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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3호 전차
- ‘현대 주력전차 원형’이자 전장 주역
- 2005. 09. 20 00:00 입력 | 2013. 01. 05 01:56 수정
1916년 9월 제1차 세계대전 솜(Somme) 전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전차는 미래 전쟁의 향방을 바꿀 무기라고 일컬어졌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서방 각국에서는 전차를 여전히 보병의 행군 속도에 맞춰 움직이면서 진격로상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인식했다. 즉, 전장의 주역은 여전히 보병이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전차를 깊이 연구한 독일의 하인즈 구데리안 장군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적이 예비대를 투입하기 전에 전선을 돌파, 전과를 확대할 수 있는 기동성과 항속거리를 가진 전차라면 전장의 주역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여기에 공동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차량화된 보병·공병·포병으로 구성된 지원 부대가 추가된다면 전차야말로 전장의 주역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구데리안은 두 가지 전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근거리에서 적 전차와 직접 교전할 수 있는 화력과 방어력을 갖는 15톤 정도의 주력 전차, 다른 하나는 보다 큰 화포를 갖고 원거리에서 적 전차를 격파하거나 주력 전차를 지원할 수 있는 지원 전차였다. 3호 전차(사진)는 이 중 주력 전차에 해당한다.
1934년 1월11일, 전차 개발을 은닉하기 위해 ZW(소대장차)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3호 전차의 개발 경쟁에 만(MAN), 다임러 벤츠, 라인메탈, 크루프사 등이 뛰어들었다. 테스트 결과 다임러 벤츠가 승자가 됐다.
A·B·C·D형을 거쳐 완성된 3호 전차 E형은 현대 주력 전차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30mm 두께의 장갑으로 만들어진 포탑에는 37mm 주포 1문과 3정의 기관총을 장착했다. 역시 30mm의 장갑으로 보호되는 차체에는 상하 기동 충격을 금속봉의 탄성으로 흡수·완충하는 토션 바 현수 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40㎞의 속도로 기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3호 전차가 동시기의 영국·프랑스 전차들에 비해 장갑이나 화력에서 특별히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제 르노 R - 35의 전면 장갑은 34mm, 소뮤아 S - 35의 전면 장갑은 36mm, 샤알 B1은 60mm였고 영국제 보병전차 A12 마틸다 Mk.II의 전면 장갑은 무려 65mm에 달했다.
결국 3호 전차의 37mm 전차포로는 정면에서 이들을 격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소뮤아 S - 35의 47mm 전차포는 500m 정도의 거리에서 독일군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고 영국제 2파운드 전차포도 비슷한 화력을 갖고 있었다.
3호 전차가 선택한 것은 화력과 방호력이 아니었다.
첫 번째, 3호 전차는 우수한 기동력을 갖고 있었다. 연합국의 전차들보다 우수한 기동성은 전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번째, 포탑 승무원의 임무 영역을 명확히 나눴다. 다른 나라의 전차에서는 전차장이 장전수·포수의 역할을 겸해야 했지만 3호 전차는 전차장이 외부의 시찰과 차량의 지휘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전 승무원을 연결하는 내부 통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소음이 심할 때나 심지어 전투 중에도 명령을 신속·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네 번째, 모든 차량에 무전기를 장비해 통합적인 지휘와 지원 요청이 가능했다.
3호 전차는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1939년 폴란드 전역, 1940년 서부 전역에서 프랑스·영국 전차들을 압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이 유럽을 석권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독일 sd.kfz. 251 반궤도 장갑차
- 2005. 09. 27 00:00 입력 | 2013. 01. 05 01:57 수정
sd.kfz. 251은 병력 수송 장갑차 중 실용화에 성공, 실전에서 대량 운용된 최초의 장갑차다.
전차를 깊이 연구한 독일의 하인즈 구데리안 장군은 전차를 지상전의 주역으로 생각했지만 전차가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차량화한 보병·공병·포병 부대를 추가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발상은 독일의 또 다른 명장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1936년에 제작한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서 만슈타인은 기갑부대는 전차와 전차를 지원하기 위한 자동차화 포병, 그리고 전과 확대를 위한 자동차화 보병, 그리고 기타 기계화 지원 부대로 구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경사단, 자동차화 보병사단, 전차사단으로 구성된 기동군단 편성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포병 부대나 보병 부대는 전차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기동력이 요구됐다. 다시 말해 포나 보병들을 기동시킬 차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존의 트럭은 대부분 포장되지 않은 야지에서의 주행 능력이 떨어지고 내구성도 낮다는 점이 한계였다. 특히 전차와 함께 작전하기에 방어력이 너무 약한 것이 약점이었다.
이 때문에 전차와 함께 행동할 차량은 적어도 기관총탄에 견딜 수 있는 장갑 차체를 갖추고 야지에서의 주행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궤도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차량을 개발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이 부상했다. 기존 차량 중에서 어느 정도의 야지 주파 능력을 갖춘 반궤도(하프트랙) 차량 차체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
반궤도 차량은 앞에는 일반 차량 바퀴를 사용하고 뒤에는 무한궤도를 장착한 차량을 의미한다.
새로운 반궤도 장갑 차량은 2명의 승무원과 보병 10명을 실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포를 견인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됐다.
1935년에 개발이 시작돼 1939년 6월에 양산되기 시작한 sd.kfz. 251는 전면 14.5mm, 측후면 각 6~8mm의 c형 장갑을 용접한 장갑 차체를 가졌다. 보병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호력을 갖춘 것이다. 또 2.7톤의 견인 능력을 갖고 있어 야포 견인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장갑차에 장착된 100마력 출력의 마이바흐 HL42TUKRM 6기통 가솔린 엔진은 도로상에서 시속 53㎞로 총 300㎞를 주행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sd.kfz. 251을 보유한 보병·포병 부대는 전차 부대와 거의 비슷한 기동력을 갖게 됐다. 무장은 각 형식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MG34·MG42 기관총 2정을 장착했다.
또 전차 부대와의 통신을 위해 FuG.5 무전기를 장착하고 있다.
Sd.Kfz. 251 반궤도 장갑 차량은 원래 보병 수송을 주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실제로 생산해 본 결과 높은 범용성을 보였다. 보병 수송은 물론 부대 지휘와 지원, 각종 물자 수송, 포병 관측, 정찰·수색 외에 공병·통신부대용으로도 사용됐다.
각종 포를 장착하고 직접 보병들을 지원하는 경차량으로도 쓰였다. 그 결과 도합 23종의 변형이 만들어질 정도로 뛰어난 범용성을 자랑했다. 이러한 뛰어난 성능 덕에 Sd.Kfz. 251는 총 1만5252대가 생산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독일 전차들은 Sd.Kfz. 251 장갑차 덕택에 보병·포병·공병과의 제병과 협동 작전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격전의 성공적인 전과는 사실상 주역인 전차와 조연인 Sd.Kfz. 251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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