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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실용화된 독일 고속폭격기 Ju88

구름위 2017. 1. 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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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실용화된 독일 고속폭격기 Ju88

2차세계대전 최다 생산 기록
2005. 10. 04   00:00 입력 | 2013. 01. 05   01:57 수정


같은 목표를 설정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한다. 이 둘의 차이는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의 유무다. 1920년대에 유행한 ‘전투기보다 빠른 고속 폭격기’라는 이론도 마찬가지다.
Ju88(사진)은 최초의 실용화된 고속 폭격기였다. 속도를 달성하기 위해 기체 강도의 한계까지 무게를 줄인 영국의 블렌힘은 실패했다. 하지만 합리적인 설계로 접근한 독일의 Ju88은 단엽 전투기보다 빠르지 못했지만 성공적인 고속 폭격기로 남았다.
1935년 독일 공군성은 전투기보다 빠른 시속 500㎞의 속도를 내면서 800~1000㎏의 폭탄 장착 능력에 2000㎞를 날 수 있는 ‘슈넬 봄버’(고속 폭격기) 개발 계획을 시작했다. 공군성은 각 항공사에 시작기(試作機) 경쟁에 참가할 것을 요청했다. 요청에 응한 회사는 4개사였으며 경쟁에 승리한 것은 융커스사의 Ju88이었다.
Ju88은 고속 성능을 우선했기 때문에 기체는 가능한 한 콤팩트하게 만들어졌다. 콤팩트하다고 해도 Ju88은 길이 14m, 전폭 20m, 총중량 20톤이나 나갈 정도였다. 엔진 두 개를 장착한 쌍발기로는 꽤 큰 대형 기체였던 것.
그러나 승무원 4명을 모두 기수에 집중하고 기체 방어용 후방 기방 총좌는 조종실 후면과 기체 하면 곤돌라에만 설치했다. 액랭식 엔진의 약점인 라디에이터를 엔진 전면에 원형으로 배치, 공기 저항을 줄이는 합리적인 구조를 채용한 덕에 폭탄을 장착한 상태로도 시속 400㎞ 이상의 속도로 날면서 경쾌한 운동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Ju88의 운동성과 안정성, 그리고 기체 강도의 우수성은 쌍발기임에도 급강하 폭격이 가능하다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Ju87 급강하 폭격기의 성과에 놀란 데다 애당초 지상군과의 연계 작전을 전제로 한 공군성이 Ju88에도 급강하 폭격 성능을 요구, 결국 Ju88은 주익 하면에 다이브 브레이크를 설치해 급강하 폭격까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급강하 폭격을 위한 개조 덕분에 개발이 지연돼 최초의 양산기인 Ju88V1형은 1936년 12월21일에 첫 비행을 실시했고 양산형인 Ju88A1형은 1939년 8월에 이르러서야 60대만이 일선 배치를 마칠 수 있었다.
폭격기가 총동원된 영국 항공전에서 Ju88은 당당한 주역임을 입증했다. 물론 Ju88이라고 영국의 단엽 전투기들에 비해 100~150㎞ 정도 느리다는 한계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개발 당시에 꿈꾼 전투기보다 빠른 고속 폭격기라는 발상은 무의미해졌지만 Do17·He111 등 다른 독일의 쌍발 폭격기에 비해 100㎞ 이상 빨랐다. 그 덕에 다른 폭격기들이 영국 전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와중에도 500㎞에 달하는 빠른 속도와 폭격기답지 않은 기민한 운동성을 살려 생존성이 높았다.
같은 의도로 만들어진 영국의 블렌힘 쌍발 폭격기가 폭탄 장착량이 450㎏에 불과함에도 속도를 위해 기체 구조를 희생했지만 Ju88은 3000㎏의 폭탄을 장착하고도 충분한 출력 여유를 기반으로 돌발 상황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으며 필요에 따른 개조도 가능했다. Ju88의 빠른 속도와 뛰어난 기동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는 쌍발 전투기로 개조한 Ju88C다.
Ju88C 쌍발 전투기는 폭격에 필요 없는 글라스 노즈(전면 유리창)를 금속제로 바꾸고 기관총을 장착한 것이다. Ju88C는 단발기에 못지않은 속도와 기동성을 보였고 후일 리히텐슈타인 레이더를 달고 야간 전투기형의 원형이 됐다.
Ju88은 원형인 폭격기뿐만 아니라 야간 전투기·장거리 전투기·장거리 정찰기·뇌격기로도 사용되면서 많은 활약을 했고 도합 1만4676기가 생산돼 제2차 세계대전 중 쌍발기로서는 가장 많이 생산된 기종으로 기록됐다.
독일 Fw190 전투기
2005. 11. 15   00:00 입력 | 2013. 01. 05   02:01 수정

