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3) - 원정에 나서기까지 원정에 나서기까지 앞의 이야기에서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야전을 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성에 의지하는 것이 편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지휘관이라도 공성과 수성전은 피하려고 한다. 한 곳에 최소한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수 많은 병력을 못박아두어야 했기 때..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3.01.03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2) - 푸아티에와 아쟁쿠르 전투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2) ? 푸아티에 전투 (1356) 1355년 흑태자 에드워드가 수백 개의 남프랑스 도시와 마을을 약탈하면서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그 다음 해에도 중부까지 깊숙이 들어가 약탈을 하던 그는 9월 17일에 푸아티에 근처에서 존 2세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만나게 된다. 에드워드..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3.01.03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1) - 크레시 전투 그림 설명: 공성전의 무대가 될 성입니다. 실제있는 성을 배경으로 성을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방어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백년전쟁의 사건 1328 샤를(Charles) 4세 사망. 카피션(Capetian) 왕조의 장손가문 종식. 발루아(Valois)의 필립(Philip)이 ..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3.01.03
30년전쟁 - 브라이텐펠트 전투 (1631년)| 이번엔 30년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라 할 수 있는 브라이텐펠트 전투입니다. 역시 영어를 잘 못하는 관계로 일본쪽 책을 참고로 했습니다. 보시면서 수정할것을 알려주세요. 특히 틸리백작의 본명이 조금 헷갈리더군요. ^^ 브라이텐펠트 전투(영어: Battle of Breitenfeld; 독일어: Schlacht bei Bre..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3.01.02
7년 실정의 준엄한 심판, '1042년 봉기' 1034년 4월 11일부터 1041년 12월까지 7년 8개월 동안 로마 제국은 화폐위조자인 미하일 4세의 명목상 통치를 받았다. 하지만 미하일 4세는 젊고 그 신분의 낮음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이 부재하여 군주로서의 역할이 불가능했다. 결국 그의 즉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고 당대 가장 정치 수완..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3.01.02
사진자료 Wasa 관련 사이트입니다. The Vasa Museum The Swedish 17th century royal warship The Royal Warship Vasa The Swedish ship Vasa's revival 17세기초 전 유럽은 30년전쟁에 휩쓸렸다. 스웨덴의 Gustav Adolf 2세는 소국이며 빈국이었던 자신의 나라를 이 전쟁을 계기로 일으키려는 생각으로 몹시 불안해 했다. 이러한 그의 야..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2.12.27
백년전쟁때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질적 차이, 그리고 쟌다르크 물론, 전반적으로 볼 때 보병들이 사회의 하층 계급(범죄자, 강도, 산적, 건달, 멋모르는 풋내기, 공명심에 들뜬 애송이, 가만있다 난데없이 끌려나온 농부.. 등등.. =_=;;;)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전술 위에 있는 것이 전략이고, 전략 위에 있는 것이 정치이며, ..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2.12.25
중기병의 등장 중세 전쟁을 특징짓는 인물이 바로 기사, 즉 기창(lance)과 검으로 무장하고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병이다. 중세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그 갑옷은 더욱 더 무거워지고 효과적으로 되었으며, 또한 그에 따라 값비싸졌다.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기병에 의해 전쟁이 지배..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2.12.25
중세의 용병,전쟁규모 중세의 용병 (중세의)군대에서 유별나게 우수한 조직을 갖춘것은 '용병'이었다. 용병은 당시의 민간인들에게는 파괴와 무질서의 상징이었다. 용병은 백년전쟁 기간동안 프랑스인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아마 이런 것은 스페인, 독일, 그리고 특히 상업 국가가 지배하는 영역등, 용병들..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2.12.21
거의 이겼는데 졌다 - 프라하 전투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빼았긴 오스트리아는 복수를 위해 이를 갈았다. 이를 위해 러시아와 프랑스를 동맹으로 끌어들인(삼부인 동맹) 오스트리아는 전쟁준비를 했는데 이를 알아차린 프리드리히2세는 프로이센의 국력이 열세라는 점을 들어 선수를 치.. 역사 ,세계사/중세유럽 201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