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일본 전국시대 배경설명(7_1)-전국시대 영웅들의 일화와 교훈(1)

구름위 2012. 12. 25. 20:37
728x90

호조 소운(?早)- 백성의 마음부터 훔친다 

다이묘로 성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슈고(각 지방의 경비와 치안 유지를 담당하다가 영주로 변함), 슈고다이(슈고가 임지에 오기 전 또는 교/도로 가 있는 동안 업무를 본 슈고 대리로 슈고를 몰아낸 경우가 많음), 가로(가신 중의 우두머리)가 아니면 아무리 못해도 지또(地頭: 영지에서 조세 등의 업무를 맡았던 하급관리)였다.

 

그림 설명: 호조 가문의 초상화. 가장 오른쪽이 소운으로, 모두 같은 자세인 것이 재미있습니다. 살았던 시대가 틀려서 가족사진 찍은 것도 아닐텐데요. 3대 연속으로 영웅이 태어난 덕분에, 맨주먹에서 시작해 관동일대의 사자로 불렸지만 우지떼루에 와서 멸망하게 됩니다. 하필 나라를 훔친 곳이 다께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 옆 동네라는 것도 불운했고요.

아래 그림은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위치입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그림이라 다시 가져옵니다. 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슈고에서 다이묘로 올라간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께다 신겐(武田信玄),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오우찌(大?)가문이 있었고, 슈고다이 출신으로는 아사꾸라 요시까게(朝倉義景)와 아마꼬(尼子) 가문, 지또 출신은 모리 모또나리(毛利元就)가 있었다.

이런 최소한의 배경도 없이 밑바닥부터 자신의 힘으로 다이묘의 지위까지 올라간 인물이 딱 세명이 있었는데, 이미 잘 알고 있는 도요또미 히데요시, 사이또 도산(?藤 道三) 외에 호조 소운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도산과 소운은 나라를 훔친 도둑으로 잘 알려진 인물로, 사이또 도산은 사위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영지를 물려주려다가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앞에서 설명했던 내용이다. 호조 소운은 도산과 달리 5대에 걸쳐 100년이나 가문을 잘 유지했고, 도요또미 히데요시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고 맞서다가 결국 멸망당했지만 호조 소운이 세운 '백성을 사랑하는 인과 덕의 정치' 때문에 이곳으로 영지를 옮긴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많은 고생을 하게 된다.

 

호조 소운이 인과 덕의 정치를 처음부터 배운 것은 아니다. 그가 무리를 지어 학정을 펼치던 지역의 작은 영주 하나를 죽이면서 나라 훔치기에 나서지만, 자신을 해방자로 반겨줄 것으로 여겼던 농민들은 거꾸로 산으로 모두 도망가버리고 마을에는 중병에 걸린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텅빈 마을에 도착한 소운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처럼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운은 부하들에게 세명이 한 조를 이뤄 노인을 24시간 간호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를 이끌고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와 직접 노인들을 치료하시 시작한다. 다행히 노인들이 건강을 되찾으면서 호조 소운을 믿기 시작하고 노인들이 산으로 올라가 자식들을 설득해 데리고 내려온다. 그리고 소운은 마을에 다음과 같은 푯말을 세워 농민들을 환영한다.

- 부하들의 난폭한 행동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엄벌에 처한다.

- 마을 사람도 난폭한 행동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엄벌에 처한다.

- 나는 마을에 오래 머무르고 싶기 때문에 여러분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호조 소운은 관동지방을 훔친 다음에도 인과 덕의 정치를 잊지 않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

- 세금은 다른 나라의 절반으로 한다.

- 연장자를 존경하고 소중히 여긴다.

- 여성도 매우 중요한 존재로 서로 존경해야 한다.

- 아이들의 재능을 키우고 보살펴야 한다.

 

호조 소운에게는 다른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는데, 말을 훔친 도적을 잡아 처형하기로 했었다. 소운이 있는 것을 본 도적은 "나라를 훔친 도둑은 그냥 두고 말한마리 훔친 나는 목을 자르냐?"라는 고함을 친다.