독일의 포케불프 Fw190 전투기(사진)는 공기역학적으로 불리한 공랭식 엔진을 장착하고도 수랭식 엔진을 능가하는 비행 성능을 확보한 최초의 전투기다. 공랭식 엔진 자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개발됐지만 수랭식 엔진보다 성능이 떨어져 전투기 엔진의 주류로 자리잡지 못했다.
하지만 쿠르츠 탕크 박사가 개발한 Fw190은 공랭식 성형 엔진을 장착하고서도 수랭식 직렬 엔진을 장착한 Bf109F나 스핏파이어를 능가하는 비행 성능을 가졌다. 더구나 이 걸작 전투기는 뛰어난 비행 성능을 가지면서도 조종과 이착륙이 쉬워 신참이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갖고 있었다.
1930년대 말 독일 공군성은 Bf109의 보조 역할을 할 신형 전투기 개발을 요구했다. 결국 당시로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포케불프사가 개발권을 따냈다. 독일 공군성은 이 신형기 성능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설계를 담당한 탕크 박사는 이 전투기를 Bf109를 능가하는 전투기로 만들겠다는 대단한 야심을 갖고 설계에 임했다.
Bf109를 포함, 기존의 수랭식 엔진 전투기들은 가능한 한 작은 기체에 강력한 엔진을 장비한 비행기다. 이들은 비행 성능은 우수했지만 예민해서 다루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탕크 박사는 비행장의 설비가 좋지 않더라도 간단히 정비할 수 있고 조종이 쉬워 단기간에 파일럿을 양성할 수 있으며 웬만한 피탄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전투기의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엔진도 예민한 수랭식 엔진 대신 튼튼하고 악조건에 강한 공랭식 엔진을 채용했다.
1939년 5월부터 BMW사의 BMW139 공랭 엔진을 탑재한 시작기가 테스트됐다. 몇 가지 문제가 있었으나 공군성 시험 비행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면서 정식 채용이 결정됐다.
BMW사가 200마력 정도 출력이 늘어나고 신뢰성이 향상된 BMW801 엔진을 개발한 이후 1940년 봄 엔진을 BMW801로 바꾼 Fw190V5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발견된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1941년 7월부터 Fw190은 양산에 들어가 정식으로 일선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1941년 9월 초 ?蝸?르크 상공에서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 Mk.Vb 4대가 Fw190A-1 4대와 교전, 순식간에 3대가 격추된다. 이후 개량형 스핏파이어 Mk.IX가 등장하는 1942년 6월까지 Fw190은 말 그대로 서부 유럽의 하늘을 지배했다.
영국 공군은 스핏파이어 MkV형보다 속도·상승력·선회 성능이 우수한 Fw190 출현에 크나큰 고민에 빠졌다. 심지어 1942년 초에는 프랑스에 코만도를 투입, 비행 가능한 포케불프 Fw190을 훔쳐 온다는 계획까지 세울 정도였다.
한편 Fw190은 서부 전선에 이어 소련을 상대하는 동부 전선의 항공단들에도 배치되기 시작했다. 동부 전선에서도 그 우수한 비행 성능을 과시했음은 물론이다.
Fw190의 고성능은 BMW801의 고출력에 기반한다. 1700마력이라는 출력은 Bf109의 DB601/605 엔진보다 15~26% 우위에 있었다. 이 출력 여유를 살려 기체 구조를 강화할 수 있었고 튼튼한 구조는 웬만한 피탄에도 견딜 수 있었다.
무장 또한 7.92mm 기관총 2정과 20mm 기관총 4문을 장착할 수 있었는데 이는 Bf109의 두 배다. 그러면서도 비행 특성은 아주 우수하며 방향타·보조익들이 가볍게 움직이며 모든 속도 영역에서 운동성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또 위쪽으로 돌출된 캐노피는 파일럿에게 양호한 시계를 제공, 기체에 숙달되지 않은 파일럿이라도 쉽게 적응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포케불프 Fw190은 전투기인 A형 외에 기체가 크고 튼튼하며 특히 1톤 가까운 폭장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살려 대지 공격형인 F형, 장거리 폭격형인 G형으로 개량되기도 했다. Fw190은 2만 기가 넘게 만들어졌고 독일 공군의 전력과 전과를 증대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