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중국 이야기

[스크랩] 오대 십국 시대 초반부의 주인공, 후당 장종 이존욱(1)

구름위 2012. 10. 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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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욱(李存勗)은 오대 십국 시대 후량의 건국자(885년 - 926년, 재위기간은 909년 - 926년)로 묘호는 장종(莊宗)이며 시호는 광성신민효황제(光聖神閔孝皇帝)이다. 후량을 멸망시켜 위세를 떨쳤으나 즉위 후에 실책을 반복, 근위병들에 의해서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존욱의 아버지는 이극용으로, 이극용은 본래 사타족 출신인데 사타족은 서돌궐의 한 파이며 6세기 말 이래 알려진 터키계 유목민의 부족 이름이다. 이들은 천산산맥, 즉 톈산산맥의 동부에 있던 민족들로 대체로 이 부근은 토번과 당이 계속 영향력을 겨루던 곳이라고 한다. 사타족은 토번이 강성해지면 그쪽의 영향력을 받다가, 당나라가 강성해지면 당의 간접 지배를 받게되었고, 그러다가 당나라 헌종때 당에 예속되었다. 

 

 

당시에 투항하였던 이들을 이끌던 대장은 주사집의(朱邪执宜)라는 인물이었다.(사타족을 주사(朱邪)족이라고도 하는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당나라는 이들에게 서북 언저리인 음산부의 병마사를 맡겨 국경을 지키게 했다. 당나라 말기에 이르면 여러가지 큰 변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가장 유명한건 물론 당나라를 실질적으로 망조에 들게한 안사의 난이고, 사형 선고를 내린 황소의 난 또한 유명하다. 그 중간에 있는 반란이 방훈의 난이었는데, 허나 중간에 끼어있다고는 하지만 반란의 규모는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주사집의의 아들은 주사적심(사타적심?)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 반란을 많은 공을 세워 당나라의 국성인 이씨성을 받게 되고, 이국창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다. 바로 이 이국창의 아들이 진왕 이극용이다.

 

이극용은 무예에 뛰어나고 용맹하였는데, 한쪽 눈이 작아(혹은 애꾸라) 독안룡이라고 불렀다.

사타 부병마사(副兵馬使)가 된 이극용은 대동(大同)방어사 단문초(段文楚)와 분쟁이 생겨 그를 살해했고, 다시 하동절도사 강전규(康傳圭)을 살해하고 태원을 점령했다. 사실상 반란이었기에 당나라 군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섰고, 패배한 이극용은 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말 그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했던 당 조정은 환관 양복광의 책략으로 이극용의 죄를 없애주고 대신에 황소군 토벌의 임무를 맡겼다. 이극용은 아군이라 불린 병사들에게 검은옷을 입혀 막강한 정예 기병을 이끌고 출진하였는데, 과연 싸움에 능한 명장이라 883년 풍익현 양전피에서 15만의 대군을 대파하였다. 결국 황소는 장안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곧 자살하고 말았다. 


 

반란을 제압한 최대의 공신으로 꼽힌 인물들은 후량의 건국자 주온(주전충), 이극용, 후에 기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 이무정 등이었는데 이극용은 주온을 무시했다. 분노한 주온은 이극용을 공격하게 되어 둘은 끊임없이 대립하게 되었다. 주온은 이후 당나라에 의해서 주전충으로 이름을 바꾸고, 당나라 조정을 장악하고 재상인 최윤을 죽였으며 수많은 조정 대신들을 학살하며 조정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 후에,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황제가 되니 이걸 후량이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후량에 찬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찬동하는 세력이라 해도 주전충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주기는 어려웠기에 세상은 여러 절도사들이 국가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체제를 갖추어 난립하는 군웅할거의 형태가 되었다.
 
 
하남 산동의 주전충의 후량

태원을 중심으로한 산서의 진왕 이극용

섬서 이무정 - 후에 기를 건국하고 충경왕이 됨

하북의 절도사 유인공

사천의 왕건 - 후에 10국 중 하나인 전촉을 건국.

강소 안휘의 양행밀 - 당나라에 의해 오왕에 오르고 10국중 하나인 오를, 건국. 주전충을 격파하여 10국 시대의 서막을 염.

절강성의 전류 - 10국중 하나인 오월을 건국

복건의 왕심지 - 낙후된 지역이었던 복건을 개발하여, 10국중 하나인 "민"을 건국
 
번외 : 야율아보기 - 거란을 통합하고 머리를 남쪽으로 내미려고 슬슬 기회를 봄
 
물론 주전충에 반대하는 가장 큰 세력은 이극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극용은 거란의 야율아보기와 손을 잡으려고도 하였다. 둘은 죽이 잘 맞는지, 서로 만나서 호형호제하며 술을 마시고 놀며 "겨울에 후량을 박살내붑시다" "그랴" 하고 의견을 모았지만 열흘이 지나 금과 비단을 받고 돌아간  야율아보기는 돌아가자마자 뒤통수를 치며 후량에게 귀부하고 말았다.
 
 
사실 이극용의 부하들은 이미 이극용에게 "지금 이 기회에 야율아보기를 사로잡고 협박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넌지시 책략을 내었지만 이극용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다고 하여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실망감은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야율아보기와의 협정도 생각되로 되지 않고, 후량군은 여전히 껄끄러운데다 이극용의 마음을 걱정스럽게 하는건 또 있었는데, 바로 하북의 유인공, 유수광 부자의 일이었다. 유인공은  하북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유수광은 아버지의 애첩을 건드렸다가 들통나자 유인공을 잡아 가두고 자기가 절도사직을 대신 하였다. 그리고 후량에 가까이 들어붙었다.
 
 
이때 이극용은 머리에 종기가 나고 자기가 어렵다는걸 깨닫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감군 장승업, 동생 이극녕 등에게 아들인 이존욱을 후사로 삼게 하라고 하고, 부디 잘 도와주라고 말하고 죽었다. 자치통감에는 나오지 않고 송나라 사람 왕우칭(王禹偁)이 쓴 오대사궐문(五代史闕文)에는 이극용의 유언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는 화살을 세개로 가져오더니 아들 이존욱을 불러 그 손에 화살을 하나 쥐어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유인공 부자의 몫이다. 이들은 나를 배신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화살을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거란의 야율아보기의 몫이다. 그는 나와의 맹약을 무시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화살을 넘겨주면서 이극용은 말했다.

