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에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이라크 지역을 다스리는 강력한 왕국 폰투스의 미트라①였다.
그는 스스로 알렉산더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정복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기원전 120년경 미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어머니②의 섭정을 받았다.
이를 참지 못한 그는 5년후 어머니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권력을 독차지했다.
이어서 어머니를 투옥시키고 방해가 되는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 미트라는 곧바로 원정을 단행했다.
기원전 92년, 미트라의 함대는 흑해를 가로질렀다.
"흑해 연안은 이제 내꺼다!"
"대신 야만족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세요"
"그건 걱정마라. 내가 원하는건 너희들의 충성심이다"
미트라는 흑해③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나톨리아④도 후식으로 접수했다.
"원래 이 땅은 우리 아버지꺼거든!"
"우리 이거 나눠먹자!"
미트라는 비티니아와 함께 소아시아 중부⑤를 나눠먹었다.
이어서 양이 차지 않은 미트라는 인접한 지역⑥에도 젓가락질을 했다.
"나도 끼워줘!" --> "너는 그것만 먹고 꺼져!!"
미트라에게 무시를 당한 비티니아⑦도 이 전쟁에 끼어들었다.
"저리 비키라니까!" --> "니 입만 입이냐?"
결국 양측은 격렬하게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비티니아가 얻어 터졌다.
그러자 비티니아와 동맹을 맺었던 로마가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
로마에게 멱살이 잡힌 미트라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모든 이권을 포기했다.
"죽 쒀서 개줬네" 미트라는 왕궁에 틀어박혀 칼을 칼았다.
로마를 등에 업은 비티니아는 한껏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기원전 90년, 설욕을 다짐한 미트라는 비티니아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로마군의 지원을 받은 비티니아가 폰투스를 공격했다.
미트라는 이 침략을 로마에게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기원전 88년, 미트라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리고 비티니아와 샅바를 잡았다.
비티니아가 먼저 바깥다리 공격을 시도했지만 미트라가 안다리 기술로 대응했다.
상대가 휘청거리자, 중심을 단단히 잡은 미트라가 들배지기로 상대를 제압했다.
패배한 비티니아군은 모래판에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미트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티니아로 신나게 말을 달렸다.
그리고 링거를 꽃고 누워있는 비티니아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어디가?" --> "이왕 온거 차비라도 벌어야지"
탄력을 받은 미트라는 소아시아를 휘젓고 다녔다.
로마의 속주 페르가몬도 미트라의 발 아래로 들어왔다.
이제 소아시아와 그리스의 패권은 로마가 아니라 미트라의 것이 되었다.
미트라는 스스로를 헬레니즘의 보호자로 자처하였다.
그리고 이 전쟁을 로마와 그리스간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그리스인들을 부추겼다.
그러자 아테네와 이오니아⑧, 그리고 아르메니아 왕국⑨ 등이 미트라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격분한 로마는 술라⑩를 사령관으로 파견하였다.
술라는 기민하고 놀라운 전술을 발휘하며 미트라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미트라는 그리스 전장에서 고전하면서도 4년간 버틸 수 있었는데,
이것은 술라의 등 뒤에서 로마가 내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술라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수록 본국의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라이벌인 마리우스에 의해 술라의 정치기반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라는 본국 보다는 미트라 제압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그는 막강한 함대를 이용하여 그리스에서 포위전을 벌였다.
로마군의 공세로 그리스 대부분이 장악되었고 끈질기게 저항했던 아테네도 함락되었다.
게다가 미트라가 보낸 군대도 고립되어 두 번이나 격파되었다.
이제 그리스는 로마의 발 아래로 들어왔다. 다음 목표는 미트라의 본토였다.
미트라는 나머지 그리스인들의 이반을 막기위해 극약처방을 내 놓았다.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인을 전원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기원전 88년, 이 명령으로 약 8만 명의 로마인이 학살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인들에게 공범의식을 심어주기위한 방책이었다.
"이렇게 되면 너네들도 나와 끝까지 갈 수 밖에 없어!"
그러나 그의 기대는 무너졌고, 그리스인들은 로마 편으로 돌아섰다.
기원전 85년, 미트라의 패배가 확실한 가운데 행운이 찾아왔다.
로마안에서 내분이 더욱 격화되자 술라가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양측은 다르다노스 조약으로 협정을 맺었다.
미트라는 자신의 점령지를 모두 포기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치르는 데 동의했다.
이것으로 제1차 미트라다테스 전쟁은 종결되었고
궁지에 몰렸던 미트라는 재기할 수 있었다.
[출처]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13498
[출처] http://members.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8m1935b&ref=28#ID28
① 미트라 : 미트라다테스 6세 / ② 어머니 : 게스파이피리스
③ 흑해연안의 크림반도 일부 / ④ 아나톨리아 :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
⑤ 중부 : 갈라티아 / ⑥ 인접지역 : 카파도키아 / ⑦ 비티니아 왕 : 니코메데스 3세
⑧ 이오니아 : 소아시아 해안의 그리스 도시들 / ⑨ 아르메니아 왕 : 티그라네스 2세
⑩ 술라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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