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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역사- 바르톨로뮤 로버츠

구름위 2013. 1. 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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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전성기 동안 가장 위협적인 인물들 중 한명이었다. 1682년 Wales에서 태어났으며, 상선을 이끌고 노예무역을 위해 아프리카를 왕래하던 상인으로 1719년 6월, 항해도중 Ghana 앞바다에서 매복중이던 해적 Howell Davis에게 붙잡혔다.

해적이 되기를 강요당하여 할 수 없이 해적선에 머물던 어느날, Principe섬 지사의 명령을 받은 추격대에 쫓기다가 해적선장 Howell이 목숨을 잃었다.

선장을 잃은 해적들은 우왕좌왕 했고 결국 대부분이 Roberts가 죽은 자기들의 선장을 대신해 줄 것을 바랬다. Roberts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더러운 흙탕물에 손을 넣게 되었군... 해적이 된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북아메리카 해안에서 남아메리카로 항해하며 네덜란드 상선과 잉글랜드의 노예무역선을 약탈 하였고, 브라질(Brazil) 연안에 도착하여서는 정박해 있던 42척의 포루투갈 항금 수송선과 70문의 함포를 탑재한 호휘함 2척에까지도 덤벼 들었다.

곧장 황금 수송선 옆으로 접근하여서 탑재하고 있던 모든 함포를 일재히 발사시켰다. 연기에 휩싸인 갑판이 혼란 상태에 빠지자 해적들은 모두 수송선으로 뛰어들었고, 나포한 뒤에는 군함들의 추격을 피해 대서양으로 재빨리 빠져 나갔다. 나포한 포루투갈 수송선에는 포루투갈의 왕에게 바쳐질 엄청난 양의 모피와 설탕, 담배, 보석류, 40,000여개에 달하는 황금($130,000)조각, 다이아몬드, 장신구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비록 Roberts는 사악한 일을 저질렀지만 부하들은 그의 큰 키와 잘생긴 얼굴, 그리고 용기를 매우 부러워 했다. 그는 약탈물 중에 몇점을 골라 자기몸에 둘렀다. 황금 체인에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십자가 목걸이, 빨간깃이 달린 모자, 화려한 옷가지에 실크를 어깨에 두르고 2쌍의 총을 메었다. 부하들은 그를 우러러 봤고 리더쉽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대가 늘어가고 부가 쌓이게 되자, 죽은 해적선장 Howell의 부하였던 Walter Kennedy는 명령에 불복종하며 해적선 Rover를 이끌고 독립하였다.(1721년 해적행위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선고받음.)

1720년 6월, 잉글랜드의 추격대를 따돌리며, 26척의 슬루프 상선을 나포했고, 150척이 넘는 어선들을 약탈했다. 18문의 함포를 탑재한 Galley선을 비롯하여 28문의 프랑스 상선도 나포하여 Fortune이라고 명명 했다. 계속 남하하며 잉글랜드 상선을 닥치는데로 약탈했으며, 프랑스 함대를 포획하면 선원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1720년 9월, Saint Kitts항구를 공격하여 정박중인 2척의 배중 1척을 불태우고 1척을 나포하여 달아났다. 같은해 10월 배의 수리를 하기 위해 다시 Saint Kitts를 포격했고, 항구를 점령했다가 정박중인 15척의 잉글랜드, 프랑스 배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다음해 1월, 32문의 함포를 탑재한 네덜란드 노예무역선을 나포했으며, Saint Lucia 섬에서 대량의 노예들을 매매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프랑스 무역상들을 모아놓고는 14척의 프랑스 상선 모두를 나포하고 노예 무역상들을 모두 붙잡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였다.

나포한 프랑스 brigantine을 기함으로 정하고 이름을 Good Fortune라고 지었다. 곧 이어 Martinique섬의 프랑스 지사 소유인 함포 52문의 전함(man of war)을 나포하였고, 지사의 여자들과 승무원들을 죽이고 지사는 선상에서 교수형 시켰다. 그리고 Royal Fortune라고 명명 했다.

1721년 4월, 그의 악명은 날로 높아만갔고 선원들은 극악무도해서 서인도 제도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었다. 대부분의 항해사들은 그와 함께 연루되기를 꺼려했고, 그가 다니는 항로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보이는 즉시 달아났다. 그야말로 그가 가는 곳는 적막할 만큼 너무나도 조용했다. 한번은 Newfoundland의 Trepassey로 항해중이었고, 그는 단지 10문의 함포만을 탑재하고 고작 6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있었지만, Roberts의 배를 보자 항구에 정박중이던 22척의 배와 함게 모든 승무원들이 모두 도망쳐 항구를 황급히 떠나버렸다.

