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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리호남 15년 스파이 행각

구름위 2013. 11. 27. 11:39

남북을 요동하게 한 굵직한 사건엔 항상 ‘그’가 있었다.

리호남. 북한 참사. 1953년생.

북한에서 입신하려면 출신성분이 중요하다. 리호남의 아버지는 군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장인은 중앙검찰소장을 지냈다. 아내는 노동신문 기자.

그는 김일성대를 졸업한 엘리트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북경협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일성대 상급교원으로도 일했다.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리호남과 접촉한 한국 인사들은 정계·관계·경제계를 망라한다. 사람들은 그를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참사, 민족화해협의회 참사로 기억한다.

리호남은 이름도 여럿이다. 리호남 외에 리철, 리철운, 강호진…. 정보당국에 따르면 한국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때는 리철이란 이름으로 참석했다. 당시엔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 직함을 썼다.

직함이 여럿이고, 이름도 제각각인 이 사내의 실명은 뭘까? 소속은 어딜까?

리호남의 본명은 리철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사용한 리철운,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한 리호남은 가명이다.

조철준 전 북한 정무원(현재 명칭은 내각) 건설부 부장(장관)의 아들로 1994년 한국으로 귀순한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김일성대 박사원에서 리호남과 동문수학했다.

“함경남도 책임비서를 지낸 리길송의 사위다. 1980년대 후반 김일성대 교수(상급교원)로도 함께 일했다. 성격이 호방하고 활달하다. 두뇌회전도 빠르다. 교수로 일한 지 몇 년 안 돼 대외경제 일을 맡은 합영총국으로 옮겨갔다.”

리호남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굵직한 사건에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할 때마다 그의 곁엔 ‘이 남자’가 서 있었다.

박채서. 예비역 육군 소령. 56세.

그는 청주고를 나와 육군3사관학교를 14기로 졸업했다. 소령 진급 후 육군대학에 들어가 3등으로 과정을 마쳤다. 박채서란 이름보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문서에 등장하는 흑금성이란 호칭이 더 유명하다.

흑금성은 1991년부터 국군정보사령부 한미공작대 ○○팀에서 일했다. ○○팀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공조해 대북 우회침투 공작을 벌인 조직.

그는 1차 중령 진급에서 탈락한 뒤 1993년 소령으로 예편했다. 돈 거래가 불투명하고 불평 많은 사람으로 감찰부서가 지목했다고 한다. 능력을 갖췄다고 손꼽히던 이가 기피 인물이 된 것이다. 흑금성과 군 생활을 함께 한 L씨는 “신분을 완벽하게 세탁하고자 일부러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공안당국이 7월2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흑금성 박채서.

흑금성은 안기부에 적을 두고 대북 공작에 나섰다. 자금난이라는 북한의 약점을 파고들어 외화벌이 일꾼, 공작원에게 접근했다. 남북경협을 알선하는 거간으로 구실하면서 북한 내 인맥을 넓혔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부장대리 김명윤을 만나는 등 북한 정보기관에도 선을 댔다.

북한 정권은 외화벌이 일꾼, 공작원에게도 각자도생을 요구했다. 평양에는 자력갱생을 선서한 사람이 버글거렸다. 나라는 돈을 주면서 일을 맡기지 않았다. 각자 돈을 벌어 살면서 정해진 돈을 국가에 입금했다. 그래야 영웅이 되고 훈장을 받았다. 흑금성은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정보를 획득했다.

공작, 감청

민주당 최재성 의원의 목소리엔 분기가 섞여 있었다.

“국정원이 이해찬 국무총리 시절 총리실에서 근무하던 이강진 국무총리공보수석에 대해 지난해 초 영장을 발부받아 4개월간 합법을 가장한 도청을 실시했고, 최근에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통치권적 차원에서 이뤄진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과 관련한 당시 대북 접촉과정에 대해 이 전 수석을 직접 조사했다.”

국정원이 이 전 수석 조사를 위해 법원에 요청해 발부받은 압수수색영장엔 △휴대전화 위치 및 착발신 이력 추적 △음성·문자 메시지 확인 △부인 명의 집 전화 감청 △우편물 열람 △e메일 내역 및 내용 전부 열람 △IP추적을 통한 로그인 내역 열람 △타인 대화 감청 및 녹음이 포함돼 있다.