"주량(주전충)은 나에게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3개의 화살 중 첫 번째는 유인공에게, 두 번째는 거란에게, 세 번째는 주전충을 멸망시킬 때 각각 사용하거라. 이것이 내가 희망하는 소원이다."

이때 나이는 이극용은 예순세 살, 이존욱은 스물 네 살이었다고 한다. 이때가 908년이었다.
 
 
애시당초 이극용의 세력이 만들어진 것에는 이극용 본인의 카리스마와 능력이 큰 힘을 발휘한만큼, 이극용의 사망은 큰 위기임과 동시에 후계자가 되는 이존욱에게는 몹시 부담이 갈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거기다 후량의 대군은 이극용이 죽었을 당시 노주(지금의 산서성 장치시라고 한다)를 포위하고 있었다. 당시 군대안에서는 이존욱의 나이가 어린 탓에 모략을 꾸미는 사람들이 적지가 않았다.
 
그 중 가장 위협이 가는것은 이극녕이었다. 그는 이극용의 동생으로 오랜 시간 형과 함께 싸우며 병권을 손에 쥐고 있었고, 본래 이민족의 풍습으로는 동생의 형의 자리를 대신하는게 이상한것도 아니었다. 이에 이존욱은 두려워하며 이극녕에게 자리를 넘겨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극녕은 거절하며 말했다.

"너는 총사(冢嗣)다. 거기다 돌아가신 왕이자 형님의 명령을 누가 감히 어기겠느냐?"

그 후 이존욱은 슬퍼하며 곡을 하기만 하면서 나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이에 장승업이 이존욱을 부축하면서 억지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최대의 효도는 기업을 실추시키지 않는것인데, 더 울어 무엇한단 말입니까?"

그리하여 이존욱은 지위를 계승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존욱의 지위는 하동 절도사 겸 진왕(晋王)이었다.
 
 
이극용은 본래 능력 있고 뜻 있는 사람들을 마치 자기 친아들 처럼 대하였는데, 이 양아들들은 이존욱의 나이가 어려 그를 업신여겼고 불만을 품었으며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심지어 만나고도 절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목한 사람은 이극용의 동생 이극녕이었다. 특히 양자 중에 한명인 이존호는 계속해서 이극녕을 부채질 했다.

"본래 형이 죽으면 동생이 이어받는 것은 옛날부터 있던 법입니다. 숙부가 되어 조카에게 절을 한다니요, 어찌 그런 이치가 있단 말입니까? 하늘이 주는데도 가지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되돌리지 못합니다."

이극녕은 반발하면서 목을 베겠다고 위협까지 했지만 이존호의 부채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존호는 방법을 바꿔 자신과 같은 양자들의 처를 이극녕의 부인 맹씨에게 보내 맹씨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맹씨는 본래 사나운 여인이었는데 욕심도 나고, 또 이런 모의를 했다는게 알려지면 화를 당할까 두려워 이극녕을 들들 볶아대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이극녕은 본래 장승업과 이존장등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둘은 모두 이존욱의 측근이었는데, 이존호는 진왕 이존욱이 자신의 집을 비운틈을 타 장승업과 이존장을 죽이고 이극녕을 절도사로 삼으려고 했다. 심지어, 이 부분을 다룬 자치통감에 따르면 모든 영토를 통째로 후량에 넘기고 이존욱을 후량의 수도 대량으로 잡아가려고 까지 했다고 한다.
 
 
헌데 태원 사람 사경용은 우연히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경용은 본래 이극용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몸이라 이 모든 사실을 이존욱과 이극용의 부인이 되는 태부인에게 알려주었다. 그 둘은 깜짝 놀라 장승업을 소환해서 말했다.

"돌아가신 왕 ─ 물론 이극용을 말함이다 ─ 께서는 이 아이의 일을 공들에게 맡겼습니다. 만약 밖에서 이간질하는 말을 듣고 우리 모자를 저버리려고 하신다면, 다만 우리가 살 땅만을 남겨주시고 대량으로 보내지만 마십시오. 다른것으로 공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승업은 깜짝 놀라 영문을 물었다. 이존욱은 사정을 알려주며 친족끼리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이 물러나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장승업이 분기탱천해서 말했다.

"이극녕이 대왕의 모자를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집어넣으려는데, 그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어찌 온전하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존장 등을 불러모아 이극녕을 잡아넣을 계략을 꾸몄다. 장승업은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아 성대한 연회를 펼치다가, 때가 되자 갑자기 매복시킨 병사들을 보내 이극녕과 이존호를 붙잡았다. 이존욱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가 일전에 모든 권한을 숙부에게 넘기려 하였을때 숙부는 거절하셨습니다. 헌데 어찌 저와 어머니를 원수로 남기려고 하셨나이까?"

이극녕은 할말이 없어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이 모두가 참소하는 사람들과 꾸민 일이니, 내가 무슨 말을 다시 하겠는가?"

이극녕과 이존호는 이날에 처형되었고, 이는 이존욱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때 후량의 군대는 협채라는 요새를 짓고, 노주를 계속 공격하고 있었다. 노주를 지키고 있는 장군은 이사소였는데 이사소는 근성있게 버티고 있었지만 양식이 떨어지고 있었고, 병사들은 불안해 했다. 이에 이사소는 허장성세를 보이기 위해 성벽 위에서 장수들과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다 적군에게 화살을 맞았는데,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처리하여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주전충은 계속해서 이사소에게 사람을 보내 항복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이사소는 전령을 베는것으로 화답했을 뿐이었다.

이때 쯤 이극용이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주전충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때 이존욱은 부하들을 소집해서 말했다.

"우리가 노주를 잃어버리면 하동 울타리를 잃어버리는 것인디, 어찌 되겠어. 망하겄제? 그란디 저놈들 지금 우리 아버지 죽었다고 안심하고 있응께, 지금 공격하면 걍 이겨부러. 천하를 얻은 것이 다 뭐여, 이번 한번에 다 달려있다고!"
 
이 계획에 장승업 등도 동의를 하였다. 이존욱은 야율아보기와 이무정등에게 호응하라고 권하였고, 본인 스스로는 주덕위등을 대장으로 삼아 정예의 군대를 끌고 진군 했다. 군대가 출발한것이 908년의 4월 24일이었는데, 5월의 초하루에 이존욱은 협채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때는 아직 아침이었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존욱의 대군이 벼락같이 공격하자 자고있던 후량의 병사들은 놀라 당황하기 일쑤였다.

