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의 저격전
- 진두지휘 공정대대장 기관총사격에 쓰러져
- 2008. 11. 18 00:00 입력 | 2013. 01. 05 04:14 수정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오랫동안 계속된 영토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남대서양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기습공격해 장악했다. 이에 영국은 강력한 정예
기동부대를 출동시켜 해상 및 공중전과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혹한이 몰아치는 포클랜드 섬 전투는 방어적이고 수적으로 우세한 아르헨티나군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주로 야간 공격작전을 전개해 아르헨티나군의 화력을 회피하고 결정적인 공격으로 조기에 전쟁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포클랜드에서는 주야간으로 조준경을 갖춘 스나이퍼들 사이에서 치열한 저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참호진지를 구축한 대규모 아르헨티나군에 대해 영국군 제2 공정대대가 공격한 구스그린(Goose Green) 전투는 가장 요란했다.
양측의 저격수들은 밤낮 없이 상대방의 표적을 찾아 치명적인 저격탄을 날렸다. 영국 공정대원들이 다윈(Darwin)지협을 따라 구스그린으로 전진하도록 공격명령을 받았을 때 아르헨티나군의 포격이 집중됐다. 그리고 덩치 큰 공정대원들은 아르헨티나 저격수들에게 좋은 목표물로 포착됐다. 쌍방의 치열한 교전이 시작됐고 이것은 한국전쟁 이후 영국군이 겪은 가장 위험한 싸움이었다.
한 영국군 공정대원은 자신이 겪은 아르헨티나군과의 저격전을 이렇게 진술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군의 집중포격을 받게 됐다. 폭음과 파편을 피해 정신없이 뛰고 굴렀지만 분명 영국군의 위기였다. 켄(Ken) 일병이 소속된 팀이 아르헨티나 저격수에 의해 고착돼 계속 사격을 받다가 공정대원 한 명이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그를 대피시키고 난 후 우리 공정대원 한 명이 아직 100발이 남아 있는 그의 탄대를 찾기 위해 적의 포격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르헨티나 저격수가 쏜 총탄이 목을 관통했고 목뼈가 부러졌다. 그 대원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순식간에 사망했다. 스나이퍼를 출동시키라는 명령이 무전을 통해 급하게 전달되자 잠시 후 위장복을 입은 저격수가 진지에 도착했다.
무수한 총탄이 머리 위로 날아 다니는데 저격수는 쌍안경을 통해 침착하게 아르헨티나 전선을 살폈다. 그리고 적의 진지를 발견한 듯 그는 무기를 들고 다른 곳으로 위치를 이동했다. 잠시 후 한 발의 총탄이 발사됐다. 이 소총 사격으로 겨우 아르헨티나 전선의 일부분이 잠잠해졌다. 전투가 끝난 후 머리가 관통된 적군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스그린에서 요새진지에 틀어박힌 아르헨티나군의 저항은 의외로 강력했다. 영국 공정대원들이 계속 피해를 입고 전진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자 대대장 허버트 존스(H. Johns) 중령이 7명의 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돌격하다가 적의 치열한 기관총사격을 받고 쓰러졌다.
피아 간의 살상전이 눈덮인 고지에서 계속됐다. 살이 찢겨 나가는 듯한 매서운 바람 때문에 온통 수염투성이가 된 공정대원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그러나 영국군들의 백발백중 사격술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공정부대의 자존심으로 결국 구스그린에서 영국군이 크게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아르헨티나군은 250명의 전사자와 12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1400여 명이 영국군에 투항했지만 영국군의 피해는 전사 17명 외에 3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을 뿐이다. 구스그린 전투가 보도되자 세계의 언론들은 일제히 영국 공정대의 잔인한 살상행위를 비난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공정대원들의 뛰어난 사격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일축했다.
구스그린에서 영국군이 승리하자 아르헨티나군은 포트 스탠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 정상에서 방어준비를 했다. 이곳에서 아르헨티나군은 기관총과 저격수를 배치하고 바위로 만든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
아르헨티나군 병사들이 최후의 방어전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됐는데, 이들은 거의 훈련을 받지 못한 징집병들이 많았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독일의 구식 마우저총과 레드필드(Redfield) 망원 조준경이 장착된 최신 미제 레밍턴 70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저격수들은 야간 조준경 외에 야간투시경과 같은 2세대 모델을 사용했는데 이는 영국군이 사용했던 제1세대 야간 조준경보다 우수한 장비였다. 그러나 장비가 병사들의 질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야간전투는 영국군이 우세했다.
