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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옥타비아누스의 여인들

구름위 2012. 10. 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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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대업을 완수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간성과 군사적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생존본능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냉철했으며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는 동물적인 감각을 타고났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어떠한 굴욕도 참아냈던 그는 결국 최후의 승자로 기록된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미화되는 법.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 많은 여자들을 이용했다.

그 권력의 희생양이 된 여인들의 눈물은 오늘날 테베레강의 수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부터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피눈물을 쏟았던 여인들을 알아보겠다.

 

 

1. 아티아 (어머니) 

 

아티아는 카이사르의 여동생인 율리아의 딸이다.

그녀는 옥타비아누스가 어릴 때 남편을 잃고 재혼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옥타비아누스를 카이사르가 있는 율리우스 가문에 맡긴다.

당시 로마는 여자가 재혼을 하면 전 남편의 자식은 친정에 맡기는 것이 관례였다.

이 덕분에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와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이후 승계권을 거머쥐게 된다.

 

아티아는 영화 '로마'에서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도도함을 지닌 여성으로 나온다.

그녀는 그 곳에서 속물적이고 교활하고 성적으로도 아주 문란한 여성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와는 거리가 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녀의 자식들인 옥타비아누스와 옥타비아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으로 보수적인 자식들을 보더라도 그녀는 정숙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는 누구와 더 가까운 모습이었을까.

교활하고 정치적인 아들인가. 아니면 남자에 헌신하는 딸인가.

아무래도 그녀는 정치적인 아들과 더 닮은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옥타비아누스가 아무리 영특하고 리더십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토록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옥타비아누스의 든든한 조언자이자 막후실력자였을 것이다.

 

어떻게보면 그녀는 여자 카이사르였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계획한 일들은 아주 은밀했지만 그 결과는 매우 역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여인.

이런 아티아를 가리켜 로마사의 숨은 킹메이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성만을 따졌을 뿐이지 그 실체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그래서 나는 영화 '로마'에서 아티아 역을 맡았던 폴리 워커의 인터뷰를 참고했다.

따라서 아래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술수에 능한 아티아의 모습을 옮겨보았다.

 

영화에서 아티아는 자기 일 외에는 관심도 없고 고집도 세고 이기적인 여인으로 나온다.

게다가 온갖 나쁜 성질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비즈니스로 활용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혈통과 집안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만 하는 법칙이었다.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또한 불가피한 생존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폴리워커는 인터뷰에서 아티아를 이렇게 변호했다.

"사실 아티아가 남자였다면 그녀의 행실은 감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카이사르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영웅급으로 여겨질만도 하다.

그녀는 권모술수에 능하고 무자비하여 매우 사악한 여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남자가 하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캐릭터를 그대로 대입하여 아티아의 생각을 읽어보자.

그녀는 권력을 차지한 옥타비아누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남자였더라면 저 자리는 분명 내 차지였을텐데..."

 

 

2. 옥타비아 (여동생)

 

옥타비아는 재혼한 아티아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그녀는 옥타비우스와는 배다른 남매로 성격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녀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로 오빠의 정치적 성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옥타비아는 맨 처음 가이우스 마르켈루스와 결혼해서 두 딸과 아들을 낳았다.

그러다 마르켈루스가 죽자 옥타비아누스의 정략에 이용되어 안토니우스와 재혼했다.

처음에는 이 결혼으로 두 영웅 사이의 정치적 긴장이 다소 풀리는 듯했고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는 그녀의 중재로 타렌툼 조약이 맺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는 바람에 파국을 맞는다.

그녀는 키가 2m에 달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안토니우스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녀는 오빠와 남편이 권력을 놓고 다툴 때에도 여전히 안토니우스를 사랑했다.

 

그녀는 심지어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한 안토니우스에게 군대와 자금까지 보내주었다.

이 사실을 안 옥타비아누스가 그녀를 강하게 질책했지만 옥타비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오직 안토니우스와의 행복한 결혼생활만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옥타비아는 군대와 자금을 보내면서 안토니우스에게 보고싶다는 편지를 썼다.