몇주 후, Martinique 그리고 Barbados의 섬주변에서 머물렀지만 해적소탕을 위해 각국의 해군력이 동원 되었고, 위협을 가해오자 추격해오는 군함을 피해야 했고 또, 약탈물을 매매할겸 아프리카로 항해했다. 그동안 그는 고통받고 있는 섬사람들의 증오심을 표현한 깃발을 구상 중이었다. 한손에는 타오르는 칼을 다른손에는 단검을, 그리고 두 개의 두개골위에 자신을 그렸다. 두개골 아래에는 A.M.H(A Marinican's Head), 그리고 A.B.H(A Barbadian Head)라고 썼다.



1721년 6월, 서아프리카에 도달하자마자 4척의 배를 나포했고, 이중 1척을 선단에 포함시키고 Ranger라 명명 했다. 이어 Liberia로 향하던 onslow호를 나포하여 엄청난 양의 상품을 Royal Fortune로 옮겨 실었다. 1722년 1월 11일, Whydah에 도착하여 11척의 노예 수송선을 나포하였고, 노예를 인수하기를 강요하여, 이를 거절하면 배와 함께 모두를 불태워 버렸다. 같은달 32문의 함포를 탐재한 프랑스 군함을 나포하여 Great Ranger로 명명 지어 함대에 포함시켰다.

Roberts의 오만, 방종은 영국의 무역회사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었고, 온 유럽을 들썩이게 하여 각국의 수많은 해적 사냥꾼들이 그를 잡기위하여 흔적을 따라 추격하기 시작했다.



1722년 2월 5일, 해적 소탕에 나선 전함(man of war) Swallow의 함장 Chaloner Ogle는 Roberts를 잡기위해 추격중이었고, Roberts는 서아프리카의 Gabon의 Lopez 곷에 그의 함대와 정박 중이다가 발견 되었다. 즉시 군함 Swallow에서 막강한 화력을 지닌 Cannon(heavy)포가 발사 되었고, Roberts는 함대를 이끌고 황급히 바다로 빠져나갔다. 10명의 부하를 잃었으며 20명이 넘게 부상당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cabin(선장실)에서 전투준비를 했다. 깃털이 장식된 검정색 삼각모(tricorne)를 쓰고, 붉은색 damask 무늬의 갑옷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그리고 권총들을 장전했다.

Swallow의 함장 Ogle는 해적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Roberts 역시 재정비후 함대를 이끌고 Swallow를 향해 돌진해 갔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화력을 지닌 Cannon포 앞에서는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날아온 포탄에 기함 Royal Fortune의 Mizzen mast가 부러지고 배는 연기로 가득 찼다. 배는 좌초되기 일보 직전이고 부하들은 바다로 몸을 던졌다. 죽어가는 부하들과 날아오는 Cannon포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Roberts는 결국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를 따르던 충성스러운 부하들도 연속해서 날아오는 Cannon포에 맞아 휘청거리자 도망가지도 못한채 모두 항복해 버렸다. 이 와중에 Roberts는 그의 화려한 장신구와 옷가지들을 입은채 날아온 포탄에 맞아 즉사했다.

Ghana해안에서 살아남은 해적 일당 모두가 체포 되었으며, 그 즉시 판결이 내려졌다. 70명의 해적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갔고, 54명의 해적은 교수형, 그리고 남은 37명은 교도소로 보내졌다.



<해적 Black Bart와 2개의 Flag를 내건 기함 Royal Fortune, Ranger >

Roberts는 엄격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단지 차를 한잔씩 마실분 일체의 알코올 음료를 하지 않았으며, 그를 따르는 부하들에게 종교적 활동을 보장 해주어 항상 그의 함대는 즐겁고 행복해 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해적이 되어 극악무도한 인물로 변했으며, 400척이 넘는 배를 무차별 나포하고, 또한 수많은 프랑스 선원을 고문하고 죽였다. 해적의 전성기를 가장 들끊게 했던 인물중의 한명이며, 그의 영원할 것 같았던 삶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의 죽음으로 "Golden Age of Piracy"는 한층 잠잠해 졌으며, 이 이상의 사태는 일어 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