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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몹쓸 풀 애물단지보물단지 승전 일등공신
- <9>감 자
- 2013. 02. 27 16:12 입력
100년 넘게 재배 꺼리는 독초로 구박 세계대전 땐 영국군 주식량으로 대박
![]()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 |
![]() 동물사료였던 감자를 먹게 한 프랑스 농학자 앙투안 파르망티에.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2003년 3월, 미국과 이라크 전쟁의 유탄이 엉뚱하게 감자튀김인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로 튀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프랑스가 사사건건 전쟁에 반대하며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중동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엇갈렸기 때문인데 이런 프랑스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미국 정치인들은 프랑스와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조건 싫었던 모양이다.
급기야 미국 하원에서 일이 벌어졌다. 미국 하원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던 봅 니 하원의원이 의회 구내식당의 메뉴 중 감자튀김인 프렌치프라이의 이름을 프리덤(Freedom) 프라이로 바꿔버렸다. ‘프랑스식 감자튀김’이라는 이름에 입맛이 떨어진다며 ‘자유의 감자튀김’으로 이름을 바꾼 것인데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소식만큼이나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언론이 그대로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언론이 메뉴 이름 변경 사실을 화젯거리로 보도하면서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말 전쟁’이 시작됐다.
이른바 감자튀김 원조 논쟁으로 미국에서는 프렌치프라이니까 당연히 프랑스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주장했지만 워싱턴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서는 비공식 반박 자료를 발표하면서 “사실은 프랑스 음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미국인들의 무지를 조롱했다.
프렌치프라이는 햄버거를 먹는 미국인들이 주로 먹는 식품이고, 프랑스가 원조가 아니라 벨기에에서 발달한 음식일 수 있다며 엉뚱하게 감자튀김에 분풀이하지 말라고 꼬집은 것이다.
형용사 프렌치(French) 때문에 프렌치프라이의 원조가 프랑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기원은 확실치가 않다. 프랑스의 거리음식에서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원조는 벨기에인데 프랑스를 거쳐 영국과 미국으로 퍼졌다는 설도 있다. 또 ‘프렌치’라는 형용사가 프랑스를 뜻하는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가늘게 자르다, 갈비에서 뼈를 발라내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늘게 썰어 튀긴 감자라는 뜻에서 프렌치프라이로 불렸을 수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가 논쟁을 벌였던 감자튀김, 프렌치프라이는 이라크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말싸움도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그리고 미국 하원의 구내식당에서도 감자튀김 메뉴를 슬그머니 프리덤 프라이에서 다시 프렌치프라이로 돌려놓았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무렵인 2005년 2월, 프렌치프라이가 또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만나 정상회담을 하며 그동안 서먹했던 양국 관계를 풀었는데 이때 백악관 대변인이 양국 정상의 만찬 메뉴 중 하나로 특별히 프렌치프라이를 준비했다고 발표했다. 감자튀김을 양국 화해의 상징으로 거론했던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소한 음식인 서양의 감자튀김, 프렌치프라이가 때로는 국제 정치에서 불화의 상징으로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화해의 아이콘으로 쓰이기도 했으니 어찌 보면 아이들 장난 같기도 하다.
감자튀김처럼, 살다 보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인생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데 감자가 그랬다. 남미 페루가 원산지인 감자는 16세기 초에 처음 유럽에 전해졌을 때 구박덩어리였다. 100년이 지나도록 거의 못 먹는 독초 취급을 당했는데 독일에서는 농민들이 감자에 독이 들었다며 만지는 것조차 두려워했을 정도다. 프랑스도 감자가 전염병을 옮긴다고 믿어 한때 재배조차 못 하게 막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감자를 먹게 된 것은 거의 18세기 말부터였는데 프랑스 육군 장교였던 농학자 앙투안 파르망티에 덕분이었다. 파르망티에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됐을 때, 당시에는 돼지먹이였던 감자를 먹으며 연명하다 감자가 좋은 식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흉년으로 대기근이 발생하자 파르망티에가 감자를 재배해 먹도록 설득한 덕분에 프랑스 국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르망티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인류 역사상 감자만큼 구박을 받은 음식도 많지 않지만, 감자처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식품도 흔치 않다. 미국과 프랑스의 감정싸움에서 화풀이의 대상이 됐던 감자튀김 프렌치프라이지만 가늘게 썰어서 튀긴 이 감자요리는 제1·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승리하는 데 숨은 공로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은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통해 영국으로 수송되는 물자를 차단했는데 영국인들은 생선과 감자튀김, 즉 피시 앤드 칩스(fish & chips)를 먹고 버티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의 노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라는 신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을 승리로 이끈 것은 6펜스짜리 생선과 감자튀김”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 정부는 배급제를 통해 식량을 철저히 통제했다. 하지만 여기서 감자튀김은 제외됐다고 한다. 독일과 싸우는 영국민과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못난 자식 효자 노릇 한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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