이 전 수석은 기밀 문건을 북측 인사에게 건넸다는 혐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류 한 장 인쇄해간 일이 없다”는 게 이 전 수석의 해명이다. 2007년 이 전 총리 방북 때 거간으로 구실한 이화영 전 의원도 7월2일 국정원 조사를 받았다.

최 의원은 노무현 정부 인사에 대한 표적 수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언급하기는 어렵다.”

“곤란한 부분이 뭐냐”고 묻자 최 의원은 “그런 게 있다. 정치란 게 원래 주고받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최 의원을 통해 이 전 수석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 최 의원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정보당국은 왜 이 전 수석과 이 전 의원을 조사한 걸까.

국정원은 “북한 정찰총국 연계 간첩 수사 과정에서 관련 혐의가 발견돼 법원의 영장 발부 등 적법 절차에 따라 내사했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수사 활동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정찰총국 연계 간첩으로 국정원이 지목한 이가 바로 흑금성이다.

 

리호남 리스트

7월20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박채서씨를 기소하면서 흑금성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재등장했다. 흑금성이 현역 육군 소장 K씨로부터 입수한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K씨는 흑금성에게 ‘작전계획 5027-04’의 일부 내용을 알려주고 다수의 군사교범을 제공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로 구속·기소됐다. K씨는 흑금성의 국군정보사령부 시절 선배다. 흑금성은 K씨 가족의 경제적 편의를 봐주면서 K씨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공안당국은 흑금성을 포섭한 인물로 리호남을 지목했다. 리호남이 흑금성에게 “군사정보를 구해서 건네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공안당국은 리호남을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이라고 본다. 이화영 전 의원, 이강진 전 수석이 조사받은 것도 베이징에서 리호남을 접촉해서다.

정찰총국이 어떤 곳인가.

정찰총국은 북한의 정보·공작기관이다.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 작전부와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이 지난해 2월 정찰총국(총국장 김영철)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정찰국은 대남 공작을 주업으로 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작부대로 군 소속이다. 35호실은 국정원 해외파트와 업무가 유사하다.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35호실 작품. 유고급 잠수함을 보유한 작전부도 공작기관이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 사건의 공작 주체로 정찰총국을 지목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고자 탈북자로 위장해 남파됐다가 붙잡힌 간첩 2명도 정찰총국 소속으로 밝혀졌다. 리호남이 바로 이 정찰총국 소속이라는 것이다.

리호남은 그간 어떤 일을 한 걸까.

‘신동아’는 리호남의 실체를 추적하고자 그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거나 그를 직접 만난 한국 인사 10여 명과 접촉했다. 흑금성이 등장하는 과거 재판 기록도 검토했다.

리호남이 실제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이라면 내로라하는 한국 인사들이 북한의 공작에 놀아난 꼴로 ‘리호남 리스트’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리호남의 공작 행보는 광범위했다. 보수정권 진보정권 보수정당 진보정당을 가리지 않았으며 4개 정부(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를 상대로 공작 활동을 벌였다. 대기업 오너를 직접 만나 비즈니스를 논의한 적도 있으며, 귀신같이 각 정권 실세를 찾아 줄을 댔다.

대통령의 동업자

시곗바늘을 되돌려 2006년 10월20일로 가보자.

안희정 현 충남지사, 이화영 전 의원이 이날 베이징에서 리호남을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이던 안 지사는 당시 야인(野人) 신분이었고, 이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안 지사는 리호남에게 이렇게 말했다.

“특사를 파견하는 문제, 정상회담을 하는 문제 이걸 의논하러 왔습니다. 이거 지금 다 했으면 좋겠고요. 방법은 공식라인을 살려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대통령께서 어린 동업자라고 부른 사람입니다. 수시로 뵙니다. 사실 거의 매일 뵙습니다. 그 뜻을 전하려고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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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시절 박영준<現 지식경제부 2차관>에 접근해, 이명박 청와대 상대로도 공작 시도
 
 

2007년 3월7일 이해찬 전 총리 평양 방문은 안희정-리호남 만남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안 지사와 함께 리호남을 만난 이 전 의원이 이 전 총리와 북한을 잇는 거간 구실을 했다. 이 전 총리 방북은 최재성 의원의 설명대로 그해 10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토대로 작용했다.

