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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근 선장이 세계지도에 그린 세계일주 항로를 설명하고 있다.
“파도는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살아올 자신이 있는 것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많기 때문이죠.”
이미 요트로 세계일주를 성공했던 그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 의아했다.
“바다에 익숙해지긴 했죠. 하지만 바다를 대하면 대할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죠. 요트와 분리되는 순간 죽음이에요. 판때기(요트 바닥) 밑에는 지옥입니다.”
그는 항해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배밑에 이상이 생긴 거예요. 언제 상어가 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물밑으로 들어가는데 등골이 오싹한 느낌은….”
“폭풍이 닥치면 며칠 동안 계속될 때도 있죠. 2m 이하 파도는 밥도 해먹고 생활이 가능하지만 3m를 넘으면 누워서 주먹밥 먹으며 견딥니다.”
지난 5일 입춘이 지났건만 통영 한산도의 바닷바람은 여전히 찼다. 윤태근(52) 선장을 만난 건 3년 만이다. 지난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요트 세계일주를 마치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복요트장으로 귀항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2012년 7월, 보금자리를 한산도 의항 선착장 옆으로 옮겼다. 주변은 섬이 많은 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적당해 요트장으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는 판단에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또다시 세계일주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이번엔 무기항(無寄港)이다. 무기항 일주는 항구를 들르지 않고 음식물 등 원조도 받지 않고 항해를 하는 것이다.
사무실로 삼은 컨테이너 박스 안은 냉기가 감돌았지만 윤 선장이 화목난로에 나무를 넣고 불을 지피자 금세 온기가 올랐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에 검은색 선과 파란색 선이 눈에 띄었다. “검은색 선은 지난번 일주했던 세계일주 항로죠. 파란색 선은 무기항으로 일주할 경로입니다.”
파란색 선을 그은 지는 2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니 내 자신에 대한 핑계였어요.”
무기항 일주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난관은 후원이었다. 이미 요트 세계일주를 성공한 그였지만, 기업들이 선뜻 후원에 나서지 않았다. 무기항은 사고위험이 많아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대답했다. “위험이 있으니 도전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지만 그는 지체된 이유가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3일 정도는 ‘가야 한다’, 또 그다음 3일 동안은 ‘가지 말자’. 처음에는 이런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머리는 위험하니 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은 늘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강의 의뢰도 들어오는 등 시간은 훌쩍 2년이 지나버렸다.
“후원이 없다고, 다른 업무가 생겼다고, 그렇게 2년간 지체됐죠. 그런데 결국 그런 것들이 원인이 아니라 약해진 마음이 핑계를 만들어낸 거죠.”
윤 선장은 최근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모 기업을 방문, 후원을 받기 위한 설명회를 직접 하고 왔다.
“큰 파도나 풍랑을 만나면 요트가 뒤집어질 수 있는데, 요트의 사양에 따라 안정성의 차이가 크죠. 요트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는 세계일주에 적합한 요트를 구하기 위해 후원을 수소문해 왔지만 현재까지 후원기업을 찾지 못했다. 이번 설명회의 결과도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후원이 없더라도 이번엔 정말 출발합니다.”
윤 선장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3월 말에 요트를 인수할 생각이다. 우선 2월 중으로 계약금만 들고 캐다다로 요트를 보러 갈 생각이다.
“요트를 먼저 보고 잔금은 나중에 해결할 생각입니다.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이 되겠지요.”
그는 자금이 여의치 않을 경우 현재 터를 잡은 요트장 부지를 팔아서라도 요트를 마련할 생각이다. 지인들과 집안의 반대도 심했다. 요트사업을 하면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데, 왜 또 세계일주에 나서냐는 것이다. 윤 선장은 뚜렷한 대답을 하진 못했다. 그저 가야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특히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크죠. 하지만 무기항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일주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무기항 세계일주자가 나왔는데, 우리나라만 아직 없어요.”
이글이글 타던 난로의 불이 사그라들어 불씨만 남았다. 궁금증이 생겼다. “성공은 확신하는 건가요? 만약 실패한다면요?”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시 갈 겁니다.”
“바다 한복판에서의 외로움, 정말 처절하죠. 하지만 거칠고 힘들어도 할 만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이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겨내야 하는 건가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거예요. 바다가 퍼붓는 포악함을 한없이 견디는 인내심이 필요한 거죠.”
그는 경남을 거점으로 우리나라의 요트산업을 일궈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외국의 요트 세일러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모습을 늘 그려보곤 한다.
“한산도에서 뼈를 묻을 겁니다. 남해안만큼 요트의 최적지도 없어요. 요트가 바다를 수놓는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뭍으로 가는 배 도착시간이 다 됐다. 인터뷰를 끝낸 윤 선장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성토를 위해 요트장 한쪽에 놓인 고장난 굴삭기로 향했다. 바퀴가 빠진 굴삭기를 고치기 위한 망치질 소리가 한산도를 가득 메웠다.
김용훈 기자
출처 : 윤태근 요트 항해학교/세계일주/한국연안뱃길연구소
글쓴이 : 윤선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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