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 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 ⑤]
1·21 이틀 후 푸에블로호 나포, 휴전 15년 만에 전쟁 먹구름 “박정희 목 떼러 왔다!” |
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
1968년 1월21일 밤 9시30분. 31명의 군인이 이열종대로 보무당당하게 청와대 코앞의 세검정길로 들어섰다. ‘훈련 후 귀대 중인 국군 방첩대’로 자처한 이들의 실체는 “박정희의 목을 떼러 온” 북한 특수부대 124군 부대원들. 이들이 촉발한 1·21사건은 피아 간 5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토벌전으로 이어지고, 불과 이틀 후엔 동해에서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되면서 한반도는 휴전 15년 만에 다시 전면전의 위기로 치달았다. 북한의 전매특허인 ‘벼랑 끝 전술’은 이 무렵 첫선을 보이는데…. |
1968년1월18일 새벽 2시 임진강 고랑포. 철조망에 바짝 붙어 있던 한 무리의 남자들이 갑자기 납작 엎드렸다. 철조망을 절단하다 실수로 절단기를 떨어뜨린 것이다. 소리를 들은 걸까. 서치라이트가 이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경계병이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31명의 무장 침투조와 안내원은 숨을 죽이고 살을 에일 듯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강기슭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동자세로 한 시간 이상 버틸 수 있게끔 훈련을 받은 자들이다. 30분이 지나자 안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이 사라진 것이다. 철조망을 뚫은 무장 공작원들은 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전진했다. 적진을 돌파할 때는 부대와 부대의 경계면을 노리는 것이 상식이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31명의 북한 공작원이 노리는 코스는 한국군 25사단과 미군 2사단의 전투지경선에서 미군 쪽으로 300m 향한 곳. 딱 한가운데보다는 상대적으로 경계가 허술한 데다 한국인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미군 쪽으로 조금 처진 쪽이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고랑포에서 더 하류로 내려가면 해수의 역류로 임진강이 겨울에도 결빙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래서 침투조는 미군과 한국군의 전투지경선에 있는 얼어붙은 고랑포를 침투지점으로 선택한 것이다. 최근에 한국군은 휴전선 전 구간을 신형 철조망으로 교체했지만, 미군은 구형 철조망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미군은 철조망을 교체하는 대신 베트남전쟁에서 효능을 보인 전자감응기에 의존키로 했다. 그러나 베트남과는 달리 겨울이 몹시 추운 한국에서는 전자감응기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 공작대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결빙했다고 하지만 아직 사람이 지나갈 만큼 단단히 얼지는 않았다. 위장용 흰 붕대를 머리에 감은 공작원들은 얼음에 바짝 엎드려 아주 조심스럽게 기어갔다.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에 간이 콩알만해졌지만 모두 무사히 임진강을 건넜다. 여기서부터 공작원들은 안내조 없이 행동해야 한다. 안내조는 31명의 공작원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온 길로 되돌아갔다. “동 트기 전에 법원리까지 이동한다.” 대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대원들에게 신속히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청와대. 청와대를 기습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는 것이 목표다. 공작원들은 배낭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연속된 긴장과 살을 에일 듯한 추위로 기진맥진했지만 계획에 맞추려면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1967년에만 170회 넘게 무력충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컸다.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한반도는 폐허로 변했다. 남과 북 모두에 피해복구는 최우선 과제였다. 먹고살기 급한 상황에서 인권이며 민주는 뒷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승만과 김일성은 권력을 강화해갔고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권력을 장악하게 됐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격화된 동서진영의 냉전도 그들이 독재권력을 강화하는 데 한몫을 했다. 남과 북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첨예한 대립을 이어갔다. 누가 먼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설 것인가. 단기전에서는 통제경제가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남한보다 먼저 피해복구를 마친 북한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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