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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테러의 자금줄, 사우디아라비아

구름위 2016. 1. 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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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프레시안 뷰] 이슬람 무장 세력의 이념적 고향

지난 24일 시리아에서 작전 중이던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에 의해 격추되면서 국제사회의 이슬람국가(IS) 격퇴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리아 내전에 임하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터키,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은 IS 격퇴보다는 아사드 정권 제거가 최우선 목표인 반면, 러시아와 이란 등은 아사드 정권의 유지가 최대 목표인 것입니다. 특히 지난 9월 30일 러시아가 시리아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터키는 자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데 대해 초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터키의 최우선 목표는 아사드 제거 및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의 억압입니다. 그런데 세계 제2의 군사대국인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이러한 목표가 위험해졌습니다.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는 일종의 도발입니다. 러시아의 반발을 부추겨 미국의 군사개입을 유도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죠. 이전에도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꼼수를 쓴 적이 있습니다. 2013년 8월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보도됐던 화학무기 사용은 사실은 터키 정보기관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지난 10월 터키 야당 의원의 폭로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아사드 정부가 금지선을 넘었다며 공습을 단행하려 했으나 영국 의회의 반대와 푸틴의 중재로 군사 개입이 무산된 바 있습니다.


터키가 겁도 없이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킨 배경에는 미국 등 나토와의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느냐는 분석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중동 정세에 정통한 영국 <인디펜던트>의 패트릭 콕번 기자는 미-러 간 군사 충돌로 나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 Provoking Russia)

이슬람 테러 세력의 최대 후원자는 미국과 사우디

지난주 '프레시안 뷰'에서 저는 인류 사회의 공적(公敵)인 IS는 1970년대 말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이 낳은 부산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미국은 아프간 내전에서 이슬람 과격파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으로 소련의 붕괴를 촉진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라난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이후 보스니아, 코소보 등의 발칸전쟁과 체첸, 아제르바이잔 등 구소련에서의 분리주의 투쟁, 그리고 리비아 가다피 제거와 시리아 내전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의 한 추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이슬람 무장세력의 숫자는 10만 명 쯤 됐습니다. 현재 가장 악명을 떨치고 있는 IS의 조직원은 3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지난해 9월 미군 공습 이후 1만 명이 사망했다는 추정이 있으나 지금도 전 세계 100개 나라에서 지원자가 몰려들고 있으며 매달 1000명씩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IS의 군사력은 전 세계 200여개 국가 중 중간, 즉 100위권에 들 정도라고 합니다. IS 이외에 리비아에 1700개, 시리아 및 이라크에 1000개의 무장단체가 있다고 하니 현재의 숫자는 2000년대 초보다 훨씬 늘었을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희미했던 이슬람 무장세력이 1980년대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결정적 이유는 미국의 군사주의 정책 때문입니다. 즉 소련의 붕괴를 촉진하기 위해 대대적인 무기 및 자금 지원을 하면서 이슬람 과격파가 막강한 군사세력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최대 자금줄 역할을 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1차 아프간 전쟁(1979-1989년)은 미국과 사우디, 파키스탄의 3자동맹에 의해 치러졌습니다. 미국은 무기와 자금과 정보를 댔고, 사우디는 자금을, 파키스탄은 반군세력에 대한 훈련과 지원을 담당했습니다. 미국은 1980년대 아프간전쟁에 30억 달러 상당의 무기와 자금을 댔으며 이는 중앙정보국(CIA) 역사상 최대의 비밀작전으로 평가됩니다. 같은 기간 다른 모든 비밀공작에 투입된 액수보다도 많았다고 합니다. 사우디는 미국과 같은 액수의 자금을 댔습니다. 이른바 1대1 매칭 펀드 방식입니다. 파키스탄 정보국(ISI)은 미국과 사우디가 제공한 자금과 무기를 바탕으로 탈레반 등 토착 반군 세력과 해외에서 몰려든 이슬람 전사들을 양성하고 지휘했습니다. 이 시기에 양성된 이슬람 무장세력은 탈레반이 약 7만 명, 아프간 이외에서 몰려든 이른바 '아랍 이슬람 전사'가 약 3만 명 쯤 됩니다.

