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특히 군대에서 생활할 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먹고 자는 일입니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고 특히 군대에서처럼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나 욕구 해결방법들이 제한되는 곳에서는 더더욱 이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에서는 2차대전 기간 당시에 미 해군들이 무엇을 먹고살았는지를 소형함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식생활 일반
미 해군의 음식은 보통 잘 차려졌고 양도 충분한 편이었습니다. 단, 전함, 항모, 순양함 등의 대형함에 한해서만. 대형함들은 주방 설비도 훌륭했고 기타 부대시설들도 충분했지만 기타 소형함들은 열악한 음식을 오로지 승조원의 인내로 버텨내야 하는 곳도 많았지요.
[구축함의 취사실과 식사를 위해 줄을 선 수병들]
[육상 기지에서는 별로 식사에 제한받을 일도 없지요]
식사는 하루 3번, 7시-12시-17시에 지급되었습니다.(야간에 당직자들을 위한 밤참이 별도로 제공되었음) 아침식사는 보통 토스트, 커피, 분말계란, 토스트에 얇게 썬 쇠고기와 소스를 얹은 것-통칭 SOS : 'Shit on Shingle'(판자위의 토사물)라고 불리는-등이나 팬케이크, 와플 등이 나왔습니다. 그 외에 자주 애용되는 메뉴는 콩 수프, 토마토 소스에 끓인 콩, 프라이한 스팸 등이 있었죠. 케쳡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 조미료였으며 통칭 "빨간 납"이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취사병들이 총동원되어 칠면조 등을 포함한 특별정찬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가장 상황이 안좋을 때는 샌드위치와 커피만으로 며칠을 버텨야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곤 했죠.
[좋은 시절 : 핼지 제독과 수병들의 추수감사절 만찬]
[열악할 때 :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저녁을 때우는군요]
소형함들의 경우, 함선이 해상에 나가 있는 동안 모든 우유와 계란은 보급과 냉장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주로 분말제품 형태로 보급되었습니다. 단지 함선이 오스트레일리아나 진주만에 기항할 경우에만 그런 물건들을 신선한 원형 그대로 맛볼 수 있었죠. 그 외에 건조식품도 많이 사용되곤 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된 것이 건조 감자였고 호박이나 고구마, 심지어 오렌지까지도 건조된 형태로 지급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건조식품들은 대개 물에 푹 담궈서 불렸다가 조리하곤 했는데 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맛도 괜찮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한번은 오스트레일리아에 기항중인 미국 순양함이 영국 구축함에 건조 감자와 분말 계란을 선물한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2일 후 영국 배의 함장으로부터 답신이 왔는데, 그 내용은...
"당신들이 준 감자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우리는 그걸 끓여보고 튀겨보고 쪄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씹히지가 않더군요. 당신들은 도대체 그걸 어떻게 먹는거죠? 게다가 그 분말계란들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게 아니었소. 나는 그걸 두 번쯤 시도했다가 포기했고, 아마 집에서 보내온 통조림이 없었더라면 벌써 굶어죽었을거요."
[건조 감자 : 건조 전과 후의 차이]
[2차대전 시기에 스팸이 널리 전파된건 유명한 얘기죠?]
[육군의 K레이션]
육류는 쇠고기가 주로 지급되었으며 이것은 냉장선으로부터 보급을 받은 직후 3∼4일 이내에 집중적으로 소비되었습니다. 태평양 지역의 더운 기후가 육류를 변질시킬 위험이 높았고 함의 냉장고가 언제나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요. 사실 일부 대형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해군·해병들에게 작전기간동안의 식사는 곧 건조·분말 식품이나 통조림을 의미하곤 했습니다. 거기다가 소형함이 장기간 항해를 계속할 경우에는 육군의 K레이션이 그대로 지급되는 경우도 있었죠. 실제로 타라와에서는 상륙한 해병들이 작전이 끝날 때까지 통조림 식품으로만 연명해야 했으며, 상륙과정에서 통조림에 붙은 라벨이 모두 물에 젖어 떨어져나갔기 때문에 그나마 손에 넣은 통조림이 제대로 된 메뉴이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통조림 캔에 내용물 판독을 위한 기호를 새겨넣기 시작했음)
대형함에는 일전에 언급한 함내PX도 있었고 "Gedunk(일종의 카페테리아)"라고 하여 아이스크림이나 탄산음료, 사탕 등을 파는 조그만 카페 같은 시설도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탄산음료는 함내 소화설비(탄산가스 소화전)에서 파생된 일종의 부산물이었죠. 당연히 소형함에는 이런 설비들을 갖출 여유가 없었고 구축함이나 잠수함 등의 승조원들은 대형함과 조우했을 때 여러 가지 거래를 통해서 아이스크림이나 탄산음료를 입수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어있었습니다. 구축함이나 잠수함이 바다에 추락한 조종사들을 구조했을 때, 이들을 모함으로 돌려보내주는 대가로 아이스크림을 받아오는게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고 하더군요.
