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3년, 전쟁을 종결한 스키피오는 로마의 영웅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아프리카를 제압했다는 뜻에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이 붙게 되었다.
또 원로원은 34세 밖에 안된 이 젊은이에게 이례적으로 제1인자에 추대하였다.
로마의 실세로 등극한 스키피오는 이렇게 외쳤다.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제부턴 팍스로마나의 시대입니다!"
로마 시민들은 이에 열광하며 앞으로 도래할 평화의 시대를 기원했다.
그때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으며 등장했다. "누가 전쟁 끝이래~~!!"
"누구냐 넌?" 스키피오가 돌아보았다. "나는 로마의 안티, 그리스의 안티, 필리포스다!"
필리포스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그리스를 휘젓고 다녔다.
"아~ 이놈의 전쟁은 끝날줄을 몰라!!"
기원전 197년, 로마는 3년을 망설인 끝에 군대를 파견했다.
"아~ 또 졌다...ㅠㅠ" 필리포스는 로마의 패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부터 그는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평생을 보내야했다.
이때 카르타고는 한니발의 주도하에 경제재건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의 강력한 정책은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그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로마에 고발장이 날아갔다. "한니발이 시리아와 내통하고 있다~"
한니발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카르타고를 탈출하였다.
그가 찾아간 사람은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였다.
"내 그대를 기다렸소. 이 아랫목으로 오시오"
이 역사적 퍼즐은 새로운 전쟁을 탄생시켰다.
"아니, 마케도니아를 왜 멸망시키지 않는거지?"
로마군에 참여했던 그리스의 한 도시가 불만을 품었다.
그들은 쇠퇴한 마케도니아를 치기 위해 시리아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앗싸~ 드디어 기회가 왔군!"
"우선 주요 전쟁터는 이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한니발은 흥분한 왕에게 로마를 협공하자고 건의했다.
그의 전략은 이러했다.
왕은 마케도니아를 제압한 다음 로마로 쳐들어가고
자신은 카르타고를 규합하여 로마로 쳐들어가자는 것이다.
웅장한 전략이었지만 한니발은 복수심에, 안티오코스는 허영심에 눈이 멀었다.
시리아가 전쟁준비에 들어가자 스키피오는 이를 외교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안티오코스 왕이 젊은 왕비를 맞아 신혼의 단꿈에 빠져버렸다.
"바빠 죽겠는데, 신혼은 무슨!!" 한니발은 깡통을 걷어찼다.
이 와중에 스키피오가 로도스 섬에서 한니발과 만났다.
54세인 한니발은 난생 처음 왕을 섬겨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침울해 있었고,
42세인 스키피오는 큰 병을 앓아 병색이 완연하였다.
스키피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알렉산드로스요. 그는 상상의 경계선을 뛰어 넘은 위대한 정복자였소"
"그럼 두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굽니까?"
"피로스요. 그는 전술의 대가였소"
"그럼 세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굽니까?"
"물론 나 자신이오."
스키피오가 잠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장군께서 자마 전투에서 이겼다면?"
"그렇다면 피로스와 알렉산드로스를 제치고 내가 첫번째가 되었을 거요"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얼굴에서 아직 의지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원전 191년,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6만 대군을 준비한 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갔다.
그러다가 부리나케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그러십니까?"
"벌써 털렸어!" 왕의 곁에는 소수의 패잔병만 남았다.
"로마 함대가 오고 있소. 장군이 맡아 주시오!"
이듬해 스키피오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왔다.
시리아 함대는 한니발이 지휘했다. 양측 모두 100척이 동원된 대규모 해전이었다.
그 유명한 한니발도 바다에서는 사정이 달랐던지, 해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바다로 통하는 시리아의 관문이 열려버렸다.
시리아 왕은 이에 맞서 6만 대군을 육지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한니발은 참가시키지 않았다. "당신은 다루기가 너무 힘들어!"
"나도 왕 밑에서 지시받는거 싫거든요!"
드디어 마그네시아 전투가 벌어졌고 로마가 대승을 거두었다.
패배한 시리아측 전사자는 3만 명이 넘었고, 로마측 전사자는 겨우 300명 정도였다.
참담한 패배를 당한 시리아 왕은 이렇게 외쳤다. "하, 항복~!!"
"한니발이 크레타 섬에 있다는데요?"
"모른척하게" 스키피오는 추격대를 보내지 않았다.
그는 시대를 풍미했던 한니발의 말로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로마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한니발을 철천지 원수로 여겼다.
기원전 187년, 스키피오 재판이 열렸다.
아무리 로마의 영웅이라지만 그를 싫어하는 세력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카토였다. 그는 보다 엄격한 대외정책을 원했다.
"스키피오는 너무 물러 터졌어!"
카토는 강경보수파들을 규합하여 공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럴싸한 이유을 붙여 '시리아 강화에 얽힌 비리 의혹'을 제시했다.
그의 표적은 스키피오였고, 목적은 탄핵이었다.
실망한 스키피오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국가에 헌신할 수 있어서 영광이오. 이제 그 기회를 주신 신께 감사드리러 가야겠소"
스키피오가 신전의 언덕으로 향하자 탄핵에 동조했던 의원들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이윽고 카토를 제외한 모든 의원들이 스키피오의 뒤를 따랐다.
이날은 스키피오가 마지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날이었다.
이때부터 4년 동안 스키피오는 교외의 별장에서 지냈다.
정적 스키피오를 축출한 카토는 물 만난 고기처럼 원로원을 휘어 잡았다.
카토의 독주를 알게 된 스키피오는 이후 로마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스키피오에 대한 탄핵은 계속되었다.
이때 노예군단을 이끈 그라쿠스의 아들이 스키피오를 변호했다.
원로원은 이 의협심 강한 젊은이에게 감명을 받아 탄핵안을 종결하기로 했다.
스키피오는 그런 그라쿠스에게 자신의 딸 코르넬리아와 결혼시켰다.
이로써 스키피오의 외손자가 태어나는데, 그가 나중에 민중의 이름으로 불을 지르게 된다.
기원전 183년, 스키피오는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2세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로마를 원망하면서 유언을 남겼다.
"배은망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
스키피오가 죽자 로마에서는 한니발에 대한 현상금을 올렸다.
로마의 지휘관들은 공적을 쌓기 위해 한니발 색출작전에 들어갔다.
추격망이 점점 좁혀오자 한니발은 어두운 방안에서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이제 떠날 시간이군" 그는 독약을 마셨다. 향년 64세였다.
이렇게 두 영웅은 같은해에 세상을 떠났다.
[인명과 지명은 약칭으로 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 로마인 이야기에 거의 의존했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atoman99?Redirect=Log&logNo=14003817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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