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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성" 환관

구름위 2012. 12. 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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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황제들은 대개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황태자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어린 나이에 황위를 계승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어린 황제의 후견인이 되어 정치를 보좌하는 자리를 맡았던 사람은 외척이었다.
그 결과, 외척은 보조를 명목으로 조정을 사유화하고 끝없이 전횡을 일삼는 것이 하나의 도식이 되어 버렸다.
어려서 즉위한 황제가 마침내 성인이 되면, 모후(황태후)가 조종하는 수렴정치에 진저리가 나서 친정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렇지만 외척을 배제하지 않으면 황제의 친정은 있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등장했던 자들이 환관이었다. 본래 환관은 황제를 돌보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황제 곁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황제의 심복과 같은 직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후한의 황제는 이 환관의 힘에 의지해서 외척의 권력을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후한 정치사의 기이함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번 환관의 역사를 살펴보자.
박식한 문학가였던 주작인은 어떤 수필에서 중국과 일본의 문명을 비교하면서 일본의 역사가 중국보다 뛰어난 점은 환관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문명이나 제도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던 일본인들도 끝내 중국의 환관 제도만은 거부했던 것이다. 일본의 조정이나 막부에 환관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환관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환관(환은 황제의 노예라는 뜻)에 해당하는 'eunuch'의 어원은 침실의 관리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unouchos'에서 나온 말이다. 황제의 총애가 깊은 후궁의 침심을 관리하는 약간 미묘한 임무이기 때문에, 그 직에 있는 남성은 생식 기능을 갖지 않는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환관은 거세된 남자가 담당했다.
그런데 양이나 돼지의 성소를 제거하면 품질이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안 것은 서아시아의 유목 민족이었다. 아마도 거세술은 중국의 서북 변경에 거주하고 있던 강이나 저라고 불리는 유목민을 통해 중국에 도입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은나라 시대에도 이미 환관이 존재했다. 주나라 시대가 되면 '엄인'이라든지 '사인'이라고 불리는 환관 전담의 직무가 규정되어, 환관은 주나라 국가 제도에 확실히 편입되기에 이른다.
환관은 '제3의 성'이라고 불리는데, 남성 기능을 제거하면 성격이나 인격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대체로 환관은 희노애락의 정이 격렬하고, 또 음습함과 시기심을 갖고 있는것이 보통이었다. 게다가 '신체발부를 부모로부터 받아 감히 이를 훼손하지 않는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유교 사회인 중국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손상하여 자손을 남길 수 없는 환관은 유교 윤리의 배덕자로서 철저하게 기피되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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