[경순양함 브루클린의 카페테리아]
마지막으로, 모든 군인들이 다 그렇지만 미 해군의 수병들 역시 음주에 대단히 민감했습니다. 불행히도 미 해군은 1914년 이래로 전면적인 금주정책을 취하고 있었고 육상기지도 아닌 함상에서 주류를 입수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죠. 하지만 언제나 뚫린 구멍은 있기 마련이고, 일부 고참 수병들은 승선시에 소량의 주류를 숨겨 들여오거나 심지어 스스로 술을 빚기도 했습니다. 가장 흔하게 이용된 것이 건포도(raisin)였고 이것으로 만든 술은 통칭 'raisin jack'이라고 불렸죠. 한편 당시 일부 어뢰의 연료에는 곡물로 만든 알콜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고참 수병들은 그 알콜을 빼내어 "torpedo juice"라는 이름을 붙여 마시기도 했다고 하네요.(물론 이쯤되면 중대 범죄에 속하죠)
2. "사람잡는 맛" - 악명높은 메뉴
역시나 모든 군인들이 다 그렇지만, 군인치고 자기네 부대 짬밥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 단 1명도 없을겁니다.(그것이 실제로 훌륭하던 아니던간에) 미 해군 역시 부대에서 제공되는 음식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수병들은 지급되는 메뉴에 갖은 괴악한 별명을 붙임으로써 이에 화답했죠.
*"Shit on Shingle" : 잘게 썬 쇠고기 조각과 크림을 얹은 토스트
앞에서도 언급한 Shit on Shingle(줄여서 SOS)은 아침식사에 가장 널리 나오던 일종의 토스트로써, 이름의 의미는 '널빤지 위의 토사물'입니다. SOS의 주 내용물인 잘게 썬 쇠고기의 조리법에 군에 도입된 것은 1910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육군의 조리법이 해군에도 넘어가면서 악명높은 SOS의 역사가 시작됐지요.
[Shit on Shingle과 그 원료인 쇠고기칩 : 먹을만해 보이나요?]
조리법은 매우 간단하여 염장된 말린 쇠고기를 물에 불린 후 잘게 썰어서 크림 소스 혹은 토마토 소스와 다진 파슬리, 검은 후추 등을 쳐서 토스트 조각에 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쇠고기에서 소금기를 빼내는 일이었죠. 취사병은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쓸 말린 쇠고기를 물에 푹 담가서 소금기를 빼내야 했고, 실제 조리시에도 쇠고기를 가장 나중에 넣음으로써 조리 과정에서 과도한 소금기가 배어드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습니다. 일부 게으른 취사병들은 저렇게 쇠고기를 담갔던 소금기 가득한 물을 그대로 크림소스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했는데(어차피 쇠고기와 합쳐지면 짠 맛이 날테니), 남은 물은 반드시 다른 수병들이 일어나기 전에 모두 버려야만 했다고 합니다.
1910년대에 미 해군 함정의 1종창고는 대부분 염장 쇠고기나 염장 돼지고기로 채워져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냉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도 최소한 2주에 1회는 저 SOS가 메뉴에 올라오곤 했고 그 외에도 콘비프, 베이컨, 햄, 소세지 등 저장형 육류가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었죠. (20세기 중반에도 나타나는 넬슨 시대의 잔재랄까요?) SOS 자체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1962년의 해군 공식 조리법 교범에도 당당히 올라오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SOS에 대한 수병들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리는 편입니다. 1930년대 말에 취사병을 했던 한 참전자의 말에 따르면, 주로 연장자들은 SOS를 좋아했던 반면 젊은 친구들은 이걸 끔찍하게 여겼다고 하죠. 오늘날에 여기저기 올라오는 회상들을 살펴보면, 계속되는 SOS에 탈영의 의지를 느꼈다는 사람도 있고 될 수 있는 한 SOS를 먹지 않고 버텼다는 사람도 있곤 합니다.
3. 전후 소형함들에서의 식생활
소형함들의 배수량 기준선이 올라가면서 1950년대 이후부터는 소형함들에서도 이전의 대형함들 못지 않은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식생활 면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전쟁 때와는 달리 분말계란이나 분말우유 등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끔씩 드문드문 나오는 예외적인 식재료가 되었죠.
사실 이러한 발전은 함 자체의 설비 개량 외에도 전후에 보다 개선된 해상보급 체계에 기인한 바가 더 큰 편입니다. 함대 내의 각 함선들은 주 단위로 보급함과 접촉하여 연료와 신선한 식재료들을 보급받았고, 덕분에 신선한 우유나 사과, 오렌지 등이 거의 매일 제공되었으며 제한적이긴 하지만 며칠에 한번 꼴로 아이스크림도 나오곤 했다고 합니다. 메뉴는 6주 단위로 순환되었으며 스테이크, 비프 로스트, 폭챱 등 전통적인 식단 외에도 핫도그나 햄버거, 스파게티 등 패스트 푸드에 가까운 메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 어느 구축함의 수병식당]
물론 한계점도 있었습니다. 대전 중에 건조된 구축함들-플레쳐 혹은 기어링 급들-은 FRAM 개장 이후에도 여전히 냉장고 용량이 제한돼 있었고 냉장보관해야 하는 식재료들은 대전기와 마찬가지로 보급 후 며칠이 지나면 모두 바닥이 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1962년에 미 해군 당국은 소형함들의 공간제한 문제에 대한 한가지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전후 발전된 동결건조 기술에 힘입어 거의 모든 식재료들을 건조나 분말 형태로 보급한다는 것이었죠. 분말쥬스, 분말감자, 건조양파에 심지어 압축육까지!!