당황한 병사들이 말도둑의 목을 자르려 하자, 소운이 "네 말이 맞다. 살려줘라."라고 하며 그를 놓아준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조작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백성들은 "자신을 모욕한 도둑까지도 마음 넓게 용서하신 분이다. 그는 믿을 수 있는 분이다"라는 소문이 지방 곳곳까지 퍼지게 된다 

 

고바야까와 다까까게(小早川隆景) -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고바야까와 다까까게(그림 참조. 무지하게 커집니다.)는 모리 모또나리의 셋째 아들로 고바야까와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모리 가문을 도운 사람으로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5대 가로였으며 뛰어난 지혜로 일본의 방패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결단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검토를 해야 한다. 결단이 내려지면 절대로 망설이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으로 유명했다.

 

생각이 떠오르면 갑자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받아적어라"하는 말을 자주 했는데, 느닷없는 명령에 당황한 가신이 글씨를 틀리거나 너무 긴장해서 손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더라도 다른 무장처럼 짜증을 부려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만들지 않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받아적어도 된다. 붓을 내려놓고 눈을 감아라.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센 다음에 다시 받아적을 준비를 해라"라는 말로 부하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다께다 신겐은 이야기를 듣는

1. 안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사람

2. 말을 하는 도중에 자리를 뜨는 사람

3. 이야기에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사람

4. 얼굴이 아닌 가슴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 중에서

4번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꼽았지만 다까까게는

1. 무조건 이해했다고 대답하는 사람

2.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3. 일단 모두 들은 뒤에 다시 질문하고 확인한 후에 이해했다고 대답하는 사람 중에서 3번째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꼽았다.

그만큼 부하의 의견에 받아주었다는 것이다.

 

고바야까와 다까까게의 배려하는 마음을 잘 알려주는 일화가 또 있는데, 요즘 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쥐어짜고 있는 갑은 무려 400년 전에 있었던 고바야까와 다까까게의 마음 씀씀이를 배웠으면 한다.

다까까게가 교또에 상주하고 있을 때에 금전출납을 담당한 현지 사정에 밝은 상인을 고용했다. 이재에 밝았던 상인은 최선을 다해 금전지출을 관리했고 다까까게가 귀향할 때에 "제게 맡겨주신 돈 중에 남은 금액을 돌려드립니다"라며 칭찬을 기대했다.

 

반대로 다까까게는 불같이 화를 내며 "회계는 잘 몰라도 물건 가격이나 노임에 대해 짐작하고 있다. 교또 생활에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갈 지 충분히 계산한 뒤에 네게 맡긴 것인데, 이만큼이나 남았다면 네가 지위를 이용해 터무니 없는 가격을 요구했거나 임금을 깎았기 때문이다. 네 놈은 내 명예를 더렵혔다. 그 동안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돈을 당장 돌려주어라. 돈을 아끼는 것보다 예산을 모두 사용해서 주군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 부하의 역할이야."라는 명령을 내렸다.

400년 전의 무식한(지금에 비해) 무장도 이런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의 비정규직, 하청업체 쥐어짜는 대기업은 경영학에서 뭘 배운 것인지...

 

구로다 조스이(구로다 간베에, 黑田官兵衛) - 너무 뛰어나 꽃피지 못한 천재성

 

 

도요또미 히데요시에게는 용맹한 무장도 많았지만 천재적인 군사(軍師)도 많이 모였는데 그 중에서도 구로다 조스이는 감각적인 판단으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만 모리 가문과 전투 중이던 주군 도요또미 히데요시에게 "이제 천하는 주군의 것입니다"라는 말을 해서, 그의 판단력에 놀란 히데요시가 거꾸로 그를 경계하고 중용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천하를 손에 쥔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주위 다이묘에게 "내가 죽은 후에 누가 천하를 움켜쥘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모두들 "마에다 도시이에님입니다." 또는 도꾸가와 이에야스님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는데, 히데요시가 고개를 저으며 "내 뒤를 노리고 있는 인물은 규슈 한 모퉁이에 있는 머리벗겨지고 다리를 저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스이는 주군인 히데요시가 얼마나 자신을 경계하는 지를 깨닫고 머리를 완전히 민 다음에 주군을 찾아가 "아들 나가마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해서 가문을 보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들 구로다 나가마사가 세끼가하라 전투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준 보답으로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손을 잡고 친히 감사의 인사를 나누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한심한 놈. 놀고 있던 왼손으로 이에야스를 찔러 죽였어야지"라는 말을 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우에스기 왈: 자신의 재능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이에야스가 천하를 쥐는 것을 보고 많은 한탄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천하를 쥐려면 시대와 지리적인 위치도 중요하다고 했죠)  

그는 고바야까와 다까까게에게서 판단과 결정을 한 박자 늦추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신중한 결정으로 자식들에게 교훈을 남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구로다 가문을 경계해 영지하사를 명목으로 멀리 떨어진 후꾸오까의 지꾸젠 지방으로 이전시켜 중앙정치에서 완전히 격리시킨다. 새로 부임한 구로다 가문의 정책에 현지 상인들이 반발하자. 구로자 조스이는 반대여론을 탄압하거나 조작하려고 하지 않고 이견회(異見會)를 조직해 다른 사람과 다른 의견을 수용해 평화로운 정치를 한다.

