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완자홀도(完者忽都)
만일 애당초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완자홀도(기황후)는 나중에 천사만루(千絲萬縷)의 애수가 없었을 것이다. 보통사람이 보기에 완자홀도는 운이 좋았다. 지위가 미천한 궁녀에서 황제의 주목과 총애를 받아, 영화부귀를 한껏 누렸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선망할만하다. 하물며 그녀는 최종적으로 후궁의 최고자리에 올라 만인의 주목을 받는 일국의 황후가 된다. 그러나, 완자홀도는 비애였다. 지위가 바뀌면서 그녀의 인생목표도 따라서 바뀐다. 이렇게 하여 많은 번뇌와 우수가 나타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완자홀도의 미려(美麗)와 애수(哀愁)는 항상 같이 따라다녔다. 샴쌍동이처럼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그들은 항상 서로 교차하는 일부분이었다.
완자홀도는 원순제의 세번째 황후이고, 고려인이다. 원순제의 이름은 보얼지진 토환테무르이다. 원나라의 11번째 황제이고,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기도 하다. 완자홀도 이전에, 원순제는 전후로 타나시리(答納實里, 답납실리)와 바얀 후투그(伯顔忽都, 백안홀도)를 황후로 삼았다. 타나시리가 황후로 있을 때, 완자홀도는 그저 황궁내의 하급궁녀였고 업무는 "주공명음(主供茗飮, 주로 차를 따라 마시게 하는 것)"(<원사>)이었다. 즉 원순제를 위하여 찻물을 따라주는 일을 했다. 만일 이렇게 계속 지냈더라면 완자홀도는 아마도 즐겁게 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황궁내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업무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들지도 않고, 땀을 흘리거나, 햇빛아래에서 살을 태우거나 할 필요도 없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안정된 수입이다. 어찌 추구하지 않겠는가. 다만 완자홀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업무는 비록 하천했지만, 완자홀도는 탄력있는 발전여지를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근거리에서 황상과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어느 왕공대신, 국가동량들도 누릴 수 없는 자리이다. 마치 현재 지도자의 운전기사, 비서 심지어 방의 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깔아주는 일을 하는 사람과 같다. 그들은 쉽게 지도자의 사적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더욱 쉽게 지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고속승진을 하더라도 놀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관직은 그렇게 높은가? 무엇때문에, 무엇때문에?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중용될 수 없다. 정치적 미성숙이 무엇인가? 바로 그렇게 묻는 것이 정치적 미성숙이다. 그들이 일할 때, 당신은 일찌감치 퇴근하여 커피나 마셨을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커피를 마실동안 '일'을 하는데 시간을 썼다. 그들을 발탁하지 않으면 누구를 발탁한단 말인가?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간부를 임용할 때 일관된 원칙이 바로 "지인선임(知人善任, 아는 사람을 쓴다)"이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쉽게 '알(知)'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쉽게 '쓰여지는(任)' 것이다. 세상의 일들을 많이 보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완자홀도는 운전기사, 비서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을 뿐아니라, 그들이 갖추지 못한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여인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다. 완자홀도의 아름다움은 그저 꽃병과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오래 바라보면 싫증이 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생동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예쁘면서도 총명한 그런 것이다. 그녀가 여러 차를 따르는 궁녀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점을 충분히 입증한다고 할 것이다.
완자홀도의 뛰어난 점
완자홀도의 일은 아주 간단했다. 간단해서 누구든지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도 기교가 필요하다. 아무렇게나 누구에게든지 맡길 수는 없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임금을 모시는 것은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 그저 황제의 위풍을 보거나 그저 황제가 편안하다는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반드시 그 위험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호랑이가 언제 온순해지고 언제 성질을 내는지 모르면 안되기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수로 찻잔을 깨트리거나, 차를 건네주다가 황제의 옷에 흘리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기술적인 부분을 숙련시켜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저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저 밥그릇을 지킬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완자홀도의 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눈치를 잘 살폈다. 원순제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가급적이면 차를 따르는 시간을 줄였다. 물의 온도를 마시가 가장 편안한 온도로 맞추었다(이것은 자신의 입으로 맛볼 수도 없다.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완전히 손의 감각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황상이 어떤 때 화를 내는지 세부적인 사항을 파악해둔다. 원순제의 기분이 좋을 때는 왕자홀도가 마음을 놓아도 된다. 행안도시(杏眼桃腮, 눈알은 살구처럼 동그랗고, 뺨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하다)를 시전하여 여인의 매력을 드러낸다. 이렇게 드러내는 것은 지나치지 않게 적절해야 하고 기교가 있어야 한다. 원순제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아마도 사방을 둘러볼 것이다. 이때 완자홀도는 의식하든 아니든 원순제로 하여금 그녀의 이런 변화를 눈치채게 만들어야 한다(가장 좋기는 행안도시가 원순제가 둘러보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여러번 있을 필요가 없다. 한번이면 족하다.