IS 이전 최대 이슬람 무장세력이었던 알카에다의 창시자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과 사우디 등의 비호 아래 전 세계 35개 국에서 아프간 참전 전사들을 모집하는 책임자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미국 국내에만 30개 도시에 모집 창구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반소련 성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미국과 사우디 정부,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이 한 배를 탔던 것입니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고, 특히 1차 걸프전을 이유로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하자 빈 라덴은 반미로 돌아섭니다. 메카, 메디나 등 이슬람 최고 성지가 있는 사우디에 이교도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후 빈 라덴은 사우디 내 미군 기지와 군함에 대한 테러 공격에 이어 급기야 2001년 9.11테러를 감행했습니다. 9.11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사우디 정부에 대해 책임 추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우디는 미국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동맹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 관계는 1945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우드 국왕과의 만남에서 시작됐습니다. 루즈벨트는 얄타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던 도중 사우디 근해의 요트에서 사우드 국왕을 만나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고 사우디는 미국에 대한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약속하게 됩니다. 사우디에서는 이란, 이라크보다 뒤늦은 1938년 미국 기업에 의해 석유가 발견됐습니다. 알고 보니 세계 최대의 매장량에 채굴 비용도 아주 값싼 노다지였습니다. 미국은 사우디와 합작으로 아람코(ARAMCO)라는 기업을 세워 석유사업을 시작했는데, 정상회담을 통해 사우디 석유 자원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은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원유 가격이 4배나 치솟자 미국은 이듬해 사우디와 비밀협약을 맺습니다. 모든 원유 거래를 오직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것, 사우디가 벌어들인 오일 머니를 미국산 무기 구입 및 미 금융기관 예치 등 미국으로 환류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석유는 세계 무역 거래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한다는 것은 달러의 금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달러 아닌 다른 화폐로 거래한다면 달러의 패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 의해 제거되기 직전,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 카다피가 석유의 유로화 결제를 시도한 것은 바로 이런 약점을 노린 것입니다. 결국 사우디는 미국의 달러 금융 패권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국가인 셈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 정부나 언론은 사우디가 이슬람 테러의 돈줄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애써 눈 감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 무장 세력의 이념적 고향, 사우디

사우디는 이슬람 국제 테러의 돈줄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테러 세력이 신봉하는 와하비즘(또는 살라피즘)이 태어난 곳이고 이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근거지입니다. 수니파의 일종인 와하비즘은 '하나의 지배자, 하나의 권한, 하나의 사원'을 내세우는 극단적 근본주의 교리로 시아파를 죽여 마땅한 이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우상 숭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IS 등이 이슬람 사원 등의 문화 유적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와하비즘 교리에 따른 것입니다. 

현재의 사우드 왕조는 1744년 와하비즘의 창시자인 무하마드 이븐 압드 알-와하브(1703~1792년)와 사우드 가문의 부족장 무하마드 빈 사우드(재위 1726~1765년)의 결합에서 시작됐습니다. 극단적 교리를 신봉하는 와하브 가문과 잔인한 무력을 행사하는 사우드 가문이 동맹이 된 것입니다. 이후 아라비아 반도는 20세기초까지 오스만 터키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으나 1차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의 지원을 받은 사우드 가문이 패권을 장악하면서(당시 사우드 가문은 반대파 부족을 단번에 수만 명 살해하는 잔인함을 과시했습니다)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로 탄생하게 됩니다. 독립 후에도 종교 분야는 와하브 가문이, 정치는 사우드 가문이 관장하는 동맹체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우디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와하비즘을 이슬람 세계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사우디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와하비즘을 가르치는 마드라사스(이슬람학교)를 수만 개나 세워 이슬람 극단세력을 키웠습니다. 지난 13일 발생한 파리 테러에도 와하비즘이 한몫을 했습니다. 올랑드 대통령이 말한 대로 파리 테러는 "시리아에서 계획되고 벨기에에서 조직됐으며 프랑스에서 실행"됐습니다. 그런데 파리 테러의 기획자들이 모여 살았던 벨기에 브뤼셀 인근 몰레비크라는 무슬림 마을에는 원래 터키, 모로코 출신자들이 세운 온건 성향의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막강한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 등 걸프 국가들이 이들 온건 이슬람 사원을 몰아내고 와하비즘을 가르치는 마드라사스를 대거 세웠고, 여기에서 배출된 젊은 무슬림들이 무장세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얘기죠. 

