 최고급 과일 파인애플 사용
미군에게 탕수육 판 일본이 만든
‘패전국 굴욕’ 강조한 음모일 수도
탕수육은 아편전쟁 패배 후 중국이 영국인 입맛에 맞게 만든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그림은 아편전쟁 당시 중국 정크선을 공격하는 영국 증기선. 출처=위키피디아, 에드워드 던컨 작 |
음식에는 때로 진한 정치적 색깔이나 민족주의적 감정이 담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도루묵이 그런 생선이다. 도루묵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임금(선조)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이 짙게 배어 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
가리발디 장군은 “이탈리아를 진정으로 통일시킨 것은 바로 마카로니”라고 강조했다. 영토 통합이라는 물리적 통일에서 나아가 민족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을 파스타인 마카로니를 먹는 것으로 표현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 음식인 탕수육도 정치적인, 그리고 민족감정이 배어
있는 음식 중의 하나다. 흔히 탕수육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한 중국인들이 영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라고 말한다. 중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 사람들이 먹기 좋도록 고기 튀김에다 달콤하고 새콤한 소스를 만들어 얹은 것이 탕수육이라는 것이다. 재미 삼아 하는
이야기겠지만, 중국의 굴욕을 강조하고 음식까지도 승자의 입맛에 맞춰야 했던 근대 중국의 비굴을 조롱하는 뉘앙스가 있다.
탕수육이
아편전쟁 패배를 계기로 생겨난 음식이라는 이야기는 일단 탕수육 자체만 놓고 보면 얼토당토않다. 아편전쟁은 1842년에 끝났지만 탕수육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중국 전통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익숙한 탕수육은 어떤 음식일까? 먼저 탕수는 중국어 표준 발음이
아니다. 우리나라 중국음식 이름은 대부분 산동성 출신 화교들이 만들었기에 산동 발음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탕수’는 한자로 당초(糖醋)라고 쓰고
중국 표준어로는 ‘탕추’라고 읽는다. 새콤달콤한 소스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파는 요리 중 탕수육이라는 이름의 음식은 없다. 대신
‘탕추’ 소스로 만든 다양한 요리가 있을 뿐이다. 예컨대 탕추 소스로 요리한 등심은 탕추리지(糖醋里脊), 갈비는 탕추갈비(糖醋排骨), 생선은
탕추생선(糖醋魚)이라고 부른다.
‘탕추’ 소스는 중국 전역에서 발달했다. 북경은 물론이고 산동과 사천, 광동 그리고 남경 요리에도
탕추 소스가 보인다. 청나라 말기 최고의 권력자였던 여걸 서태후도 탕추 요리를 좋아했다. 시기적으로 아편전쟁과 비슷한 때의 인물이지만 서태후가
좋아했을 정도면 옛날부터 있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탕추 소스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9세기 초 순조 때의 실학자 이규경은
당초(糖醋) 소스 만드는 법에 대한 글까지 남겼다. 엿과 식초로 새콤달콤하게 만드는 것인데 우리 전통 요리법 중의 하나인지 혹은 중국에서 전해진
소스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거나 탕추 소스가 옛날부터 널리 퍼진 요리법 중의 하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탕수육이
아편전쟁에 패배한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이야기일까?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참고할 부분이 있고, 또 전혀
사실과 동떨어진 것만도 아니다.
아편전쟁과 관련된 것은 특히 파인애플을 넣은 탕수육 이야기다. 탕수육에 누가 그리고 왜 파인애플을
넣었을까? 여러 말이 있지만 하나는 아편전쟁 이후 홍콩 등지로 영국인들이 몰려들자 이곳의 요리사들이 처음으로 파인애플을 넣은 탕추 소스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국이 열강들에게 점령당했을 때 상하이의 영국과 프랑스 조계지에서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게 파인애플을 넣어 탕수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새콤달콤한 탕추 소스로도 모자라 파인애플까지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파인애플은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다 촉촉하고 향기로워서 음식이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게 한다. 이런 기능적인 측면을 떠나 파인애플이 들어간 진짜 이유는 19세기에는
파인애플이 최고급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파인애플은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과일이었다. 돈 많은 부자들만 먹는 것, 그것도
중국인들은 쉽게 먹지 못하고 서양인들이나 먹는 그런 과일이었다. 그 때문에 파인애플을 넣어 탕수육을 최고급 요리로 발전시킨
것이다.
하여튼 아편전쟁 패배로 만들어졌건, 상하이 조계지에서 만들어졌건 서양인의 입맛에 맞춰 파인애플 탕수육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는 근대 중국의 아픈 역사를 꼬집는 측면이 있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서는 파인애플 탕수육의 유래를 아편전쟁이나
서양인의 입맛과 연결 지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인애플 탕수육과 관련된 그런 이야기는 주로 일본에서 떠돌다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일본에서는 파인애플 탕수육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들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진 음식이다.
지금도 도쿄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남국주가(南國酒家)라는 중국음식점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 혹시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미군을 상대로
파인애플 탕수육을 팔면서 패전국이 겪는 굴욕을 중국에 뒤집어씌운 것은 아닐까?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으니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본의 행태를 보면 억지 추정만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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