이존욱은 명장 주덕위를 서쪽으로 공격해가게하고, 훗날 후당 명종이 되는 이사원을 동쪽으로 공격해가게 했다. 그리고 크게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적을 공격하였는데, 무려 1만이나 되는 적이 제대로 싸움한번 못해보고 죽어버렸다. 협채를 무너뜨린 장군 주덕위는 곧바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노주로 달려가 이사소에게 소리쳤다.
 
"선왕은 돌아가셨고 지금의 왕께서 협채를 무너뜨렸소. 그대는 속히 문을 여시오!"

이사소는 애시당초 이극용이 죽었다는것도 믿지 않았기에 이 말을 듣지 않고 버텨댔다.

"이 말도 안되는 소리는 그대가 싸우가 포로가 되어, 이제 나를 기만하고자 함이 아닌가?"

그리고 주덕위에게 화살을 쏘려고 하다가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자 그만두었다. 이사소는 일이 이렇게 되자 반신반의하며 주덕위에게 요구했다.

"왕께서 오셨다면, 지금 뵐수도 있겠지?"

주덕위는 이존욱을 데려왔다. 이존욱은 그때 흰색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극용을 애도한다는 뜻이었다. 이사소는 그 모습을 보고 미친듯이 울면서 기절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도 통곡하면서 문을 열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주전충은 몹시 놀라고 두려워서 탄식하였다.

"이극용은 죽었으나 이아자(이존욱의 아명)같은 아들이 있으니 죽었다고 할 수가 없구나. 아들을 낳으면 마땅히 아아자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개, 돼지와 같을 뿐이니....."
 
협채의 대승 이후로 진군은 파죽지세로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이제 하북성의 백향현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적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존욱은 여유 만만했다.

"저 놈들 시끄럽기만 한데 우리 군사들은 딱 군율이 있으니까 무조건 이김."

그리고 상황을 보다가, 후량군이 배고파서 밥먹으러 돌아가려고 할때 주덕위 등이 "저들이 달아난다!" 고 외치자 전군을 동원해 공격하자 적은 그야말로 대패하여 참수된 병사만 2만이 넘었다. 이제는 확실히 대세가 바뀌게 된것인가?
 
 
일전에 이존욱은 유언으로 하북의 유인공 부자를 처리해줄것을 원했다. 유인공의 아들 유수광은 아버지를 가두고 스스로 절도사가 되어 형을 잡아다 죽였으며, 온갖 해악과 악행을 멈추지를 않았다. 이런 인물들이 항상 그렇듯 욕심은 터무니없이 커서 느닷없이 크기만 했다.
 
 
형을 죽였다는것은, 유수광이 아버지를 잡아 가두게 되자 형인 유수문이 분노해서 군사를 일으켜 싸우게 된 것을 말함이다. 유수문은 유수광을 패배시켜 거의 죽게 직전까지 만들지만, 마지막에 마음이 흔들려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나의 동생을 죽이지 말아라."

이때 기회를 엿보던 유수광의 부하 장수 원행음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유수문을 사로잡고 만다(-_-)

아버지를 잡아 가두고, 노룡과 의창의 절도사가 되고, 다시 겸중서령에 연왕이 된 유수광은 이제 기고만장해져서 매번 스스로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유수광은 더욱더 욕심을 부려 황제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신하들은 전부 좋지 않다고 반대했지만 그는 좋아하지 않고 황제 자리에 오르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우리는 대체로 이러한 것을 사망 플래그라고 부른다.

"우리의 땅은 사방 2천리이고 대갑(帶甲)이 30만이며 곧바로 하북의 천자가 될 수 있는데 누가 나를 감히 막는단 말이냐?"
 
그리고 특유의 음란함과 포악이 드러나서 사람들을 못살게 했는데, 항상 철쇄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의 얼굴에 새기고 벌을 주었다. 그리고는 이존욱을 자극하기 위해 이런 사신을 보냈다.

"듣자하니 진왕(이존욱)이 여러진들과 연합해 후량의 군사를 쳐부셨다는데, 나 역시 기병이 3만이 있으니 공들을 위하여 길을 열겠소. 다만 네개나 되는 진이 연합한다면 맹주가 있었야 할텐데 어찌하겠습니까?"
 
이존욱은 이 말을 듣고 비웃을 뿐이었지만 유수광은 더욱더 건방져져 이제는 스스로 당나라의 황제가 입던 자포를 입고 신하들에게 황제가 되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신하들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반대하였지만 그는 불쾌하게 성을 낼뿐이었다. 대신 유수광은 여러 절도사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자신을 상부, 즉 아버지 뻘로 모시라는 명령을 내렸다. 절도사들은 어이가 없어했고, 이존욱의 관할하에 있는 절도사들은 이 일을 이존욱에게 전했다. 이존욱은 화를 내면서도 계책을 꾸몄다.

"이 자가 악행이 지극함으로 마땅히 멸족시켜야 겠지만, 일단은 방심하게 내버려 두는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섯명의 절도사들은 유수광을 상부로 삼았는데, 유수광은 사정은 모르고 그저 절도사들이 자신을 두려워해서 그런줄 알고 이존욱의 계책대로 더욱더 오만이 극에 달했다. 그리하여 기어코 황제가 되는 의식을 거행하려고 하자, 신하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유수광은 아예 옆에 도끼를 가져와서 들며 신하들을 협박하기 까지 한다. 이 남자, 막장이다.

"감히 간하는 자는 벨 것이다!"

유수광의 부하중에 손학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손학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어찌 칭제를 할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유수광은 화가 나서 손학을 눕혀서 마디마디 베어죽이며, 군사들에게 그를 씹어먹게 했다. 손학은 죽어가면서 "100일이 지나면 대군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또, 유주참군이었던 인물 풍도는 반대를 하다 옥에 갇히게 되었다.

911년 8월 13일, 드디어 유수광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국호를 대연이라고 하였다. 또한 연호를 응천이라고 바꾸었고, 수하들을 어사대부니, 좌상이니 하고 삼으니 연나라 사람들은 놀라서 당황하여 혼란해했다.
 