양측의 보병부대는 놀랍게도 벨기에제 FN FAL소총으로 무장했다. 이 총은 유럽과 중남미·아프리카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세계적인 명품이었다. FN소총에 야간 조준경을 장착한 양측의 병사들은 전쟁을 결정짓는 마지막 전투에서 동일한 무기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포클랜드 전쟁은 이러한 다양한 무기의 시험장이 됐다.
그러나 영국군은 주로 야간 공격작전을 전개해 아르헨티나군의 화력을 회피하고 결정적인 공격으로 조기에 전쟁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포클랜드에서는 주야간으로 조준경을 갖춘 스나이퍼들 사이에서 치열한 저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참호진지를 구축한 대규모 아르헨티나군에 대해 영국군 제2 공정대대가 공격한 구스그린(Goose Green) 전투는 가장 요란했다.
양측의 저격수들은 밤낮 없이 상대방의 표적을 찾아 치명적인 저격탄을 날렸다. 영국 공정대원들이 다윈(Darwin)지협을 따라 구스그린으로 전진하도록 공격명령을 받았을 때 아르헨티나군의 포격이 집중됐다. 그리고 덩치 큰 공정대원들은 아르헨티나 저격수들에게 좋은 목표물로 포착됐다. 쌍방의 치열한 교전이 시작됐고 이것은 한국전쟁 이후 영국군이 겪은 가장 위험한 싸움이었다.
한 영국군 공정대원은 자신이 겪은 아르헨티나군과의 저격전을 이렇게 진술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군의 집중포격을 받게 됐다. 폭음과 파편을 피해 정신없이 뛰고 굴렀지만 분명 영국군의 위기였다. 켄(Ken) 일병이 소속된 팀이 아르헨티나 저격수에 의해 고착돼 계속 사격을 받다가 공정대원 한 명이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그를 대피시키고 난 후 우리 공정대원 한 명이 아직 100발이 남아 있는 그의 탄대를 찾기 위해 적의 포격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르헨티나 저격수가 쏜 총탄이 목을 관통했고 목뼈가 부러졌다. 그 대원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순식간에 사망했다. 스나이퍼를 출동시키라는 명령이 무전을 통해 급하게 전달되자 잠시 후 위장복을 입은 저격수가 진지에 도착했다.
무수한 총탄이 머리 위로 날아 다니는데 저격수는 쌍안경을 통해 침착하게 아르헨티나 전선을 살폈다. 그리고 적의 진지를 발견한 듯 그는 무기를 들고 다른 곳으로 위치를 이동했다. 잠시 후 한 발의 총탄이 발사됐다. 이 소총 사격으로 겨우 아르헨티나 전선의 일부분이 잠잠해졌다. 전투가 끝난 후 머리가 관통된 적군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스그린에서 요새진지에 틀어박힌 아르헨티나군의 저항은 의외로 강력했다. 영국 공정대원들이 계속 피해를 입고 전진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자 대대장 허버트 존스(H. Johns) 중령이 7명의 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돌격하다가 적의 치열한 기관총사격을 받고 쓰러졌다.
피아 간의 살상전이 눈덮인 고지에서 계속됐다. 살이 찢겨 나가는 듯한 매서운 바람 때문에 온통 수염투성이가 된 공정대원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그러나 영국군들의 백발백중 사격술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공정부대의 자존심으로 결국 구스그린에서 영국군이 크게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아르헨티나군은 250명의 전사자와 12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1400여 명이 영국군에 투항했지만 영국군의 피해는 전사 17명 외에 3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을 뿐이다. 구스그린 전투가 보도되자 세계의 언론들은 일제히 영국 공정대의 잔인한 살상행위를 비난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공정대원들의 뛰어난 사격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일축했다.
구스그린에서 영국군이 승리하자 아르헨티나군은 포트 스탠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 정상에서 방어준비를 했다. 이곳에서 아르헨티나군은 기관총과 저격수를 배치하고 바위로 만든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
아르헨티나군 병사들이 최후의 방어전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됐는데, 이들은 거의 훈련을 받지 못한 징집병들이 많았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독일의 구식 마우저총과 레드필드(Redfield) 망원 조준경이 장착된 최신 미제 레밍턴 70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저격수들은 야간 조준경 외에 야간투시경과 같은 2세대 모델을 사용했는데 이는 영국군이 사용했던 제1세대 야간 조준경보다 우수한 장비였다. 그러나 장비가 병사들의 질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야간전투는 영국군이 우세했다.
