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고대에는 강병 육성 위해 지급했던 고급 고기

구름위 2017. 1. 1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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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강병 육성 위해 지급했던 고급 고기

보신탕


유목민족에게 정복당한 중국은 금기시해 유교 전통 강한 우리 민족은 거부감 적어

 

기사사진과 설명

춘추시대 월왕은 강병 육성을 위한 출산장려책으로 아들을 낳으면 개고기를, 딸을 낳으면 돼지고기를 지급했다. 고대에는 식육으로 돼지보다 개를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다. 사진은 시안의 병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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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기록이 처음 실린 사기진본기(秦本紀).

복날 기록이 처음 실린 사기진본기(秦本紀).


한여름 무더위의 정점은 복날이다. 초복, 중복도 지나고 이제 말복(12일)만 남았으니 조금만 견디면 더위도 한풀 꺾인다.

어쨌든 더운 복날에는 보양식으로 여름을 이기는 것이 우리의 풍속인데 요즘은 복날 삼계탕을 주로 먹지만, 예전의 전통 복날 음식은 보신탕이었다. 그런데 왜 세계적으로 우리만 유독 보신탕을 먹을까?

 보신탕 식용의 찬반을 떠나서 이유를 알아야 비난과 옹호에 대처하겠는데 전쟁의 기록에서 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복날 보신탕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복날의 역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기원전 676년 무렵인 진나라 덕공 2년, 복날이 되자 사당을 짓고 개를 죽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벌레로 인한 피해를 막았다고 나온다.

이때부터 복날 보신탕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제사를 지낸 고기는 요리해 음복(飮福) 음식으로 먹기 때문이다. 사기에 나오는 이 뜬금없는 소리는 무슨 말일까?

 사기에는 벌레의 피해를 막으려고 개를 잡았다고 했는데 원문에 적힌 한자는 그냥 벌레가 아니다. 날아다니는 해충(蟲)이 아니라 사람 몸속에 기생하는 벌레(蠱)였으니 기생충이나 세균, 혹은 바이러스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 중국 모두 복날은 일 년 중에 가장 더울 무렵이고 습도 역시 가장 높을 때다. 바꿔 말해 청결하지 못했던 옛날, 전염병이 가장 많이 나도는 시기가 바로 복날 무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에 나오는 복날, 개고기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전염병이 나돌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이때 개고기는 훌륭한 전염병 예방음식이 될 수 있었다. 푸성귀만 먹던 옛날 사람들에게 고기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찬 것을 찾기 쉬운 여름철, 보신탕처럼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영양도 보충하고 배탈이 나는 것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를 제쳐두고 왜 하필 개고기로 복날 제사를 지냈을까?

 이유는 시대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소는 함부로 잡지 못했다.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법으로, 왕명으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를 잡지 못하도록 도축 금지령을 내렸다.

돼지고기는 고대에는 돼지를 많이 키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름에 돼지고기를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난다. 제사용 고기도 아니었고 복날 먹기에는 부적합한 고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 유교에서는 개고기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다시 말해, 고대 중국에서는 개가 기피 식품도 아니었고 오히려 하늘에 바치기에 가장 적합한 동물이었다.

 게다가 쇠고기에 버금가는 고급 고기였다. 그래서 인구가 귀했던 옛날 개고기는 출산장려금으로 지급됐다.

와신상담의 고사를 남긴 월왕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군사력을 키우고 병력을 늘릴 때 썼던 수단이 바로 개고기였다.

 월왕 구천은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출산장려책을 폈다. 그리하여 여자가 열일곱 살이 되도록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남자가 스무 살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않으면 부모에게 대신 죄를 물었다.

반면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는데 남자아이를 출산하면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지급했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주었다.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났던 옛날에, 그것도 병력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지급한 장려금이었으니 월나라에서는 개고기를 돼지고기보다 훨씬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자라서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 싸우려면 최소한 15~20년은 걸린다. 그러니 오왕 부차에 대한 월왕 구천의 복수는 와신상담의 인내를 넘어서는 집념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집념을 이룬 수단으로 당시 귀한 고기였던 개고기가 있었다.

 일본도 비슷해서 서기 675년, 일왕이 소, 말, 개, 원숭이, 닭은 먹으면 안 된다고 육식금지령을 내린다.

특히 말과 개는 군사용 목적이기 때문에 먹으면 엄하게 다스린다고 했는데 뒤집어 말하자면 개를 그만큼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고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개를 먹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고대에는 개를 먹었던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지금은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동남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은 7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육식금지령이 이어졌다. 19세기 말부터 고기를 먹었으니 굳이 다시 보신탕을 먹을 이유가 없다. 동남아 각국은 불교와 이슬람 등 종교적 영향이 크다. 그렇다면 보신탕을 먹었던 중국은 왜 먹지 않을까?

 중국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것은 6세기 무렵이다. 남북조 시대 북방 유목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다. 개는 유목과 수렵에 반드시 필요한 동물이다. 그래서 유목·수렵민족은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이후에도 중국은 유목민족인 몽골의 원과 수렵민족인 만주의 청나라 지배를 받았다. 지배계층이 보신탕을 금기시했으니 자연히 보신탕 문화가 사라졌다.

 반면 한국과 베트남은 농경문화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보신탕을 금기시하지 않은 유교를 숭상했으니 굳이 보신탕을 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동서양 보신탕 문화가 정복과 피정복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