이 전 의원은 북측과 이 전 총리 방북 등을 논의하고자 2006년 12월16일 평양을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리호남은 이 전 의원에게 돼지농장을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일종의 입장료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초청장을 리호남에게 보냈다.

‘2007년 1월15일부터 10일간 돼지사육장 고찰과 관련하여 귀측의 대표단 6명이 중국 지역을 방문하는 데 대해 우리 재단은 항공비를 포함해 체재비 일체를 담보함을 재차 확인드립니다. 좋은 고찰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 고찰단은 1월25일 베이징으로 나왔다. 경비는 베이징에 지사를 둔 한국의 한 공공기관에서 결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전(全)방위로 감시한 이강진 전 수석은 다음 대목에서 등장한다.

이 전 수석은 2007년 3월 베이징에서 리호남을 만났다. 리호남은 이 전 수석에게도 “돼지농장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돼지농장은 권한 밖의 일이라면서 선을 그은 게 전부”라는 게 이 전 수석의 해명이다.

이 전 수석은 연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이 전 총리가 국회의원으로 일할 때 보좌관을 지냈다.

北風 공작

김일성대 상급교원 출신 리철은 2006년 10월 안희정 지사를 만났을 때 과거에 이따금씩 사용하던 리호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왜 한국에 알려진 리철, 리철운이란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

북한의 대남사업과 관련해 ‘리호남’이란 이름을 사용한 이는 2명이다. 1990년대 통일전선부 산하 삼천리총공사에서 일한 리호남은 흑금성의 파트너인 리철과는 다른 사람이다. 앞서의 리호남은, 삼천리총공사 대표가 한국기업이 송금한 돈을 횡령해 철직될 때 남북경협 현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리철이 본명인 리호남은 1997년 굵직한 공작에 참여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은 뒤 논란이 된 북풍(北風) 사건이 그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장이던 권영해씨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막고자 북한을 대선정국에 이용했다는 북풍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리철이란 이름에선 경제 일꾼 이미지를 가진 리호남과 달리 공작 냄새가 난다. 리호남 처지에선 리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 께름칙했을 것이다. 남북 비선 접촉에 관여한 노무현 정권 인사들은 자신들이 만난 리호남이 1997년의 리철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리호남은 신한국당 정재문 의원이 안병수(본명은 안경호로 대남사업을 할 때는 가명을 썼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는 과정, 김병식 북한 부주석의 편지를 한국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 축을 맡았다. 정 의원이 1997년 11월 베이징에서 안병수를 만날 때 리호남뿐 아니라 흑금성도 자리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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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시절 박영준<現 지식경제부 2차관>에 접근해, 이명박 청와대 상대로도 공작 시도
 
 

1998년 5월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대로라면 북풍 사건은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과 안기부의 대북정치 공작이 결합한 사건이다.

흑금성과 리호남은 북풍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부터 베이징에서 수시로 만났다. 흑금성이 리호남을 포섭한 걸까, 리호남이 흑금성을 포섭한 걸까. 흑금성은 대북사업을 원하는 기업인들에게 리호남을 소개해줬다. 리호남은 활동자금을 확보하고 흑금성은 정보를 얻는 구조였을 것으로 보인다. 흑금성은 한국 정보를 북한에 제공하고 북한 정보를 한국에 전하는 이중 활동을 벌였다.

리호남, 흑금성을 통해 대북사업을 벌인 대표적인 업체로 아자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이 회사 박기영 사장은 대홍기획에서 잔뼈가 굵은 광고 전문가. 이 회사의 대주주이자 사실상의 오너이던 정진호씨는 정진석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16·17·18대 국회의원)의 형이다. 박 사장과 흑금성도 이 회사 지분을 소유했다.

아자커뮤니케이션은 리호남을 통해 북한에서 한국기업의 TV광고를 촬영하는 사업을 하고자 했다.