양측의 보병부대는 놀랍게도 벨기에제 FN FAL소총으로 무장했다. 이 총은 유럽과 중남미·아프리카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세계적인 명품이었다. FN소총에 야간 조준경을 장착한 양측의 병사들은 전쟁을 결정짓는 마지막 전투에서 동일한 무기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포클랜드 전쟁은 이러한 다양한 무기의 시험장이 됐다.
포클랜드 전쟁과 저격수
“아군 병사들이 꼼짝도 못한 채 똑같은 저격수에게 한 번 이상씩 사격을 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아르헨티나 저격수의 놀랍도록 정확한 사격은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영국에서는 보다 저돌적인 구르카(Gurkha) 부대를 투입해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됐다.
네팔 출신 용병인 구르카 부대는 세계대전 중에도 독일군이나 일본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공포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혹한의 산악지대나 무더운 정글을 막론하고 야간전투와 육박전에 능숙하며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적을 제압하는 무적의 전사들이었다. 구르카 부대의 참전소식이 알려지자 아르헨티나군의 사기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나이퍼들도 신중하게 표적을 찾고 저격의 성공률도 크게 저하됐다. 영국군들은 포클랜드 전투에서 적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구스타프·밀란 등 대전차용 미사일을 사용했는데, 이는 고가품이었지만 아르헨티나 저격수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적인 무기였다. 그만큼 저격수의 위협은 전차 이상으로 큰 부담을 준 것이다.
영국군의 대저격작전은 소총과 미사일의 합작품이었다. 즉, 야간 조준경을 가진 병사가 예상되는 아르헨티나군의 저격 진지를 찾아 예광탄을 발사하면 그 탄착점을 향해 정확히 휴대용 미사일이 발사됐다. 저격수에게 포격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러한 전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행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자 영국군들은 적극적인 저격전으로 대처했다. 텀블타운산 공격 시 영국군 소대장 프래저(A. Fraser) 중위는 야간 저격작전의 극적인 상황을 증언했다.
“아르헨티나군의 총탄이 아군 진지에 계속 쏟아졌다. 소대의 공격작전은 어둠 속에서 난관에 봉착한 듯했다. 그러나 제15소대의 스나이퍼 댈그리시(Dalgliesh) 하사가 야간 조준경을 사용해 아르헨티나 저격수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적 진지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아르헨티나 병사는 몇 초 동안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저격술을 원망하며 죽었을 것이다.”
포클랜드 전쟁은 결국 영국군에게 승리를 안겨줬으며, 스나이퍼의 활약이 승리를 앞당기는 자극제가 됐다. 아르헨티나군은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정예병사들에게 굴복하고 만 것이다.이러한 저격전을 위해 영국군은 구식 L42A1 저격소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1982년 말, 5개 소총중대로 하여금 전투사격 장비를 시험하고 분리형 10발용 탄알집을 채택, 소총의 화력을 증강시켰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 이후 영국군은 새로운 저격용 소총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미 캐나다와 호주가 선택했던 파커 헤일 총과 올림픽 사격 챔피언 쿠퍼(M. Cooper)가 설계한 저격총, 그리고 포츠머스의 애큐러시 인터내셔널 회사가 제조한 PM총이 그 후보가 됐다. 그중 최종적으로는 PM이 선택됐으며 이는 1986년에 L96A1 소총으로 군에 보급됐다.
확실히 L96A1은 정확한 무기였다. 영국 워민스터(Warminster)의 보병학교에서 실시한 실험에서는 800m의 거리에서 대략 38cm 정도의 머리 크기만 한 목표물에 계속 10발의 총탄을 명중시킬 수 있었다. 애큐러시 인터내셔널 회사는 네 가지 복제품 소총을 설계했는데, 표준 L96A1 보병화기와 대테러용·소음용·장거리용 소총이었다.
특히 장거리용은 구경 0.30인치의 강력한 윈체스터 매그넘과 7mm의 레밍턴 매그넘 혹은 8.6mm(0.338인치)의 라푸아 매그넘탄을 장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총은 1000m 이상의 장거리 단발사격용으로 설계됐으며, 기호에 따라 적당한 배율의 조준경이 장착될 수 있었다. 이러한 네 가지 형태의 PM 저격용 소총은 전장에서 많은 융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격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요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적인 새로운 무기가 계속 등장했다. 전장에서 PM(L96A1) 소총이 이룩한 명성과 함께 1990년대 초부터 새로운 AW 시리즈가 PM 시스템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이 AW시리즈는 특별히 향상된 노리쇠 작동식과 더욱 강해진 조준경을 자랑으로 삼았다.이러한 강력한 무기들이 나타나 현대 전장의 저격전은 더욱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 한명의 아르헨 저격수 英 1개 중대 공격 막아
- 2008. 11. 25 00:00 입력 | 2013. 01. 05 04:15 수정
“아군 병사들이 꼼짝도 못한 채 똑같은 저격수에게 한 번 이상씩 사격을 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아르헨티나 저격수의 놀랍도록 정확한 사격은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영국에서는 보다 저돌적인 구르카(Gurkha) 부대를 투입해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됐다.
