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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의 최초 원료는 ‘우유 찌꺼기’였다
- 탄산음료 ‘환타’
2차 세계대전으로 원료 공급이 중단되자 독일, 콜라 대체품으로 개발한 청량음료
1930년대의 콜라 보틀링 공장. 필자제공 |
제2차 세계대전 때 콜라 대용품으로 만든 독일의 탄산음료 포스터. 필자제공 |
시원한 탄산음료 브랜드인 환타의 최초 원료는 ‘우유 찌꺼기’였다. 환타는 미국 코카콜라 회사 제품이다. 그렇다면 코카콜라가 악덕 식품업자였을까? 그렇지 않다. 사실은 우유 찌꺼기에서 만들어진 위대한 탄생이다.
환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탄산음료다. 미국이 참전하면서 독일과 미국은 적대국이 됐고, 독일 사람들은 더는 콜라를 마실 수 없게 됐다. 콜라 원액의 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품으로 만들어진 탄산음료가 환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미국 코카콜라는 적극적으로 독일 탄산음료 시장에 진출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될 무렵인 1939년, 독일에는 모두 43곳의 콜라제조 공장이 있었고 공급처만 600곳이었다. 하지만 1941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콜라 원액의 독일 공급이 중단됐다.
당시 코카콜라의 독일법인 책임자는 막스 카이트였다. 나치독일은 카이트를 독일과 유럽 점령지에서 몰수한 코카콜라 공장과 재산 관리책임자로 임명했다. 이제는 콜라 생산을 할 수 없게 된 카이트는 독일시장에서 판매할 새로운 소프트 드링크를 개발한다. 하지만 전쟁 중인 독일에서 쓸 만한 원료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새로운 탄산음료를 만드는 데 적당한 원료를 찾아도 대량생산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물량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쟁 중에 얻을 수 있는 원료, 그것도 다른 전시물자로 사용하기 부적합한 원료, 다시 말해 버리는 폐기물을 재활용해야 했다.
독일에서 콜라를 대신해 만들어진 탄산음료, 환타의 최초 원료는 우유 찌꺼기인 유장(乳漿)과 사과술을 만들고 남은 섬유질이었다. 우유로 치즈와 버터를 만들면 단백질과 지방은 치즈와 버터가 되고 나머지 찌꺼기로 노란색의 맑은 액체만 남는다. 유장이라고 하는 이 액체는 오렌지 맛이 난다. 또 사과즙을 발효시켜 사과주를 만들면 부산물로 사과의 섬유질이 남는다. 최초의 환타는 이렇게 치즈와 버터를 만들고 남은 우유 액체, 그리고 사과술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 원료가 됐다.
더는 콜라를 마실 수 없었던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소프트 드링크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새로운 탄산음료는 만들 때마다 맛이 달랐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오렌지 맛을 내는 우유 찌꺼기 유장, 사과 맛을 내는 사과주 부산물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그때 구하는 원료 종류에 따라 매번 서로 다른 맛의 탄산음료를 생산해야만 했다. 오늘날 콜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맛이 같다. 반면 환타는 지역에 따라 모두 90종류의 서로 다른 과일 맛이 생산된다. 원료부족으로 다른 맛의 음료를 생산해야 했던 상황에서 비롯됐다.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패전을 눈앞에 둔 독일은 심각한 물자부족에 시달렸다. 그러자 콜라 대체품인 탄산음료 환타에도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청량음료가 아니라 조미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청량음료는 주로 아이들이 마시는 소프트 드링크이기 때문에 단맛을 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학물질인 사카린을 사용해 단맛을 냈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이 마시는 음료라는 점, 그리고 국민들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설탕 첨가를 허용했다. 그런데 패색이 짙어진 독일에서는 생활필수품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해상 운송로가 모두 막히면서 사탕수수 수입이 끊겨 설탕 배급이 중단됐다.
그러자 사람들이 설탕이 들어 있는 환타를 단맛을 내는 조미료 대용품으로 쓰기 시작했다. 음식을 조리할 때 설탕 대신 환타를 넣은 것이다. 1943년 한 해 동안 독일에서 팔린 환타는 모두 300만 병 정도였는데 이중 상당수가 청량음료가 아닌 수프나 음식의 단맛을 내는 데 쓰였다고 하니 조미료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셈이다.
전쟁 초기에 만들어진 환타는 콜라를 대신해 만든 단순한 탄산음료, 청량음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환타의 도움을 받았다. 예컨대 설탕이 부족한 독일에서 환타가 대신 조미료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나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전쟁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기간 중에도 독일에서 콜라 공장을 계속 가동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탄산음료가 팔려나갔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고 계속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었다.
사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코카콜라 본사에서는 막스 카이트가 나치독일에서 회사를 계속 경영하고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전쟁이라 연락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카이트는 신제품의 소유권을 본사에 넘기고 다시 독일 법인의 책임자로 일했다.
별생각 없이 마시는 탄산음료의 내력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세계사, 과학기술사, 경제사, 경영사의 단편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의 폐허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지혜, 그리고 찌꺼기에서도 새로운 대체품을 만들어 내는 창조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폐허에서 발견한 인간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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