이필곤 당시 중국삼성 회장, 박철원 당시 삼성물산 부사장, 한행수 당시 삼성중공업 부사장도 흑금성을 통해 리호남을 만났다. 삼성도 북한에서 애니콜 광고를 찍는 것에 동의했다. 삼성은 리호남의 중개로 북한 관료들을 만났을 때 서한만 유전 탐사 등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아자커뮤니케이션의 비즈니스는 성사 직전까지 갔다. 윤종용 삼성전자 사장(현 삼성전자 고문)의 방북 날짜가 1998년 3월30일로 정해졌다. 그런데 윤 사장 일행의 방북을 13일 앞둔 3월17일 북풍 파문이 터졌다. 안기부가 ‘공작원 흑금성’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정권 교체 후 살아남을 길을 도모하던 안기부 인사들은 흑금성을 버리는 카드로 썼다.

결국 삼성전자와 아자커뮤니케이션 관계자의 방북 계획은 취소됐다. 박 사장은 박채서가 흑금성인 걸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흑금성은 북풍 공작 와중에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에도 줄을 댔다. 정동영 의원(전 통일부 장관, 17대 대통령선거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천용택 의원(전 국정원장, 전 국회 국방위원장)을 각각 10회, 5회 만났다. 북풍 공작을 야당에 흘린 것이다.

흑금성은 북풍 사건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이중간첩이 아닌 정권 교체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국정원과 검찰은 북풍 사건 수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흑금성을 안기부 4급 상당 직원이라고 발표했다.

이중간첩 혐의를 벗은 흑금성은 그 뒤로 사람들에게 잊혔다. “중국에서 장사를 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 이따금 들려왔을 뿐이다.

무용수 조명애

“리호남이 그간 자신이 성사시킨 사업을 나열했다. 꽤 많았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대북지원 사업을 하는 한 종교계 인사의 회고다. 기업인들은 그를 “자본주의 경제를 잘 아는 사람, 북한 관료로는 드물게 깨인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리호남에게 돈을 떼였다”는 대북사업가도 있다.

리호남은 안희정 지사를 만나기 전까지 기업인이나 대북지원단체 인사를 만날 때 주로 리철운이라는 가명을 썼다.

1세대 대북사업가 중 1명인 장석중씨가 1998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방북을 타진하고자 베이징에 갔을 때 카운터파트로 나온 리철운도 리호남이다. 2007년 이후로는 리호남이란 이름만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 공작원 리호남 15년 스파이 행각
인수위 시절 박영준<現 지식경제부 2차관>에 접근해, 이명박 청와대 상대로도 공작 시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북한 민영항공총국 앞으로 보낸 의향서(오른쪽). 도은대 대우건설 전무와 리호남이 각각 서명한 의향서. 오른쪽 아래에 리호남의 서명이 있다.

리호남은 2005년 ‘남북합작 애니콜 광고’를 성사시켰다. 북한 무용수 조명애와 이효리를 모델로 쓴 삼성전자 광고가 그것이다. 종교단체, NGO(비정부기구)가 대북사업을 벌일 때 남북을 잇는 역할도 했다. 한국 방송사가 북한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도움을 줬다. 수시로 통화할 만큼 리호남과 가깝게 지낸 언론인도 있다.

‘신동아’는 ‘북한 문건에 나타난 대기업 대북 비밀 접촉 실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2010년 4월호 참조) CJ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GS칼텍스그룹, 프라임그룹 등의 대북 접촉 실태를 보도했다. 다음은 4월호 기사 중 일부다.

「2007년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가동할 때 “아시아나항공이 북한에 민영 항공사를 설립한다”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실제로 북측과 접촉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북한 민영항공총국 앞으로 보낸 의향서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현 명예회장) 서명이 적혀 있다. 의향서 내용은 이렇다. “우리 그룹은 조선 측의 항공산업 분야의 합작과 관련하여 조선 측 해당 부문과 협의를 진행하기를 희망합니다. 본 의향서를 통해 우리 그룹이 본 사업에 대한 관심과 추진 의사가 있음을 표명드리며, 조선 측에서 해당되는 부문과 진일보한 상세 협력 방안을 협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4월호 기사에선 거론하지 않았지만 박삼구 회장이 2007년 11월23일 직접 베이징으로 날아가 북한 인사를 만났다. 박 회장이 대북 사업을 논의하고자 만난 북한 인사도 이 글의 주인공 리호남이다. ‘정찰총국 소속 대남 공작원’이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오너를 직접 만나 공작을 벌인 셈이다.

장성지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무는 “신뢰가 가지 않았고,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낮은 수준에서 검토하다 접었다”고 설명했다.

