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공이 왕이었다면, 궁궐의 주인은 환관과 궁녀였다!
역사 속 수은 주인공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들추어 본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드러나는 왕 이면에 실제 궁궐을 좌지우지한 환관과 궁녀의 이야기. 〈한권으로 읽는 왕조실록〉 시리즈로 역사 대중화 작업을 선도했던 박영규가 숨은 권력의 주인공인 환관과 궁녀의 숨은 역사를 들려 준다. 저자는 주변인인 환관과 궁녀의 시각에서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수많은 문헌과 자료를 뒤져 제왕의 최측근 비서인 환관과 왕조 유일의 여성 공무원인 궁녀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오롯이 되살려냈다.
숨겨진 역사를 들추어내는 책답게 지금껏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그들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거세 전문가 엄공의 환관 만들기, 궁형, 환관부부와 자식, 우리역사와 중국역사를 뒤흔든 환관들, 궁녀의 선발과 교육, 왕의 어머니가 된 궁녀들, 의녀의 탄생과 역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의녀들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움직인 숨은 권력자, 환관과 궁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치욕을 감내하면서 권력 획득에 몰두했던 환관, 왕의 여자로서 죽기 전에는 궁궐 담을 넘을 수 없었던 궁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 모두를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00만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의 역작
주변의 시각으로 파헤친 새로운 권력의 세계
과거 공부를 하던 젊은이에게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나이가 서른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음양의 이치를 모릅니다. 오늘 밤은 마침 조용하니 담을 넘어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환관의 아내와 정을 통하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을 이용해 환관의 아내가 남자를 유혹하는 편지다.
환관의 무덤 안에는 자신의 ‘양물’이 들어 있다
환관이 되기 위해 거세를 하는 자들은 수술 전에 ‘여자가 되어 궁궐로 시집가겠다는 맹세’의 의미에서 혼서(婚書)를 작성했다. 그러고 난 후 목숨을 건 수술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잘려나간 음경과 음낭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당시 환관들은 그것을 방부 처리해서 상자 속에 넣어 밀봉한 후 대들보 위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 벼슬이 오를 때 이것을 제시하는 험보(驗寶) 관례 때문이었다.
상궁의 월봉은 쌀 6가마였다
궁녀도 다른 관리처럼 근무에 대한 보수를 받았는데, 일반 관리들은 녹봉을 받지만 이들은 월봉을 받았다. 고종의 궁녀들의 월급 명세표에는 상궁 196원~80원, 나인 40~50원, 비자 18원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당시의 쌀값인 20원에 적용해 계산해보면 나인은 쌀 2가마, 지밀의 상궁들은 적어도 쌀 6가마 이상이었다. 평생 궁궐 귀신으로 살 것 같은 이들은 휴가도 다녀올 수 있었다. 당시에는 여자들을 한곳에 가둬두면 여자들의 원망이 하늘에 닿아 큰 변란이 있거나 천재지변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을 핑계로 궁녀들을 궁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그러다 세월이 좋아지면 다시 불러오기도 했다. 또 출궁한 궁녀들은 재가를 할 수 없었지만, 양반의 첩으로 들어간 궁녀들의 사례는 조선시대 내내 찾아볼 수 있다. 연산군은 아예 출궁 궁녀의 간통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의 아들은 궁녀에게서 연애편?를 받아 곤혹스러운 일을 겪기도 했다.
양반과의 단골 스캔들 파트너, 의녀
약방 기생으로 취급받던 의녀들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스캔들에 단골로 등장한다. 관의 노비보다 더 천시받았던 의녀들은 어떻게 해서든 천비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백이’라는 의녀는 세종대왕의 아들 평원대군과 사랑을 나누었고, 나중에는 대마도 정벌의 주역 이종무의 아들의 첩이 되기도 했다. 양반의 첩이 된 뒤에도 대다수는 의녀의 직분을 그대로 유지했는데, 그러다 보니 남자들을 접하게 되고 그것이 사단을 일으키기도 했다. 성종 대에는 의학 교수였던 조평이 제자였던 의녀와 간통을 저질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국권이 모두 고자에게 있구나”
궁녀처럼 왕과 함께 지내며 왕의 수족으로 살고 왕의 총애를 받길 원하지만, 환관은 궁녀들과 달리 왕과 육체적 사랑을 나눌 수 없는 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왕의 총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권력뿐이다. 따라서 환관은 기본적으로 권력 지향형일 수밖에 없다.
“희봉이(태조의 환관) 저 놈의 머리채를 잡고 중문 밖으로 끌어내라!”
고려와 달리 조선은 환관의 힘을 억누르면서 가장 이상적인 환관 조직을 만들어냈지만, 왕의 기질에 따라 환관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역성혁명을 통해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환관 김사행에게 궁궐의 법도를 배우며 그를 총애했다. 이들의 권세는 판서보다 높았고 재산은 도성의 갑부 못지않았으며 주변 세력 또한 웬만한 재상에 뒤지지 않았다. 성격이 불같았던 태종의 환관 노희봉은 수시로 죄 없는 감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머리채를 잡혀 중문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했다. 세종대왕 대의 환관 엄자치는 수시로 변방을 드나들며 왕명을 전해야 했으며, 연산군 대의 환관 김처선은 왕의 학정을 꾸짖다 처참하게 살해되기도 했다.
한낱 몸종이자 권력의 그림자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이들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왕조의 성쇠와는 무관하게 생명력을 이어왔다면 그 속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봐야 옳다. 기존의 왕조사가 정(正), 명(明)의 영역이었다면 『환관과 궁녀』는 오히려 역(逆), 암(暗)의 역사에 가깝다. 그 대신 지금껏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그들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왕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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