 

- 이견회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발언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다.

- 이견회에서는 발언의 자유가 있다. 발언에 대해 인사상 보복을 할 경우 엄벌에 처한다.

- 이견회에서 결정된 내용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신들이 아들 나가마사(?田長政)보다 은퇴한 자신을 계속 따르자, 일부러 중신들을 공공연하게 험담하고 비난을 해 그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나가마사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사망할 때에도 유품으로 조리(일본샌달)과 게다(나막신)을 남겨주는데, 지혜로운 아버지가 주신 뜻을 헤아리지 못해 고심하던 아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네 단점을 깨우쳐주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너무 의미를 찾지 말아라"라며 마지막 교훈을 남겨준다.

 

도요또미 히데요시 - 최고의 자리에서도 잊지 않은 초심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최하급 무사에서 천황을 보필하는 간빠꾸(?)의 자리까지 오른 일본에서 자랑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우리 귀에 안 좋은 역사로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출신에는 하급무사, 닌자, 상인 등 여러 설이 있는데 아마도 늦은 시기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채용되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급무사로 여러 가문을 전전했었는데, 당대 최대 실력자인 이마가와 가문에서도 일을 했었다.

 

그림 설명 : 아마도 벚꽃놀이 중으로 보이는데, 히데요시는 요즘으로 말하면 마케팅의 천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즐겼고 심지어 원정을 갈 때에도 일부러 느리고도 호화찬란한 행차로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15세 정도의 나이에 이미가와 가문의 가신인 마쓰시따 가헤라는 무장을 모시게 되었는데, 성실하고 헌신적인데다가 똑똑했기 때문에 잡일에서 재정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승진하게 된다. 밖에서 굴러온 인물이, 그것도 우습게 보이는 외모의 인물이 중역을 담당하자 가신들이 하나같이 질투를 하며 마쓰시따 가헤에게 험담을 하고 모략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집안의 평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가헤는 히데요시에게 충분한 보상과 함께 이마가와의 다른 가신에게 추천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히데요시는 자신에게 씌워진 억울함을 증명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 보상금도 받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는데, 이마가와 가문은 혁신과 능력보다는 융화와 인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당시 최고의 전력을 갖췄던 이마가와 가문은 상상하기도 힘든 오다 노부나가라는 애송이에게 멸망을 당하고 만다. 이 때의 경험으로 히데요시는 "주군이 부하를 고용할 때에는 1년의 시간을 두고 부려서 도움이 안되면 해고해야 한다. 주군을 섬길 때에는 3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도 가능성이 없는 주군이라면 떠나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남긴다. 당시로는 용납할 수 없는 하극상이지만, 현대식 경영과 직장관에 잘 맞는 앞선 생각이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미천했던 출신배경과 못생긴 외모를 보상받기 위해 심한 사치를 즐기고 가신들에게도 상당한 허세를 부린 일화가 많은데, 히데요시가 자신이 지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깊은 산 단풍 사이 개똥벌레의 노랫소리", 주위의 가신들이 모두 아부를 떨고 있는데 시의 명인이었던 사또무라 조하가 "전하, 개똥벌레는 울지 않습니다"라고 평한다.

 

히데요시는 웃으면서 "그런가? 내가 울라고 하면 이 나라에서 울지 않는 것이 있을까?"라고 묻고, 싸늘한 분위기에 눌린 사람들이 모두 조하의 입만 쳐다 본다. 조하는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개똥벌레도 즉시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정말 멋진 시입니다"라고 대답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림 설명: 아주 멋진 무장모습의 인증샷(?). 물론 완전 조작입니다. 각종 그림에서는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한 모습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 번 말했었죠? 히데요시는 그림에서와 같은 햇살무늬 투구를 썼는데, 이것이 황금색으로 굉장히 화려합니다. 일본에 가시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히데요시도 초심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히데요시가 옛생각이 나서 시녀들을 이끌고 죽순을 캐러가겠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산은 죽순이 많지 않은 산이었다. 고민에 빠진 가신들은 히데요시의 행사 전날 모든 산에 죽순을 심어놓는 말도 안되는 준비를 해둔다. 시녀들이 가는 곳마다 죽순이 있고 옮겨심은 것이라 손만 대면 뽑히니 행사는 대성공을 거둘 수 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히데요시가 성으로 돌아와서 가신들에게 "고생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죽순이 너무 많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초심을 잊지 않은 또 하나의 일화로 이미지 정치를 위한 각색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교훈을 주니 한 번 보도록 하자.