이 소식을 한참 기세가 오른 이존욱이 듣지 못했을리가 없었다. 이존욱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웃긴 일이 없다는듯 한참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아, 저들이 햇수로 점치는것을 기다렸다가, 내 마땅히 그 점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볼 것이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정복하고 나라의 운명이 몇년이나 갈지를 점친것을 빗댄 말로, 과연 얼마나 저 황제 노릇이 갈지 지켜보겠다는 뜻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자 이존욱의 수하 장승업도 한술 더떠 아예 사신을 파견해 치하하자는 의견을 내었다. 적을 교만케 하자는 것이었는데, 이존욱은 이를 받아들인다.
 
황제가 된 유수광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용성을 공격했다. 의무절도사인 왕처직은 이존욱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존욱은 수하의 명장 주덕위에게 3만의 군사를 주어 왕처직을 도와주게 했다. 주덕위는 왕처직을 구원함은 물론, 연나라 땅인 탁주를 포위하여 항복시키는 공을 세운다.

그러자 겁을 먹은 유수광은 영토내의 모든 장정들을 소집해 얼굴에 글자를 새겨 병사로 삼는가 하면, 후량에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주전충은 스스로 50만의 대군이라 일컫으며 이존욱을 물리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때 후량은 국지전에서 계속해서 패배하고 있었고, 주전충은 극도로 민감해져 사람을 마구 죽여 부하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는 6군을 통솔하며 이존욱을 물리치려고 했는데, 밤중에 땔나무를 하던 사람들이 공포이 질려 돌와아서 소리쳤다.

"진왕이 온다! 대규모로 도착하였다."

그 말을 들은 주전충은 모골이 송연해져 군영을 불태우고 밤중에 도망가다 길까지 잃게 되었고, 도중에 밭갈이하던 농부들이 괭이와 몽둥이를 들고 쫒아오자 도망가는 통에 군수물자와 병기를 전부 잃어버리기 까지 하였다. 뒤늦게 알고보니 이존욱의 부대는 본대가 아닌 선봉대에 불과했는데 그걸 보고 겁에 질려 도망쳤던 것이고, 이 사실을 깨달은 주전충은 너무나 부끄러워 건강이 악화되고 말았다.

한편 그때 이존욱은 다른 방면으로는 주덕위와 이사원을 파견해 유수광을 지근지근 밞아주고 있었다. 믿고 있던 후량이 개털리자 유수광은 발악으로 거란을 끌어들이려 한연위를 파견하지만, 야율아보기는 한연위를 오히려 자기 부하로 만들어버렸다 -_-
 
 
사정은 이렇다. 사실 유인공 - 유수광 부자는 항상 거란을 괴롭히고 있었기에 거란의 입장에서는 전혀 도와줄 마음이 없었다. 한연위를 본 야율아보기는 그가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넌 똥이나 치우는 기계일 뿐이지." 라는 식으로 잡아다 말을 목욕시키고 말똥이나 치우게 하는 역할을 맡겼다.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한연위는 별수없이 그렇게 했는데, 야율아보기의 부인은 이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한연위가 절개를 지키는것은 덕행이 있는 일인데, 어찌 그런 사람을 능욕하십니까?"
 
"그, 그런가?"
 
이치를 깨달은 야율아보기는 한연위를 모사로 삼았는데, 한족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그의 조언이 지대했다고 한다. 워낙 하북지역을 난폭하게 통치한결과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더욱 북쪽으로 도망갔고, 바로 그곳이 거란이었다. 거란사람들은 몰려드는 한인들때문에 골머리를 썻는데 이들을 추방할지, 아니면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했다. 야율아보기는 이 한인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한연위 같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조언을 얻어 거란을 빠르게 발전시켰다고 한다.
 
 한족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거란인의 오른팔이 되는게 영 껄끄러웠던 한연위는 그 후에 줄행랑을 치게 되는데, 그때는 이존욱이 후당을 세운 뒤였다. 주위 사람들의 비난때문에 이존욱은 한연위를 의심하게 되고, 한연위는 다시 거란으로 도망쳤다. 그때 야율아보기는 그저 한연위에게 다른것은 묻지 않고 "어디 갔다 왔능가?" 라고만 물었고, "어머니 좀 뵙고 왔다." 고 대답하자 두말하지 않고 한연위를 재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유수광은 이제 모든 희망을 잃고 사신을 주덕위에게 파견하여 화친을 구걸했는데, 사신의 목소리가 매우 애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덕위는 냉랭하게 말하였다.

"대연 황제(유수광)은 어찌 암컷같이 납작 엎드리는가? 나는 명령을 받아서 죄인을 토벌하려 왔을 뿐이고 동맹을 맺는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유수광은 정말 공포에 질려 몇번을 사신을 파견해 애원하였고 주덕위는 못이기는 척 이존욱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이존욱은 그 말을 듣고 스스로 유주로 떠났고, 홀로 성 아래에 도착해 여유있게 유수광에게 말했다.

"나는 본래 공과 더불어 당조를 부활시키고자 하였으나, 공은 저 주전충이 한 짓을 따라하였소(황제를 참칭한것). 장부의 성패란 본래 모름지기 향하는 대로 될뿐이니 공은 어찌하겠소이까?"
 
그러더니 유수광은 도망가버렸고, 이존욱은 유주에 입성하여 갇혀있었던 유인공을 잡았다

유수광은 멀리 도망치다가 발이 동상이 걸리고 길을 잃어 자신의 부인에게 밥을 구걸하게 하다가 잡혀서 이존욱의 앞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이존욱은 연회를 즐기고 있던 중에 유수광을 보자 비웃었다.

"어찌 주인께서 손님을 피하여 먼 곳에 갔던 것이오?"
 
유인공은 유수광을 보더니 얼굴에 침을 뱇고 노해서 소리쳤다.

"이 역적 놈아!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되었다!"

유수광은 이제 형틀에 묶여 사형을 당하게 되자 이존욱에게 빌면서 자비를 구걸하였다.

"나 유수광은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오. 왕께서 패업을 이루려고 하신다면 나를 남겨두는것이 좋지 않겠소?"

