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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앞둔 독일군 빵 레시피 밀가루+감자 녹말+톱밥

구름위 2017. 1. 1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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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앞둔 독일군 빵 레시피 밀가루+감자 녹말+톱밥

 톱밥 빵


패자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눈물 젖은 절망의 음식

조선시대 때도 흉년 들면

흙으로 국수 빚어 연명도

 

 

기사사진과 설명
중남미 아이티에서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고 있다.

중남미 아이티에서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고 있다.



몇 해 전 중남미 카리브해의 아이티공화국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나라가 폐허가 됐고 배고픈 아이들이 흙으로 만든 과자, 진흙쿠키를 먹는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돼 세계가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21세기에 먹을 것이 없어 진흙까지 먹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지만 옛날에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흙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세계 공통의 현상이었기에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식용 흙이 나오는 곳이 몇 군데 정해져 있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정산현(定山縣) 계명 고개에 먹을 수 있는 흙이 있다고 했는데 현재의 충남 청양군 정산면 일대다. 순조 16년인 1816년, 홍수가 나서 계명 고개가 무너졌다. 그곳에 굴이 있어 파보니 기름져 보이는 하얀 흙이 있었다. 맛을 보니 쌀가루처럼 부드럽고 연해서 먹을 만했기에 난민들이 그 흙으로 허기를 채우는 한편으로 떡을 쪄서 팔았더니 사람들이 앞다투어 사 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서울에도 먹는 흙이 있었다. 조선 중기 문헌인 '지봉유설'에 신라 무열왕 때 서울 인근의 북쪽 바위가 무너지면서 쌀처럼 먹을 수 있는 흙이 나왔다고 적었고 또 서울의 북대문인 숙청문(肅淸門) 밖 바위가 갈라지면서 흙이 섞인 물이 솟았는데 맑은 것은 술 같고 진한 것은 떡 같아 사람들이 다투어 먹었다고 기록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 전란의 와중에 흉년까지 들어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때 황해도 봉산에 차진 밀가루와 같은 흙이 있어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었다는 기록이 '동각잡기'라는 문헌에 보인다. 흙 7~8인분과 쌀가루 2~3인분을 섞어 떡을 만들어 먹었더니 배를 채울 수 있었고 탈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란의 와중에 일부는 흙을 먹고 살아남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나 흉년으로 양식이 떨어졌을 때 흙으로 연명한 것은 수백 년 전의 조선뿐만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 초, 유럽에 대기근이 발생하자 독일 작센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흙으로 빵을 만들어 먹으며 연명했다. 작센 지방의 한 언덕에 하얀 흙이 있어 그 흙으로 빵을 구워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는데 급기야 흙을 파낸 언덕이 무너져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흙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는 조선이나 유럽이나 300∼400년 전의 일이니 현대인과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지만, 아이티의 진흙쿠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극한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게 지급됐던 K-브로트(Brot)라는 군용 빵이 있다. 전쟁 말기에 군인들에게 주로 지급됐는데 K는 군대라는 뜻의 독일어 Kommiss의 약자다.



이 빵은 하얀 밀가루가 아니라 말린 감자 분말과 거친 호밀 등으로 만들었다. 보통 빵에 비해서 거칠기 짝이 없지만 장점도 있었다. 맛도 없고 먹으면 침이 마를 정도로 푸슬푸슬하지만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롬멜 장군이 지휘하던 아프리카 군단에는 K-브로트가보급됐다. 아프리카의 더운 날씨 때문에 일반적인 식품은 모조리 상했기 때문에 이 군용 빵과 말린 감자, 말린 콩이 지급된 것이다.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에는 기후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K-브로트가 보급됐지만,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독일군 전체에 이 빵이 지급됐다.



문제는 전쟁 말기 독일의 물자 부족 때문에 군용 빵에 상당 부분 톱밥이나 지푸라기를 섞었다는 것이다. 해안은 봉쇄되고 농사 지을 인력과 비료는 부족한 데다 점령지에서 확보한 자원도 떨어지면서 약간의 밀가루와 감자녹말에 톱밥을 섞거나 지푸라기를 갈아 섞어 만든 K-브로트를 식량으로 보급해야만 했다. 300∼400년 전의 흙국수·흙빵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톱밥빵·지푸라기빵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별별 음식을 다 만들어냈다. 전쟁 때 개발된 기술 덕분에 우리가 먹는 음식이 한 차원 발전한 부분도 있지만, 독일군의 K-브로트처럼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연명해야만 한 경우도 있다.



전쟁을 통해 본 음식과 음식으로 조명해 본 전쟁의 결론은 인류는 파괴를 딛고 결국에는 다시 일어서겠지만 어쨌든 전쟁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반드시 이기는 전쟁을 해야 한다. 패자의 음식이 훨씬 더 열악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