이때 안토니우스는 답장에서 "올 필요는 없고 돈과 군대만 보내달라"고 했고

반대로 클레오파트라에겐 "돈도 군대도 다 필요없고 오직 당신만 와 달라"고 하였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그녀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둘은 3년 후 결국 이혼했다.

 

옥타비아는 성실한 아내이자 어머니로 맡은바 최선을 다했다.

안토니우스가 죽은 뒤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낳은 그의 자식들까지 키워주었다.

아마도 그녀는 죽을 때까지 안토니우스를 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중에 외아들 마르켈루스가 죽자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옥타비우스가 로마를 평정하고 황제에 오를 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우같은 클레오파트라만 없었더라면 우린 행복했을거야..."

 

 

3. 푸블리아 (첫 번째 여자) 세르빌리우스 가문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그의 유산은 옥타비아누스에게 계승되었다.

이로써 무명의 옥타비아누스는 일약 로마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등극한다.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명석한 두뇌, 논리적인 언변 등 그는 당시의 아이콘이 되었을 것이다.

 

때를 같이 해 로마의 내노라하는 귀족들이 혼담을 위해 줄을 섰을 것이다.

이때 엄청난 경쟁율을 뚫고 약혼녀로 올라선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푸블리아'다.

사실 푸블리아라는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가명으로 처리했다.

기록에는 단순히 '푸블리우스'의 딸이 옥타비아누스와 약혼을 했다는 정도로 나온다.

하지만 이 약혼에 관해서도 많은 이견들이 있기 때문에 이름과 약혼 모두가 미스테리다.

(푸블리우스  Publius Servilius Isauricus)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옥타비아누스는 그녀의 곁을 너무 빨리 떠나버렸다.

내전 때문에 파혼당한 푸블리아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제발 우리 둘이 사랑하게 해 주세요~!!"

 

 

4. 클라우디아  (두 번째 여자) 안토니우스 가문

 

클라우디아는 안토니우스의 양녀(의붓딸)이다.

그녀는 어머니 풀비아가 안토니우스와 재혼하면서 데려온 딸이다.

옥타비우스는 안토니우스의 도움으로 부르터스 일파를 힘겹게 무찔렀지만,

형편없는 전략가라는 혹평을 받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재빨리 클라우디아와 약혼했다.

이 결혼은 두 진영간의 평화를 상징하는 결합이었으므로 로마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로써 옥타비아누스는 어느 정도 망신살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한편, 두 진영의 협력을 바라지 않았던 클라우디아의 엄마 풀비아가 반기를 들었다.

이것은 옥타비아누스의 계산에 없던 돌발상황이었고 남편 안토니우스는 이를 수수방관했다.

풀비아가 남편을 위한 행동이었는지는 불확실하나 아무튼 이것은 섣부른 행동이었다.

결국 풀비아는 진압되기 일보직전에 안토니우스가 아닌 섹스투스 진영으로 찾아간다.

 

아마도 그녀는 안토니우스가 더 이상 보호막이 되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어쩌면 반란 자체가 클레오파트라에 빠져있는 안토니우스에 대한 화풀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군불떼기에 실패하자 그녀는 휘발유통을 지게에 짊어진다.

 

그 통이 섹스투스에게 건네지자 옥타비아누스는 또 한 번 화들짝 놀란다.

자칫하다간 섹스투스와 안토니우스가 힘을 합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

이에 옥타비아누스는 일이 꼬일 때마다 쓰는 '파혼' 카드를 꺼내 든다.

 

결국 신방에서 기다리던 클라우디아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아직 12세 밖에 안된 클라우디아는 그렇게 처녀인채로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 상황에 대해 안토니우스가 분노할만도 한데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풀비아와 양녀에 대한 애정이 이미 오래전에 식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친정에 돌아간 클라우디아는 풀비아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 짜증나 죽겠데..."

 

 

5. 스크리보니아 (세 번째 여자) 폼페이우스 가문

 

옥타비아누스는 클라우디아를 차버린 뒤 스크리보니아와 결혼했다.

그녀는 섹스투스 장인의 여동생이었으므로 섹스투스에게는 처고모가 된다.

그녀는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연상이었으므로 그리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었다.