이 모습을 보고 유수광의 부인은 욕설을 퍼붓고 자신 먼저 죽었고, 유수광은 온갖 비명과 울부짖음 끝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때 쯤엔 이르러서는 대세는 이존욱에게 가 있던 형편이었다. 그도 그럴만 한것이, 908년의 노주 구원전투와 911년 백향전투에서 이존욱의 능수능란한 용병술에 후량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 후로 이존욱은 장군 주덕위와 이사원을 파견, 하북을 공격해 스스로 황제라고 말하던 유수광을 잡아 없앰으로서 그 영토를 병합, 막강한 세를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면 후량군은 국지전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패배와 굴욕에 후량의 황제 주전충은 사람을 마구 죽였는데, 그래도 개국군주인 주전충이 살아있었다면 큰 기둥이 버티고 있는 셈이지만 이 무렵에는 주전충은 이미 죽고 없었다. 살해자는 다름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그 당시의 유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존욱의 아버지 이극용과 주전충 모두 많은 양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덕분에 그 세력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치열한 후계 다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주전충의 큰 아들은 일찍 죽었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든 것은 주우문이라는 양아들이었다. 주전충과 주우문의 며느리와는 서로 간통하는 엄청난 사이였지만, 주전충이 주우문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은 꼭 그때문은 아니었다. 주우문은 내정의 방면에서 나름대로 재능을 보였던 것이다.

 

 

주전충은 보통 무도하고 방자한 어리석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난세에 패권을 차지했던 인물인만큼 본래부터 어리석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무식하고 난폭했고, 귀족들을 미워했지만 약하고 불쌍한 농민들은 동정했다. 귀족사회의 정점을 완성했던 당나라의 황제, 귀족, 환관을 모조리 죽여버린 사람이 농민 반란군 출신 주전충이라는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귀족 사회는 붕괴되고, 오대 십국의 혼란기를 걸쳐 당손 변혁이 일어나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주전충의 부인은 원정장후황후 였는데, 사람됨이 지혜롭고 단정하다고 이름이 났다. 주전충도 그 부인이 살아있었을때는 얌전히 공처가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부인이 죽자 갑자기 사치와 방종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양아들들의 며느리와 간통 놀이도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존욱에게 수차례 패배하고 난 후에는 잔혹함마저 추가되었다.

 

 "이거 아닌것 같은데..."

 

 이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친아들이었던 주우규다. 물론 주전충의 난폭한 행실에 불만을 가졌다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후계자가 되지 못한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이다. 주우규는 친아들이긴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름도 남지 않은 창기였는데 일찍이 주전충이 박주 관영을 지날무렵 한번 관계를 가졌던 박주 관영의 창기였다. 주전충은 별 생각없이 그곳을 떠났지만 그 창기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원장장후 황후는 그녀를 돌봐 주었고, 창기는 아들을 낳게 되어 그 사실은 안 주전충이 크게 기뻐하였다. 중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역사의 수많은 황제중에 군기의 아들은 주우규가 유일하다고 한다.

 

 헌데 그렇게 기뻐한것과는 달리, 주우규는 별로 영특하지는 못했나 보다. 주우규는 예전부터 과실이 있었던 몸이라, 대노한 주전충에게 직접 매를 맞은 일까지 있었다. 실상을 살펴보면 주우규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궁궐에 있는 주우규의 부인 장씨는 주전충의 시중을 보는(주전충은 특이한것이 친며느리는 안 건드리고 양아들의 며느리만 건드렸다.) 관계로 이러한 상황 - 주우문를 후계자로 만드는 - 을 재빨리 파악해서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불안감에 부인과 같이 울면서 어쩔줄 모르던 주우규에게 옆 사람이 재빨리 유세를 올렸다.

 

 "님 이번 때를 놓치면 죽어버리는데 왜 안 움직임? 지금 사태가 몹시 급함."

 

 마침내 주우규를 수도에서 쫒아내어 내주(산동성에 있다고 한다) 자사로 삼겠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좌천?"

 

 이제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주우문이 후계자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정식 칙서만 떨어지지 않았을 뿐. 이 당시 후량 조정 분위기는 좌천 - 죽음이었기에 주우규는 더욱더 마음을 굳혔다.

 

 주우규가 먼저 한 일은 우선 여러 장수들을 포섭하는 일이었다. 이때쯤 난폭해진 주전충의 성미로 인해 많은 장수들이 작은 잘못으로도 죽는 일이 잦았다. 그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장수들은 주우규의 편에 붙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좌령호군 통군 한경이었다.

 

 "내가 병사 500명을 마련해볼테니까, 같이 일을 해치워 버립시다."

 

 궁궐에 들어가는것이 문제였는데, 어찌되었건 황제의 아들인 주우규가 같은 편이었기에 손쉬운 일이었다. 이들 병사는 시위친군과 섞여 궁궐에 잡임하여 밤이 되자 갑자기 나타나 주전충의 침실로 쳐들어갔다. 자다가 봉변을 당한 주전충은 놀라서 물었다.

 

 "누구냐? 반란을 이르킨 사람이 누구란 말이냐?"

 

 이에 대답한것이 주우규였다.

 

 "왕위를 계승중입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접니다."

 

 "오라, 네놈이군! 내 일찍부터 네가 도적놈이라는것을 알고 의심했지만 일찍 죽이지 못한것이 한스러울 뿐이구나. 하늘과 땅이 과연 네놈을 용납할 듯 싶으냐?"

 

 "도적은 늙은 도적인 당신이지!"

 

 주우규의 시종이었던 풍적악의 칼이 주전충의 복부에 찔러들어갔다. 일찍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황소의 반란군에서 공을 세우고 당나라에 귀순해 노회한 관리들을 계책으로 무너뜨리고 이극용의 검은 갈가마귀 군대를 싸움으로 물리쳤던 이 난세의 간웅은 이렇게 최후를 맞이 하고 말았다. 예순 한살의 나이었다.

 

 주전충의 가장 큰 공은, 적극적인 권농책을 실시한것에 있다. 그는 여러 전란으로 망가진 토지들을 개간 하는데 큰 힘을 쏟았고, 자주 사방을 순시하며 이를 살폈다. 그때문에 후량은 뛰어난 생산력을 갖추어서 여러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게 버틸 수 있었다. 또한 무인세력을 견제하고 문인관료층을 키우는데도 성과를 내었다. 주전충의 권농책에는 장전의라는 인물이 큰 도움을 주었는데,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주우규는 굳이 부하들에게 시키지 않고 자기 스스로 직접 주전충의 시체를 담요에 싸담았다. 그리고 침전에 묻어버리고는 자신의 아우인 균왕 주우정에게 주우문을 죽이라 명령하였다. 이때가 912년 6월의 2일이었다.

