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스크랩] 후기 로마군의 급여 (6) 9세기 로마군의 연봉 체불 문제

구름위 2012. 10. 5. 11:35
728x90

  후대 황제들은 테오필루스의 840년도 급여 규모에 그렇게 극적인 변화는 주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보는 바대로 콘스탄티누스 7세는 레오 6세의 급여 목록에 대해 기록했으며 스트라테고스들의 급여는 금 40, 36, 24, 12, 6파운드에서 40, 30, 20, 10, 5파운드로 변했지만, 콘스탄티누스 7세는 이 값이 마치 어느 정도 시기 전에 쓰였던 것으로 언급한다.

 

 크레모나의 리우트프란트는 950년도에 콘스탄티누스 7세의 급여 등급을 위에서부터 언급하면서, 받는 이의 어깨에 지고 다녀야만 했을 정도의 큰 금 한 자루에서 시작하여 질질 끌고 다녔어야 했을 정도의 총합까지 가며, 그리고 나서는 금 24, 12, 7, 6, 5, 4, 3, 2, 1파운드까지 내려간 후에 개별적으로 지불 받았던 1파운드 미만까지 간다.32

 

 아마 첫 등급은 40파운드였을 것이다. 리우트프란트는 그게 840년도에 40파운드를 벌었던 스콜라이의 도메스티코스와, 870년 경 영구적인 수군과 노군을 얻어 연봉을 겨우 12파운드만 받았던 840년도 때보다는 훨씬 더 중요해진 바실리콘 플로이몬의 드룽가리오스에게 갔다고 말한다.

 

 36 파운드 등급은, 오직 콘스탄티노폴리스 바깥의 스트라테고스들에게만 주어졌겠지만 840년도 때와 같이 그 다음 반열에 주어졌던 게 분명하다. 리우트프란트는 24 파운드 등급이 그 다음에 왔고, 마기스테르 등급에 있는 관리 24명에게 갔다고 말한다-840년도에는 마기스테르가 한둘 밖에 없었다.33 리우트프란트는 파트리키오스들이 그 다음에 왔고, 840년도에 그랬듯 12파운드씩 받았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알 자미가 언급했던 모든 등급을 1파운드까지 아래로 말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리우트프란트는 7, 5, 4파운드 등급을 추가하지만, 이것들은 그의 실수일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그는 그 시점이 되면 등급들 사이의 차이가 1파운드가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의식에 두었던 주된 관심은 그것에 참여할 기회를 찾는 것이었다-그는 그 의식의 끝에서 감언이설로, 정중한 황제에게서 그를 위한 금 1파운드를 울궈냈다. 어떤 경우에서든, 레오 6세 치하에서 20, 10 파운드였던 급여 등급은 콘스탄티누스 7세의 시기에선 테오필루스 때와 같은 24, 12 파운드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30, 5 파운드였던 등급들도 테오필루스 시기와 같은 36, 6으로 환원되었을 것이다.

 

 레오 6세의 최고 급여 등급 인하는 얼마 가지 못한 조치였던 것 같고, 이미 콘스탄티누스 7세 시기에서도 잊히고 있다. 급여들이 레오 6세 치하에서도 842년도와 같았다면, 테마들 수의 점진적인 증가는 자기 봉급을 그 세입에서 충당했던 서부 스트라테고스들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해도, 스트라테고스들의 급여에 들어가는 총합을 점점 높여 842년도에는 448 파운드(32,356 노미스마)였던 것을 910년도에는 526파운드(37,872)까지 만들었을 것이다.34

 

 레오 6세의 급여 삭감은 스트라테고스들에게 들어가는 급여 재고를 3 파운드(26,640 노미스마)로 만드는 것이었으며, 이를 벌충하기 위한 양보다 더 많았다.35

주32. Liudprand of Cremona, Antapodosis, VI. 10, pp. 157 -158 .

주33. Oikonomides, Listes, 294.

표 10 842년도 비잔티움 군대의 급여 총액

부대

수장의 연봉(파운드)

보유 병사 수효

인원 총계

급여 총액

아시아의 테마들과 클레이수라이들

아나톨리콘

40

15,000

15,474

153,378

아르메니아콘

40

9,000

9,288

93,654

트라케시온

40

10,000

10,318

103,392

옵시키온

36

6,000

6,193

63,072

부켈라리온

36

8,000

8,256

83,196

카파도키아

24

4,000

4,131

42,300

파플라고니아

24

5,000

5,162

52,254

칼디아

12 a

4,000

4,131

41,436

카시아논 b

6

4,000

4,131

41,004

셀레우키아 b

6

5,000

5,162

50,958

아시아 총합

264

70,000

72,246

724,644

유럽의 테마들

트라키아

24

5,000

5,162

52,254

마케도니아

36

5,000

5,162

53,118

유럽 총합

60

10,000

10,324

105,372

서방의 테마들

펠로폰네소스

0c

2,000

2,069

20,592

키비라이오톤

12

2,000

14,570

147,204

헬라스

0c

2,000

4,399

43,452

시칠리아

0c

2,000

2,070

21,096

케팔로니아

0c

2,000

2,069

20,592

테살로니카

0c

2,000

2,069

20,664

디라키움

0c

2,000

2,069

20,664

클리마타

0c

2,000

2,069

20,664

서방 총합

12

16,000

31,384

314,928

타그마

스콜라이

40

4,000

4,125

59,328

엑스쿠비토레스

12

4,000

4,125

50,112

비글라

12

4,000

4,125

48,240

이카나토이

12

4,000

4,125

48,240

누메로이

12

2,000

2,064

24,048

옵티마테스

12

4,000

4,125

42,444

테이치스타이

12

2,000

2,064

24,048

타그마 총합

112

24,000

24,753

296,460

전체 군대 총합

448

120,000

138,707

1,441,404

a 자기 테마의 세입에서 금 12 파운드의 추가 급여를 받았다.

