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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의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준 "마리아 루즈호 사건"

구름위 2012. 10. 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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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7월 9일 요코하마에 페루선적 마카오를 출발하여 페루의 카야오로 향하는 마리아 루즈호가 기항합니다

요코하마에 올 계획이 없었으나 폭풍을 만나 배가 손상되면서 수리를 위해 입항한 거였죠

다음날 밤 그 배에서 누군가 뛰어내려 옆의 부두에 정박하고 있던 영국 군함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사람으로 마리아 루즈호의 "화물"이었죠

 

뭐라고 쏼라쏼라 하는데 영국해군은 영알아들을수도 없고 머리가 아프니 일본 관리를 불러서 넘깁니다.

일본관리도 괜히 귀찮아지기 싫어서 마리아 루즈호로 다시 넘기려 합니다만

그 청나라 사람은 "저 배에서 지독한 학대를 당했다. 231명의 다른 동료들도 학대를 당하고 있으니 구해달라"

일본 관리에게 호소합니다

 

조사결과 그 배에는 232명의 청나라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페루의 농장주와 계약을 맺고 페루의 플렌테이션농장으로 향하는 저임금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정부가 나서서 다른나라 성선에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좀 그러니까

그냥 선장을 불러서 좀 잘해주라고 권고하는 정도로 끝내죠

 

얼마후 다른 청나라인들도 탈출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 영국 군함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처음 탈출했던 청나라인이 죽도록 맞고 감금돼었다는 이야기와 함께였죠

결국 영국 대리공사 왓슨은 노예매매를 금지하던 영국의 정책에 따라 영국군들을 이끌고

마리아 루즈호로 승선해서 수색하는데 실제로 청나라인들은 감금되어 노예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충격을 받은 왓슨은 일본 정부를 찾아가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태정대신 산조 사네토미는 외무경 소에지마 다네오미에게 사태처리를 지시합니다

 

 

외무경 소에지마 다네오미

 

 

일본정부의 조사결과 계약부터가 문맹들인 청나라인들을 속여 노예로 계약을 했다는것을 밝혀내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납치되어 온 사람들이며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뿐아니라 이송하는 도중에도 그들을 노예나 다름 없이 취급했구요.

 

결국 마리아 루즈호는 출항이 금지되고 청나라인들은 모두 하선되어 일본 정부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재판장을 맡은 오오에 타쿠

 

오오에 타쿠가 특명재판장이 되어 열린 재판에서

청나라인들은 모두 본국으로 송환시키고 선장은 인신매매및 가혹행위로 곤장 100대를 처하나

특별히 사면하니 얼른 일본을 떠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일본이 참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 같죠?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입니다..

 

선장은 영국인 변호사를 구해서 항소했던 겁니다

결국 선장은 재판에서 패했고 일본을 떠났지만 이 항소재판에서의 선장측 변호사는 일본의 치부를 찔럿습니다.

 

변호사측

"일본측은 인신매매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마리아 루즈호의 계약의 무효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일본내에서 행해지는 창녀의 인신매매는 무었입니까?

그녀들은 어릴때 팔려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조건아래 홍등가에 매여있습니다.

이게 노예제가 아니고 무었입니까?

일본인 창녀의 매매가 합법이라면 선장의 행위도 합법적인게 아닙니까?

 

였습니다..

 

이에 재판장을 맡은 오오에 타쿠는 순간 할 말을 잃었죠...

일단 시간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한 재판장은 휴정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변명거리를 열심히 찾았죠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되 다시 개정되고 재판장은 반론을 합니다

 

재판장

"창녀매매로 대표되는 노예제가 일본에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노예를 외국으로 보내는건 금지되어 있으므로 청나라인 노동자를 해외로 보내려한 선장의 행위는 위법이다"

 

였습니다...

 

이 재판을 방청하던 타국 영사들도 일본에도 노예제가 있음을 알고 본국에 알리려 하고

국제적으로 망신당하고 이미지가 떨어질것을 우려한 일본정부는

재빨리 "예창기해방령"을 통해 인신매매로 인해 창녀가 된 여성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리고 포주들에게 그 여자들에게 지웠던 빛을 모두 탕감하도록 지시합니다.