 

 3일이 되자, 하나의 조서가 내려오게 되었다. 내용인즉, 주우문이 반역을 시도했으나 효성스런 영왕 주우규가 이를 막았다. 하지만 놀란 황제는 몸이 몹시 상해 아무도 만날 수 없고 당분간 주우규에게 모든 권한을 맡긴다. 물론 죽은 사람이 조서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물론 잠시간의 일로, 5일이 되자 주우규는 정식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모반을 도운 한경은 두둑하게 한 밑천을 챙길 수 있었다.

 

 

 주전충이 죽게 된것은 수하 장수들을 지나치게 탄압해서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장수들이 주전충에 대해 역심을 품은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여전히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왕언장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장수들은 뻔하게 보이는 찬탈행위에 분노했지만, 결국은 주우규를 인정했다. 하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관리들 중에서도 주전충의 심복이었던 인물들은 이때부터 대부분 병에 걸렸다고 죽는 소리를 내며 정사에 전혀 참여하지를 않았다. 이를테면 병부상서였던 경상이 대표적이었다. 호국절도사 주우겸은 아예 진, 즉 이존욱에 귀부해버리고 말았다. 주우규는 한경을 파견해 주우겸을 치려고 했지만, 이존욱은 재빨리 지원군을 보내주었다.

 

 

그 지원군이란 다름 아닌 이존욱 본인이었다. 10월이 되서 도착한 이존욱은 단번에 한경의 포위를 무너뜨리고 1천여명의 병사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크게 감격한 주우겸은 직접 이존욱에게 찾아가 그를 외삼촌으로 삼고 밤새동안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즐겼다. 워낙 이런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이존욱이라 둘은 죽이 잘 맞았는데, 주우겸은 그날 밤을 이존욱의 장막에서 친구처럼 같이 잤다. 기록에는 친절하게 '코고는 소리가 자기 집에서 자는것처럼 들렸다' 고 까지 써져있다.

 

 

 본래 후량의 장수였던 인물이 이렇게까지 이존욱에게 마음을 놓고 있는것을 보면, 당시 후량군의 분위기는 보이는것이 있는듯도 싶다. 그걸 다잡아야 하는게 주우규의 일이었지만, 주우규는 오히려 물만난 고기처럼 음란한 행동만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샀다. 이 제장들의 떠난 마음을 잡아보려 주우규는 황금과 비단을 이용했으나 소용 없는 수작이었다. 이런 사람들 중엔 주전충의 사위였던 조암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조암은 주우규의 동생 주우정을 만나, 주우규를 죽일 것을 논의하면서 말했다.

 

 

 "일이 성공하려면 양령공, 바로 양사후 한명의 도움만 있으면 되오. 그의 한마디로 금군을 달랠 수 있다면 이 일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 양사후는 또 누구란 말인가?

 

 

 양사후는 본래 이극용의 부하였다. 하지만 반역죄를 지어 후량에 들어왔고, 수차례 싸움을 벌여 진의 명장 주덕위를 격파하는등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천웅 절도사 자리, 즉 위박진을 노리고 있었다. 위박진은 실로 전략 요지로. 영토는 6주 43현을 관할한다. 당시 위박진을 가지고 있는 절도사는 나소위라는 인물이었는데, 나소위의 아들 나주한은 어리고 병약한 인물이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일을 도모하지 못했던 것은 주전충이 두려워서 였는데, 때 마침 주전충이 죽어주는 것이다. 이 틈을 노려 위박을 평정한 양사후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주우규는 별 수없이 그를 인정해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양사후는 엄청난 기세와 힘을 가지고 주우규를 우습게 보았다. 이를 두려워한 주우규는 양사후를 제거하기 위해서 불러들였고, 모든 심복들은 당연히 반대를 했다.

 

 "가면 큰 일이 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양사후는 이렇게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제까짓것이 날 어쩌려고?"

 

 그리하여 양사후는 무려 1만명의 병력을 데리고 수도로 입성하니, 주우규는 놀라서 보검을 하사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그토록 양사후의 힘은 대단했다. 주우정이 이제 주우규를 치려고 한다면, 양사후만한 조력자도 없을 것이다. 이에 주우규의 심복이었던 마신교라는 인물이 위주로 달려갔다.

 

 "님이 이걸 성공하면 그 공이 얼마나 크겠음? 성공하는 날에는 엄청난 재물을 내려주겠음."

 

 양사후는 이걸 어찌 판단해야 싶어 제장들을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단은 반대하는 쪽이었다.

 

 "주유구가 반역했다 하나, 우리가 그를 즉시 토벌한것도 아니고 이제는 임금과 신하의 명분이 확정되었는데, 그를 도모하는것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수하들은 반대하여, 주우규를 토벌하라 권하였다.

 

 "주우규 그놈은 아버지를 죽인 쌍놈인데, 이제 이 거사를 도우면 의로운 일임. 의로움을 받드는데 왜 임금과 신하의 경계가 있겠음?"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주우규는 당시에 여러 군인들을 의심하여 마구 죽이고 있었는데, 당연히 군대에는 불만과 불안감이 가득했다. 주우정은 죽은 주전충의 얼굴을 그린 화상을 가지고 다니면서 군인들에게 보여주며 유세했다.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무려 30여년을 너희들고 함께 싸웠으나 시해당하였다. 이제 너희들이 어느곳에서 죽을지 누가 알겠느냐?"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 분기탱천해서 병장기를 잡고 명령을 기다렸다. 이렇게 밖에서는 양사후가 호응하고, 내부에서는 주우정의 측근 조암등이 합세하니 주우규가 당해낼 수 있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인 장씨와 아버지를 죽인 심복 풍정악을 데리고 궁궐의 담을 넘으려다가, 만사가 다 끝장남을 알고 포기했다. 풍정악은 그의 명령에 따라 먼저 장씨를 죽였고, 그 다음에는 주우규를 죽였으며, 최후에는 자결하였다. 무려 10만명의 병력이 수도에 입성하여 약탈하면서 주우규의 측근들을 몰살하였다. 그 난리통에 조암은 진시황의 전국 옥새, 측천무후가 이름을 바꾼 후부터는 바로 전국보를 가지고 주우정을 영접하였다. 이제 또 다시 황제가 바뀌게 된 것이다.

