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골 탄생 계기는 조선 무관의 군모에서 비롯?
- 전골
만국사물기원역사 “자기 철모를 벗어 음식 끓여 먹어”
전립 닮은 그릇 때문에 한국음식 획기적 진화에 일조
칭기즈칸이라는 요리가 있다. 요즘은 참숯화로에 달군 불판에 양고기를 구워 먹는 음식을 가리켜 칭기즈칸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샤부샤부처럼 뜨거운
육수에 얇게 썬 고기를 살짝 데쳐 먹는 요리의 이름이었다. 불판에 구워 먹건 육수에 데쳐 먹건 어쨌거나 모두 중국이나 몽골이 아닌 일본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옛날 전골냄비는 조선 무관의 모자인 전립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의 전골 그릇과 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 필자제공 |
조선 무관의 모자인 전립. |
일본에서는 칭기즈칸 군대가 먹었던 음식이 이 요리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전쟁을 할 때 기마병이 일선에서 공격하면 후방의
병참 부대가 식사를 준비했다가 공격을 마치고 돌아온 부대에 제공했다. 자기가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들었던 다른 군대와 달리 칭기즈칸군은 전투가
끝나면 후방에서 만들어 놓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 다시 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어느 전투에서 후방의 병참부대가 적의 공격을 받고 도망갔다.
전방에서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공격부대는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고팠고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이를 본 칭기즈칸이 투구를 벗어 불 위에
걸고 물을 끓인 후 얇게 썬 양고기를 데쳐 먹으라고 명령했다. 덕분에 병사들은 배고픔을 해결했고 배를 든든히 불린 몽골군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전쟁이 끝난 후 병사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끓는 육수에 고기를 데쳐 먹었고 이 요리는 곧 중국에서 유행이 됐다. 이것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으로 들여와 발전시킨 것이 칭기즈칸 요리라는 것이다. 칭기즈칸 요리가 이렇게 탄생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음식점에서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나라 전골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조선 말기의 언론인 장지연은 ‘만국사물기원역사’라는
책에서 “고대의 군사들은 머리에 착용하는 전립을 철로 만들어 썼기 때문에 진중에 솥이 없을 때 자기 철모를 벗어 음식을 끓여 먹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를 본떠 여염집에서도 냄비를 전립 모양으로 만들어 고기와 채소를 끓여 먹었는데 전골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유래를
설명했다.
일본의 칭기즈칸 요리 이야기와의 차이점은 조선시대 문헌 곳곳에서 조선의 군모인 전립을 본떠 그릇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는 것이다.
전립은 조선시대 무관이 착용하던 모자다. 주로 군복 차림에 사용했으므로 전립(戰笠)이라고도 하고, 재료가
짐승의 털을 다져 만든 것이어서 전립(氈笠)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북방 호족의 모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군사들 사이에 널리 사용됐고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이후 무관은 물론 사대부까지 착용했다. 일반적으로 철릭을 입고 전복을 착용한 후 전립을 머리에
썼다.
우리가 즐겨 먹는 전골이 바로 이 모자에서 비롯됐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인 이학규는 “전골은 쇠로 전립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고기를 요리한 것에서 비롯됐는데 그릇 모양이 벙거지 같아서 전립투(氈笠套)라고 한다”고 했다. 투(套)는 그릇 세트라는 뜻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조재삼도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 “그릇 모양이 전립을 닮아서 전립골(氈笠骨)이라고 했는데 전골은 여기서 생긴 이름”이라고
기록했다. 참고로 골(骨)은 뼈라는 뜻이지만 그릇이라는 뜻도 있다.
전골이 병사들이 철모를 이용해 고기를 데쳐 먹어서 생긴
이름인지, 아니면 그릇 모양이 투구를 닮아서 생긴 이름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옛날에 전골을 끓인 그릇이 조선시대 무관이 착용하던
모자인 전립과 닮은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조리 도구가 군인 모자를 닮은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사실 전립 모양의
그릇이 만들어졌기에 우리 음식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리이지만 부연 설명을 하자면 전골은 얇게 썬 고기나
해물을 채소·버섯과 함께 냄비에 넣어 국물을 조금 붓고 끓이는 음식이다. 원래는 국이나 찌개와 달리 고기에서 우러나는 육즙과 채소에서 배어
나오는 국물로 조리한다. 그 때문에 조선 군인의 모자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과 같은 모양의 조리 그릇이 필요했다. 모자챙처럼 생긴 가장자리의
평평한 곳에 고기와 채소를 동시에 올려 굽고 익히면서 먹는 한편으로 육즙과 채소 국물이 가운데 파인 곳으로 모이게 한 구조다. 그러니까 고기와
채소와 국물을 동시에 먹을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전골 그릇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고기는 물에 넣어 삶거나 끓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때로는
꼬챙이에 꽂아 숯불에 구워 먹었지만, 전골 그릇이 나오면서부터는 고기를 굽는 동시에 육즙을 우려낸 국물도 함께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옛날 전골그릇은 지금의 전골냄비보다는 서울식 불고기 불판과 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발전해 현재의 전골과
불고기로 세분화됐다. 새로운 도구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의 고기 조리법이 한 단계 발전했으니 조선시대 무관의 군모가 한국 음식의 진화에 일조한
셈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음식, 전골에 얽힌 뜻밖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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