생각해보라. 원순제가 마음 속으로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내일은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연히 춘의앙연(春意盎然)한 완자홀도와 두 쌍의 눈이 마주치면 뛰는 불꽃이 아주 따스하지 않겠는가? 이어서 완자홀도는 순식간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개질 것이다. 그 후에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일 것이다....서지마는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고개를 숙이는 온유함이다. 마치 한떨기 수련꽃이 서늘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부끄러운듯한 교태. 이것이 중국여성의 전통미이다. 또한 중국남자들이 숭상하고 좋아하는 아름다움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원순제의 눈에 또 다른 풍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풍월을 많이 보아온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었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잡아당겨서 끌어안게 될 것이고, 나아가 더욱 친밀하게 접촉하게 될 것이다. 친밀한 접촉이 많아지면, 점점 사랑이 생긴다. 사랑은 연민으로, 그리고 완자홀도에게 더 이상 차를 따르는 것과 같은 하급일을 맡기고 싶지 않게 될 것이다. 완자홀도는 이렇게 인생의 역할변신을 완성하게 된다. 하급공무원에서 후궁의 예비간부가 된 것이다.
후궁의 자리는 그렇게 지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황제가 좋아한다고 하여, 황후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런 상황은 대다수의 경우 반비례한다. 황제가 좋아할수록, 황후는 더욱 싫어한다. 그래서 원순제와 완자홀도가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되자, 타나시리는 이를 악물게 된다. 그녀는 온갖 방법을 써서 완자홀도의 잘못을 찾아내려 한다.
인생은 왕왕 이렇다. 뭐든지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평정하지만, 풍랑과 암초가 시시때때로 나타난다. 최종적으로 건너편에 도달하려면,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하층공무원일 때 골치거리는 단지 업무 자체이지만, 일단 중견간부로 승진하고 나면, 반드시 동급의 배척에 직면하거나, 혹은 상사로부터 자그마한 하자까지 들춰내질 수 있다. 금의옥식(錦衣玉食)과 함께 온 것은 황후 타나시리의 "수추욕지(數箠辱之, 여러번 채찍을 때려 모욕을 주다)"였다(<원사>). 완자홀도에 대하여 채찍질을 하고 욕을 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이것은 완자홀도로 하여금 아마도 궁녀로 지낼 때의 즐거웠던 나날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 때는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를 질투하지 않았다. 황제의 만족하는 미소 하나면 그녀는 하루종일 기뻤었다.
어떤 일은 완전히 달걀 속에서 뼈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타나시리는 완전히 자신의 성격대로 굴었다. 완자홀도가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여전히 화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직면해야 했다. 반드시 직면해야 했다. 어떤 일이든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녀는 새로운 자리에 적응해야 했다. 타나실리로 하여금 점차 적응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시간만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완자홀도에게 다행인 점은, 타나시리가 황후를 겨우 1년만 지낸 다음, 사건에 연루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정은 아주 돌연히 생겼다. 타나시리조차도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자세히 알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타나시리의 오빠이자 어사대부인 탕치스(唐其勢)가 모반을 일으켰고, 실패한 후 피살된다. 오빠와 함게 거사한 동생 타라하이(塔剌海)는 갈 곳이 없자, 누나의 후궁으로 도망쳐와서 숨었다. 타나시리는 동생을 아꼈고, 마음이 급한 나머지 "옷으로 가려주었다(以衣蔽之)"(<원사>). 이 무의식적인 행동이 대원의 법률에 저촉되었다. 그녀는 범죄인을 숨겨준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황후는 폐위되고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얼마후 타나시리는 독살당한다.
타나시리가 죽자, 황후의 자리가 비게 된다. 원순제는 완자홀도를 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승상 바얀의 반대에 부닥친다. 바얀은 당시 조정을 좌지우지했고, 세력이 아주 컸다. 원순제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바얀 후투그를 황후로 앉힌다. 완자홀도를 위로하기 위하여 원순제는 그녀에게 제2황후라는 직함을 준다. 대우는 정궁황후와 똑같았다. 후궁의 2인자가 된 것이다. 완자홀도에 있어서, 이것은 약간 유감이다. 그러나 이것만해도 초고속 승진이다. 존용현귀(尊容顯貴)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완자홀도의 성격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역할변신을 완료하다.
