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시사.상식

환관의 손자

구름위 2012. 12. 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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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열전체 역사서는 인물의 이력을 서술하기에 앞서 반드시 출신 가계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진수의 <삼국지 무제기>도 조조의 출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조 무황제는 패국 초 사람이다. 성은 조, 휘는 조, 자는 맹덕, 한나라의 상국 참의 후손이다. 환제때 조등은 중상시 대장추가 되고, 비정후에 봉해진다. 양자인 숭이 대를 잇고, 관직은 태위에 이른다. 숭의 출생의 본말은 잘 알수 없다. 숭이 태조를 낳았다.'
무황제는 태조의 사후에 추증된 시호이다. 조조는 전한 건국의 공신 조참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라이벌 유비가 전한 경제의 후예라고 자칭하고, 손권이 춘추시대 병법의 대가 손무의 후예라고 자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의심스럽다. 청나라의 대학자 고염무는 한대의 비문에 쓰는 씨족의 시조는 대부분 미심쩍다고 단언하고 있따.
할아버지인 조등은 중상시 대장추라는 관직에 있었다고 하는데, 중상시는 천자의 측근으로 녹봉이 2천석, 관위는 3품이다. 또 대장추는 황후의 궁전장이니, 조조의 할아버지는 환관 최고의 관직에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서술한 것처럼 환관은 후한의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친 존재들이었지만 그중에는 상당히 강직한 인물도 있었다. 중상시 정중은 외척 두씨의 전횡에 굴하지 않고 화제를 지켜 낸 충절한 환관이다. 또 종이의 발명자로 이름이 알려진 채륜도 화제의 모신으로서 화제의 정무를 보좌할 만한 인물이었다.
조등도 그들처럼 환관중에서 현자로 열거되어도 괜찮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전국의 명사와 널리 교류하고 그들을 정계로 끌어들일 만큼의 도량이 있었다. 범엽의 <후한서>는 '4명의 황제 밑에서 벼슬하며 궁정에 있기를 30여 년, 현인을 선택하고 능력있는 자를 천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묵은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시인이란 이러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환관이 권세를 휘두르게 되면, 본래 당대에 그치는 환관도 양자를 맞아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조등도 이런 은전을 받아 양자 조숭을 맞았다. 조조의 친아버지인 이 인물의 출신에 대해서는 진수도 기록하듯이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아마도 비천한 출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등은 이 양자를 위해 엄청난 재물을 들여 태위라는 관직을 사 주었다. 당시는 매관 제도가 행해지고 있었다. 태위는 사도, 사공과 함께 삼공으로 불리는 후한 최고의 관직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정무의 요직에 임명되었다고는 하더라도 탁류 출신은 명교(유교적 규범) 국가인 후한 사회에서는 멸시당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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