2007년 11월15일 도은대 당시 대우건설 전무(현 롯데건설 부사장)도 베이징에서 리호남을 만났다. 대우건설은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였다. 도 전무와 리호남은 해주조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의향서에 각각 ‘대우건설을 대표하여’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대표하여’ 서명했다. 도 전무는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리호남 건과 관련해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간첩이면서 경제일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가운데)이 조선인민군 제586부대(정찰총국) 지휘부를 시찰하고 있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앞줄 왼쪽)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앞줄 오른쪽)이 수행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인민군 창건일인 4월25일 이 사진을 보도했다.

리호남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이렇듯 쟁쟁하다. 대기업 오너를 어떻게 베이징으로 불러냈을까. 리호남만큼 탁월한 공작원이 북한에 또 있을까?

리호남을 만난 한국 인사들은 하나같이 그를 경제일꾼이라고 여긴다. 김일성대에서 합영총국으로 옮겨간 이후 리호남의 행적은 불투명하다.

합영총국은 무역부 대외경제사업부와 함께 지금은 사라진 대외경제위원회에 속하던 부서다. 대외경제위원회를 없앤 뒤 무역부, 대외경제사업부가 따로 존재하다가 무역부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무역부는 무역성으로 개칭됐다. 리호남은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참사’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 두 기관은 무역성 산하 기구다.

북한 관료집단에서의 지위도 명확하지 않다. 북한 참사는 한국 공무원 직급으로 바꿔 부르기 어렵다. 주무관, 사무관, 과장, 국장을 망라한다. 리호남은 노령화한 북한 관료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젊은데다 현장에서 주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실세도 아니다.

그렇다면 리호남의 윗선은 누굴까.

재판에서 확정할 일이지만 공안당국이 근거도 없이 리호남을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흑금성을 ‘정찰총국 연계간첩’으로 지목하진 않았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남북경협 현장에서 일한 북한 전문가 A씨는 “리호남은 공작원, 그러니까 간첩이면서 경제일꾼으로 보면 된다. 대남사업을 하는 북한 관료는 다 그렇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리호남은 NGO나 기업에서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을 한국 내 인맥과 정보망을 관리하는 데 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리호남은 2007년 대선 전후로 한나라당에도 접근했다. 리호남을 만난 여권 인사가 여럿이다. 2007년 10월 방북한 한나라당 인사는 북측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더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리호남은 ‘이명박 청와대’를 상대로도 공작을 벌였다. 리호남은 서울, 베이징을 오가는 인사를 메신저로 앞세워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메시지팀장이던 박영준 현 지식경제부 2차관에게 선을 댔다. 리호남의 메신저는 대선 전후와 인수위 시절 북한 동향, 평양발(發) 메시지를 취합해 박영준 차관에게 전달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명목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했다. 북한은 김영남 답방 카드를 이 대통령 취임식용으로 돌렸다. 북한은 취임식 축하사절단을 보내겠다고 복수의 루트로 제안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고위인사의 취임식 참석 제의를 “목적이 불분명한 회동은 사양하겠다”면서 거부했다.(‘동아일보’ 2008년 3월6일자 참조)

리호남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되자 김영남 방남을 미끼로 박영준 차관에게 접근했다. ‘신동아’는 메신저가 리호남에게 보낸 다수의 문건, 메신저가 박영준 차관에게 보낸 다수의 문건을 입수했다.

 

북한 공작원 리호남 15년 스파이 행각
인수위 시절 박영준<現 지식경제부 2차관>에 접근해, 이명박 청와대 상대로도 공작 시도
 
 

리호남의 메신저가 1998년 1월21일 박영준 차관에게 보낸 문건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기 두 차례의 보고서와 본 보고서를 합하여 김영남 취임행사 초청에 관한 사업을 제기드리며 설명한 바 있음. 현 시점에서는 이 사업의 지속적인 진행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음.”

다음은 메신저가 리호남에게 보낸 문건의 한 대목.

