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미인계의 희생양, 서시가 가리비로 부활?
- 가리비와 미인계
월왕 구천이 원수인 오나라 왕 부차에게 미인 서시 바쳐
미인계로 멸망시켰지만 월왕 왕후가 바다에 던져 죽여
가리비는 춘추시대 미인계로 오나라를 멸망시킨 미녀 서시가 죽어 부활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 서양에서는 가리비를 생명의 탄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겼다. 필자 제공 |
날씨가 쌀쌀해지면 조개구이가 제 맛을 낸다. 빨갛게 달군 불에 조개를 올려놓고 익혀 먹는 조갯살은 별미인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가리비다. 맛도 맛이지만 큼직해서 먹음직스럽다.
가리비는 보통 조개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연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비너스 탄생’인데 보티첼리는 비너스가 가리비 껍질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그렸다. 왜 하필 가리비였을까? 유럽에서는 먼 옛날부터
가리비를 생명의 상징, 부활의 심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리비는 풍성하고 맛있다.
동양도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때의 미인 서시가 죽어서 가리비로 부활했다는 전설이 있다. 서시는 또 왜 하필이면 가리비로 부활했을까?
서시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미인계의 희생양이었다. 미인계는 병법서인 삼십육계(三十六計)에 나오는 서른한 번째 계책이다. 삼십육계가 손자병법에 나오는 계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삼십육계와 손자병법은 전혀 다른 병법서다. 손자병법은 이름 그대로 춘추전국시대 말기 손자가 지은 병법서로 모두 13가지의
계책이 적혀 있다. 반면 삼십육계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중국 병서에 나오는 핵심 서른여섯 가지를 뽑아서 정리한 글로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삼십육계는 상황을 여섯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각각 여섯 개의 계책을 적었는데 미인계는 아군의 전력이 불리할 때 적의
세력을 약화시켜 아군을 보호하고 전력을 유지하기 위한 패전계(敗戰計)의 첫째 전략이다. 덧붙여 패전계의 마지막이자 삼십육계의 최종 전략이 바로
잘 알려진 삼십육계 ‘줄행랑(走爲上)’이다.
“적의 병력이 강할 때는 그 장수를 공략한다. 장수가 지혜로운 자라면 정서적인 약점을
파고든다. 장수가 약해지면 병력이 무너지고 그러면 기세가 시들해져 스스로 위축된다. 이렇게 적의 어려움을 이용하면 순조롭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兵强者 攻其將 將智者 伐其情 將弱兵頹 其勢自萎 利用御寇 順相保也).”
삼십육계에 실려 있는 미인계의 내용이다. 후세
사람들이 여기에 해설을 붙였다. 적군의 전력이 강하고 지휘관이 지혜로울 때는 함부로 대적하면 안 된다. 상대편을 구슬리며 전쟁을 막아야 한다.
다만 땅(영토)까지 바치며 양보하면 적군의 전력만 키울 뿐이니까 가장 낮은 계책이다. 춘추시대 때 여섯 나라가 진나라에 국토까지 양보해 결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 하책은 돈과 물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적군을 배부르게 할 뿐이다. 송나라가 요나라·금나라에
돈과 물자를 주며 평화를 구걸하다 결국에는 남쪽으로 쫓겨나고 망했다.
최상의 방법은 미인계다. 미인을 바쳐 장수의 의지를 꺾고
체력을 약화시키면 부하들의 원성이 높아진다. 춘추시대 월왕 구천이 원수인 오나라를 무너트릴 때 오왕 부차에게 미인 서시를 바친
경우다.
구천과 부차는 땔감 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만들어 낼
정도로 철천지원수였다. 서시는 오나라에 패한 월왕 구천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예능을 가르쳐 오나라에 바친 미녀였다. 과연 서시의 미모에
빠진 오왕 부차는 정치를 돌보지 않다가 월나라에 망했는데 서시가 얼마나 예뻤기에 나라까지 망했을까?
중국에 유명한 미녀 4명이
있다. 춘추시대 때 서시, 한나라 때 흉노족에게 바쳐진 왕소군, 삼국지에서 동탁을 멸망시키려고 첩이 된 초선, 그리고 당나라 현종의 애첩
양귀비다. 4명의 미녀를 가리키는 속어가 있다. ‘침어낙안’ ‘폐월수화’다. 침어(沈魚)는 물고기가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연못의 물고기가 서시를
보더니 헤엄치는 것도 잊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낙안(雁)은 기러기가 떨어졌다는 뜻으로 하늘에서 왕소군의 자태를 본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어
땅으로 추락했다. 폐월(閉月)은 초선을 본 달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싫어 구름 사이로 숨었고, 수화(羞花)는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는 말이다. 이렇게 예뻤으니 그 미모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못하고 결국 멸망한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망칠 정도의 미인이라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생겼다.
미인계로 오나라를 망하게 만든 서시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 월나라 승리의 일등공신이니
충분히 보상을 받았을까? 역사책에는 더 이상 서시의 후일담이 나오지 않고 전설만 전해진다.
미인계로 오왕 부차를 멸망시켰지만 막상
오나라가 망하자 서시의 운명도 난처해졌다. 월왕 구천의 왕후가 서시의 미모에 반한 구천 역시 나라를 망칠까 두려워 서시의 몸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져 죽였다. 그 후 어느 날 해변에서 낯선 조개가 잡혔는데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시가 조개로 부활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바로 가리비다.
그래서 옛날 중국에서는 가리비 조갯살을 볶은 요리를 서시의 혀(西施舌)라고 이름 지었으니 한몸 바쳐
나라를 구했지만 결국은 나라를 위해 죽어야 했던 미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음식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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