 

 주우정은 주우규처럼 음란하고 광폭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도 뒤집힌 대세를 바꿀 수단은 없었다. 주우정은 이존욱에 투항한 주우겸을 위로하였는데, 주우겸은 겉으로는 다시 후량에 복종하는 채 했지만 실상은 완전히 이존욱의 사람이 된지 오래였다.

 

 골치 아픈건 또 있었는데 바로 양사후였다. 양사후의 권력이 그토록 막강하여 황제를 바꿀 정도라면, 그 대상이 주우정 자신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처리 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저러나 양사후는 이존욱의 병사들과 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만 이때 이존욱은 유수광을 물리치고 하북을 병합하는데 여념이 없어 이 혼란을 제대로 활용해보진 못했다.

 

 914년에는 이존욱이 완전히 유수광을 물리쳤고, 후량에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915년 양사후가 나이들어 죽자 주우정은 겉으로는 몹시도 슬픈 채 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신이나 있었다.

 

 "이놈의 위박 번진은 당나라 심장부에 있는 좀벌레인데도 200년이나 감히 손도 대지 못하였는데, 양사후 그놈이 죽었으니 이제 기회다. 여섯 개주로 나누어 두개 진으로 만들어 권력을 약화시키리라!"

 

 이에 지략이 뛰어난 장군 유심과 왕언장등에게 장장 6만명의 군사들이 출동하여 위박의 번진을 압박하였다. 왕언장은 우선 5백의 기병을 데리고 번진에 들어가 감시하였다. 하지만 위주 번진은 이미 백년넘게 사실 상의 왕국 처럼 지냈는데, 이제와서 이런 명령을 듣겠는가? 선택할수 없는 수단이 하나밖에 없다면 몰라도, 그들을 받아줄 곳은 다른곳에도 많았다. 이를테면 이존욱이라던가.

 

 그날 저녁 군사들은 반란을 일으켜 불을 지르고 왕언장을 포위하였다. 왕언장은 양손에 철창을 들고 적진을 자기 집처럼 돌아다니는 맹장이라,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달아날 수 있었지만 병사들은 학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 무리를 이끄는 사람은 장언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주우정은 별 수 없이 그에게 자사 자리를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장언은 그건 당연하다는듯 받고, 또 다른 요구를 하였다.

 

 "지금 소덕군이 있는데, 이걸 폐지하고 상주, 전주, 위주를 회복해 예전의 강성한 천웅군처럼 해주쇼."

 

 주우정은 이것까지는 허락하기가 그랬는지 미적거리는 답변을 써서 보내었다. 조서를 받아본 장언은 화를 내며 이것을 찢어버리고 조정의 방향에 창을 들이밀며 욕을 하더니 편지를 써서 기어코 이존욱에게 항복해버렸다.

 

 이존욱이 뛸듯이 기뻐한것은 말 할 것 없는 일이다. 그는 장군 이존심에게 군대를 주어 그쪽으로 행군하게 했는데, 놀란 후량의 장군 유심은 근처에 주둔하여 적을 막으려고 했다. 이에 이존욱은 또다시 직접 나섰다.

 

 항복을 표시했던 대상이 가까이 오자 장언은 잘 보여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그들을 만난 이존욱은 태연하게 말했다.

 

 "너는 주군인 우두머리를 능멸했다. 또한 주군인 우두머리를 위협했다. 또한 백성들에게는 잔혹했다. 내가 이곳에 온 며칠 사이에 너를 원망하는 사람을 백명을 보았다. 나는 백성을 위할 뿐임으로, 네가 공로가 있다하나 지금 너를 죽여야겠다."

 

 그리고 순식간에 장언을 비롯한 7명의 우두머리를 베어죽였다. 나머지 오백명은 어찌해야 할지 당황하며 두려워했는데, 이존욱은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죄를 묻지 않겠다. 나머지에게는 물을 것이 없다. 모두 힘을 다하여 내 수호자가 되어라."

 

 일단은 그들은 모두 복종하는 체 했다. 다음날 이존욱이 무기를 가진 이들 앞에 가벼운 가죽 옷만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자 그제서야 안심한 병사들은 관대함에 고마워하며 크게 감복하게 되었다.

 

 

이존욱은 하북을 평정했고, 위박을 손에 넣었다. 기세를 타서 덕주를 공격하여 그곳의 자사를 쫒아내었고, 지금의 하남성 내황현 동남쪽에 있는 전주마저 함락시켰다. 후량군이라고 이걸 좌시할 순 없었는데, 장군 유심은 이존욱의 행로를 염탐하여 군사를 매복시키는 계책을 내었다.

 

이존욱은 평소에 자주 돌발적으로 움직이는것을 자주했다. 싸움을 좋아하고 자신도 있다보니 일국의 군주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나서는것을 자주해 주위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이때도 100여명의 기병만을 인솔하고 대담하게 유심의 군영을 살펴보려고 나섰던 것이었다.

 

이때 유심은 무려 5천여명의 병사들로 이존욱을 습격하였다. 그 군사들이 수십겹이나 되어 이존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였지만, 놀라지 않고 오히려 크게 소리지르며 적진을 단숨에 돌파하였다. 기병들이 움직이자 후량군은 바람앞의 갈대처럼 쓰러졌다. 이존욱의 기병들은 놀라운 싸움을 계속했는데, 게중에는 혼자서 백여명에 가까운 적을 물리친 용사도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자 이존심의 구원병이 도착하였다. 유심은 어쩔 수 없이 다잡은 이존욱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는데, 이존욱은 싸움으로 인해 초라해진 자신과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이것 참, 거의 비웃음 거리가 될 뻔하였군."

 

 "아닙니다. 대왕의 영웅적인 무용을 보이셨으니, 적은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이때 가장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이 혼자서 백여명을 물리친 대용사 하노기(하로기) 였다. 이존욱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를 몹시 신임하게 되어 이씨 성을 하사해 이소기라는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유심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진의 병사들은 이존욱을 구하기 위해 모두 나와있다. 병사들이 전부 위주에 있다면 진양은 비어있을 것이 아닌가? 유심은 그날로 군사를 움직였다.