한편 현재 IS에는 사우디 출신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IS의 창시자인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지난해 11월 사우드 왕가를 '독사의 대가리' '만악의 근원'으로 지칭하면서 왕정을 전복하고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탈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와하비즘이 '메이드 인 사우디'인 것은 맞지만, 사우디 정부도 와하비즘에 따라 움직이는 이슬람 무장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궁지에 몰린 사우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선 안으로는 민주화 움직임이 있습니다. 밖으로는 미국과 화해하면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시아파 이란의 위협이 있습니다. 사우디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국내 반대파를 잠재우고 이란의 영향력에 대항하려 하고 있지만 오히려 재정파탄의 위기에 몰려 있는 형국입니다.

아랍의 봄이 일어나자 사우디 정부는 국내 안정을 위해 자그마치 1300억 달러를 뿌렸습니다. 공무원의 임금을 인상하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며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보조금을 제공하는 등 국내의 불만을 돈으로 사려 한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수니파 국가에 민주화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집트 등에 모두 3000억 달러를 썼습니다. 한편 2011년에는 수니파 집권 바레인에서 다수파 국민인 시아파가 봉기를 일으키자 자국 군대를 파견해 이를 진압했고,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올해 3월에는 예멘 내전에 개입해 어린이 500명을 포함해 5000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사우디의 개입 이유는 시아파의 일원인 후티 반군의 집권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사우디는 이들이 이란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맹국인 미국과 파키스탄도 이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이란 탓으로 돌리면서 군비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AP=연합뉴스

 

사우디는 오바마 정부 첫 5년간(2009~2013년) 미국 대외 무기 판매의(1690억 달러) 27%에 해당되는 460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구매한 데 이어 최근 490억 달러의 추가 구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처럼 국내외에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사우디의 재정위기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구(IMF)는 사우디가 재정 지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5년내 재정이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사우디의 GDP 대비 국채는 지난해 2%에서 올해 6.7%, 내년에는 17.3%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올해 재정적자 예상액만 13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사우디의 외환보유고는 올 3~4월에만 360억 달러가 줄었습니다. 원유 가격이 정점을 찍었던(배럴당 110달러) 2014년 6월 8000억 달러였던 외환보유고는 2017년이면 5000억 달러로 무려 3000억 달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재 배럴당 44달러인 국제 원유가가 인상되지 않는 한 사우디의 재정위기는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오직 돈으로 국내 안정을 꾀하고 이란 등 외부 위협을 막겠다는 사우디 정부의 무리수가 초래한 결과입니다.

(☞관련 기사 : The Obama Arms Bazaar)

사우디, 올해 상반기에만 102명 참수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102명을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2014년 한 해 동안의 참수형 87명을 웃도는 것은 물론 역대 최고 기록(1995년 192명)을 갈아치울 기세입니다. 이는 사우디의 국내 사정이 얼마나 억압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2011년 민주화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된 시아파 청년 무하마드 알니므르(당시 17세)도 참수형에 이은 십자가형(머리 없는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음) 집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참수된 사람 중 48.5%가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사우디의 2900만 국민은 독재뿐만 아니라 가난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구의 25%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 3분의 2가 30세 이하로 젊은 층이 많습니다. 하지만 18~24세 인구의 30%가 실업자입니다. 이같은 독재와 가난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최대 동맹국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디 정부에 대해 이란의 침략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국내 문제에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을 정도입니다. 오바마는 지난 4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청년이 "실업에 시달리고, 파괴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이념에 물들어 (극단적 저항 외에는) 정치적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합법적 출구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국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사우디 정부에 충고했습니다. 

지난 70년간 사우디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으면서 안으로는 극단적 독재, 밖으로는 아프간 내전에서 시리아, 예멘 내전 등에 개입하면서 국제 사회의 무력 갈등을 악화시켜 왔습니다. 사우디가 국제 이슬람 테러의 돈줄이자 이념적 고향이라는 점이 분명함에도 서방 정부와 언론들은 이 같은 어두운 측면을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를 비롯해 카타르 등 걸프 왕정 국가들의 막대한 석유 자원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사우디 등에 대한 무기 판매로 얻는 막대한 이익도 서방의 비판을 잠재우는 데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테러에 대한 사우디의 역할을 직시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테러 없는 세계'라는 인류의 소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