히데요시는 나고야 근처의 농촌출신인데 그곳이 우엉의 명산지였다고 한다.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군단장으로 출세하자 고향의 농민들이 매우 기뻐하며 우엉을 캐서 바쳤다고 한다. 잊고 지냈던 고향의 선물에 감격한 히데요시는 "앞으로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며 보답을 했고 매년 농민들은 우엉을 캐서 바쳤다.

히데요시가 천하의 주인이 되자 고향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제 우엉따위를 바치기에는 히데요시가 너무 높은 인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모아 에찌젠의 비싼 직물을 바쳤는데, 히데요시는 "아무리 비싼 선물도 내게는 하찮은 물건일 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고향의 우엉인데, 이런 걸 들고오다니 나를 우습게 봤구나. 이제 너희는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이다"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결국 다시 우엉을 가지고 와서 용서를 빌자 "내가 우엉을 반긴 것은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도 오만을 경계하고 초심을 유지하게 해주는 좋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비싼 선물은 나를 오만하게 만들 뿐이다. 앞으로도 내게 우엉만을 가져오도록 해라"라며 다시 세금을 면제해주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 임종을 앞두고 벌인 공금횡령 조사

 

마에다 도시이에(그림참조. 클릭하면 커집니다.)는 도요또미 히데요시와의 평생 우정으로 유명한 인물로, 히데요시와는 달리 미남형 무장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깊은 신임과 함께 미래가 보장되었지만 한 순간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동료를 죽이는 바람에 추방을 당한다. 히데요시가 뒤를 돌봐주고 용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준 은혜를 따라 자신의 주군과도 같았던 시바따 가쓰이에를 떠나 결정적인 순간에 히데요시에게 힘을 보탠다.

앞의 고바야까와 다까까게와 같이 도시이에도 몇 년만 더 살았다면 세끼가하라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천하장악도 미수에 그쳤을 텐데, 공교롭게도 세끼가하라 전투를 앞두고 노환으로 숨진다.

 

한 순간에 미래가 보장된 가신에서 돈 한푼 없는 낭인신세가 된 마에다 도시이에는 비로소 아래와 같은 사람의 본선을 직접 겪게 되면서 한층 성숙한 인격을 갖추게 되고 임종 직전에도 이런 본성에 대한 처리를 잊지 않는다.

 

- 지금까지 살랑거리다가 갑작스레 모른 척하는 사람

- 가끔 찾아오기는 하지만 비참한 처지를 보며 우월감에 젖는 사람

-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면서 주군을 원망하면 그것을 고해바쳐서 주군의 환심을 가려는 사람

- 여전히 호의를 보이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

 

임종을 앞둔 도시이에가 회계 담당자를 불러 "지금까지 뒷돈을 만든 적이 있느냐?"라고 묻는다. 뒷돈과 관련된 중신들이 뜨끔한 표정을 짓지만 어차피 며칠 후면 죽을 주군이었기에 모른 척할 뿐이었다.

중신들은 '도대체 죽을 사람이 왜 그런 일에 관심을 갖는 거야? 이제 와서 뭘 조사하겠다는 건지...'라고 생각하며 "히데요시 님에게 헌상하거나 다른 다이묘 접대도 하고 여러 가지 알려드리지 않아도 될 일에 필요한 돈이 많았습니다"라는 변명을 했다.

도시이에는 "뒷돈을 만들 때 꾸민 서류를 모두 가져와라. 그리고 나를 일으켜라"한 다음 쌓인 서류더미를 세 종류로 나누었다. 중신들이 궁금해하자 "이건 반드시 남겨둬야 할 서류들이고, 이건 남겨두면 문제가 생길 것들이고, 이건 내가 판단하기 힘든 서류들이야." 그러고는 "남겨둬야 할 서류는 가져가고, 문제가 생길 서류는 내가 모두 도장을 찍겠네. 그리고 미정인 것은 너희들이 잘 점검해서 나처럼 분류해주게"라고 말했다.