[공간이 줄어듭니다! : 압축육과 건조 양파, 즉석 빵 믹스]
위의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부피는 대폭 줄어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수병들의 심정은 대체 어땠을까요? 압축육의 대명사인 MRE 등을 구해서 먹어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비프 스테이크나 닭고기 등은 실제 고기라기보다는 가공된 햄의 형태에 가깝고 씹는 맛도 꼭 나무토막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군 생활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게 먹는 즐거움인데 그것마저 뺏긴다면 살맛이 나지 않겠죠. (물론 저런 고기나마 감지덕지할 군대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미국 국내적인 시각에서 생각해봅시다)
[USS 케네디에 승선했던 Len Barrett의 회고]
(전략) 1960년대에 USS 케네디의 식사는 끔찍했다. 저녁식사에 옥수수 튀김과 아스파라거스가 나오는 날 밤에는 불평불만이 거의 폭동 직전에 이른적도 있었다. 그당시 우리는 많은 양의 햄을 먹었고, 입대후 5년이 지났을 때 나는 또다른 햄을 먹게되기 전에 전역을 신청하기로 결심했었다. 다행히도 불만이 폭발한 후에 조리장이 음식 질의 개선을 약속했고 그후로 우리들도 장교들의 그것에 준하는 수준의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장기간의 작전이나 악천후로 보급이 지연되어 식량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적도 있었습니다. USS 올렉(DD-886)이 1979년 혹은 1980년 3월경에 당한 일이 바로 그런 예이죠. 식량이 떨어지기 며칠 전부터 징조가 보이기 시작해서, 사태 발생 3일전에는 평상시와 같이 매쉬드 포테이토와 로스트 비프 등 정상적인 식단이 제공되었지만 1인당 양이 제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3일 후에는-모항에 복귀하기 하루 전날-저녁식탁에 올라온 것은 1인당 콩 꼬투리 튀김 몇 개와 삶은 소세지 1개 뿐이었다고 하죠.
[바베큐 데이 파티 : 때때로 이런 좋은 날도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함상 식생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특히 부각해서 글을 쓰긴 했지만, 소형함에서의 식생활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당시의 식생활 수준을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것으로 회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역시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공간을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대형함에 비해서는 확실히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었죠. 저런 압축육이나 냉장고 용량 등의 문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쳐 급, 포레스트 셔먼 급 등 대형화된 구축함들이 도입되면서 서서히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4. 마치며..
비교적 수병들의 생활수준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 미 해군에서도 소형함의 승조원들은 상대적으로 나름대로의 고충이 많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비도 설비거니와 예산에서도 영세성을 면치 못했던 우리 해군의 승조원들은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런지요.
[격세지감 : 1920년대와 1980년대의 차이]
또 한편으로 군대 밥에 대한 불평이란 꼭 우리에게만 국한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기도 하군요. "shit on shingle"도 그렇고 남북전쟁 때 군인들이 "하드택"(오늘날의 건빵의 조상)을 '이빨 분쇄기', '벌레의 성', '철판 크래커' 등으로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져 오며, MRE를 '모든 사람이 거부하는 음식(Meal Rejected by Everyone)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군대에서 나오는 국을 '똥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군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나오는 공통성이랄까요? 아무튼 군대 밥에 대한 군인의 심성이란 지역과 시대를 넘는 공감대가 있나 봅니다. 아마 몇 십년이 지나고 군대의 식사 수준이 대폭적으로 올라가도 아마 군대 밥에 대한 불평과 괴악한 별명들은 그때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지 않을런지요.
p.s. 여러 분들도 '이것만은 정말 끔찍했다'는 메뉴가 있으셨겠죠? 저는 제 말년쯤에 나타났던 "고등어 김치조림" 이라는 해괴한 메뉴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는데, 다른 분들의 경험은 어떠신가요? ^^;;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Mark Henry, 『The US Navy in World War II』, 연대 미상, Osprey Publishing
- http://www.foodhistory.com/foodnotes/leftovers/ww2/usn/pla/index.htm
- http://www.ussmullinnix.org/Food.html
- http://www.gyrodynehelicopters.com/feeding_a_destroyer_crew.htm
'전쟁..... > 해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덴마크해군의 역사 - 1500년부터 1945년까지 (0) | 2013.02.18 |
---|---|
영국해군 항공모함 (0) | 2013.02.18 |
구(舊) 소련 잠수함대의 해저 2만리 (0) | 2013.01.15 |
`Lady Be Good(착한 숙녀)`호의 비극 (0) | 2013.01.05 |
적기 150기와 맞선 구축함 해드리 - 특공기 23기 격추한 미 해군 구축함의 전투 이야기 (0) | 2013.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