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원래는 전투용이었다' 전해라

구름위 2017. 1. 1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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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전투용이었다' 전해라

복숭아 통조림


먹어는 봤니? 온몸에 퍼지는 달달함

들어는 봤니? 병문안 위문품 대명사

 

 

식품 장기보관 기술 위해

나폴레옹 현상금 걸고 개발

제과업자 병조림으로 상금

英해군은 환자용으로 실용화

 

 

기사사진과 설명
통조림은 남북전쟁, 크림전쟁, 보불전쟁 무렵 전투식량으로 보급됐다. 사진은 남북전쟁 때 식사장면. 출처:위키피디아

통조림은 남북전쟁, 크림전쟁, 보불전쟁 무렵 전투식량으로 보급됐다. 사진은 남북전쟁 때 식사장면. 출처:위키피디아



 

 

예전만은 못하지만 복숭아 통조림은 병문안 갈 때 인기 있는 위문품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평소 자주 먹지도 않으면서 환자를 위로할 때 왜 뜬금없이 복숭아 통조림을 사 들고 갈까? 짐작해 보면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복숭아 통조림은 달콤하니까 입맛 쓴 사람이 먹기에 좋을 뿐 아니라 고열량 식품에 소화도 잘되니 환자에게 좋을 수 있다. 옛날에는 통조림 자체가 귀한 식품이었으니 그 자체로도 훌륭한 위문품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민속에서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과일이다. 제사상에 사과·배는 물론 바나나와 파인애플까지 올려도 복숭아는 놓지 않는 이유다. 민속적으로 병은 역귀(疫鬼)가 옮긴다. 그러니 병을 옮기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에서 복숭아 통조림이 어울린다.



사실, 복숭아 통조림이 왜 환자 위문품이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서 몇 가지 이유를 짐작해봤지만 아무래도 미흡하다. 하지만 엉뚱하게 19세기 중반의 영국 해군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환자와 복숭아 통조림은 통조림 개발 과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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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통조림 생산공장 판화 1898년 작 출처:위키피디아

초기의 통조림 생산공장 판화 1898년 작 출처:위키피디아





통조림의 탄생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나폴레옹 군대의 전투식량 개발 목적에서 비롯됐다. 나폴레옹이 했다는 "군인도 먹어야 싸운다(a soldier marches on his stomach)"라는 말 때문에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급식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 것 같지만 정반대다. 나폴레옹 군대는 허구한 날 굶주림에 시달리며 싸웠다. 전술의 핵심인 기동력 때문이다. 나폴레옹 군은 적보다 두 배 빠르게 움직인 만큼 소수정예의 병력에 보급품도 간소화했다. 텐트도 없이 노천에서 나뭇잎을 덮고 취침했을 정도다. 효율적으로 보급을 받지 못했기에 고기와 야채는 부패해 냄비에 넣고 푹 끓이지 않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폴레옹 군대의 최대 고민은 보급이었다. 예컨대 1795년 이탈리아 원정 때 병사들이 매일 먹어야 할 식량이 30~40톤이었다. 보급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어떤 경우는 현지 상인에게 음식을 사 먹도록 현금을 지급했다. 음식이 떨어지면 현지조달이라는 이름으로 약탈을 했고 아니면 썩은 음식을 먹거나 굶었다. 막강한 나폴레옹 군대였지만 현지조달도 안 통하는 황량한 지역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도시를 벗어나면 사막인 이집트 원정과 진흙탕에서 추위·굶주림과 싸운 러시아 원정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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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은 나폴레옹 군대의 식량 보급 목적으로 처음 개발됐다. 출처:위키피디아





그 때문에 나폴레옹은 휴대하기 편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획기적인 식품 보존 기술 개발에 1200프랑의 현상금을 걸었다. 당시 은 54㎏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가 최초의 병조림을 개발해 1810년 현상금을 받았다. 유리병에 음식을 넣어 밀봉한 후 끓는 물에서 멸균하는 방식이었다. 아페르의 통조림은 보관 용기가 유리병이었기에 병을 끓일 때 금이 가거나 저장과 운송과정에서 깨지는 경우가 많아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통조림을 최초로 개발한 것은 프랑스였지만 실용화시킨 나라는 영국이었다. 아페르가 현상금을 받은 해인 1810년, 피터 듀란드가 유리병 대신 양철로 된 통조림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듀란드는 1813년 이 특허를 브라이넌 돈킨에게 팔았고 런던에 최초의 통조림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영국 육군에 최초의 통조림을 납품했다. 이듬해 영국 해군본부에 통조림 테스트를 의뢰했고 첫 번째 주문을 받았다.



그렇다면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이 의도했던 것처럼 그리고 현대 군대에서 활용하는 것처럼 장기 보존이 가능한 휴대용 전투식량으로 활용했을까?



최초의 통조림은 전투용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양철 통조림을 처음 생산할 때는 모든 제조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하루 생산량이 단지 6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제조원가나 생산 물량 면에서 전투용 식량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영국 해군은 처음 약 100여 개 분량의 통조림을 주문했는데 용도는 환자용 식량이었다. 장기 항해 중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괴혈병 등에 걸린 선원을 치료하기 위한 음식이었다. 1814년 영국 군의관은 통조림이 항해 중 병에 걸린 환자에게 훌륭한 회복 효과를 나타낸다는 편지를 남겼다. 최초의 통조림은 이렇게 영국 해군에서 환자 치료 목적으로 쓰였다.



물론 영군 해군의 전통이 우리의 복숭아 통조림 위문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동양에서는 1871년 일본에서 처음 통조림을 생산했고, 영국 해군의 급식을 모방한 일본이었으니 환자에게 복숭아 통조림을 주던 영국 해군의 전통이 일본을 거쳐 전해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참고로 초기 통조림은 오프너가 없어 총검으로 찌르거나 총을 쏴서 열어야 했다. 깡통을 따는 오프너가 개발된 것은 1855년 전후로 이때부터 통조림은 미국의 남북전쟁, 유럽의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과 크림전쟁 등 주요 전쟁에서 병사들의 전투식량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