도시이에는 자신이 죽은 후에 아들인 도시나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러 험담과 투서로 집안이 어지러워질 까봐 죽기 전에 모든 부정을 없던 일로 돌리고 새로 출발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었다.

 

가모 우지사또(蒲生氏?) - 부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무장

 

오다 노부나가의 인척으로 무력과 지혜가 뛰어나 히데요시의 참모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야심이 너무 커서 독단적인 행동을 자주 해 히데요시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영지 하사라는 명목으로 지방으로 보낸다. 오우에 92만석을 받았을 때 "설령 큰 영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오우같은 시골에서는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다. 영지는 작더라도 교또에 가까이 있으면 천하를 노릴 수도 있을텐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어 히데요시의 독살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병으로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부하를 너무 아껴, 공을 세울 때마다 가모라는 성을 내려 가모 뭐시기 식의 부하가 사방팔방에 있었다는 재미있는 인물이다. (그림 참조. 클릭하면 많이 커집니다.)

 

부하를 사랑하는 우지사또의 젊은 시절에는 수입이 별로 없었다. 따르려는 부하는 많고 '부하가 세운 공에 맞는 포상은 당연하다'는 철학을 가진 오지사또는 고민 끝에 포상을 내리지 못한 부하에게 집으로 초대를 하곤 했다.

"제대로 대접은 못하지만 나와 함께 술이나 마시세. 그 전에 욕실에 들어가 피로부터 풀게"라며 부하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얼마 후 "물은 차갑지 않은가? 차가우면 말해. 장작을 더 넣을 테니까"라는 말이 들려왔고, 혹시나 싶은 부하가 살그머니 밖을 내다보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우지사또가 바닥에 엎드려 장작을 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다음부터는 "주군께서는 상대신 직접 욕조의 물을 데워주신다"라는 소문이 퍼졌고 부하들은 '가모의 욕실'이라고 불린 상을 받기 위해 전투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선두에 섰다고 한다.

 

부하를 아끼는 또 다른 일화 한가지. 니시무라(西村)이라는 부하가 히데요시가 있는 자리에서 군법을 어겨 어쩔 수 없이 추방할 수 밖에 없었다. 2년 정도 지났을 때에, 그의 용맹을 아낀 중신들이 불러들이자고 권유했다. 불려온 니시무라를 본 우지사또는 니시무라가 방랑 중에도 실력을 계속 닦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씨름이나 하자고 말했다. 중신들이 니시무라에게 반드시 져드려야 한다고 귀에 속삭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니시무라는 단 번에 우지사또를 땅에 쓰러뜨렸다. "니시무라. 이번에는 정말 져야 하네. 또 이긴다면 복귀하지 못할거야"라는 중신의 거듭된 주의에도 불구하고 니시무라는 세 번이나 우지사또를 쓰러뜨렸다. 흙을 털고 일어난 우지사또는 "근성은 여전하구나. 오늘부터 다시 일해라"라는 의연한 결정을 내려 모든 중신을 감동시켰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림 설명: 우지사또의 갑옷으로, 현대식 디자인을 방불케합니다. 체격좋은 무장이 입으면 거의 트랜스포머 느낌일 듯 합니다.

 

부하를 사랑했던 우지사또라도 비위를 맞추는 부하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재능이 있는 요즘으로 말하면 톡톡튀는 부하에 대해 "그는 내가 좋아하면 무조건 칭찬하고 내가 싫어하면 무조건 험담을 하는 사람이야. 내가 결정할 때에 판단이 흐려질 때에도 내 비위를 맞추겠지. 공정한 눈이 없다면 나를 보좌하는 의무를 다할 수 없어. 그런 사람은 필요 없으니 현장으로 돌려보내게"라고 했다.

 

여러분도 지금은 아니겠지만 지위가 올라갈 수록, 나이를 먹을 수록 귀에 달콤한 소리를 하는 동료나 부하직원을 아끼게 된다. 아닐 거라고? 이상하게도 학식 높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거슬리지 않고 Yes. Sir 만 외치는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그래서 청와대 인사가 모두 그 모양이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만 뽑을 것이다. 수 백년 전의 교훈은 그냥 문자로만 남기지 말고 여러분의 가슴에 새겨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