 

당연히 포주들은 반발했죠...

그에 일본정부가 한 말이 가관입니다....

 

"창녀는 인간이 아니라 개나 돼지와 같다, 그러므로 짐승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걸로 끝인걸까요?

 

아니죠~ 아직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저 재판장의 말 역시 사실 거짓말이었습니다.

역시 일본 아니랄까봐 파도파도 또 나옵니다

 

15~16세기 일본전국시대 부터 일본의 "인간수출"은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네덜란드등 유럽국가들과 통상하기 시작한 일본의 다이묘들은 조총화약을 구하기 위해 그들과 무역을 하는데

허구언날 전쟁이나 하는 판에 뭐 그다지 팔아먹을수 있는게 있을리가 없었고

그래서 여자를 팔았습니다.


당시 시세가 화약한통에 여자 50명이었다는 군요

물론 남자도 팔긴 했지만 파는것 보다는 병사로 써먹는게 더 좋으니

아무래도 여자 판매가 중점이었죠...

 

 

아무리 대중문화로 멋있어 보이게 색칠해도 기본적으로 너흰 인신매매범이자 포주들이야 색꺄!

 

 

16세기 로마교황을 알현코자 유럽으로 갔던 일본 사절단은 유럽으로 가면서 지났던

동남아,인도,중동,아프리카,유럽.....

"가는 곳마다 일본 여자들이 몸을 팔고 있거나 상선마다 한명이상 실린체 성노예가 되어 있었다"

고 기록했습니다.

 

우리 조상보고 환향녀 이야기 하면서 쓰레기라고 하지만

최소한 우리 조상님은 이렇게 여자들을 팔아넘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2초 일본얘들이 한국은 전통적으로 여자를 천시한다느니

여자 지위가 개판이라느니 하는 소릴 들으면 기가찰 노릇이죠?

 

 이러한 여자판매는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금지될때까지 40년간 50만명을 수출하는 위업(?)을 세웠죠..

물론 이 판매금지라는건 일본인한정이라 임진왜란 당시 끌고간 조선인을 노예로 대량으로 수출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나온게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소설이었죠

 

그리고 여기서 여자수출이 멈췄느냐?

 

아닙니다~~~

 

바로 이 마리아 루즈호 사건이 터지던 당시에도 여자수출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가라유키상(唐行きさん)이라 불리우던 해외진출매춘부가 바로 그겄이었습니다.

뚜쟁이들이 시골 마을들을 돌며 해외에 잡역하러 간다고 부모를 속이고 어린 소녀들을 사서

해외의 매춘굴에 사살상 노예로 팔아넘기는 수법이었죠

이들이 여자들을 팔아넘긴 곳만 봐도 아시아뿐아니라 아메리카대륙과 아프리카대륙까지 가리질 않았죠

 


1910년 경 사이공에서 촬영된 가라유키상의 사진.

 

메이지시대후기 이들은 언론에 낭자군(娘子軍)이라고 미화되어 실릴 정도였고

1910년 당시 일본의 총 수출액의 10%를 담당했습니다.

(예전 우리나라 양궁등 종목의 여자선수들을 가르켜 낭자군이라 불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의 항의로 더 이상 쓰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노예계약에 묶여 있었고 정상적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합니다.

즉 뭘하든 빛을 만들어 붙이는 포주에 의해 잡혀 있는 거였죠..

이 가라유키상의 해외수출은 1920년이 되서야 금지됩니다...

 

그런데도 뻔뻔스럽게 일본에선 그런거 없다~를 줄기차게 외쳤던 재판장...

외국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니 대단한 인권국인양 거짓말로 때우려다

사실이 발각되니 급히 임시방편으로 때우고

그나마 다시 한 변명마저 거짓말이었던 겁니다...

어찌 이리 변하지 않는지 왈본도 참 대단히 초지일관한 나라 같네요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꼬마니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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