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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시아 민중들이 제정 러시아의 무능과 핍박에 저항한 러시아 10월 혁명이 발발하자 러시아 군은 해체되어 주코프는 집에
돌아왔고, 티프스에 걸려 1년여를 요양했습니다. 이후 붉은 군대에 하사관으로 입대하여 러시아 내전에 참전하고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죠. 처음에는 하사관의 계급이었으나, 부대내에 배속된 정치장교의 추천으로 장교 교육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주코프는 장교로서 군에 돌아와 계속 승진하여 기병 대대장이 되었고, 이때 농민반란을 진압한 공적으로 인해 적기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1923년 기병연대장, 1930년 5월에는 기병여단장으로 계속 승진을 거듭하였고 후에 붉은 군대 기병감찰관보좌관,
제4기병사단장, 제3기병군단장, 제6기병군단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또한 주코프는 군대의 기계화에 의한 전쟁, 곧 군대의 시대변
화에 대비한 유능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기계화부대의 운용과 새로운 이론의 강력한 제창자중에 한명이며, 자신이 수립한 계획
에 치밀하여 엄격한 훈련과 군율을 실시하는 군인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주코프는 1937년부터 1039년까지 스탈린에 의한 붉은군대 대숙청속에서 살아 남았고, 중장으로 승진하여 벨라루스 군관구 사령관
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의 괴뢰정권인 만주국과 몽골인민공화국의 국경구획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일본의 관동군과
여러번의 국경충돌이 일어났죠. 6월 국경의 노몬한에서 벌어진 몽골인민공화국군과 만주국군의 작은 충돌이 양국의 보호자 노릇
을 하고 있었던 소련과 일본의 충돌로 발전하였습니다. 처음에 관동군은 소련의 국경방위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의도로 전투를
개시하였으나 급속히 대규모 전투로 발전하여 최종적으로는 전차 500대 이상, 항공기 500기 이상, 병력수 수만명이 투입되는 정규
전 수준까지 이르렀죠. 이것이 바로 할인골 전투의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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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가 소진되기를 기다려 충분한 전력을 준비해 1939년 8월 20일부터 관동군에 대한 반격을 지휘했습니다. 자동차화된 포병과 보
병의 지원을 받는 2개 전차여단이 전선의 양익을 진격시킨다는 대담한 기동을 실시하여 일본 제6군을 포위하고, 1개사단을 전멸
시키는 대타격을 주었습니다. 2주 안에 관동군은 후퇴하고 그후 국경선은 소련, 몽골의 주장대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공적으로 주
코프는 '소련 영웅'의 칭호를 하사받았습니다. 소련 이외에 이 전투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주코프의 기계화부대의 기동적인 운
용과 혁신적인 전술도 서방측에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전술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폴
란드와 프랑스의 전격전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공적으로 주코프는 상급대장으로 승진했죠.
1940년 5월 초 스탈린은 주코프를 불러들여 키에프 특별군관구 사령관에 임명하고, 차수(상급대장과 소련방 원수의 사이에 있는
계급)의 계급을 수여했습니다. 주코프는 키에프 군관구에서 임박한 전쟁에 대비한 엄격한 훈련을 실시했고, 그가 훈련시킨 부대
는 다른 곳과는 달리 1년 후 독일의 남방집단군의 진격을 상당히 늦추었습니다. 12월 참모본부에 의해 각 군관구사령관의 회의가
이어졌으나, 주코프는 독일의 소련공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전차, 기계화부대의 편성을 가속하고 공군, 항공부대의
강화를 최중요과제로서 제기했습니다. 이후 1941년 1월 주코프는 붉은군대 총참모장/부국방인민위원에 임명되었고 43년 원수가
되었죠.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으로 (왼쪽부터)영국의 몽고메리, 미국의 아이젠하워, 러시아의 주코프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일 점령 소련군 총사령관을 거쳐 소련 지상군 총사령관이 되었으나, 스탈린으로부터 신임을 잃고 좌천
되었습니다. 스탈린이 죽은 뒤 중앙에 복귀되어 1955년 국방장관, 1957년 당 중앙위원회 간부회원이 되었으나, 10월에 군내 당 활
동문제로 공직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후 1964년 10월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레오니드 브레지네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이 뒤를 이었고, 그들로부터 주코프의 명예는 회
복되었습니다. 주코프는 정계에 복귀하지는 않았으나, 소련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인물 중 한명이었습니다. 후에 제2
차 세계대전 회고록 '추억과 회고'를 집필하여 세계 30개국, 19개 언어로 약 800만부가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주코프는 1974년에 사망했고, 현재 군인으로써 최고의 영예를 받으며 다른 원수들과 마찬가지로 크렘린 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고 합니다.
전선사령관으로서 메 고비 때마다 승리를 거둔 주코프는 스탈린의 질투에도 살아남아 천수를 누렸습니다.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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