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이 중국에 거대한 재난을 가져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중국에 있어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상처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임칙서(林則徐)가 광주에서 아편금지조치를 지나치게 과격하게 하여, 이 전쟁이 발발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사람의 기록을 보면, 이번 전쟁의 발발원인에 대하여 또다른 견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사람의 필기인 <<청패쇄철(淸稗?綴)>>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까지 임칙서가 광주에서 서방상인들의 아편을 소훼하면서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편전쟁이 발발했다고 생각해왔다. 현재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이번 전쟁의 발발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 서양인들이 광주에 와서 장사를 하던 초기에, 실제로 실행한 것은 찻잎 한 상자와 아편 한 상자를 맞바꾸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들 찻잎을 지방관아에서 일하는 일부 서리(胥吏)들이 통일적으로 구매하였다. 그리고 이들 찻잎에 모래와 돌맹이등을 섞어넣었다. 이들 서방상인은 이런 찻잎을 운송해갔는데,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비용을 들여 중국으로 다시 운송해와야 했다. 서양상인들은 무고하게 많은 돈을 손해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전쟁의 화근이 심어진 것이다"
"또 한가지 일이 있었다. 이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임칙서가 광주에서 아편을 금지할 때, 오(伍)씨성의 상인이 서양상인들과 밀접하게 왕래했다. 그리하여 그를 여러번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로 하여금 합계 군비 수백만냥을 부담하게 했다. 오씨가 매번 임칙서를 만나러 올 때면, 자주 아문의 각 관리들에게 돈을 뜯겼다. 은자 천냥정도를 찔러넣어 주어야 비로소 의자를 내놓고 그를 앉게 했다."
"나중에 임칙서가 다시 기용되었으니, 군대에서 병으로 죽었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이것은 오씨가 임칙서의 복귀를 정말 두려워하였고, 스스로 그 압박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여, 암중에 독을 넣어 임칙서를 해친 것이다'"
이 필기를 보면 아편전쟁이 발발한 한가지 요소는 지금보면 아주 슬픈 일이다.이들 '서리'등 간사한 소인들이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망치는 더할 수 없이 엉망인 지경에 이르게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자들을 '서리'라고 부르는지 살펴보자.
'서리'는 '이서(吏胥)'라고도 한다. <<현대한어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구시대의 품급이 없는 하급 공무원"이라고 되어 있다. 이들 하급공무원은 관원의 개인노비 및 각 아문의 공차(公差), 아역(衙役)등등이 포함된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지위가 아주 낮았다. 어떤 신분의 사람이건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바로 "유량입천(由良入賤, 양민에서 천민으로 바뀜)"되는 것이다. 본인뿐아니라, 그 자손들도 다시는 '선비'로 적에 올릴 수가 없게 된다. 바로 족보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게 되며, 죽어서도 사당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 그렇게 무시를 당하는 무리인 것이다. 다만, 이들은 전형적인 호가호위하는 자들이다. "관리의 발톱이나 이빨이 되어, 하루도 없이는 일이 되지 않고, 한 가지 일도 그들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손안에 크고 작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권력을 이용하여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담하게 돈을 뜯어내고 협박하며 온갖 나쁜 짓을 다했다. 이들 서리는 비록 신분은 비천하지만, 일은 콩고물이 많은 편이었다. 그들은 안과발모하고, 탐욕에 젖어서 시비곡직을 따지지 않고, 양심이라는 두 글자를 팔아먹었다. 어떤 자료를 보면 그들을 "오늘날의 서리를 보면 모두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지 않는 자가 없다. 온 집안이 잘 먹고 처첩이 가득하며, 비단을 손에 쥐고, 세가(世家)보다 더 향유하며 살고 있다"
"오늘날 백관의 권한은 모조리 '이서'에게 귀속되었다. 소위 백관은 허명이고, 권한을 쥔 자는 '이서'들 뿐이다" 청나라초의 사상가 고염무는 이렇게 간파했다.
청나라말기의 대신 호림익도 이렇게 말했다: "육부의 서(胥)는 재상의 권한과 다를 바가 없다"
청나라의 통치에서, '서리들의 권력독단'은 이미 정치를 망치고 백성을 해롭게 하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해다. 이미 '조정과 서리가 천하를 함께 다스리는' 국면에 이르렀다. 이런 왕조가 어찌 망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서리는 아편전쟁을 유발한 원흉의 하나라고 보아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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