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당시, 75mm 포를 탑재한 셔먼은 구형으로 머잖은 장래에 미군에서 퇴역할 전망에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이미 90mm 포를 갖춘 M26이 등장했고,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M26과 이를 개선한 후계차량이 속속 전선에 투입되었죠. 이런 부분만 보면 그렇게까지 빗나간 견해는 아닙니다. 문제는 위에 링크한 제 포스팅에 적었듯, 미군 상층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한국군에 아예 전차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더불어 말하자면, 75밀리 운운한 부분이 전적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셔먼의 초기형 주포로 탑재했던 75밀리 포는 프랑스제 야포인 M1897을 기반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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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neider 75mm M1897
(사진출처 : 여기)
이 포는 발사속도가 빠르며, 명중율과 위력도 좋은 편이어서 전차포로 사용한 미군 뿐 아니라 원 제작자인 프랑스군과 이를 노획한 독일군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포를 대전차포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기본 베이스가 원래 야포인데다가, 아무래도 개발 시점이 19세기이니만큼 괴물같은 놈들이 난무하는 2차 대전의 기갑전장에서는 계속 살아남기 힘들었고, 결국 미군은 76mm 전차포를 새로이 개발, 신형 셔먼에 탑재하여 투입하게 됩니다.
이 부분까지만 보면 저 인용문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76mm를 75mm로 착각하는 정도야 누구나 할 수 있고, 그 정도 실수는 인정하고 수정하면 그만이니까요. 문제는 저 인용문이 주장하는 것처럼 셔먼의 신형 주포가 영국군의 25파운드 포를 들여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딱 한 가지 근거만 들어 볼까요? 25파운드 포의 구경은 말입니다.
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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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www.vanderweel.info/atlantikwall/pictures/arm_fort_sill_artillerie_25_pounder.jpg)
44년부터 일부 재치된 신형 셔먼의 M1 76mm 주포는 미국이 1942년에 대전차용으로 독자 개발을 완료한 것입니다. 글쎄요, 지금 이삿짐이 다 정리되지 않아 책을 못 찾겠습니다만(웹을 뒤지자니 영어가 짧아서...), 기반을 따지자면야 외국제 화포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기 위쪽에 있는 어느 분의 주장에서처럼 "영국제 25파운드를 들여온" 것은 전혀 아닙니다. 라이센스도 아니고 직도입도 아닙니다. 애초에 구경부터 전혀 다른 포를 어떻게 같은 걸로 취급한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25파운드 포는 주 용도가 대전차포가 아니라 지원용 야포입니다. 위키에서의 분류도 Howitzer(곡사포)로 되어 있지요.
어쩌면 저 분께서는 25파운드가 아니라 17파운드 포를 이야기하려던 거였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군의 17파운드 포는 잔짜 대전차포로 개발, 사용된 물건으로 맞기만 하면 티거도 잡을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으니까요. 그리고 영국군은 이 17파운드 포를 견인식 대전차포로 썼을 뿐 아니라 미국제 셔먼 전차에 탑재하여 전차포로도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17파운드 포는 구경도 76.2mm로, 미국제 76mm 포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만하면 포 명칭을 착각했을 뿐이라는 설명이 통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여기에 또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이 그 포를 사용한 적 없다는 겁니다.
영국이 17파운드 포를 먼저 개발한 다음, 이걸 미국에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개발중인 같은 구경의 자기네 대전차포(M1 76mm)를 사용하겠다며 영국의 제안을 거절했고, 양국은 구경은 같지만 전혀 다른 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두 대전차포는 구경만 같을 뿐 탄약부터 시작하여 모든 스펙이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 전차포는 영국제를 들여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들여온 거니까 아깝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걸 돈 주고 사온 게 아니라 그냥 얻어오거나 싸게 샀어야 할 겁니다. 제값 주고 사왔거나 라이센스만 얻어서 직접 생산했다면 그건 "들여왔어도 아까운"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요? 물론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은 남아도는 엄청난 양의 자국산 군사장비를 외국에 증여하거나 고철로 폐기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필요한 이상으로 남았고,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까" 였지 "들여온 거"여서는 아니었거든요. 애초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장비를 "들여올" 필요가 있기는 했던가요?
제가 알기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장비 설계를 도입한 사례(롤스로이스 멀린 엔진 등)는 있습니다만, 전쟁 이후에 남아돌 정도로 전차포 따위의 장비를 인수한 사례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기능하여 자국군 뿐 아니라 자유프랑스군, 소련군, 영연방군, 중국군 기타 등등을 모조리 무장시킨 미국이 뭣하러 영국제 장비를 들여다 자국군에 무장시킨단 말입니까. 설사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주포를 제외한 차체와 엔진은 몽땅 미국제인데 이건 아까운지 안 아까운지 따져볼 가치도 없다는 말인가요? 주포 하나가 나머지 차체 전부보다 중요한 겁니까?
현재까지 논쟁이 진행되는 경과를 훑어보니, 맨 꼭대기의 주장을 펴신 분께서는 "셔먼의 포가 영국제든 아니든, 내 주장에는 문제가 없다" 하고 반응하실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셔먼이 달고 있는 주포는 영국제이므로 한국에 줘도 문제가 없었다"는 전제가 완전히 무너졌는데도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겠죠. 최종적인 결론인 "셔먼의 75mm(인용이므로) 주포가 T-34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니 미국이 이를 공급하지 않은 것은 한국군을 강화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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