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영국과 독일의 저격전

구름위 2017. 1. 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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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독일의 저격전

지능적이고 인내심 있는 감시·관측이 성패 좌우
2008. 06. 24   00:00 입력 | 2013. 01. 05   03:54 수정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상황은 전술적 기동이 중요했고 대규모 강력한 지원 화력들, 특히 박격포와 경기관총(LMG) 등의 출현으로 소총병의 역할은 위축됐다. 그러나 영국군에서는 잘 조준된 소총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경기관총 사수와 저격수를 놓고 실험을 실시했다. 각각 6개의 철판 표적을 향해 제한된 시간 내 사격해 철판을 쓰러뜨리도록 했다.

단 30초 동안 경기관총이 하나를 명중시키기도 전에 저격수는 6개의 철판을 모두 넘어뜨렸다. 이 결과는 양적인 사격보다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는 증거였다.북아프리카 사막의 탱크전이나 고속기동전 상황에서는 저격수의 역할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튜니지 산악전투와 시칠리 섬, 이탈리아 전투에서는 일단 전쟁의 속도가 둔화되자 저격수가 필요했다.

탁 트인 산악 고지에서는 종종 400m를 훨씬 넘는 장거리 사격의 가치가 증대됐다. 저격전에서는 지능적이고 인내심 있는 감시·관측만이 성과를 가져오는 열쇠이며, 이는 적이 방심하거나 저격수의 존재를 무시할 때 효과적이었다. 이탈리아 전투는 이러한 원칙이 성공한 사례로서 영국군 부대가 진지를 선정하기 위해 세니오(Senio) 강을 따라 전진하고 있을 때 전사작가 쇼어 대위가 당시 상황을 목격했다.
“전방 소대가 강에서 200m 떨어진 작은 마을을 포위했다. 저격수들이 높은 지붕에 올라가 독일군이 점령한 고지를 관찰했다. 독일군들은 조심스럽게 매 시간 초병 교대를 했다. 아군 저격수들은 사격을 자제하고 독일군들이 방심해지기를 기다렸다. 온종일 기다린 끝에, 오후 늦게 마침내 희망이 이루어졌다. 잠복 12시간 만에 적군 6명의 허리 윗부분이 보였다.