b 클레이수라이

c 자기 테마의 세입에서 금 12 파운드의 급여를 받았다.

계급당 수효

계급

902년경 이전

902년경 이후

코메스

1

1

켄타케스

5

2

펜테콘타케스

-

4

 레오 6세는 켄타케스의 지휘 단위를 40명에서 100명으로 늘리고 50명을 지휘하는 펜테콘타케스를 신설했을 때 급여 총액을 약간 늘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200명 단위 부대인 반둠의 정규 장교들을 각기 여섯에서 일곱으로 늘렸다.

 

주34. 급여 총액은 사모스와 아이가이온의 각 스트라테고스들에게 12파운드씩, 세바스티아, 리칸 도스, 레온토콘의 클레이수라코스들에게 각기 6파운드씩 주는 한편 카시아논의 클레이수라코 스의 급여는 6파운드에서 24파운드로 오른 것에 의해, 증가되었을 것이다.

주35. 콘스탄티누스 7세, De Ceremoniist 696-697 참조.

 

 총계는 레오 6세의 재위기까지, 총원 약 13만명에 대한 장교 650명으로 늘었을 것이다.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대로 레오가 켄타케스들과 펜테콘타케스들에게 각기 18노미스마씩 급여를 줬다면 늘어났을 11,700 노미스마는, 상당히 사소한 정도였을 것이다.

 

 레오 6세는 확실치 않은 비율로 투르마케스들과 드룽가리오스들의 수효도 늘렸으며, 아마 거의 두 배에 가까웠을 것이다. 투르마케스들은 때문에 840년도의 26명에서 50명 가까이, 드룽가리오스들은 840년도의 96명에서 200명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투르마케스들이 여전히 216 노미스마를, 드룽가리오스들이 144 노미스마를 받았다면, 증가량은 약 20,000 노미스마 정도가 될 것이다.36

 

 이 총합은 90,000 노미스마의 비용을 초래했을 911년의 신병들 10,000명에 대한 비용보다는 적은, 양호한 정도였다. 이것들 중 정말로 중요한 증가를 나타내는 건 없다.

 

 이런 이론적인 연봉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자주 지불되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솟아오른다. 리우트프란트는 950년도에 콘스탄티누스 7세가 연봉을 주는 것을 보았으며, 이는 분명 오랫동안 확립된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867년도에 미카일 3세의 급여 지급 20,000파운드는 확실히 한 해에 대한 것이었으며, 미카일 3세는 절망적으로 돈이 부족했기에 그 당시의 최근 기억에서 선례가 있었다면 체불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때문에 840년도를 돌아보게 된다. 한편, 알 자미의 작업물에 기반을 두는 문헌들은 군인들이 3년마다 급여를 받는 게 보통이었고 때때로 4, 5 혹은 6년마다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주장한다.37

 

 하지만 알 자미의 직접적인 비잔티움의 경험은 그가 몸값을 치르고 석방된 845년도에 끝나며, 그의 거의 모든 지식은 840년도에 준비된 공식 비잔티움 정보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알 자미가 837~845년도에 그를 지켰던 군인들에게서 급여를 늦게 지불 받는 것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면, 그들은 그냥 840년도에 끝난 관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알 자미가 활용하고 있었던 공식 문서의 서문은 이전 시기의 군인들이 3~6년 늦게 봉급을 받는 일이 잦았지만, 당시의 인색하지 않은 황제 테오필루스가 군대의 급여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즉시 그것을 줬던 것을 언급했을 가능성이 아마 더 높을 것이다.

 

 그런 책임감은 27년 후 그것을 깬 미카일 3세에게는 어려웠을 것이며 그때는 재정적으로 곤란한 시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결론은 확립된 또 다른 증거의 현대적 해석과 부합하진 않는다. 콘스탄티누스 7세는 “옛 시기의”테마들이 “4년마다”급여를 받았다는 군사 훈령을 기록했으며, 이는 다음 스케쥴을 따라 이뤄졌었다.38

 

1년: 아나톨리콘, 아르메니아콘, 트라케시온.

2년: 옵시키온, 부켈라리온, 카파도키아.

3년: 카시아논, 콜로니아, 파플라고니아.

4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칼디아.

 

 마이클 핸디는 이 스케쥴의 원래 형태가 7세기 중반에 테마들을 창설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테마의 군인들은 그 이래로 비슷한 주기로 봉급을 받아왔을 거라 추측한다.39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마법의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