변화는 항상 조용히 서서히 이루어지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완자홀도의 변화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동안 그녀는 여전히 이전의 모습을 유지했다. 완자홀도는 출신이 미천하고, 집안이 빈한했다. 한꺼번에 득세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현재의 위치를 아주 귀하게 여긴다. 그녀는 자질을 제고하려고 노력해야 했고, 신속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아무 일이 없을 때면, 완자홀도가 <여효경>을 보거나, 사서에서 역대황후의 현덕행위(賢德行爲)를 찾아서 본받으려 한다. 자신을 모의천하(母儀天下)의 자질이 뛰어나고, 백성의 사랑을 받는 좋은 황후로 만들고자 했다. 가장 인정해야할 점은 그녀가 빈곤한 출신의 선량한 본색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을 잘 보살폈다. 지정18년(1358년), 경성에 기근이 든다. 굶어죽은 시신이 들판에 가득했다. 완자홀도는 죽창(粥廠)을 열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한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돈을 털어서, 자정원(資政院)으로 하여금 굶어죽은 시신을 수습해주도록 한다. 모두 10만구를 수습한다.
그러나, 양존처우(養尊處優)의 편안한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다시 이전의 힘들었던 나날을 몸으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완자홀도의 이런 마음과 행동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그녀는 곧 영화부귀와 권력의 달콤함에서 스스로의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한 사람의 지위의 변화는 왕왕 성격의 변화도 가져온다. 생활이 날로 편안해지면서, 완자홀도는 철저하게 역할변신을 완료한다. 현실에 적응한다. 현재의 말로 하자면, 그녀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모두 바뀌게 된다.
작은 사례가 이것을 설명해 줄 것이다. 원순제의 둘째황후인 바얀 후투그는 근검절약하는 성격이었다. 그녀가 죽은 후, 완자홀도는 그녀가 남긴 낡은 의복을 보고는 조롱하여 말한다: "정궁황후가 어찌 이런 옷을 입는단 말인가?"(<원사>). 흠. 정궁의 제일황후도 원래 이랬구나, 후보인 나보다도 못하지 않은가?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관건은 완자홀도가 권력에 대하여 농후한 흥취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깊이 알았다. 그녀의 오늘날이 있게 마든 것은 모두 그녀에게 권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권세를 오랫동안 가질 것을 갈망한다. 이 생각은 그녀의 아들 아유시리다라가 황태자에 오른 후 더욱 강렬해진다.
원순제는 조정에 싫증을 냈다. 완자홀도는 아유시리다라와 밀모를 꾸며서, 원순제를 퇴위시키고자 한다.그녀는 당시의 승상 태평(太平)에게 이런 뜻을 밝힌다. 그의 역량을 빌어서 이 일을 추진하려 한다. 이 일을 중대한 일이다. 태평이 승락하지 않는다. 원순제가 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다. 그리고 분노한다. 그래서 완자홀도를 점점 멀리하기 시작한다. 두 달동안이나 그녀를 만나지 않는다. 이때의 원순제는 이미 의식하고 있었다. 완자홀도는 이미 옛날의 그 사랑스러웠던 어린 궁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권력에 대하여 무한한 갈망을 지닌 무서운 여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고개숙인 온유함
완자홀도의 애수는 가정의 불행에서 왔다. 그녀의 가정이 변화하는 과정은 거의 그녀 본인의 변신과정과 같았다. 나중에는 처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
완자홀도의 가정은 원래 고려국의 보통 백성가정이었다. 매일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는 간단한 생활을 지냈다. 비록 힘들었지만, 어쨌든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딸이 대원왕조의 황후가 된 후, 가정구성원들은 모조리 개나 소나 관직과 작위를 얻는다. 날로 존귀해졌다. 당연히 날로 교만해진다. 마지막에는, 그들이 누구도 눈에 두지 않았다. 심지어 대원의 부속국인 고려왕까지도 그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정도를 넘어서면 잠재적인 균형이 깨지게 된다. 완자홀도의 가족은 발호하였고, 마침내 고려왕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 그리하여 그녀의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가족을 잃은 완자홀도는 졸지에 많이 초췌해진다. 옛날의 아름다운 풍채는 졸지에 사라졌다. 그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행복한 생활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졸지에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다니. 이전의 즐거움도 이때는 끝없는 번뇌와 원한으로 바뀐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완자홀도는 태자를 부추겨 그녀 가족을 위한 복수를 하도록 한다. 아유시리다라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친히 1만의 병력을 이끌고, 보무당당하고, 기세당당하게, 압록강을 건넌다. 그러나 아유시리다라는 고려의 복병을 만나 대패하고 만다. 1만명의 인마중에서 겨우 17기만 살아서 돌아온다.
원수를 갚지 못한 완자홀도는 이때부터 더욱 우울해진다. 그녀가 낭패하여 도망쳐온 17기를 보았을 때 당초 그녀가 원순제에게 차를 따를 때의 그 고개숙인 온유함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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