“초청사업은 2007년 12월28일 본 작성자의 여타 내용 보고서와 함께 정확하게 전달되었음. 바로 그 직후, KBS, SBS 등 인터뷰가 연초 이어졌고, 급기야 1월17일 외신기자회견에서 본인에 의한 발언까지 하게 된 것임. 그 과정에서 남성욱이 연초 총대를 메고 이 문제를 흘렸다고 하며(이 점은 여러 이론도 있음. 그러나 그는 이렇게 주장함.) 그로 인해 보수단체 50여 명이 인수위 앞에서 항의시위를 한 적도 있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안보분과 자문위원이던 남성욱 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부총리급 이상의 고위 당국자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군불을 땠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서 경축사절단이 온다면 언제나 환영한다”고 2008년 1월17일 외신기자 회견에서 밝혔다.

리호남은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까지 같은 루트를 활용해 공작을 시도했다. 박 차관을 상대로 한 공작은 정상회담을 미끼로 이뤄진 안희정 지사를 파트너로 한 공작과 수법이 비슷하다.

간첩죄

“내가 아는 사람 서넛도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돈을 받고 정보를 줬으면 간첩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공작원인 줄 모르고 만났으면 아무런 죄가 없는 것 아닌가.”

한 대북사업가는 “공안당국이 리호남을 접촉한 이들을 조사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흑금성처럼 “나를 통하면 북한 실세와 연결된다”는 식으로 기업에 접근하는 브로커가 적지 않다. 리호남은 브로커들을 통해 기업인, NGO 인사를 사귀었다.

대북 브로커는 1990년대 중후반 북한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등장했다. 문제는 이들이 상대하는 북측 인사의 상당수가 공작기구 소속이라는 점이다. 북측 인사들은 경제일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머리에 쓰고 나온 ‘모자’는 허울뿐인 예가 많다. 대북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한 인사는 “일부 브로커들은 북측 인사의 환심을 사고자 민감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면서 “한국 고위인사를 연결해주는 등 북한 공작원들의 첩보활동, 공작활동에 이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강진 전 수석, 이화영 전 의원에 대한 공안당국의 수사를 보복수사, 표적수사로 몰아세우지만 리호남이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이 맞다면 리호남 리스트의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공작원이 한국의 4개 정권과 내로라하는 인사들을 농락한 희대의 스파이 사건이 되는 것이다.

‘신동아’ 취재 내용과 공안당국의 판단을 종합해보면 흑금성은 한국의 고급정보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전하고, 북한 고급정보를 안기부와 국군정보사령부에 보고하는 이중간첩으로 활동하다가 북한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리호남, 흑금성의 활약은 첩보영화를 연상케 한다.

   (계속)

 

북한 공작원 리호남 15년 스파이 행각
인수위 시절 박영준<現 지식경제부 2차관>에 접근해, 이명박 청와대 상대로도 공작 시도
 
 

역대 정부는 남북관계를 고도의 통치행위로 간주해 비밀리에 추진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을 특사로 삼아 북한과 대화를 나눴다. 박정희 정부 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노태우 정부 때 박철언 장관, 김대중 정부 때 박지원 장관이 대표적이다. 박철언·박지원 전 장관의 대북 접촉 때도 브로커가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비틀어진 공식라인

지난해 10월 임태희-김양건 만남도 비선으로 이뤄졌다. 여의도연구소 A박사, B씨 등 임 장관 인맥이 움직였다.

‘신동아’는 올해 초 임태희-김양건 만남의 진상을 파악했으나 일부 내용만 에둘러 쓰는 형식으로 소화했다. 오프 더 레코드를 확약하고 관여한 인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신동아’ 3월호 ‘정상회담 비밀접촉 막전막후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북자·국군포로를 남측에 보내는 데 동의했었다’ 제하 기사 참조) 임태희-김양건 만남의 실상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하나둘씩 공개되고 있는데 공작원이 끼어든 정황은 없다.

리호남이 4개 정권에 걸쳐 활개 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남북관계가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정상회담을 치렀는데도 공식라인(통일부-통일전선부)은 비틀어져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공식라인을 닫아버렸다. 북한당국이 한국 정부를 대화 상대가 아닌 공작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 통일전선부부터가 대남 공작을 벌이는 공작기관 아닌가.

8월8일 개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모멘텀이 되살아났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 지지자다.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도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비선 접촉을 선호해왔다. 게다가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다. 현 장관은 북한에서 “도저히 말을 섞을 수 없는 호전적 친미 맹동주의자”라는 식으로 낙인찍혀 있다. 한마디로 비선과 브로커가 활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리호남, 흑금성 같은 인물이 암중비약(暗中飛躍)할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