이 결혼의 목적은 오직 하나! 안토니우스와 섹스투스의 제휴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 결혼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옥타비아누스와 섹스투스의 관계는 다시 험악해진다.

섹스투스의 한 지휘관이 진영을 배반하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붙은게 원인이었다.

 

당시 스크리보니아는 만삭이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딴 맘을 품고 있었다.

"이 기회에 아예 저 여자를 차버리고 내가 원하는 여자를 만나야겠어!"

결국 이들의 이혼 날이 바로 첫 딸이 태어나는 날이 되고 말았다.

이 딸이 바로 로마 황실을 피폐하게 만드는 독버섯 '율리아'이다.

 

섹스투스와 결별한 옥타비아누스는 이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 뒤 겨우 승리를 쟁취한다.

이 승리는 측근 아그리파의 공이었고 옥타비아누스는 이 전쟁에서도 거의 방해만 되는 존재였다.

이렇게 옥타비아누스는 내전 기간내내 제대로 된 승점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다.

 

아무튼 친정으로 쫓겨난 스크리보니아는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흥~ 두고 보라지, 내가 딸에게 얼마나 많은 저주를 심어 놓았는지..."

결국 그녀의 저주는 핏줄을 타고 네로에까지 전염된다.

 

 

6. 리비아 (네 번째 여자)

 

옥타비아누스는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여자를 만났다.

티베리우스 네로의 아내였던 리비아는 옥타비아누스가 오랫동안 눈여겨 본 여인이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섹스투스와의 관계가 험악해지자 이 기회에 자신이 원하던 여자를 차지하기로 했다.

그는 리비아의 남편과 직접 담판을 짓고 이미 임신 6개월째인 리비아와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리비아의 남편이 처음부터 그리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리비아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겐 약점이 있었다.

내란 중에 반옥타비아누스 행위로 끝없는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결국 포기 각서를 받아냈다.

 

처음에 옥타비아누스는 네로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자 리비아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로마에서 가장 단아한 여성으로 소문난 리비아는 놀랍게도 이 부탁에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남편에게 이혼을 설득하는 장면은 왠지 리비아답지 않다.

 

아무튼 이 결혼으로 옥타비아누스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아내와 이혼하고 그 반대의 아이를 가진 여인과 결혼한 것이다.

결국 리비아는 결혼한지 3개월만에 전남편의 아들 드루수스를 출산한다.

그래도 옥타비아누스는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드루수스를 가장 총애한다.

 

그는 로마에 번영을 가져다주고 임종을 맞았을 때 리비아에게 이런 말을 했다.

"리비아, 우리의 사랑을 잊지 마시오"

 

 

7. 클레오파트라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은 여인이다.

그녀는 정세파악에 능하고 영웅을 사로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남자를 성의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재주까지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집트 최고의 매춘부로부터 온갖 테크닉을 전수받은 결과이다.

아무튼 그녀는 혼란한 정세에서 늘 최고의 실력자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왔다.

 

그녀가 선택한 안토니우스도 당시 로마에서는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가 가진 인맥, 경험, 군사력이라는 조건을 보더라도 그는 언제나 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토니우스와 너무 사랑에 빠진 나머지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했다.

밤 하늘의 별까지 따다 주겠다는 안토니우스의 달콤한 속삭임을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남자가 여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면 그 여자는 아이로 변해버린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상황을 감성적으로 대처하고 말았다.

여기에 가장 현실적이고 음모주의자인 옥타비아누스를 만났으니 둘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결국 안토니우스가 자살하고 이집트 왕국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도 일이 꼬일 때마다 쓰는 카드 '육체'를 꺼내 들었다.

 

아이 셋을 낳았어도 아직 그녀의 몸매와 피부는 처녀와 다름없었다.

이제 이 농염한 매력으로 풋내기에 불과한 옥타비아누스를 녹여버리리라.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옥타비아누스는 마흔에 가까운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니 어찌보면 다른 남자였더라면 쉽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운이 없었던건, 이 남자가 바로 천하의 목석이었다는 것!

아니 다르게 보면 그는 양성애자 혹은 성적 장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정한 목적를 위해 바늘로 허벅지를 찔렀을 수도 있다.