배치된 아군 저격수 4명은 준비한 다음 각자 한 명씩 독일군을 골라 동시에 사격했다. ‘탕!-’ 4발의 총성이 울리며 그중 3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곧 뒤쪽에 숨어 있던 동료들이 재빨리 시신을 언덕 위에서 끌고 내려갔다. 독일군의 초병 교대가 다시 매우 조심스러워졌고, 저격수들은 더 이상 사격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잠복 16시간 만에 그곳에서 2명의 독일군이 또다시 공동묘지로 보내졌다.
저격수들은 28시간 동안 오직 두 차례의 ‘동시 사격’만을 해야 했던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이날은 아군의 피해 없이 한 장소에서 5명의 독일군을 사살할 수 있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전투는 독일군 스나이퍼에게 특히 유리했다. 내륙의 전원지대와 주변을 둘러싼 관목 숲은 좋은 은폐 장소와 대피처를 제공했다.
이곳에서 방어전의 이점을 가진 독일군 저격수들은 매우 효과적으로 표적을 쏘았다. 영국과 미국 병사들에게는 저격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고 그 공포심 때문에 대부분의 소총화력이 무기력해졌다.미군의 종군기자인 어니 파일(Ernie Pyle)은 노르망디의 위기상황을 이렇게 본국으로 송신했다.
“독일군 저격수들이 도처에 있다. 나무와 건물 그리고 수많은 잔해와 잡풀 속에 저격수들이 숨어 총을 쏘고 있다. 모든 소로나 관목지대·울타리 등에도 그들이 있다.” 영국군 저격수 쇼어 대위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어떻게 사격이 이루어지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 부대원들에게 실험을 실시한 결과, 저격수나 소총수는 박격포·포병사격·기관총 등의 집중사격을 받으면 큰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군 저격수들은 적은 수임에도 불구하고 소총만으로도 그러한 혼란과 두려움을 초래했고, 이는 목격자들의 증언에서도 나타났다. “독일군 스나이퍼들이 진지를 기어 오르고 증원부대가 뒤따라온다. 치열한 사격전이 전방 진지에서 일어났다.저격수는 어느 곳이나 숨어 있다. 그들이 선택하는 먹이들! 장교들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모든 특징적인 마크를 가리고 권총 대신 부하들처럼 소총을 들고 다닌다. 지도나 쌍안경을 멀리하고 어깨의 계급장 표지는 눈에 안 띄게 소매에 붙이고 있다. ”
부하들 앞에서 군대의 상징인 자신의 계급장 표지를 숨기는 비겁한 장교와 부사관의 태도는 적어도 연합군 지휘관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 그러나 저격수 쇼어는 노르망디 상륙시 부사관들의 계급장과 장교들의 넥타이를 가리도록 당부했다. 적어도 저격수의 세계에서는 우선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만 지휘관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부사관들에게는 즉시 계급장을 드러낼 것을 명령했고, 장교들은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하며, 부하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만약 죽더라도 명예로운 장교의 길을 택하라고 강조했다.
연합군 스나이퍼의 저격술
각자 사거리 설정 동시 사격으로 독일군 제압
2008. 07. 01   00:00 입력 | 2013. 01. 05   03:55 수정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류작전에 성공하자 영국군 저격수들은 좋은 독일군 표적을 찾을 수 있었다.연합군에게 이른바 “마의 삼각지대”로 알려진 깡(Caen) 부근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대대는 정확한 적의 박격포 사격 때문에 큰 곤경에 빠져 있었다. 이 포격은 독일군 정찰병 한 명이 약 300m 떨어진 반대편 숲 속에 숨어서 유도하는 포격이었다.
스코틀랜드 대대의 저격수는 복수를 하기 위해 부서진 독일군 장갑차를 저격 진지로 삼아 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격수들은 두 개팀으로 교대제로 진지에 투입됐다.그들은 정오에 교대를 한 후 마침내 독일군 정찰병을 발견했다. 그 독일군은 나무처럼 매우 정교하게 위장을 하고 서 있었지만 담배를 피우는 가장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전장에서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은 저격수의 전과기록만 올려줄 뿐이었다. 4명의 영국군 저격수들은 즉시 독일군 표적의 사거리에 대해 짧은 토의를 벌였다. 하지만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자 표적이 쉽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명은 사거리를 250~300m 사이라고 계산했고, 다른 두 명은 350m에 더 가깝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견 충돌은 기발하게도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됐다. 즉, 각자가 원하는 거리를 쏘는 것. 3명의 저격수가 각각 조준경을 250·300·350으로 맞췄고, 나머지 저격수는 예상 목표물을 향해 쌍안경을 고정시켰다. “탕!” 세 명의 스나이퍼가 동시에 사격을 가하자, 그중 어느 한 발에 명중된 독일 병사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것은 그야말로 실수가 없는 “막고 푼다”는 식의 완벽한 장거리 저격술이었다.
연합군 진지에서 가장 좌측에 배치된 영국특공대 부사관인 스피어먼 (Spearman)은 동료 특공대원들과 함께 작전개시로부터 무려 83일 동안 적의 활동을 탐지했다. 저격뿐만 아니라 적 진지 정찰임무를 띤 그는 단독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의지력과 독립심을 가졌고,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사나이였다.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는 먼 거리에서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고 독일군의 사격을 유도함으로써, 위치를 찾아내는 다소 위험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노련한 행동파 스피어먼은 보다 근거리에서 적을 쏘기 위해 관목지대를 침투해 살금살금 기어 다니며 독일군을 관찰했다. 이 무렵 미국군은 동맹국인 영국군보다 저격술에 대한 준비가 다소 미흡했다.

과거 유럽전선에서 적의 저격술 때문에 고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고위 사령부는 체계적인 저격술을 강조하지 않았다.미국의 민간에서 널리 알려진 수준 높은 사격술이 그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지만 군대에서는 체계적인 훈련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미 육군은 여전히 신뢰성 있는 0.30인치 스프링필드 소총을 대량으로 사용했고, 일부 저격수들은 품질이 개량된 스프링필드 M1903A4 베리안트 (Variant) 소총을 갖추고 있었다.
3배율 미만의 레드필드(Redfield)와 위버(Weaver) 조준경을 장착한 스프링필드는 비록 전장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강도가 부족했지만 대체로 저격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당시 미 육군의 대부분은 반자동식 0.30인치 개런드(Garand) M1 소총으로 무장했다. 그중에는 저격수용으로 M1C와 M1D 두 가지 소총이 제작됐는데, 이 총들의 주요 차이는 조준경 부착방식이었다.

개런드 소총은 후일 미군의 지원으로 한국군의 기본화기로 편제됐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초기에 사용했다. 유명한 개런드 M1 소총은 망원 조준경이 장착되기 때문에 가죽 받침대가 개머리판에 고정됐고 이것은 저격수의 조준을 편하게 해 주면서 긴장 완화와 개머리판 접촉을 도와줬다.

그리고 탄약 크립을 총 몸통 속에 삽입해 반자동 사격을 할 수 있고, 깔때기 모양의 차광 장치도 총구에 부착됐다.이러한 신형무기를 갖고 미 제41기갑보병 연대 하인즈(S. Hinds) 대령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성공적으로 저격수를 양성했다. 미군들은 아프리카 튀니지에 도착한 후 5주간의 저격수 과정을 통해 수 개의 저격팀을 육성했고, 이들은 독일군과 효과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연합군은 독일군 저격수의 위협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했다. 동부전선의 드넓은 평야, 이탈리아의 산악지대, 또 노르망디의 관목지대나 아프리카의 사막 등 세계대전의 전장에서는 어디서든지 저격수들의 숨막히는 대결이 벌어졌다. 때때로 연합군 병사들은 독일군 스나이퍼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리며 공포심과 존경심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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