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을 사랑하지만 미인을 더욱 사랑한다(愛江山更愛美人)’는 말처럼 천하의 무수한 영웅호걸과 제왕백관들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는 천하를 선뜻 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국시대 위나라를 세운 조조는 천하와 미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조는 아내가 15명이었다. 창기였지만 재능이 뛰어나 총애를 받았던 변(卞)부인, 정실이었지만 이혼을 당한 정(丁)부인과 유(劉)부인, 조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조충을 낳은 진(秦)부인 등 부인들과 그들이 낳은 2,3십 명의 자식들로 하여 조조는 방대한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영웅은 호색(好色)이라, 조조는 15명의 부인을 거느린 것으로는 부족해 다른 많은 여자들에게 정을 주었다. 하지만 천하와 뭇여자를 정복했던 조조에게도 못 이룬 사랑이 있었다. 조조가 평생 마음 속에 담고 살았지만 품에 넣지는 못했던 한 여인, 바로 채문희(蔡文姬)이다.
자색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했던 채문희
채문희는 이름이 채염(蔡琰)이고 자는 문희 또는 명희(明姬)라고 한다. 동한시기의 대문호이자 서예가인 채읍(蔡邑)의 딸이다. 채읍은 조조의 스승이자 친구로서 둘은 막역한 사이였다. 채문희는 자색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악기와 그림, 서예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채문희가 6살 때의 어느 하루, 채읍이 대청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채문희는 벽을 사이에 두고 거문고의 첫 현이 끊어지는 소리를 분별해냈다고 한다. 채읍이 놀라서 이번에는 네 번째 현을 고의로 잘라버리자 채문희는 이 또한 정확하게 알아 맞추었다. 훗날 흉노에서 자나깨나 고향 땅을 그리면서 지은 <호가십팔박>(胡茄十八拍)은 그 곡조가 서글프고 내용이 처량하기로 후세에 이름나 있다. 동시에 그가 혼란한 시국에 대해 통탄하며 쓴 <비분시>(悲憤詩)는 중국 시가역사상 최초의 자전체형식의 오언장편 서사시로 불리고 있다. 그리하여 사서에서는 그에 대해 “박식하고 재질이 뛰어난 동시에 음률에도 능하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고 채문희는 파란곡절 한많은 삶을 살았다. 일생동안 모두 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16세에 선비인 위중도(衛仲道)와 결혼하여 둘 사이는 금슬이 좋았지만 불행하게도 남편은 결혼 1년 만에 각혈병으로 사망했다. 그 후 흉노족이 중원을 침입하면서 채문희는 흉노에 끌려가 흉노 좌현왕(左賢王)의 왕비가 되었다. 좌현왕은 자색과 재능을 겸비한 채문희를 끔찍이도 사랑했고, 채문희는 그를 위해 아들 둘을 낳았다. 하지만 불모지인 흉노의 땅에 다재다능했던 채문희가 정을 붙일 수는 없었던 일. 고향인 중원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길이 없었다. 조조, 흉노에서 채문희 구해오다
12년 후인 208년, 북방을 제패한 조조는 채문희가 흉노에게 끌려간 사실을 알고 황금 천 냥과 백옥 한 쌍을 들고 채문희를 찾아왔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동시에 아들 둘과 생이별을 해야만했다. 좌현왕도 채문희를 놓아주기 아쉬웠지만 조조의 세력과 권력이 무서워 감히 만류하지 못했다. 35살 되는 해에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채문희는 조조의 주선으로 장군 동사(董祀)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후에 남편 동사가 죽을 죄를 짓자 채문희는 조조를 찾아가 청원을 해 구해냈다고 한다.
조조는 나이가 채문희보다 20여 살 위였다. 채씨 부녀는 일찍이 모함을 당해 유배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조조는 채씨 부녀를 구해냈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험난한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싹텄다고 한다. 그 후, 조조는 천하를 평정하기에 바빴고 채문희는 유랑 중이라 그들의 애틋한 사랑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채문희가 흉노에 끌려간 후 조조는 줄곧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비록 손에 패권을 잡고 만인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채문희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채문희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끝내 이루어냈다.
하지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다시 만난 그들 사이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두터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예전의 조조가 채문희의 정신적 기둥이었다면 눈앞의 조조는 권력과 야심과 살육에 물든 낯선 모습이었다. 천하를 정복할 수는 있었지만 채문희와의 사랑은 이룰 수 없음을 심히 느낀 조조는 멀리서 그저 그녀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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