아무튼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 더 이상의 페르몬 방출을 포기한다.

결국 그녀는 안토니우스의 묘소를 찾은 뒤 자살을 택한다.

 

그녀가 남긴 자식들은 옥타비아누스에게는 불편한 짐이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 카이사르의 아들인 카이사리온은 그에게 혈통면에서도 위협적이다.

마침내 그는 카이사리온을 처형시키고, 안토니우스의 자식들은 로마로 데려간다.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게 젖가슴을 물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저런 애송이쯤은 키스 한 방이면 끝이었을텐데..."

 

 

8. 율리아 (외동딸)

 

독버섯이라는 닉넴에 걸맞게 방탕한 생활로 옥타비아누스를 괴롭혔다.
그녀는 태어난지 며칠만에 어머니가 이혼했기 때문에 따뜻한 엄마의 품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사랑에 목말라했고 금지된 사랑의 불길 속으로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율리아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언행을 항상 감시당했다.

아무래도 생모인 스크리보니아의 성격이 거침없고 자유분방했던 것 같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런 그녀의 성격을 딸에게서 증류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성이 어디 가겠는가. 그녀는 일단 본능을 감추고 조신모드로 첫 발을 내딛었다.

 

율리아는 마르쿠스 마르켈루스와 결혼했으나 불운하게도 남편이 일찍 죽는다.

2년 후 그녀는 옥타비아누스의 명령대로 아그리파와 재혼을 한다.

이 사이에서 그녀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는다. 이후 두 아들은 옥타비아누스의 양자가 되었다.

문제는 셋째 아들 포스투무스와 둘째 딸 아그리피나였다.

이들이 율리아의 맹독을 계승한 독버섯들이었다.

 

기원전 12년 아그리파가 죽자 리비아는 두 아들을 제위 계승자로 삼도록 남편을 설득했다.

그 결과 첫째 아들 티베리우스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혼하고 율리아와 결혼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율리아와 티베리우스 둘 다 원하지 않던 불행한 결혼이었다.
이때부터 율리아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으며 로마 전체에 그녀의 소문이 퍼졌다.

그러다 7년 후 율리아가 낳은 아들이 죽자, 티베리우스는 자청해서 망명길에 올랐다.

 "아들 하나 보고 참아볼려고 했는데, 에잇~ 안돼겠다!"

 
결국 나쁜 행실을 아버지에게 발각당한 율리아는 처형하겠다는

아버지의 위협을 받은 뒤 캄파니아 지방의 판다타리아 섬으로 추방되었다.

그뒤 율리아는 레기움으로 옮겨졌고, 황제의 뒤를 이어 티베리우스가 즉위했다.

 

권좌에 오른 티베리우스는 맨 먼저 율리아에 대한 복수를 단행했다. 

"율리아에게 할당된 수당과 모든 물품을 끊어라!"

결국 율리아는 유배지에서 반거지 상태로 살다가 영양실조로 죽었다. 

 
율리아의 부정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녀는 재기넘치고 지적인 여인이었다.

아버지와 남편 티베리우스에게는 꼴도 보기싫은 딸이자 아내였겠지만,

반대로 그와 불륜을 저지른 수 많은 남자들에게서는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죽을 때까지 율리아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아우구스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율리아는 내 몸에 난 종기나 다름없다!"
 
이 글은 아래의 출처들을 참고하였습니다. 

[출처] 구라구라구라 http://moduru76.egloos.com/4434362

[출처] 漆園의 大逍遙 http://dontnomuch.egloos.com/2544867

[참고] 아티아역 폴리워커 인터뷰 / 위키백과

http://capricorn29.tistory.com/223?srchid=BR1http%3A%2F%2Fcapricorn29.tistory.com%2F223

[출처] http://cafe.daum.net/romabig/Yo6/416?docid=4Yzt|Yo6|416|20011121134952&q=%BF%C1%C5%B8%BA%F1%BE%C6%B4%A9%BD%BA%C0%C7%20%BE%EE%B8%D3%B4%CF&srchid=CCB4Yzt|Yo6|416|20011121134952&re=1

출처 : 역사를 창조한 문학
글쓴이 : 임용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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