 

 이존욱의 병사들은 유심의 군영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당황하였다. 이존욱은 유심이 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으로 바로 공격해들어가는 대신 정찰을 시켰는데, 결국 나온것은 풀을 묶어 사람처럼 한 모형들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모두 족쳐 이야기를 알아보니 유심은 진양으로 갔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존욱은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유심이 예전에도 기습으로 이긴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기습에는 능해도 결전에는 약한 장수가 바로 유심이야! 지금 많이 걸어갔다 해도 아직 턱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병을 파견하여 적을 뛰쫒게 했다. 때마침 하늘이 이존욱을 도와주려는지 무려 열흘간이나 엄청난 비가 내려 사방은 진흙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무리하게 행군하는 유심의 군사들은 병에 걸려 지쳐 쓰러지는 자가 태반이었다. 그 사이에 진의 장수인 이사은은 진양에 들어가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안풀린다.

 

 하지만 유심은 동요하는 병사들을 다독였다.

 

 "이제 집에서 이곳까지는 1천리가 넘는다. 사방이 적으로 가득찼다는 말이다. 앞뒤로 군사들이 있고 사방이 산과 골짜기인데 어디로 돌아가겠느냐? 다만 힘써 싸워서 임금과 어버이에게 보답하자."

 

 

 비장한 말에 병사들은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주덕위는 본래 황소의 반란군에 있던 사람인데, 이극용은 그와 싸운 후에 능력을 알아보고 장수로 삼았다. 그 후로 최고의 맹장으로 활약했는데 엄청난 무용을 가지고 있어 적장을 철퇴로 때려 사로잡은 일도 있었다. 하북의 유수광을 물리쳤을때도 주덕위와 이사원이 중심이었다. 그런 주덕위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군대를 이끌고 달려와 적병들을 사로잡고 팔을 잘라 보내면서 말하게 했다.

 

"주덕위가 도착했다!"

 

이에 후량군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될 정도로 공포에 질리고 만다. 유심은 싸우는것은 아예 포기하고 수비에 힘을 기울였다. 후에 유심은 황제인 주우정에게 사정을 설명했는데 다음과 같다.

 

"신은 기습병으로 적의 심장부를 찌르려고 하였으나, 하늘이 도와주질 않아 무려 비가 열흘간이나 내렸습니다. 적의 보급로를 끊어버리려고 했지만 주덕위가 갑자기 나타나 신을 막았사온데 그 모습이 실로 귀신과 같았습니다. 적의 군사 수는 매우 많고 모두가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니 진실로 강한 적들입니다."

 

 주우정은 적을 물리칠 책략을 물었지만 유심은 계책은 없고 우선 군량부터 지원해주라고 하였다. 주우정은 화가 나서 사자를 보내 싸움을 독려하게 했는데, 이 판국에 제대로 된 싸움이 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유심은 제장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주상께서는 어린 소년이시라 싸움을 잘 알지 못하시오. 지금 적은 강하고 싸운다 해도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해야 겠소?"

 

 제장들은 다짜고짜 얼른 싸웁시다 하고 나섰지만 유심은 씁쓸한 얼굴만 짓다가 황하의 물을 한그릇에 떠오게 하여 나눠먹게 했다.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하자 유심은 담담하게 말했다.

 

"한그릇의 물도 이렇게 어려운데 물이 넘실거리는 황하의 물을 어찌 다 없게 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모든 장수들의 안색이 변했다고 한다. 유심은 그후엔 거의 자포자기 한듯이 마구 공격을 퍼붓다가 이존심에게 패배하여 도주하였다. 그리하여 이 희대의 기습작전은 처절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유심은 진에 항복하는 채 하면서 자기 부하들을 보내 이존욱을 암살하려 하였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존욱은 이미 이 모든 일을 알고 손바닥안에 올려둔것처럼 유심의 일당을 제거하였다.

 

위박을 견재해보려던 일은 이렇게 최악의 결과로 다가왔다. 때마침 강왕 주우경의 반란까지 일어나 주우정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반란은 진압할수 있었지만, 주우정은 그 후부터 친척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심에게 명령을 해 이번에는 위주를 공격하게 하였다.

 

 "사직의 존망이 이 한번의 출동에 달려있소이다."

 

 유심은 군대를 이끌고 출동했다. 그러자 이존심이 그들을 뒤따라 가서 기습하였고, 성내에서는 후에 명종이 되는 이사원이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양군을 상대로 힘겹게 싸우던 유심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진양으로 돌아간줄 알았던 이존욱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본 유심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진왕이다!"

 

 후량군은 사면에서 포위를 당하였다. 당연히 결과는 참혹했고 유심은 기병 수십명과 더불어 간신히 목숨을 건져 달아날 수 있었다. 7만이나 되는 후량군은 참혹하게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이존욱의 부하들은 나무를 베어서 그들을 죽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도망치다 황하에 막혀 빠져죽은 자가 이루말할수 없었다.

 

 이 패배는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주우정은 이 틈에 광국 절도사 왕단에게 명령해 3만의 병사들로 '또' 진양을 기습하게 하였다. 이번에는 날씨도 나쁘지 않아 효과가 있었다. 3만의 군대는 바람같이 달려 거의 방어 병력이 없는 진양을 빈집털이했고, 그곳을 지키던 장승업은 힘겹게 지켜내었지만 거의 함락할 지경이 되어 몹시 두려워했다. 이때 안금전이라는 늙은 장수가 말했다.

 

 "진양은 우리의 근본이 되는 땅이니 잃으면 우리는 만사가 끝장이오! 내가 비록 늙었으나 갑옷을 주신다면 한번 해보겠소이다."

 

 장승업은 즉시 그에게 갑옷을 주었다. 안금전은 퇴역한 장수들을 모두 인솔하였는데 숫자가 수백명이었다. 이 역전의 노장들은 어떤 젊은이보다 능숙하게 적을 공격하니 놀란 후량군은 당황하여 잠시 물러났다. 그 사이에 지원군이 도착했고, 결국 왕단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서는걸 좋아하는 이존욱은 이 멋진 승리가 자신의 책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자 토라져서 안금전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

 

 

주우정은 유심과 왕단의 패배로 양동작전이 실패로 돌아간것을 듣게 되자 탄식하였다.

 

"나의 대사는, 이렇게 사라져버렸도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신불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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