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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57>롱 보우(long bow)
- 13~15세기 영국서 주력무기로 사용
- 2008. 02. 25 00:00 입력 | 2013. 01. 05 03:38 수정
일정한 주기를 갖고 반복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영화·음악과 같은 문화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 그리고 드물게는 과학기술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군사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닌데 14세기 이후 다양한 화약무기가 등장하고 사용된 서유럽에서도 창과 활이 한시적으로 주요무기로 사용됐다. 특히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요먼(Yeoman)이라고 불린 영국인들이 사용한 롱 보우(Long Bow), 다시 말해 장궁은 중세시대 군사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던 중장기병과 석궁으로 무장한 보병을 제압, 그 위력을 과시한 중요한 무기다.
롱 보우는 이름 그대로 활(弓)의 전체 길이가 150㎝를 넘는 것이 특징이며, 백년전쟁 당시 주요 전투에서 영국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해 유명해졌다. 사실 중세 암흑시대 노르만인들 역시 150㎝ 이상의 활을 사용했고 중국이나 아시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궁(長弓)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만든 롱 보우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본다.
롱 보우는 주로 주목(朱木)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150~180㎝, 무게 0.6~0.8㎏에 화살의 길이는 75~100㎝, 무게는 0.5~0.7㎏ 미만이었다. 화살촉은 소켓 모양에 끝을 예리하게 만든 단순한 것이었지만 재질이 강철로 돼 있어 그 위력이나 사정거리는 여느 석궁 못지않았고 발사속도는 오히려 더 빨랐다. 잘 훈련된 궁사는 10초에 한 개의 화살을 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고 만약 적을 겨냥하지 않고 속사를 하면 6초에 한 개의 화살을 쏠 수 있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나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몽골처럼 활을 주요무기로 사용한 전례가 있었으나 영국처럼 크기에 중점을 둔 장궁 류의 활을 집중적으로 운용한 예는 드물다. 특히 롱 보우는 하늘 높이 화살을 쏴도 마치 현대의 곡사포나 박격포와 같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적의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롱 보우의 아버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에드워드 1세는 1298년 7월 22일 벌어진 폴커크 전투에서 잉글랜드인과 웨일스인들로 구성된 롱 보우 혼성부대를 실험적으로 운용해 그 기반을 다졌다. 이후 영국인들은 롱 보우를 전열의 양쪽에 배치, 기병 못지않은 주요 공격 전력으로 활용했고 상대적으로 강력한 기사와 석궁부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주요무기로 사용되던 롱 보우는 1451년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를 기점으로 점차 퇴역했다. 장미전쟁으로 불린 영국의 내란으로 인해 뛰어난 기량을 갖춘 대부분의 요먼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롱 보우를 사용한 전술이 대부분 알려졌고 화기의 발달로 전쟁 양상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 보우는 스위스 용병들이 사용한 미늘창과 함께 봉건기병 시대와 화약무기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양대 무기로 평가받는다.
역사속 신무기<58>미늘창 ‘할베르트(halbert)’
- 창·도끼·갈고리가 결합된 다목적 무기
- 2008. 03. 03 00:00 입력 | 2013. 01. 05 03:39 수정
멀티 롤이나 스윙 롤은 임무수행 중 상황에 따라 원래 계획에 없던 다른 임무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이 표현은 최첨단 전투기의 성능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첨단 무기가 아닌 일반 무기 중에도 이런 다목적 무기의 개발이 시도됐는데 그중 15세기 말 스위스에서 등장한 미늘창 할베르트(halbert)는 가장 성공적인 다목적 무기로 손꼽힌다.할베르트는 창과 도끼·갈고리가 결합된 길이 0.3~0.5m의 독특한 형태의 머리 부분과 2~3m 길이의 창 자루로 구성돼 있다.
전체 길이는 2.3∼3.5m, 무게는 2.5∼3.5㎏의 것이 주로 사용됐다. 창 모양의 머리 부분에 도끼 같은 넓은 날이 있으며 그 반대 쪽에는 갈고리 모양의 돌기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복잡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하나의 무기로 베기·찌르기·걸기·찍기의 네 가지 공격이 동시에 가능했고 창병의 전투력 향상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공격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이전까지 주요 장병 무기였던 스피어(spear)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었으며 갑옷을 입은 병사나 기병을 상대로 동등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 창병의 전투력을 배가시켰다.실제로 1315년 모르가르텐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중세 유럽 전장에서 보병이 기병을 제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위스의 지도자 에를라흐의 루돌프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늘창과 조밀한 방어진으로 암흑시대 이후 중세 전장을 지배했던 중장기병을 제압,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할베르트라 불린 미늘창을 손에 쥔 스위스 보병은 최고의 기강과 단결력, 그리고 튼튼한 두 팔로 어떠한 지형과 상황에서도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용맹하게 싸웠다.
스위스군은 어떠한 중장기병도 돌파할 수 없는 강력한 방어진으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민첩한 기동성까지 갖추고 있어 빠른 공수 전환이 가능했다. 마키아벨리(1469∼1527)는 “행군할 때나 전투대형을 갖출 때 그들보다 민첩한 군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스위스군은 수비보다 공격적인 작전을 펼쳤다.
무장이 가볍고 기동력이 뛰어났던 스위스군은 군악에 보조를 맞춰 행군한 최초의 현대식 군대이며 이동 중 기습을 받더라도 전투대형으로 신속한 전환이 가능했다.모르가르텐 전투 후 약 150년 동안 서유럽의 전장에서 스위스 창병의 명성을 꺾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군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위스 보병이 서유럽 전장에서 맹위를 떨치자 그들이 사용한 미늘창 역시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유럽 군주들에 의해 표준무기로 정착됐다. 화약무기의 등장과 전술 변화로 17세기 이후 전장에서 사라졌지만 백병전 무기의 황금기로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만능 무기이자 가장 인기 있는 무기였고 의전용으로 19세기까지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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