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19>디오니시우스의 노포

구름위 2017. 1. 9. 20:15

역사속 신무기<19>디오니시우스의 노포

500m 이상 떨어진 敵 정확히 저격
2007. 05. 21   00:00 입력 | 2013. 01. 05   03:00 수정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났을 때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우스 1세(재위 기원전 405∼367)는 평화가 아닌 새로운 전란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시라쿠사의 안녕을 보장하고 이민족, 특히 카르타고의 침공을 막기 위해 주요 군사적 요충지에 요새를 구축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기원전 400년 시라쿠사의 장인들은 디오니시우스를 위해 현대 로켓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최초의 노포(弩砲) 가스트라페테스를 탄생시켰다.
일부에서 최초의 석궁으로 분류하기도 하는 가스트라페테스는 복부에 활대를 고정하고 기계 장치로 시위를 당겨 발사하는 대단히 강력한 활이었다.
당시 가장 강력했던 복합궁 장력이 18∼27㎏ 수준이었던 반면 가스트라페테스의 장력은 무려 68∼90㎏으로 철봉에 가까운 강철 화살을 100m 이상 쏠 수 있었다.
이처럼 강력한 장력을 얻기 위해 활대는 복합궁 못지않게 튼튼해야 했고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시라쿠사 이외에는 노포를 만들 수 없었다.
노포 등장은 그간 순수한 사람 힘만으로 사용되던 투척병기 발전사에 혁명적 사건이었고 이를 통해 인류는 더 강력한 무기를 더 멀리까지 더 정확하게 쏴 명중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가스트라페테스는 그 혁신성과 치명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준으로는 휴대하고 다니기에 너무 무거웠고 재 장전에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대량으로 보급되지 못했다.
결국 가스트라페테스는 요새를 지키는 방어무기나 반대로 적의 요새를 포위 공격할 때 사용하는 공성무기의 하나로 사용됐다.
이후 가스트라페테스의 성능 개량에 고심하던 시라쿠사의 장인들은 기원전 375년 두 번째 노포 옥시벨레스(사진)를 만들어 냈다.
옥시벨레스의 가장 큰 특징은 가스트라페테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포 자체가 보다 육중해지고 구조가 복잡해 졌다는 것이다.
가스트라페테스와 달리 휴대는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이동을 위해서는 분해·조립이라는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고정 포대로 운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시벨레스는 윈치와 레버를 사용해 보다 빠르고 용이하게 시위를 당길 수 있었고 고정 받침대의 사용으로 500m 이상 떨어져 있는 적을 정확히 저격할 수 있었다.
가스트라페테스와 옥시벨레스의 등장은 인류 무기 발전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훗날 보다 개량된 노포인 리토볼로스나 발리스타의 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군사적·외교적으로 뛰어났던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는 이러한 신무기를 사용해 카르타고의 시칠리아 진출을 세 번이나 격퇴했다.
디오니시우스가 만든 노포는 훗날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사적 성공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역사속 신무기<20>디오니시우스의 투석기

지렛대 원리 이용 무거운 돌 등 발사
2007. 05. 28   00:00 입력 | 2013. 01. 05   03:01 수정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우스 1세(재위 기원전 405∼367)는 그리스 최고의 공성전 전문가이자 투석무기 발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처음 노포를 전쟁에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들이 발명한 투석기로 시라쿠사의 군대를 무장시키고 공성전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카타펠테스와 페트로볼로스는 디오니시우스 1세에 의해 사용된 대표적 투석기로 그 위력은 육중한 성문조차 일격에 격파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실제로 디오니시우스 1세는 기원전 398년 모티아 점령을 통해 공성망치와 투석기가 딸린 공성탑이 공성전 수행에 얼마나 효과적인 무기인지 직접 검증해 보였다.

소형 투석기로 분류되는 카타펠테스는 최대 4㎏의 돌이나 화살·투창 등을 발사해 230m 이내의 표적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었다. 카타펠테스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탄환을 투척할 수 있었고, 황소 힘줄이나 여성의 머리카락을 꼬아 만든 밧줄로 투척에 필요한 탄성을 얻었다. 조준사격이 아닌 경우에는 최대 325m까지 각종 탄환을 투척할 수 있었다.

투석기 자체의 길이는 2∼3m, 무게는 250∼350㎏였다.대형 투석기로 분류되는 페트로볼로스(사진)는 길이 3∼5m, 무게 300∼400㎏에 최대 25㎏의 돌이나 소이탄을 최대 400m까지 투척할 수 있었다. 카타펠테스를 좀 더 확대시킨 형상의 페트로볼로스는 발사시 반동이 더 컸기 때문에 바닥에 아무리 단단히 고정해도 야생 당나귀가 뒷발로 발길질하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이 때문에 페트로볼로스라는 이름보다 ‘야생 당나귀’를 뜻하는 ‘오나거’로 더 많이 불렸다.현대의 자주포, 혹은 대구경 다연장로켓에 비유할 수 있는 투석기는 무거운 돌이나 화살·소이탄 등 각종 탄환을 지렛대 원리를 이용, 발사할 수 있는 투척무기다. 화포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위력적이고 치명적인 무기로 전쟁에 사용됐고 기원전 5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처음 등장해 유럽에서는 10세기 중세시대 때까지 사용됐다.

역사적 자료 부족으로 최초 개발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보통은 페니키아인들이 처음 발명하고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우스 1세에 의해 전쟁에 사용된 것으로 본다. 사실 화약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투석기를 압도할 수 있는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동성이 결여됐다는 단점만 제외하면 공격·방어용 전략무기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페트로볼로스와 카타펠테스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주요 무기로 사용됐고 유럽에서는 10세기 중세시대까지도 중요한 공성무기로 사용됐다.한편 필리포스 2세(재위 기원전 359∼336년)는 노포와 투석기를 사용한 포술을 발전시켰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자신의 정복 전쟁에 투석기를 적절히 사용해 승리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