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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크랩] 역사의 라이벌 히틀러와 스탈린

구름위 2012. 10. 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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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권력을 움켜쥔 히틀러는 재군비를 선언하고

1939년 체코 영토를 빼앗은 뒤 스탈린과 불가침 협정을 맺는다.

그리고는 한달뒤 폴란드 공격을 감행하여 이를 소련과 분할 점령한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

 

독일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단번에 북유럽을 제패하고 프랑스를 항복시켰다.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는 여세를 몰아 소비에트 진격을 명령한다.

당시 소련과 동유럽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불의의 기습으로 러시아는 후퇴를 거듭하였고, 독일은 모스크바에 임박하였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겨울이 닥치자 궤멸되었으리라 믿었던

러시아군은 오히려 더 증강되어 독일군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히틀러는 의문에 빠졌다. “도대체 저 많은 탱크와 전투기는 어디서 나오는거지?”

 

스탈린은 몇 년전부터 서부에 집중된 공업단지를 동부에 고루 분포시켰다.

그 정책은 다른 이유에서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만약 독일의 정보대로

소련의 공업단지가 서부에 그대로 남았더라면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부터

히틀러는 이성을 잃어버렸고 소련군은 독일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분노한 히틀러는 전선의 사령관들을 이때부터 불신하게 된다.

그때부터 히틀러는 모든 지휘권을 혼자 행사하게 되는데

이는 소련 침공에 이은 히틀러의 두 번째 전략적 실수가 된다.

 

반대로 스탈린은 개전 초기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소련 군부를 끝까지 신뢰하였다.

그는 모든 지휘권을 군 지도부에 맡기고 보고만 받았다.

이것은 소련군이 각 상황에 따라 유기적인 전술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독일은 그 상황이 반대였고, 히틀러의 명령은 한가지 뿐이었다.

“빌어먹을 후퇴는 안돼! 위대한 독일군은 끝까지 자리를 사수한다.”

이것으로 독일군은 각 부대와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고

고립되거나 포위되어 하나씩 궤멸되었다.

 

이때마다 히틀러는 해당 사령관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군의 유능한 사령관들은 줄어 들었고

병사들은 신참자가 나이어린 10대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당시 연합군은 독일과 협상할 용의가 있었으나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만을 외치며

모든 독일인들의 영광스런 옥쇄만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한곳으로 집중되어야 할 군사력이 분산되는 결과가 되었고

결국 소련군이 들이닥치기 한 시간전에 권총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히틀러에 대한 호기심이 강렬했던 스탈린은 그의 죽음을 믿지 않았고

그의 측근들을 소련으로 끌고와 무려 4년 동안 혹독하게 심문하여

'히틀러북'을 완성시켰다. 그 문서는 50년 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히틀러는 자기보다 유능한 부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스탈린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여 승리를 쟁취하였다.

 

 

출처 : 요트고래사냥
글쓴이 : 베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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