네팔 출신 용병인 구르카 부대는 세계대전 중에도 독일군이나 일본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공포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혹한의 산악지대나 무더운 정글을 막론하고 야간전투와 육박전에 능숙하며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적을 제압하는 무적의 전사들이었다. 구르카 부대의 참전소식이 알려지자 아르헨티나군의 사기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나이퍼들도 신중하게 표적을 찾고 저격의 성공률도 크게 저하됐다. 영국군들은 포클랜드 전투에서 적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구스타프·밀란 등 대전차용 미사일을 사용했는데, 이는 고가품이었지만 아르헨티나 저격수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적인 무기였다. 그만큼 저격수의 위협은 전차 이상으로 큰 부담을 준 것이다.
영국군의 대저격작전은 소총과 미사일의 합작품이었다. 즉, 야간 조준경을 가진 병사가 예상되는 아르헨티나군의 저격 진지를 찾아 예광탄을 발사하면 그 탄착점을 향해 정확히 휴대용 미사일이 발사됐다. 저격수에게 포격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러한 전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행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자 영국군들은 적극적인 저격전으로 대처했다. 텀블타운산 공격 시 영국군 소대장 프래저(A. Fraser) 중위는 야간 저격작전의 극적인 상황을 증언했다.
“아르헨티나군의 총탄이 아군 진지에 계속 쏟아졌다. 소대의 공격작전은 어둠 속에서 난관에 봉착한 듯했다. 그러나 제15소대의 스나이퍼 댈그리시(Dalgliesh) 하사가 야간 조준경을 사용해 아르헨티나 저격수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적 진지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아르헨티나 병사는 몇 초 동안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저격술을 원망하며 죽었을 것이다.”
포클랜드 전쟁은 결국 영국군에게 승리를 안겨줬으며, 스나이퍼의 활약이 승리를 앞당기는 자극제가 됐다. 아르헨티나군은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정예병사들에게 굴복하고 만 것이다.이러한 저격전을 위해 영국군은 구식 L42A1 저격소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1982년 말, 5개 소총중대로 하여금 전투사격 장비를 시험하고 분리형 10발용 탄알집을 채택, 소총의 화력을 증강시켰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 이후 영국군은 새로운 저격용 소총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미 캐나다와 호주가 선택했던 파커 헤일 총과 올림픽 사격 챔피언 쿠퍼(M. Cooper)가 설계한 저격총, 그리고 포츠머스의 애큐러시 인터내셔널 회사가 제조한 PM총이 그 후보가 됐다. 그중 최종적으로는 PM이 선택됐으며 이는 1986년에 L96A1 소총으로 군에 보급됐다.
확실히 L96A1은 정확한 무기였다. 영국 워민스터(Warminster)의 보병학교에서 실시한 실험에서는 800m의 거리에서 대략 38cm 정도의 머리 크기만 한 목표물에 계속 10발의 총탄을 명중시킬 수 있었다. 애큐러시 인터내셔널 회사는 네 가지 복제품 소총을 설계했는데, 표준 L96A1 보병화기와 대테러용·소음용·장거리용 소총이었다.
특히 장거리용은 구경 0.30인치의 강력한 윈체스터 매그넘과 7mm의 레밍턴 매그넘 혹은 8.6mm(0.338인치)의 라푸아 매그넘탄을 장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총은 1000m 이상의 장거리 단발사격용으로 설계됐으며, 기호에 따라 적당한 배율의 조준경이 장착될 수 있었다. 이러한 네 가지 형태의 PM 저격용 소총은 전장에서 많은 융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격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요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적인 새로운 무기가 계속 등장했다. 전장에서 PM(L96A1) 소총이 이룩한 명성과 함께 1990년대 초부터 새로운 AW 시리즈가 PM 시스템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이 AW시리즈는 특별히 향상된 노리쇠 작동식과 더욱 강해진 조준경을 자랑으로 삼았다.이러한 강력한 무기들이 나타나 현대 전장의 저격전은 더욱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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